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1
91화
오유리는 나의 얼굴을 보면서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사람의 목적은 소녀 100의 데뷔 조인 11에 저를 집어넣는 거예요· 투표가 조작되어 있다면 그 안에 저를 넣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니까요·”
그건 반성철이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김선예 나아가 뮤넷과 11개의 기획사가 이은 유착은 견고했으니까·
“저는 오유리 씨가 말한 소녀 100 조작설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것이 맞는다고 가정해도 모순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모순이요?”
“네 모순이요· 유리 씨의 말에 따르면 이미 인 11은 확정이 되었다는 말씀 아니신가요? 그렇다면 반성철이 접대 같은 로비를 한다고 해도 그건 어려울걸요? 투표조작이 이루어졌다면 김 피디님만이 아니라 뮤넷 자체가 관여했다는 뜻인데 그 뮤넷이 돈 몇 푼으로 바꿀 만큼 어수룩하게 판을 짜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녀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했다·
“말씀대로 방송국이 주가 되어서 짠 판에 그렇게 쉽게 끼어들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빈자리를 만들면 가능해요·”
오유리는 들고 있던 보드마카로 까치발을 들어 7위에 적힌 이름을 동그라미 치고는 말했다·
“반 매니저님은 5차 투표에서 7위를 달성한 이봄 그녀를 치워버릴 생각이에요·”
내가 기억하기로 이봄은 인 11에 선발되어 조작투표 논란으로 연예인 생활을 급하게 마무리하는 연습생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후일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방송에서 도중하차할 만큼의 특별한 범죄 이력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봄 연습생을 어떻게 치운다는 말씀인가요? 특별히 이력에 문제는 없던 아이로 기억하는데요?”
“문제가 없으면 문제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요· ···이를테면 학교폭력 전력이라던가 말이에요· 폭로자 한 명을 준비하고 몇 명 입을 막기만 하면 가장 쉽게 논란을 만드는 방법이니까요·”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딱히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군요·”
“맞아요·”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만일 이봄 씨가 반박을 제시하거나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진행한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소녀 100에서 대응을 한 시점이겠네요·”
“후일 재평가가 되든 말든 일단 소녀 100의 데뷔 조에 들지 못하게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말씀하신 접대 요구는 그 빈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빈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인가요?”
“둘 다로 알고 있어요· 반성철 그 사람은 위험한 사람들이랑도 연관이 된 것 같았거든요·”
“위험한 사람들이요? 제가 알기로 반성철은 부모님이 사업체를 운영하는 금수저인 걸로만 알고 있는데요?”
오유리는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몸을 흠칫 떨고는 말했다·
“···그 사업체가 룸살롱 같은 거예요·”
“···”
이전 회차에서 반성철은 허세와 자존심이 강한 성격과는 대비되게 자기 부모가 운영한다는 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그 녀석의 부모가 회사를 운영한다는 사실도 회사에서 질이 나빴던 선배가 술에 취한 채로 ‘저 새끼 금수저야!’라는 말과 함께 막말을 해서였다·
오유리의 말을 들으니 그 과거가 상당히 미심쩍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로 반성철에 대하여 몰랐구나·
그러면서 신뢰라는 감정을 품었던 과거가 아주 병신같이 느껴졌다·
아침에 면도한 턱을 쓸어내리며 후회와 반성을 마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유리 씨의 목적은 뭔가요?”
“목적이요?”
“스폰 같은 위법적인 일을 하는 반성철을 심판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다른 안전한 기획사로 이적을 하고 싶은 건가요?”
둘 중 하나라면 내가 도와줄 의향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일종의 책임감마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어진 오유리의 대답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
“저는 소녀 100을 무너뜨릴 거에요· 거기에 협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반성철은 어디 가고?
나는 난감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고 물었다·
“유리 씨의 목적이 접대같이 불온한 요구를 피하는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증거를 모아 신고를 하고 정상적인 소속사로 거처를 바꾸는 것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플라워의 어디까지 반성철이 연루되었을지 모르니 오유리의 안전을 위하는 데 있어서 그의 죄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니 뿌리를 끊을 강력한 한방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녀 100이라는 방송을 무너뜨리는 것은 강력한 한방의 영역을 넘어선 이야기였다·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 네이팜 탄을 갈기는 건 화력 과투자를 넘어선 이야기잖아·
나는 그러한 의문을 숨기지 않았다·
“설령 유리 씨의 가정이 모두 들어맞는다고 한들 그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죠? 당장 저도 소녀 100의 관계자고 겨울이를 띄워야 하는 매니저인 만큼 유리 씨의 불온한 행동을 막을 생각이거든요· 유리 씨의 말을 녹음하고 그 데이터를 김 피디에게 전달하려는 이유도 그거고요· 이런 상황에 소녀 100을 무너뜨린다? ···글쎄요?”
나의 반협박이 섞인 말에 오유리는 벌벌 떨면서 말했다·
“그··· 사람 한 명 살린다고 생각하고 협조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돈 돈을 드릴게요!”
“제가 중학생의 코 묻은 돈으로 만족할 사람은 아니에요· 거금이라고 해도 투베어와 겨울이에게 해가 되는 선택을 할 사람은 아니고요· 그리고 지금은 소녀 100에 위험을 주는 유리 씨를 방치하는 것은 해가 되는 행동이에요·”
“···역시 저는 망했네요·”
유리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바닥만을 내려보았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바닥에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일을 벌이려는 건가요?”
눈물을 닦아내고는 눈치를 살피며 대답을 망설이던 그녀는 비뚜름하게 웃고 말했다·
“···그냥 넘어가기는 싫어서요·”
“그냥이 아니면요?”
“이따위 일을 조성하는 반성철 매니저님도 조작방송도 로비를 받는 연관자들도 전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할머니에게 배웠거든요· ···그것뿐이에요·”
“그 정의감을 위해 협박을 하신 거고요?”
“사실 협박을 하더라도 선 팀장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요구할 의도는 없었어요· ···그래도 죄송해요·”
“···하아·”
중학생이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기에 사명감과 정의감 그리고 복수심은 이상한 동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뭐 따질 것까지는 아니었다· 납득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
여기까지의 대화를 통하여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그녀의 말 대로라면 인 11안에 오유리가 드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의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유리 씨는 왜 하필 제게 이런 말씀을 건네시는 건가요?”
“이런 말이라뇨?”
“이런 일을 말하기에는 저보다 능력이 좋고 영향력도 좋은 사람에게 말을 꺼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 일을 파헤치기에 나보다 더한 적임자는 없었다·
회귀에 상태창에 목적성까지 완벽한 조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나의 관점에서만 그런 것이었지 오유리의 시점에서는 달랐다·
그녀의 관점에서 나는 그냥 흔하디흔한 매니저 한 명에 불과했을 테니까·
그런 나에게 협박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협조를 요구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선 팀장님이 김선예 피디님과 거래했으니까요·”
“저랑 피디님은 거래한 적 없다니까···”
“가정 그냥 가정이에요! 저의 인생이 망한 마당에 또 협박하려는 생각은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 줘요! 그러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으니까요·”
“···그러죠 뭐·”
가정이라기에 오유리는 나와 김선예가 거래한 것을 확신하고 있는 듯했으나 이 자리에서 녹음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어느 정도는 맞장구를 쳐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녹음 파일에서 나중에 내게 불리한 부분은 편집하면 되니까·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선 팀장님은 다른 거래자들과는 다르게 늦게 거래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 말씀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오유리는 다시 보드마카를 꺼내어 간단한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송이 진행되는 도중에 추가로 거래했다는 것은 카르텔이 구축된 기존의 기획사들과 시작점이 전혀 달랐다는 뜻이에요· 오히려 대우가 안 좋은 편에 속했겠죠·”
“그건 어떻게 확신하시나요?”
그녀는 칠판에 연습생들을 실력별로 구분해 묶어가며 말했다·
“첫 녹화 때 다른 작가분의 태도와 카메라의 개수 최상위의 실력을 갖춘 카운터의 멤버 3명과 동행을 시킨 것이 그 근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인력 구조의 배치는 깔아주는 예능용 캐릭터에 적합한 구도이니까요· 겨울 언니는 방송사 내에서 중요성이 굉장히 떨어지는 인력이었다는 뜻이죠·”
첫 녹화에서 중학생다운 귀여움을 뽐내며 애교 섞인 인사를 하던 오유리는 속으로는 그런 정보들을 수집하며 판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가 저 행동력과 추리력을 중학생이 보일 것이라 여기겠는가?
정말 대단한 아이기는 했다·
“그런데 실제 녹화에 들어서서는 그림이 전혀 달라졌어요·”
오유리는 앞서 적었던 1차시와 2차시의 투표 결과에 밑줄을 그었다·
방송이 나가기 전 기존의 팬층만으로 진행했던 투표에서 94위였던 겨울이 1화 방영 한 번에 17등까지 치고 오른 기적의 반등이 거기 있었다·
“이건 선 팀장님이 그리고 겨울 언니가 방송에서 지정한 역할을 벗어났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김선예 피디님은 이것을 배신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아니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제가 본 김 피디님은 방송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시기를 원하는 타입으로 보였으니까요·”
오유리는 1차 투표에 적힌 한겨울이라는 이름과 2차 투표에 적힌 한겨울의 사이에 화살표를 긋고는 X자를 쳤다·
“칼을 빼 들었을 거예요· 자신의 컨트롤을 벗어난 체스 말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였을 거예요· 악의적 편집 압박 하차 권유 블랙 리스트 등 김선예 피디님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너무나도 많아요· 그리고 그중 한 장의 카드여도 선 팀장님과 겨울 언니를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하죠·”
그리고선 오유리는 희미하게 웃음을 흘리며 X자를 한 번에 지워버렸다·
“그런데 선 팀장님은 그런 구도를 단번에 뒤집어엎어 버렸어요· 패널티를 받는 피해자가 아니라 투표조작의 보호를 받는 수혜자로 단숨에 바꿔버린 것이죠· 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거래 한방에요· ···이건 ···이건 정말로 대단한 거예요·”
오유리는 닭살이 돋았다는 듯이 자기 팔을 양손으로 쓸어 매만졌다·
“선 팀장님은 방금 ‘저보다 능력이 좋고 영향력도 좋은 사람에게 말을 꺼내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물으셨죠?”
“···그랬죠·”
“단언할게요· 이 소녀 100의 관계자 중에서 영향력은 모르겠지만 능력만을 따진다면 선 팀장님보다 능력이 좋은 사람은 절대로 없어요· 그야 이런 일은 누구도 하지 못할 테니까요·”
오유리는 붉은빛 눈에 기묘한 열기를 가득 담은 채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몰라도 저만은 그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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