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수십 미터 크기의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고, 그 안에 누군가 처박혀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깊이 처박혀 있는 이는 제온이었다·
쿵!
바닥에 파묻혀 있는 제온 앞으로 거대한 동체를 가진 괴물이 착지한다·
대군장 오르카였다·
오르카의 손에는 이제까지 없던 거대한 전투 도끼가 들려 있었다·
오르카의 전용 무기인 테라탄이었다·
테라탄은 오르카가 던전을 정복하고 얻은 아이템이었다·
무슨 금속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테라탄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오르카는 이보다 더 단단한 금속을 본 적이 없었다·
보통 던전제 아이템에는 부가적인 능력이 붙어 있기 마련이다·
주인의 능력을 더 올려 주거나, 특별한 스킬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테라탄에도 그런 능력이 있었다·
바로 질량 증가였다·
테라탄의 무게와 함께 주인의 질량을 순간적으로 열 배 이상 증폭시키는 것이다·
테라탄의 무게 백오십 킬로그램· 오 미터에 육박하는 오르카의 몸무게는 무려 이 톤이 넘는다·
테라탄은 도합 이천백오십 킬로그램의 엄청난 중량을 순간적으로 열 배 이상 증가시키는 것이다·
중량의 증가는 곧 파괴력의 증가를 의미한다·
중량이 열 배 증가한다면 파괴력은 그 이상으로 증가한다·
즉 이론상으로 열 배에서 수십 배 이상의 파괴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파괴력을 끌어 올리면 시전하는 자도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오르카가 테라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파괴력에 따른 반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맨주먹으로도 모든 적을 분쇄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테라탄을 아공간에 봉인해 두었다·
오르카는 절대 테라탄을 꺼내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온이라는 대적을 상대하자 마음이 바뀌었다·
제온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강적이었다·
오르카의 인생에서 이보다 강한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에 만났던 점박이 오우거도 제온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했다·
오크의 숙적 또는 재앙이란 말이 아깝지 않았다·
제온의 모래를 이용한 공격에 수없이 나가떨어지고, 모래에 처박혔다·
튼튼한 육체 덕분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자존심에 금이 갔다· 그래서 제온이 방심한 틈을 타 테라탄을 꺼내 휘둘렀다·
당연히 맨주먹으로 공격할 것으로 생각했던 제온은 테라탄에 강타당했다·
방심의 결과가 바로 크레이터였다·
엄청난 질량 공격에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크레이터가 생겨났고, 그 한가운데 제온이 처박힌 것이다·
오르카가 테라탄을 높이 치켜들며 말했다·
“인간, 강하다· 하지만 이기는 것은 나다· 너의 심장을 먹고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벌써 죽은 사람 취급하지 말라고· 아우! 골이야· 더럽게 아프네·”
그때 죽은 것처럼 널브러져 있던 제온이 눈을 뜨며 말했다·
테라탄에 강타당하는 순간 제온은 로브에 마나를 주입했다·
레비아탄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의 능력 중 하나가 바로 경화였다·
즉 단단해져 착용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레비아탄의 등급은 SS급·
당연히 그 가죽의 강도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덕분에 제온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비록 엄청난 충격에 전신이 마비되다시피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목숨을 구했으니 아주 손해는 아니었다·
문제는 오르카의 테라탄이었다·
쐐애액!
제온의 가슴을 노리고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이 저릿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온은 모래술사였다·
슈우욱!
제온의 몸이 쑥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제온의 몸이 모래 속으로 사라지고, 그가 있던 자리에 테라탄이 떨어졌다·
쾅!
또다시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기고, 모래가 구름처럼 일어나 시야를 가렸다·
“크륵!”
오르카의 눈이 흉포하게 빛났다·
그의 모든 감각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곤두섰다·
츠츠츠!
지하 수 미터 아래에서 흐르는 모래가 느껴졌다·
오르카는 지체 없이 테라탄을 휘둘렀다·
콰앙!
폭음과 함께 수십 미터 크기의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그 아래 제온이 있었다면, 분명 이번 공격에 압사했을 것이다·
제온의 기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오르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잡았다· 인간!”
그의 심장을 먹지 못한 것이 비록 아쉽긴 하지만, 오크들의 숙적을 죽였으니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오르카가 포효했다·
“우워어어! 나의 승리다· 오크 대군장 오르카가 모래 귀신을 죽였다·”
“크워어!”
“취잇! 역시 대군장이다·”
오크들이 오르카의 외침에 용기백배해 각성자들을 공격했다·
오크들은 신이 나서 공격했고, 반대로 각성자들은 위축됐다·
그만큼 제온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다·
“그 모래술사가 죽었다고?”
“제기랄!”
제온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각성자들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런 이들은 오크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크악!”
“컥!”
곳곳에서 각성자들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브리엘이 오크의 공격을 피해 움직이며 오르카를 바라봤다·
오르카는 테라탄을 높이 치켜들며 승자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제온이 죽었다고? 이리 허무하게? 아니, 그럴 리 없어· 겨우 저딴 괴물에게 죽을 사람이 아니야·’
다른 각성자들은 제온의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브리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온과 그녀는 하이 엘프의 맹세로 엮여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제온은 죽지 않았다·
그가 죽었다면 연결된 실도 끊어졌을 테니까·
‘제온은 살아 있어·’
그때였다·
후웅!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목 안이 순식간에 텁텁해졌다·
바람에 모래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누런 모래바람은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었다·
처음엔 자연적으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크도, 각성자도 알고 있었다·
지금 불어오는 바람이 절대 자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모래술사다·’
‘그가 아직 살아 있다·’
각성자들은 용기를 얻었고, 반대로 오크의 사기가 급전직하했다·
오르카의 표정 또한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살아 있었던 거냐? 모래 귀신!”
그가 테라탄을 꼬나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제온이 살아 있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오르카는 그를 죽일 자신이 있었다·
테라탄과 함께한다면 어떤 괴물이라도 단숨에 두 동강 낼 수 있었다·
“어디냐? 모래술사! 비겁하게 숨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오르카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제온은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모래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짙어졌다·
후우웅!
누런 모래바람이 온 세상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그 속에서도 오르카는 태연했다·
몸 주위에 생성된 역장이 거센 모래바람에서도 그를 지켜 줬기 때문이다·
모래바람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그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그극!
모래바람이 얼마나 강력한지 이 톤이나 되는 오르카의 육중한 동체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때서야 오르카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예상보다 모래바람이 더욱 흉포하고 날카로웠던 것이다·
피피핏!
역장을 뚫고 들어온 모래바람이 오르카의 피부에 칼날에 베인 듯한 상처를 만들었다·
물론 그 정도 상처에 눈 하나 깜짝할 오르카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르카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어 갔다·
제온이 겨우 이 정도 모래바람으로 자신을 공격할 리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르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냐? 인간! 그만 모습을 드러내라· 이 테라탄으로 두 동강 내 줄 테니까·”
“샌드 스톰!”
그때 모래바람 속에서 제온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르카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테라탄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의 거대한 동체가 나무 뽑히듯 허공으로 쑥 빨려 올라갔다·
이 톤이나 되는 육중한 동체가 가랑잎처럼 수십 미터 상공으로 빨려 올라간 것이다·
“쿠워어어!”
오르카가 피어를 터트리며 허공에서 균형을 잡았다·
그는 제온이 만들어 낸 샌드 스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디딜 곳 하나 없는 샌드 스톰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우웅! 훙!
오르카가 닥치는 대로 테라탄을 휘둘렀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력한 전투 도끼라도 모래바람을 베어 낼 수는 없었다·
피피핏!
그 순간에도 오르카의 피부는 칼날에 베인 것처럼 잘려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아무리 강력한 자신의 육체라도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오르카는 알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샌드 스톰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광범위하게 몰아치는 게 아니라 오직 오르카 주위에만 휘몰아치는 것이다·
위력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압축되는 것이다·
샌드 스톰이 작게 압축될수록 위력은 극대화된다·
오르카는 이제까지 꽁꽁 감춰 뒀던 스킬을 펼쳐야 할 때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르카가 테라탄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크워어! 하늘을 무너트리는 일격·”
테라탄에 응집된 투기로 최후의 스킬을 펼쳤다·
그저 단순한 도끼질에 불과했다·
그 어떤 잔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론 단순함이 그 어떤 복잡한 기술보다 강대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오르카는 알고 있었다·
질량이 열 배로 증가하는 테라탄, 그리고 압도적인 자신의 육체와 투기·
그 모든 것을 이번 일격에 집중시켰다·
뒤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제온이라는 강대한 적과 자신을 둘러싸고 짓눌러 오는 샌드 스톰을 파괴하는 것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다·
번쩍!
테라탄에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강력한 빛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를 짓누르던 샌드 스톰이 두 쪽이 났다·
오르카는 샌드 스톰 너머에 있던 제온도 두 동강이 났을 거라고 자신했다·
오르카가 승리를 선언했다·
“내가 이겼다·”
“누가 이겼다고 그럽니까?”
“뭐?”
모래 건너편에서 들려온 제온의 목소리에 오르카의 전신에 소름이 올라왔다·
그 순간 두 쪽으로 나뉘었던 샌드 스톰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가아앙!
맹렬하게 회전하는 샌드 스톰·
샌드 스톰은 겨우 오르카를 가둘 정도로 작게 압축됐다· 반대로 위력은 몇 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오르카라는 S급 마수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열의 건틀렛을 이용했다·
화르륵!
엄청난 초고온의 화염이 샌드 스톰에 깃든다·
안쪽은 초고열의 지옥이었다·
그 속에서 오르카는 벌겋게 익어 갔다·
강대한 투기도, 다이아몬드만큼이나 단단한 육체도 소용없었다·
화염을 머금은 샌드 스톰은 오르카의 근원에서부터 익혀 갔다·
“크아아악!”
오르카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가아앙!
맹렬하게 휘도는 초고열의 샌드 스톰은 그런 오르카의 비명마저 집어삼켰다·
잠시 후 사위가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