EP·55
55화
“에이 그러지 말고 저랑 사귀자니까요? 이거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예요·”
나는 뒷말이 더 나오지 않도록 단호하게 말했다·
“거절할게요·”
“아 왜요? 저 이래 뵈어도 많이 이쁜 편이에요· 꾸미면 장난 아니라니까요!”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성격도 좋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이건 증명이 좀 어렵나?”
그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늘 씨는 모든 여유시간을 연습에 쏟으시는 와중에도 주기적으로 여기 보육원에 방문하셔서 봉사하시니 성격은 ‘그냥 좋다·’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죠· 하늘 씨는 모든 면에서 매력적인 분입니다·”
“···예고 없이 확 들어오시네· 맞아요· 그러니 딱히 제가 어디 가서 빠질 사람이 아니라 생각해요· 그런데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
이걸 말로 해야 알아먹냐?
“세상에 아이돌이랑 사귀는 매니저가 어디 있습니까? 더욱이 윤하늘 씨는 미성년자잖아요!”
“그 금단을 넘어서는 쾌감 궁금하시지 않으시는가요?”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넘으면 반성철 꼴이나 되겠지·
“아 사귀자고요· 그냥· 사귀자! 사귀자! 사귀자!”
윤하늘은 마룻바닥에 드러누운 채 애새끼처럼 난리를 쳤다·
그것이 재밌어 보였는지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같이 드러눕고 사귀자는 말을 합창하면서 난리를 피웠다·
““사귀자! 사귀자! 사귀자!””
그러자 어디선가 다시 진여름이 나타나서 윤하늘의 목에 있는 옷자락을 붙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가만 보면 여기 사건 사고의 6할은 네가 원인이야·”
“···엑 켁· 잠깐 여름아· 나 목!”
그렇게 윤하늘은 쓰레기 봉지처럼 질질 끌려서 중학교 여자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내던져졌다·
“꺅 하늘이 언니다· 방금 고백 뭔지 빨리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얘들아? 이거 놓고 말해줄래? 언니 조금 무섭···”
쾅·
그 핑크빛 마경에 윤하늘을 던져버리고 문을 시원하게 닫은 진여름이 내게 걸어왔다·
나는 그렇게 사람 한 명을 치워버리고도 우아함을 유지하는 그녀에게 감사를 전했다·
“여름 씨·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뇨 이런 곤란을 겪게 해서 오히려 죄송하죠· 하늘이가 뭐든 한번 꽂히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애라···”
“저는 그 모습이 좋게 보였습니다· 하늘 씨가 그렇게 달려드는 것이 가능한 분이기에 아이돌로서 성공하리라는 예감도 듭니다·”
“···벌써 거기까지 이야기를 나누신 건가요?”
“저도 신기합니다· 윤하늘 씨의 친화력이 대단하시더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얼굴 본 지 20분도 안 돼서 별별 이야기를 다 하기는 했다·
“들으신 것처럼 하늘이는 아이돌을 꿈꾸고 있어요· 그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철저하게 연습하면서 살아가요·”
진여름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 팀장님·”
“네 여름 씨·”
“정말로 저는 여기서 봉사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요?”
“···”
나는 진 여름을 투베어에 스카우트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그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투베어의 사옥으로 데려가서 계약하는 것도 아니다· 가을이와 겨울이가 받는 트레이닝에 참여시키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입단 테스트라고 실력을 확인해 보는 시간 또한 가지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그녀를 방치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지금은 이것만으로 충분해요· 그때 이야기했던 건 기억하죠?”
“···네· 지금의 봉사 활동이 이미지를 전환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셨죠·”
나는 진여름에게 일정 기간은 트레이닝을 시작하는 대신 보육원에서 촬영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지금은 그녀의 실력을 숙달하는 것보다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주장 아래에서였다·
“굉장히 투박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여름 씨가 봉사 활동을 선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어요· 괜히 사람들이 이미지 개선 활동을 할 때 1순위로 선택하는 게 아니죠·”
진여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말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위선이라고 한들 봉사 활동이 선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여름씨의 이미지를 바꾸는 작업은 이 봉사 활동을 기초로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이 질문을 다시 한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불안했을 것이다·
기껏 아이돌이 되겠다고 결심까지 했거늘 일상에 변화는 전혀 없었으니까·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녀를 안심시키고 변수를 줄이는 것이다·
“지금 변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여겨져서 불안할 수도 있어요· 그런 여름 씨가 안심하기를 바라며 하나 약속드릴게요· 이 시간을 통하여 촬영되는 사진들은 분명 이미지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거예요· 어쩌면 결정적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요·”
“···”
결정적이기는 할 것이다· 그것이 진여름에게 긍정적이지는 않겠지만·
내가 촬영하는 사진을 통하여 진여름은 다시금 여론의 폭격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와 겨울이의 이미지는 그 논란 속에서 조명을 받고 날아오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진여름은 최대한 얌전히 협조해야 한다· 퀘스트가 촬영이 완료되었다고 평가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세치혀로 그녀에게 독을 심었다·
“저를 믿어주세요· 진여름 씨· 이 모든 건 진여름 씨를 그리고 투베어의 성공을 위한 거예요·”
“···저는 공허하게 신뢰만을 요구하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그런 생각이 신념이 되도록 너무 많이 이용당해 왔거든요·”
진여름은 나를 올곧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선 팀장님은 믿을게요·”
반가운 말이었다· 이걸로 진여름을 속이는데 더 수월해질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내가 그녀에게 저런 신뢰를 쌓을 만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질문하였다·
“신뢰받는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닙니다만 왜 그런 특별 대우를 해주시는 건가요?”
진여름은 우아함을 담은 특유의 미소를 온기와 함께 흘리며 말했다·
“그냥 그러고 싶어요·”
“···”
나는 진 여름을 정식으로 영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
퀘스트가 완료되는 순간 나는 구차한 변명을 하며 진여름의 영입이 없던 것으로 할 것이다·
아직 계약서조차도 쓰지 않았으니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진여름이 아이돌이라는 가능성을 여름날의 꿈으로 추억할 때쯤 재벌 3세 게이트가 터질 것이다· 그때 나는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그녀의 심장에 꽂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는 길이니까·
“···그냥이요·”
“네 그냥이요·”
목표는 명확했다·
수단은 나를 믿었다·
앞날은 밝았다·
그런데 그것이 기껍지 않았다·
***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겨울아· 스테인리스에 생기는 물때를 제거하는 데는 감자 껍질을 사용하는 게 좋아· 내가 어제 카레 만들고 남은 걸 보관해 둔 게 있으니까· 이걸 써볼래?”
“와 정말로 잘 지워지네! 대단해· 여름아!”
“뭐 그 방면에서 겸양은 떨지 않을게· 나는 언제나 최선의 수를 고르니까· 그게 청소라고 달라지지는 않지·”
“그런데 여름아· 감자 껍질 말고 그냥 스테인리스 클리너 써도 되는 거 아니야? 이게 보관이랑 사용도 더 편한 거 같은데·”
겨울은 청소 도구에서 스테인리스 클리너를 꺼내고는 손쉽게 주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여름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다소 시무룩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감자 껍질을 이용해 청소를 계속했다·
“···감자 껍질이 더 경제적이야· 나는 최선의 수를 고른 게 맞아·”
겨울아 눈치 좀 챙겨! 그냥 감자 껍질로 좀 닦아!
어쨌거나 둘이 모여 앉아서 주방을 청소하는 모습은 상당히 좋은 장면이었다·
나는 100장 중 한 장을 건지겠다는 심정으로 최대한 구도를 다양하게 해가며 그녀들을 촬영했다·
그러던 도중 내 옆에서 고개를 내밀며 나타난 여자가 있었다·
“요! 선 팀장님!”
윤하늘이었다·
“오늘은 저와 사귈 생각이 드셨나요?”
“오늘도 들지 않았습니다·”
“···역시 가드가 두꺼워·”
윤하늘은 촬영하는 나와 겨울 그리고 여름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촬영은 잘 되고 있는가요?”
“네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델이 좋아서인지 내게 의외로 촬영에 재능이 있었는지 결과물은 상당히 괜찮았다·
그런데 퀘스트가 완료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무작정 찍고는 있으나 대체 어떤 사진을 얼마나 원하는 것인지는 난해하였다·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게 뭔지 저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조금 답답합니다·”
윤하늘은 눈을 감고 턱을 괸 채 짐짓 고민하더니 말했다·
“선 팀장님은 지금 여름이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하여 촬영하시는 것이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또 거짓을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극적인 구도로 촬영을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극적이라 하시면?”
“솔직히 일반적으로 청소하고 밥하는 봉사 활동 사진은 뻔하잖아요? 아무리 잘 나와도 재미가 없어요· 봉사 활동을 증명하는 사진인 만큼 그런 사진도 필요하기는 한데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윤하늘은 청량하게 웃으며 말했다·
“클릭하고 싶어지는 어그로가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떠올랐다·
‘논란에는 증거 자료가 필요하다· 진여름을 멤버로 영입할 것처럼 속여서 겨울과 가을이 진여름과 함께 찍힌 봉사 활동 사진을 자극적인 연출로 다수 남기자·’
후일 인터넷의 밈이 되어 버블 샤워 돌풍의 시발점이 된 사진이자 퀘스트가 바라였을 아주 자극적인 사진이·
내가 찍어야 할 것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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