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5
85화
우리는 가을이 오고 싶다던 분위기 좋은 맛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식당의 자리는 한 테이블을 빼고 전부 꽉 차 있었다·
하필 그 남은 한 테이블도 2인 석이었다·
점원은 테이블 회전율이 낮은 곳이라 그 2인 석을 제외하면 언제 자리가 빌지 확답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였다· 그 점원의 말을 들은 가을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떻게 하죠? 자리가 둘밖에 없네요?”
“의자 하나 붙이면 되죠· 뭐·”
“···”
점원에게 말하여 의자 하나를 끌고 온 제임스 오가 중앙에 앉고 우리는 그 양옆에 앉았다·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채로 가을이의 PR 기회라 여긴 내가 그녀의 재능에 대하여 일장 연설을 하였다· 그녀가 좋게 보이면 B컷 발라드곡이라도 하나 내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그런 나의 말을 얌전히 듣던 제임스 오가 물었다·
“가을 씨는 어떻게 투베어 엔터에 오시게 된 겁니까?”
“···어떻게 라뇨?”
“하고 많은 기획사 중에서 투베어 엔터를 선택한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선 팀장님의 말처럼 가을 씨의 재능은 메이저한 기획사를 가도 데뷔 조가 될만하다고 여겨지니까요· 아직 성과가 없는 투베어에서 모험할 이유는 없잖아요?”
···이 양반이 치사하게 팩트를 들이미네·
하기야 남다른 계약금과 가현이를 돌봐주는 점이 아니면 투베어에게 메리트가 없긴 하지·
그런데 이게 남들에게 막 꺼낼 이야기는 아닌데···
그러나 가을이는 다르게 생각하는지 나를 보고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태양 오빠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가을이 네가 괜찮다면·”
“그럼 말씀드릴게요· 제가 투베어에서 꿈을 꾸게 된 이야기를요·”
가을은 그렇게 긴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말투는 담담했으나 그녀가 하는 묘사를 듣다 보면 내가 마치 백마 탄 왕자라도 된 것 같았다· ···아니면 B급 영화의 허접한 영웅이거나·
둘 중 뭐가 되었건 고개를 들기 힘든 묘사였다·
“아니 가을아 그렇게 말할 정도는 아니지· 너무 과장하면 제임스 오 작곡가님이 오해하실 수도 있어·”
“저는 과장 없이 사실만 말하고 있는걸요?”
아무래도 가을의 뇌리에서 영입을 위해 벌어진 일렬의 소동은 드라마나 영화 따위로 기억되는 모양이다·
실제로는 ‘다큐 4일’이나 ‘인간 무대’ 따위의 현실 고착 휴머니즘 다큐멘터리에 가까웠음에도 말이다·
“···저는 그렇게 투베어 엔터테인먼트에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어요·”
잔잔하게 미소를 띤 가을이 이야기를 마쳤다·
그걸 듣고는 이야기하던 도중에 나온 새우 필라프를 마시듯이 퍼먹던 제임스 오가 말했다·
“선 팀장은 멋진 분이시네요·”
“···그런 칭찬을 들을 사람은 아닙니다· 오지랖이 넓은 거에 불과해요·”
“오지랖이라는 단어로 끌어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대단하신 일을 한 게 맞죠· 어느 누가 생판 남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합니까?”
글쎄 상태창을 보는 눈이 있으면 이렇게 하는 사람도 가끔 있지 않을까?
나도 처음에는 단순히 S라는 잠재력을 보고 접근한 거였고·
제임스 오는 내가 무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담담하게 나의 칭찬을 이어갔다·
가을이는 그런 나와 제임스 오를 뿌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마치 아들이 교사에게 칭찬받는 것을 보는 어머니 같은 푸근함이 그 얼굴에 담겨 있었다·
···고1이 왜 벌써 모성애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역시 저와 함께 일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네?”
그의 말에 가을이 가 얼굴을 굳히고는 말했다·
“지금 하시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요?”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선 팀장님이랑 같이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어서요· 이전에는 분명 재능을 보고 영입을 제의한 것이었지만 가을 씨의 일화를 들으니 인격적으로도 굉장히 호감이 가네요· 저런 사람 보기 힘들잖아요?”
가을은 떨리는 눈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태양 오빠가 다른 회사에?”
나는 저번에 스카우트할 때는 묻지 못한 의문을 그에게 말했다·
“제임스 오 작곡가님 프리랜서잖아요? 소속된 회사가 없는데 어떤 식으로 같이 일을 하신다는 말씀인가요?”
설마 우리 회사에 들어온다는 건가?
현존 최고 프로듀서의 영입이라···
미쳤다· 내 월급을 떼어서라도 받아야겠는데?
“작은 스튜디오를 하나 운영 중입니다· 명목상 프리랜서이기는 하지만 굴려야 하는 돈이 많다 보니까 사업체를 하나 등록하는 편이 여러모로 수월하더군요”
···괜히 기대했네·
“죄송하지만 다시금 거절하겠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요·”
“매니지라던가 프로듀싱은 저와도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럴 자본이나 능력이 충분하거든요· 전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우도 원하는 수준 이상으로 맞춰드릴 수 있고요·”
“제작을 하실 수 있으시다고요?”
“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요·”
···와 업계 탑이 가진 자산과 인맥은 저런 발언을 할 수 있게 만드는구나· 저런 사람이 투베어에 들어올 일은 없겠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말했다·
“저는 그걸 여기 투베어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제안은 다시금 거절하겠습니다·”
제임스 오는 그런 나를 보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어 보인 뒤에 말했다·
“낭만이 있으시군요·”
“확신이 있는 거죠·”
그러자 제임스 오는 소리가 나도록 시원하게 웃었다·
“흐흐 아 진짜 같이 일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참 아쉽네요· ···그래도 응원하겠습니다· 겨울이도 그렇고 가을 씨도 그렇고 선 팀장님까지· 여기 투베어에서 어떤 그룹을 만들어 낼지 벌써 기대되거든요·”
그리 말한 제임스 오는 티슈로 입가를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식으로 그룹을 만들고 곡이 하나 필요하시다면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 예약이니 뭐니 싹 무시하고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이런 시발· 로또 터졌다!
저런 거물급 작곡가의 곡은 돈으로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 자체의 네임벨류와 그룹 자체가 가진 퀄리티가 있어야지 곡을 받을 수 있다·
곡에 자신의 이름 즉 브랜드가 내걸리는 만큼 신뢰성 없는 신생 그룹에 절대 곡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존 원탑 작곡가 제임스 오의 저 발언은 담뱃가게에서 긁은 즉석 복권이 1등 당첨을 맞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신 기대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상의 퀄리티를 갖추면 찾아뵙겠습니다!”
“아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뭐든 들어 드리겠습니다!”
얼마를 원하는데? 우리 투자금 많아!
“작업할 때 선 팀장님이 도와주셔야 해요·”
아이 그때 본 거 다 보상 빨 이라니까· 같이 일하면 분명 실망해요·
···그래도 곡까지 준다는데 내가 어떻게든 보상 하나 얻어 둘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시스템아 작곡 관련으로 보상하나만 던져 주라 제발!
사람 한 명 더 두들겨 패라고 해도 내가 진짜 따를게!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제임스 오는 그 대답이 만족스러웠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갔다·
그렇게 그가 떠나가자 역으로 현실감이 생겼다·
“가을아 대박이야! 너무 잘했어! 네가 오늘 보여준 모습 덕에 그 제임스 오의 곡을 얻은 거야!”
호들갑 떨면서 기뻐하는 나와 달리 가을은 침울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아니 제임스 오 모르나? 왜 나만 기쁜 거 같지?
제임스 오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내 옷자락만을 매만지던 가을은 나를 보고서 다소 절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양 오빠· 혹시 혹시 회사를 떠나시면요·”
“···응?”
“저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어디든지요·”
···나 안 간다고·
***
그날 저녁 투베어의 식구들은 모두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최신식의 스크린이 구비되어 있는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오늘이 바로 겨울이 가 참가한 소녀 100의 첫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업무를 마치고 조금 늦게 회의실에 들어가자 천 아람이 손수 화면을 조정하고 회의실의 의자를 옹기종기 배열하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그녀는 팝콘 따위의 스낵과 다양한 음료들을 직접 가져와 서빙하고 있었다·
“송요한 씨는 레모네이드라고 했죠?”
아니 사장님 왜 그래요· 사람 부담되게·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가을 여름과 이혜린 송요한 석현우는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며 천아람을 말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천아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선가 차가운 얼음이 담긴 버킷과 썰어진 레몬 글라스들을 가지고 왔다·
“사장님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저나 수연 씨를 시키시죠·”
자발적인 노예가 둘이나 있는데 왜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것인가?
천아람은 그런 나의 말에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를 살짝 긁으며 말했다·
“미안 내가 이렇게 단체로 무언가를 보는 게 처음이라 기대가 돼서 주접 한 번 떨어 봤어·”
생각해 보니 그녀의 후각을 떠올리면 그녀의 삶에서 이런 단체 활동을 한 적이 없을 것 같았다·
조금 짠해졌다·
“···다음에도 이런 일 있으면 직원들 모두 모아 보죠·”
“진짜? ···아니다· 워라벨은 지켜야지· 이런 일은 오늘까지만 하자·”
천아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대하는 듯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압도적인 첫인상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 그녀가 사람이 고픈 외톨이 비슷한 무언가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걸 어떻게 내버려 두냐·
까짓 거 야근합시다· 동료분들·
“소속 아티스트의 방송을 확인하고 리서치하는 것은 업무의 연장선이죠·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어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겠네! 그래도 이것도 업무니까· 다들 야간 수당은 챙겨 줄게!”
“···친구비·”
“네?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혜린 씨·”
“아뇨!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채널을 뮤넷에 맞춰둔 채 우리는 모두 좌석에 앉았다·
그 가운데에 앉은 천아람이 팝콘을 와삭와삭 먹으며 기대하는 가운데 겨울이 A클래스를 받으며 독보적인 활약을 펼친 첫 방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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