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9
99화
나는 지금 아주 커다란 고민을 마주하고 있었다·
“흠··· 생각했던 것보다 회사 설비가 쓰레기는 아니네요· 저라는 천재의 처음을 알리는 출발선으로는 적당한 것 같기도 합니다·”
“···”
“대우만 합당하다면 잠시 이곳에 몸을 맡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행운으로 여기셔야 합니다· 저는 미래에 제임스 오를 뛰어넘을 프로듀서가 될 몸이니까요·”
전 회차 내 뒤통수를 때린 놈 중 하나인 표절 작곡가 오진우가 투베어에 입사를 하겠다고 제 발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 진짜 왜 하필 이 새끼냐·
그가 투베어의 음향 실을 둘러보는 사이 그의 냄새를 맡아본 천아람이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좀 냄새가 나네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야· ···나는 솔직히 저 친구 안 받았으면 하는데 선 팀장이 괜찮다고 하면 받아들일게· 어찌저찌 냄새를 참을 수 있을 것 같거든· 프로듀싱 팀이 선 팀장처럼 내가 자주 얼굴을 봐야 하는 부서는 아니니까·”
천아람의 냄새 판별도 통과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기야 표절하고는 그걸 커버쳐 준 나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인성을 생각하면 냄새 평가에서 통과를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냄새가 나면 그냥 거부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선 팀장이 재능은 있다고 한 친구니까 최대한 절충해야지· 나라도 실력 있는 프로듀서가 인성까지 좋기를 바라는 건 과한 기대라는 거 알고 있어· 최상의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케이스가 얼마나 되겠어? ···그래서 솔직히 선 팀장이 프로듀싱 공부를 했으면 했는데 혹시 지금이라도 생각이 있어?”
“저는 저 같은 아마추어에게 겨울 가을 여름이의 운명을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천아람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선 팀장은 내가 보기에 재능 있어· 그냥 아마추어로 남지는 않을걸?”
“고평가에 감사합니다· 그래도 첫 타석부터 최상의 퀄리티를 뽑아내지는 못하겠죠· 저는 지금 최고를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프로듀싱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안 그래도 선 팀장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타협은 해야지· 사업가라면·”
그녀는 장비를 능숙하게 만지는 오진우를 보면서 작게 말했다·
“그리고 샘플을 들어 보니까 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았거든·”
“···그건 그렇죠·”
그렇다· 저 녀석이 싸가지 없고 인성이 터진 것은 분명했으나 능력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후일 개인 스튜디오를 차리고 돈을 쓸어 담는 거물급 프로듀서로 성장을 하니 그 재능은 확연했다·
거기에 실력 있는 프로듀서라는 인종은 하나같이 자존심이 넘쳐서 본인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신생은 꺼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투베어에게 있어서 오진우는 A급 매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 친구· 그 제임스 오가 추천한 사람이잖아? 그 성의를 생각하면 그냥 내치는 건 곤란하겠지·”
“맞습니다· 합리적 이유가 없이 거절한다면 투베어에 호의적인 자세를 취하는 그도 불편함을 느끼겠죠· 일단 이렇게 소개를 해 준 것도 저희가 제대로 된 프로듀싱 인력이 없다는 걸 알아서 말해주신 것이니까요· 보고 편히 거절해도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꼭 그렇게 굴러가지만은 않겠죠·”
그랬다· 저 표절작곡가 오진우가 난데없이 우리 투베어에 오게 된 계기는 제임스 오가 추천을 해서 우리와 연결을 해줬기 때문이다·
같이 술을 한잔하던 때에 프로듀서 영입에 대하여 고민을 토로하니 그가 해결책으로 자신이 실력이 괜찮은 사람을 한 명 소개해 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표절작곡가이자 날카로운 뒤통수 후리기를 자랑하는 오진우가 오게 된 것이다·
물론 오진우를 소개한 것은 제임스 오의 순수한 선의였다· 그래서 더 난감했다· 그야 지금의 오진우는 표절 전력 따위가 없이 재능있는 유망주 프로듀서일 뿐이니 거절하는 데 이유를 대기가 난감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표절에 대하여 경각심을 강하게 가지고 체크한다면 그를 못 써먹을 것도 아니다·
나는 뭐가 표절이 생기고 어디가 위험한지 법적인 공방을 함께 했으니까 모를 수가 없다·
그걸 미리 틀어막으면 표절 논란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심리적으로 꺼려지기는 했다·
“이번에는 선 팀장의 판단에 맡길게· 나는 냄새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할 것 같거든·”
“···알겠습니다· 회사를 위한 최선을 선택하겠습니다·”
나와 천아람이 협의를 마무리하는 사이 오진우가 작업실의 확인을 마쳤는지 방음부스의 문을 나서며 말했다·
“뭐 기본적인 건 있더군요· 나름 볼만 했습니다· 그래도 추가해야 할 게 분명히 있어요·”
···응? 천아람이 시설은 이미 최상으로 싹 다 구비해놓았는데?
나도 ‘드랍 더 비트’로 겨울이 곡 편곡할 때 써봤는데 좋긴 좋더구먼· 뭐가 없는 게 있나?
나는 부족한 설비가 있다면 최대한 개선을 논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어떤 게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오진우는 미리 생각해 왔다는 듯이 거침없이 말했다·
“일단 제가 아침은 거르지 않는 편이라 신선한 과일이 포함된 브런치 정도는 나와야죠· 그리고 슬립팟이라고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쾌적한 숙면을 위한 캡슐인데 그거도 하나 들여야 할 것 같군요· 거기에 칵테일 바 시스템도 있어서 나쁠 거 없죠· 원래 영감이란 게 약간의 알콜이 가미되면 튀어나오기도 하니까요·”
···미친 새끼인가·
나는 말없이 천아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도 난감하다는 듯이 표정을 살짝 구기고 있었다·
오진우의 냄새가 독하기는 했는지 코를 살짝 매만지는 것은 덤이었다·
그런데도 천아람은 나를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고는 오진우에 말에 대하여 더 첨언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그녀가 저렇게 감내하면서까지 오진우를 영입할 가치는 없겠다고·
까짓거 발품 한 번 더 팔지 뭐·
내가 고졸인데 SS에 입사 약속까지 받았던 사람이야·
···물론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회귀 지식에 상태창을 들고 있는 나에게는 오진우 같은 A급 프로듀서를 영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내가 더 고생할지언정 저 배은망덕한 놈이랑 두 번은 일 못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담아 입을 열었다·
“아쉽게도 오진우 작곡가님의 그런 요구를 따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오진우는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더니 말했다·
“흠··· 혹시 지금 이걸 과한 요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밸리지 음악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BH의 블라인드 사운딩 테스트에서도 우승한 경력이 있는 저를 섭외하는데요?”
쟤 스팩이 대단하기는 하지· 그에 걸맞은 실력도 있고·
“오진우 작곡가님의 우수성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경력을 말씀하지 않으셔도 샘플로 보내주신 곡 하나만 들으면 다 알게 됩니다· 오진우 작곡가님이 얼마나 대단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으신지가요·”
그런데 너 그거 절반은 표절 빨이잖아·
“하지만 그런 거물의 잠재력을 보유한 오진우 작곡가님을 섭외하는 데에는 저희 투베어가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소속된 아이들도 그룹 하나에 불과한 작은 회사라는 것을 상기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뭐 그런 회사라면 제가 할 일이 적기는 하겠죠· 기껏해야 미니 앨범 하나 만들면 몇 달은 공백 기간이 될 수도 있겠네요·”
“게다가 까놓고 말해 자금이 부족합니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그 적은 자금에 걸맞은 소규모 프로젝트에요· 해 봤자 디지털 앨범 하나를 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금이 부족하다는 나의 말에 천아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나의 말에 의문을 느낀 모양이다·
하기야 천아람이 투자자들을 모으고 진강의 대규모 지원이 꽂힌 지금 투베어에게 자금이 부족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었다·
객관적으로 우리 돈 많은 거 맞다· ···그런데 오진우를 줄 자금은 없다·
내가 저놈에게 그 돈을 퍼주는 꼴은 두 눈 뜨고 못 보지·
뭐 슬립팟? 새끼야· 너에게는 러꾸러꾸 침대도 사치야!
“그러니 저희같이 자금과 인력 모두가 부족한 신생 기획사보다는 오진우 작곡가님의 재능을 제대로 끌어낼 더 튼튼한 그릇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진우는 나의 사탕발림에 그럴듯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계속 이야기해 보시죠·”
“그런데 제가 마침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으면서도 젊고 재능이 넘치는 뉴페이스 프로듀서를 원하는 그런 기획사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자금도 풍부하죠· 원하시는 대우를 거기서는 충족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임스 오가 소개해 준 사람이라고 한들 우리가 그릇이 부족하여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곳을 대신 소개해 주었다고 하면 크게 반발감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후일 오진우의 표절 사실이 드러나면 그 회사가 굉장히 곤란해지겠지만 그에 대하여도 생각이 있었다·
“일단 들어 보는 것은 나쁘지 않겠네요· 그 회사 이름이 뭐죠?”
“거기가 어디냐면···”
***
이튿날 나는 한 남자를 불러내었다·
“그래서 나를 무슨 일로 불러낸 거냐·”
“말이 가볍다?”
“···불러내신 건가요?”
플라워 엔터의 반성철 매니저였다·
“저번에 내기해서 부탁 하나 들어주기로 한 거 기억나지?”
“···그건 존댓말을 하는 걸로 끝난 거 아니었나요?”
“네가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판돈 추가하자며? 네 입으로 말한 걸 기억 못 하냐?”
“···”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반성철의 입술이 삐죽하고 튀어나왔다·
한 대 쥐어패 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상식선에 부합하는 부탁이라는 건 기억하시죠?”
“걱정하지 마 이건 너에게도 이익이 되는 이야기니까·”
“그게 뭔데요?”
나는 입꼬리를 기분 좋게 끌어올리며 말했다·
“야 너 거처를 찾는 A급 작곡가 한 명 관심 있냐?”
진우야 플라워에 가서 신나게 표절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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