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화 동행 (2)
“전 늦깎이 마법사였습니다·”
GM의 이야기는 그 첫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스무 살· 사실 그 늦은 나이에 마탑에 들어선 것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적응하는 게 몹시 힘들었습니다·”
뭐 그럴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레이븐처럼 어렸을 때부터 마탑에 들어간 엘리트들은 저런 늦깎이들을 싫어하거든·
물론 늦깎이보다 더 싫어하는 게 바로 드왈키 같은 비전공 마법사들이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늦깎이였다고···?’
암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얘가 지금 나한테 구라를 치는 건가?
그도 그럴 게 분명 과거 시절에 만났을 때 이놈은 1년 차에 ‘6등급’ 마법사라고 했었다·
[운 좋게 등급만 높을 뿐 아직 마법도 제대로 못 써서 매일 긴장한 채 살아가지만요·······]
이런 말까지 덧붙인 탓에 나는 마법사의 몸에 빙의를 해 버린 탓에 생긴 문제겠거니 짐작했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고?
‘일단 들어 보자····’
만약 사실이라고 하면 정말 특이한 케이스였다·
나중에 고스트 버스터즈에서 플레이어들과 교류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심연의 문을 넘을 때 마법사를 키웠던 애들은 대부분 마법을 익히고 있던 상태로 시작했으니까·
우리 클랜의 베르실 고울랜드만 해도 그렇다·
‘걔도 스무 살이 되기 훨씬 이전에 마탑에서 마법을 수련하던 신분이었지·’
그렇다면 GM은 어쩌다 마법사가 되려 했던 걸까·
법사 스타트가 아니면 그냥 탐험가가 되어서 정수를 먹는 게 훨씬 더 성장하기 편했을 텐데·
“한데 그 나이에 마법을 배운 이유가 따로 있나?”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실은 마법사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탐험가가 되어야겠다 싶었지요· ”
“응···?”
“물론 위험한 미궁 내에서 마물들과 몸을 부딪치는 건 제 성향에 맞지 않아서 마법사가 제격이기는 했습니다마는···· 남작님께서도 이리 말할 정도니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 않습니까? 스무 살이 넘어 마법을 익히려 한다는 게·”
“···그렇긴 하지·”
“원래는 활을 배우려 했었습니다· 석궁 정도라면 저라도 잘 다룰 수 있을 거라 판단했었지요·”
희망 직업이 궁수였다라····
더욱더 궁금해진다·
궁수를 목표로 하던 애가 어쩌다 법사가 됐을까·
“무일푼 신세에서 석궁 하나라도 사려면 돈부터 벌어야 했습니다· 성인이 되자마자 거리에 나와서 안 해 본 일이 없지요· 한 번은 대장간에서 일자리를 얻은 적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철을 두들기던 그 시절 GM의 마법사 루트가 개방됐다·
운명처럼 첫 학파의 마스터를 만난 것인데····
“마스터는 제가 남는 시간에 만든 장난감을 보고 흥미를 느끼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며 저를 따로 불러냈고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스터는 GM이 만든 장난감 설계 도면의 정밀함·
그리고 상상력에 대해서 감탄을 거듭했다·
‘뭐 그렇겠지· 얘는 현대인이니까·’
일종의 현대인 치트키라고 해야 하나?
가끔 소설 같은 거 보면 있잖아·
이세계에 떨어진 공돌이가 뭐 하나씩 만들 때마다 주변인들이 엄청나게 감탄하는 그런 거·
“그렇게 마법을 배울 수 있게 된 거군?”
“예· 마이레타 학파는 풍 속성 마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파였지만 당대 마스터였던 스승님께서 마공학 마법진 등에도 관심이 많았던 덕분에 제가 운 좋게 눈에 띌 수 있었지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할 자세를 유지하자 GM도 다시 이야기를 재개했다·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제게 마법이 딱 적성에 맞더군요· 스승님의 가르침 하에 정말이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실력이 늘었습니다· 덕분에 알게 모르게 미움을 많이 샀지요·”
GM의 성장 속도는 마탑 내에서도 유례없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그야 20살의 나이에 입문해 1년 만에 6등급으로 승급한 경우는 마탑의 긴 역사를 살펴봐도 존재치 않았으니까요·”
허··· 진짜 1년 만에 6등급을 찍었던 거야?
아니 잠깐만 그럼 그때 ‘마법을 못 쓰는 반쪽짜리 마법사’라고 했던 건 뭔데?
공교롭게도 머지않아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GM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반쪽짜리 마법사였습니다·”
“···?”
“아십니까? 마법사들 간에는 분야가 너무나도 달라서 공격 마법 하나 외울 줄 몰라도 고등급의 마법사가 될 수 있습니다·”
GM이 바로 그 케이스였다·
마공학 및 마법진의 연구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인 GM은 화염구 마법 하나도 다루지 못하는 채로 6등급 마법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마법사들은 늘 제게 시비를 걸어왔고 저는 늘 긴장하며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아아··· 그 시절 마탑은 정말 야생 그 자체였지요·”
“한데 그럼에도 스승님께서는 제가 다른 마법을 익히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제 재능이 마공학에 있다며 그런 곳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하셨죠·”
“제 거듭된 요청에 다른 마법들도 하나둘 익히기 시작했으나 늘 주된 공부는 마공학이 됐습니다· 그 시기 동안엔 하루 2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요·”
그래도 GM은 해냈다·
마공학이 재밌던 것도 있었고 스승에 대한 감사함도 있었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때는 스승님이 제 아버지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없었거든요·”
가스라이팅을 단단히 당하던 GM은 탐험가의 길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그 생활을 버텨 갔다·
그러나 ‘버틴다’는 건 언젠가 한계가 찾아온다는 것과 같은 의미·
“결국 제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습니다· 동료를 직접 모집해 탐험가가 되었고 그 뒤로는 학파에 돌아가지 않은 채 몇 년을 보냈습니다·”
단지 탐험에 도움이 되는 마법들 공부의 비중을 높였을 뿐 그러면서도 GM은 마공학 공부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유르벤 하벨리온이란 이름을 가진 마법사가 탐험가로서도 나름 명성을 얻게 되었을 무렵·
“그때 그 사건이 터졌습니다· 어쩌면 남작님께서도 소식을 들어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제 스승님께서 금지된 마법에 손을 댔습니다·”
마법사들의 금기로 여겨지는 금지된 마법·
GM의 스승이 바로 그 마법에 손을 댄 사실이 발각되며 왕가군이 들이닥쳤고 스승은 그 자리에서 사살당했다·
“학파의 모든 마법사들이 몇 달 동안 갇혀 지내듯 지내며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스승님과 오랜 시간 연구를 했던 제가 가장 많은 조사를 받았지요·”
조사실에 갇혀 매일매일 진술을 이어 가던 GM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스승이 연구한 금지된 마법이 무엇이었는지·
“충격이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죠·”
“···대체 뭐였기에?”
“스승님께서는 ‘영혼 이식’과 관련된 마법을 연구 중이었습니다·”
사람의 혼을 사물에 불어넣어 마도구로 바꾸겠다는 목표로 진행된 마법 연구였다·
생물적 한계를 벗어난 의식 개체를 영원한 시간 동안 학습시킬 수 있다면 비약적인 발전이 있으리라 여겼다던가?
‘이거 완전 인공지능 딥러닝이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신기해하고 있을 때였다·
“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능’이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이식될 영혼이 얼마나 총명한지에 따라 학습 속도가 정해질 거라 여겼고 그에 따라 여러 후보들을 추려 놨더군요·”
그제야 나도 알 수 있었다·
GM이 어째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했는지·
“조사관이 보여 준 계획서에 적힌 후보들 이름 중 제가 가장 첫 번째에 쓰여 있더군요· 등급이라도 매겨 놨는지 이름 뒤에 적힌 숫자도 제가 가장 높았고요·”
부모처럼 따르던 스승의 배신·
“이후로는 뭐··· 그렇게 학파 전체가 사라졌고 저도 어쩌다 보니 제 학파를 세우게 됐습니다· 학파가 점점 커지면서 일이 바쁘다 보니 직접 미궁에 들어가는 일도 줄어들었고요·”
이후로는 대충 어떻게 지냈는지 알 것 같다·
커뮤니티 관리나 하면서 학파를 키우고 왕가랑도 비밀스러운 정치적 소통을 했을 테지·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떠나 돌아가겠단 목표로·
“그래서··· 어떠셨습니까? 제 이야기는·”
이내 GM이 어딘가 후련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 짧게 답했다·
“확실히 재미없는 얘기긴 했다·”
“···아하하 그렇습니까?”
누가 봐도 어색하게 들리는 웃음·
다만 그냥 공감하며 같이 슬퍼해 줘 봤자 괜히 분위기만 이상해질 뿐이다·
그게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믿지 않고·
“그래도 잘됐지 않냐?”
“예?”
“널 배신한 놈이 깔깔 웃으며 잘사는 게 아니라 불쌍하게 뒈졌으니까·”
그 말에 GM은 일순간 얼빵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크게 빵 터졌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아하하하 그렇죠· 예· 그렇게도 볼 수 있지요····”
소리까지 내 가며 웃던 GM이 돌연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저도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진심으로 참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뭐··· 사람 마음이 참 말대로 되지 않기는 하지·
***
GM과의 진솔한 대화가 있었던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서둘러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동굴로 향했다·
그리고 날이 저물 무렵에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만 문제는····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진 않군요· 탐험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감사합··· 아니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거 그런 말은 도시로 돌아간 다음에 하는 게 국룰이거늘·
갑자기 저런 말을 하니까 뭔가 사건이 생길 것—·
“···멈춰라·”
이내 불안한 마음에 습관적으로 주변을 쓱 둘러보던 나는 즉시 이동을 멈추었다·
“왜 그러십니까···?”
“조용·”
목소리를 내리깔자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긴장한 얼굴로 지팡이를 꽉 쥐는 녀석·
‘왜 마법사들은 다 드왈키스러운 거지?’
불현듯 그런 의문이 들지만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 동굴 입구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
[왔다 감·]
[대한건아 이백호·]
이전에 지나치며 발견했던 이백호의 낙서·
그 아래에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흔적이 새겨져 있다·
[Rafdonia’s king Mother fucker·]
고스트 버스터즈 내에서는 밈처럼 쓰이기도 했던 커뮤니티 활동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그 문장·
쓴 게 누구인지는 빤하다·
이백호 그놈이 돌아가는 길에 심심해서 썼겠지·
“저 저건···!”
“무슨 문자인지 알고 있는 건가?”
“···악령들이 쓰는 문자인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보니 그 위에 적힌 문자도 그들이 쓰는 문자 중에 하나인 거 같군요·”
악령이라는 걸 밝힐 수 없기에 당황하며 변명의 말을 이어 가는 GM·
평소였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곤란할 질문을 던지며 놀렸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여유는 없었다·
“어찌 됐든 선객이 있었던 거 같군· 일단 이곳에서 멀어진다·”
“예···?”
“혹시라도 마주쳐서 좋을 게 없지 않나· 내가 밖에 나온 게 도시에 알려지면 곤란하니·”
“아····”
실상은 이백호 놈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한 말이지만 진상을 모르는 GM은 순순히 납득했다·
따라서····
스윽·
의사소통이 끝나자마자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왔던 길 그대로 동굴의 반대편 방향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빠르게 물러나며 이윽고 등을 돌리려던 찰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동굴 안에서 한 남성의 괴성이 들려온다·
그 괴성은 비명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씨바아아아아아아아알!!”
분에 못 이겨서 내지르는 소리에 가깝달까·
놀랍게도 메아리치듯 들려오는 그 괴성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는—·
“들리냐? 너 근처잖아! 들리냐고!”
이내 동굴 안에서 한 사내가 눈으로 좇기도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빠져나오며 소리친다·
‘···이백호?’
역시나 소리의 주체는 이백호였다·
하나 여기서 또 문제는····
“잡히기만 해 봐! 어? 잡히기만 하면 내가 아주 그냥—·”
동굴에서 빠져나온 이백호가 가속도를 붙인 그대로 크게 점프했다는 것·
그리고·
“····”
“····”
그 상태에서 우리 둘과 눈이 마주쳤다는 것이다·
툭·
이내 제트기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던 이백호의 몸체가 맥없이 떨어지며 지상에 착륙한다·
“···어 왜 남작님이 얘랑 있어·”
평소답지 않게 당황한 표정을 고스란히 내비치는 이백호·
다만 그 표정이 악귀처럼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설마··· 둘이서 한 짓이에요···?”
둘이서 한 짓이라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이백호가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뭘 모르는 척이야! 돌아가는 마법진 부순 거 둘 짓이냐고!”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