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1
돈을 내고 빌린 작은 카페. 그 안에는 나와 고양이 수인. 오로지 둘만 있었다. (최지원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참고로 고양이 수인은 수컷이다.)
“아… 이거 맞나…”
고양이 수인은 여기까지 와서도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얘기하면 안 되는 정보를 이야기하기 직전의 배신자 같은 모습이었다.
“괜찮습니다.”
그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했다.
“최근 군타르 씨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끼지 않으셨나요? 사람 몰골이 그게 뭡니까. 인간을 마구 죽여 대기나 하고. 안 그래요?”
다른 수인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다른 종족 간에는 살짝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기는 해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혐오하면서 마구 죽여대는 행태는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싫어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죽이는 건 좀 아니잖아.
“끄응…”
나와의 대화에 응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수인은 극단적인 종족 차별주의자가 아닌 지극히 멀쩡한 상식인이었다. 지금 군타르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데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것보다 군타르라고요?”
“아 투기장 등록명이 군타르 아닌가요? 그 늑대 수인.”
“군타르. 군타르. 아아. 그랬지요. 가명을 그렇게 사용하기로 했었지요.”
“녀석의 본명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는 있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본명은 가족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아 예.”
그럴 거면 이야기를 왜 꺼낸 거야? 라고 묻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꼽을 줘서야 되겠는가.
“저희는 고향 행성을 떠나올 때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이름에 힘이 있다고 믿어서 진짜 이름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고양이 수인.
“하지만 새로운 이름은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정해지기에… 새로이 받은 이름을 더 좋아하는 녀석들도 간간히 있습니다. 군타르…가 그중 하나였지요.”
“군타르가 장난꾸러기라는 뜻이었죠?”
“맞습니다. 녀석은 어려서부터 장난이 참 많았습니다… 똘똘한 머리에 장난기가 왜 그리도 많은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희 행성에서는…”
고양이 수인의 떨리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든다. 긴장이 좀 풀린 모양인지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녀석은 새로운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정보 새로운 장난… 새로운 친구. 항상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에 걸고는 뭔가 기이한 이야깃거리를 가져오곤 했지요…”
“아 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친우를 위해 목숨도 걸 수 있다는 표현을 다들 비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군타르는 했습니다… 똑똑한 녀석들은 목숨을 아까워하는 것이 대부분이거늘 군타르는 달랐습니다…”
“으음…”
“혹시 제 이야기가 지루하신지요?”
“아뇨 아뇨. 제가 원래 리액션이 좀 약한 편이라서…”
“아아… 다행입니다… 그보다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군타르는 가장 강맹한 자는 아니었어도 가장 용맹하고 지혜로운 자는 확실했습니다. 책벌레처럼 지식을 파고들면서도 친구를 챙기는 것은 제일인지라…”
큰일 났다. 고양이 수인의 긴장이 과하게 풀렸다. 나는 고양이 수인의 과거 이야기를 무려 3시간 동안이나 더 들어야 했다. 대부분 군타르의 총명함과 용맹함에 대한 것들이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못 본 지 꽤 오래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장난스러운 미소는 항상 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1000일 정도 전에 군타르가 투기장에서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거늘… 그는 이미 떠났습니다… 매년 한 번 정도만 볼 수 있었지요…”
“…”
“그런데 얼마 전… 군타르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니 잠시만요. 만났다고요?”
“아 네.”
어지럽던 정신을 바로잡는다. 드디어. 드디어 본론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다시금 굉장히 조심스러운 어조로 돌아온 고양이 수인.
“저는 여느 때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우리는… 같이 큰 사이니까요.”
“설마.”
“예.”
잠깐의 침묵. 이어지는 충격적인 선언.
“군타르는 저를… 전혀 알아보질 못했습니다.”
“그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어린 시절 친했던 그 군타르가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누구신지?’ 라고 묻는 꼴이…”
고양이 수인은 고개를 아래로 푹 파묻었다.
“군타르는… 인간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종 차별주의자가 아닙니다. 지금의 모습은… 명백히 이상합니다.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군타르는 학살자가 아닙니다…”
“흐음…”
“어떤 미친 인간이 마구잡이로 동족을 죽였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습니다… 하지만 군타르는 개인의 실수를 종 전체에 물을 정도로 어리석은 녀석이 아닙니다… 그 총명하던 녀석이… 어째서…”
“힘내세요.”
눈물을 흘리는 고양이 수인의 등을 토닥여주는 한편 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기억을 잃었다라.’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철학자들에게 묻는다면 전부 다른 답이 나오겠지만 그중에서 ‘기억’을 빼놓을 수는 없다. 기억은 나라는 존재의 모든 것을 기록해둔 양피지이다.
그런데 기억을 잃었다면. 그건 이미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군타르의 경우에는… 기억을 잃는 동시에 미쳐버렸다고 보는 게 맞겠지. 고양이 수인의 말만 들으면 아주 훌륭한 위인이었던 것 같은데 조금은 안타깝다.
물론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분석은 해야 한다. 군타르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뭔가 찝찝하다. 이상하다.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지금은 군타르가 저를 만나 주지도 않습니다… 아예 이야기할 기회도 주어지질 않습니다…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안심하세요. 제가 어떻게 해 볼게요.”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고양이 수인을 보낸 후. 지원이가 그 자리에 앉았다.
“…이거 털 뭐야.”
옷에 묻은 털을 털어내는 최지원. 나는 그녀에게 고양이 수인과 했던 이야기를 잘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학살자의 실체는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는 수인이노라고.
“그러니까 기억상실이라고?”
“그렇지.”
“흐음.”
“이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이 녀석한테 접근할 방법이 없을까.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은데.”
“내 생각인데.”
천천히 입을 떼는 최지원.
“기억을 잃는다고 해서 사람이 그렇게 확 바뀔까?”
“흐음.”
“내가 기억을 잃는다고 해서 아무나 죽이고 다니는 살인귀가 될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보통은 그렇지 않나?”
내가 찝찝하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기억을 잃는다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사이코패스가 되기도 하나? 종 차별주의자가 될 수가 있나?
“황제의 능력일까. 아니면 군타르 본인의 능력일까.”
단순히 기억을 잃었다는 것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뭔가 추가적인…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건 그렇고. 방법은 알았어.”
“무슨 방법?”
“군타르랑 만날 기회를 얻을 방법.”
“진짜?”
눈을 크게 뜨는 최지원.
“하지만… 친했던 친구의 접근도 무시한다고 하잖아… 그냥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고 했는데… 본인이 소통을 거부하는데 무슨 수로?”
“완전 거부는 아닐 거 아냐.”
군타르가 ‘모든 소통’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저 녀석은 오로지 ‘인간’만을 지목하고 있어. 안 그래?”
단순히 등록한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는 인간을 구분할 수 없다. 거기에 더해 군타르는 순위가 상위권인 인간들을 지목하고 있다.
“상위권은 복도에 걸린 스크린으로만 볼 수 있거든.”
“아 맞다!”
“그리고 요즘 활동 안 하는 인간이 얼마나 많아? 죄다 다음 층으로 넘어갔으니까.”
군타르의 지목은 오로지 상위권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는 복도로 나온 적도 없으면서 어째서인지 상위권 인간에 대한 정보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거기다 이미 사라진 플레이어를 지목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적어도 ‘존재하는 인간’을 고르긴 했다. 거절은 또 다른 이야기이고.
“그러면 준호 네 말은…”
“이 투기장이 군타르에게 협조하고 있다는 뜻이지.”
투기장은 군타르와 우호적인 관계이다. 우리와 군타르가 만나는 걸 막는 것도… 투기장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단순히 억지를 쓰는 것만으로는 군타르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야.”
“투기장에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군타르를 만날 방법이 있어야겠네?.”
“근데 말이야.”
난 품속에서 ‘그것’을 꺼냈다.
“내가 회귀자라서… 치트키가 하나 있거든.”
**
‘우주 최대 규모의 투기장’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그만큼이나 인기가 있다는 뜻이고 큰돈이 오간다는 뜻이고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야깃거리도 많고.
“어흐흑…!”
그렇기에 수십 개의 건물 중 하나에서 수많은 존재 중 한 사람의 고양이 수인이 아주 아주 서럽게 우는 것 정도는… 큰 주목거리도 아니었다.
“여러분!!! 군타르를 위해서! 이 약을 전달해야만 합니다!!!”
‘호기심’ 특성과 ‘묘한 존재감’ 특성을 지닌 수인 애호가가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 약은!!! 정신을 치료하는 데에 특효를 보이는 약인 ‘엘릭서’ 라고 합니다!!! 이 약만 있다면!!! 군타르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군타르가 누구야?”
“왜 그 인간 학살자.”
“뭐? 군타르는 분명 예전에…”
“많이 변하긴 했지.”
일부는 무시했다. 일부는 조롱했다. 일부는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워낙 전체 파이가 크기에 그 ‘일부’만으로도 정말 정말 많았다.
“그 약 사기 아닙니까?”
“아닙니다! 이것만 있다면 군타르는 나을 수 있습니다!”
“어흐흑…”
“쟤가 그 수인 애호가잖아. 수인만 찾아다닌다는 놈. 사기는 아닐걸.”
“이번 타겟은 학살자인가?”
“재미있을 거 같은데?”
“이거 전달하는 영상 찍으면 안 되냐?”
크기가 어떠하건… ‘투기장’이라는 것은 관심으로 돌아가는 곳. 다수가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압박이 되어 주리라.
군타르 너 원래 착한 녀석이었어?
엘릭서를 먹이면 어떨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가…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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