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2화 별무덤 (3)
성벽 밖에서 조우한 남자가 알려준 차원 비석·
그리고 그 비석을 타고 넘어온 제9계층 별무덤과 매우 흡사한 미지의 땅·
처음엔 여기가 미궁 내부인 건가도 싶었지만····
‘역시 그건 아닌가 보네·’
이곳은 성벽 바깥에 속한다·
그 증거로 마물들의 지능이 높은 것도 일치하며 마물을 처치했을 때 부산물이 그대로 남는단 점도 그대로다·
다만 문제는····
‘걸어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이거네·’
이곳은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다·
아니 어찌 보면 섬보다 더하다·
설령 위치는 대륙 어딘가에 있을지 몰라도 사방이 잿빛 경계선으로 이뤄져 아예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쉽게 말해 물리적인 탈출 가능성은 제로·
“···남작님? 이제··· 어쩌려고요?”
이백호가 눈치를 쓱 보더니 내게 그리 물어온다·
좀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지휘권을 빼앗아오려 은연 중에 신경전을 하더니 일이 이렇게 되자마자 싹 모른 척한다는 게·
“크게 한 바퀴 둘러보자고 어딘가에는 나가는 길이 있을 거라고 말한 건 우리 남작님이었잖아요·”
“나가는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에이 그게 그거 아닌가?”
어쩜 이리 얄미운 놈이 있을까도 싶지만 이럴 때 예민하게 반응을 하면 지는 거랬다·
고로 그냥 싹 무시하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지 않냐·”
“네· 이곳에 제대로 갇혔다는 건 알아냈으니까요· 그렇죠?”
아 진짜 한 대 때릴까?
순간 그런 욕구가 치밀어 오르지만 참을 인과 [별의 소멸]을 생각하며 겨우 참아냈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다· 게다가 지도도 얼추 완성했고·”
“외곽 테두리만 다 그렸을 뿐이지 그 속은 텅텅 비어있는 상태인데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그 빈 부분만 수색을 하면 되는 거다· 분명 어딘가에는 원래 있던 곳 혹은 다른 곳과 이어진 차원 비석이 있을 테니까·”
이내 수많은 리더 경험으로 갈고닦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백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꼬나볼 뿐이었다·
“그거 근거 없는 확신 아닌가? 차원 비석이 있을 줄 남작님이 어떻게 아는데요?”
그야····
‘[던전 앤 스톤]은 그런 게임이니까·’
물론 이는 좀 안일한 생각일 수도 있다·
이곳은 게임에서 가보지 못했던 ‘성벽 바깥’이며 내가 직접 들어와서 겪은 이 세상의 현실은 ‘게임’과 엄연히 달랐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거냐?”
그냥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게 아니다·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나락에 갇힌 듯하더라도 반드시 세상 어딘가에는 나가는 길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내 철칙이며 신념이다·
“확신이 없으면 그럼 여기서 그냥 가만히 앉아서 쉬고만 있을 거냐?”
“에이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니면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라· 너희들 전부가 안 된다 말하며 포기해도 나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
이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하자 이백호는 잠시 말이 없어지는가 싶더니 어딘가 감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와 남작님 말빨 죽이네· 지금까지 다들 이렇게 홀렸어요?”
그런 이백호의 말에 옆에 있던 궁수도 한마디를 덧붙인다·
“신기한 경험이군요· 일순간 정말로 아무런 걱정도 들지가 않았습니다·”
“하하핫! 애초에 나는 남작이 틀린 말 하지 않았다 생각하오! 뭐라도 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배고프기만 더하지 않겠소이까!”
이후 아우레스마저 호쾌하게 웃으며 나서자 살짝 예민해질 수 있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팀 내에 이런 긍정적인 전사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이유다·
리더 경험을 여러번 해보니 이런 타입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 크거든·
“자 그럼 다시 출발하지·”
···가보자·
***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아직 밝히지 못한 맵을 전부 다 직접 돌아다니며 ‘차원 비석’ 혹은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이 넓은 지역을 꼼꼼하게 다 살펴야 한다는 거겠지만·
고로 우리들의 탐사 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나무 아래 절벽 동굴 작은 틈새 구조물···· 뭐든 좋으니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게 있다면 바로 말해라· 알겠나?”
탐색꾼 포지션인 궁수 브라이엇만이 아니라 팀의 모든 인원이 이동 중에도 주변을 샅샅이 살핀다·
그러다가 무언가 발견하면····
“얕은 연못처럼 보이지만 수심이 굉장히 깊은 편이군요· 무언가를 숨기기엔 제격인 장소입니다·”
“좋아 잠시 멈춰서 확인해보지·”
마법으로 탐지를 돌리고 그럼에도 어딘가 찝찝해 직접 물 안에까지 들어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말도 나오긴 했지만 나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데일란’이라는 놈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예의 그 차원 비석도 일반적으로는 찾기 어려운 절벽 틈새에 숨겨져 있었지 않은가·
이 정도는 해야지만 나중에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곳에 ‘차원 비석’이 없다고·
그러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남작! 이것 좀 봐보시오! 여기 이거 좀 수상하지 않소?”
“대체 어디가 수상한 거지···?”
“여기 여기! 꽃 이파리가 꺾여 있소!”
“···됐다 마저 이동하지·”
아 물론 그럼에도 거를 건 걸러서 들으며 시간을 아꼈다·
“왜! 아까는 사소한 거라도 다 말하지 않았소이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꽃 이파리가 꺾였는데 나보고 뭘 어쩌란 거야?
이걸 대체 뭘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데?
“루인제네스 공! 공이라도 한번 확인을 해주면 안 되겠소이까?!”
내가 한 귀로 듣고 흘리자 파멸할배에게 가서 징징거리기 시작한 아우레스·
당연한 말이지만 할배가 저 요청을 들어줄 리 없었다·
“어서 가세·”
“루인제네스 공!!”
“그럼 계속 이동하지·”
그렇게 다시금 재개된 수색·
꼼꼼이 수색을 하는 만큼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착실하게 지도가 채워진다·
‘옛바위 초원은 이제 70% 정도 끝났고····’
현재 우리가 있는 지역의 구조는 간단하다·
우리가 처음 포탈을 타고 넘어왔던 ‘태고의 땅’을 중심으로 서쪽엔 ‘옛바위 초원’·
북쪽으론 ‘맹독 용암지’·
동쪽엔 ‘꿈결 폭포’와 남쪽엔 ‘용골산’이 존재한다·
하지만 태고의 땅을 제외하면 전부다 재의 경계선 때문에 필드가 중간에 잘려 있는 구조인데····
‘제일 큰 문제는 꿈결 폭포이려나····’
맹독 용암지와 용골산·
두 필드 모두 9층을 토대로 하는 만큼 난이도가 높지만 ‘꿈결 폭포’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단순히 지나치는 게 아니라 차원 비석을 찾기 위해 꼼꼼이 수색을 해야 한다면 더욱더—·
“사람! 사람의 흔적입니다!”
···응?
“정말이군· 이건 분명 사람의 족적일세·”
‘옛바위 초원’을 탐색하고 있던 때 돌연 사람의 흔적이 발견됐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수상한 것’을 찾고 있던 우리가 이걸 보고 그냥 넘어갈 리 만무·
“브라이엇 너는 이제부터 선두에 서서 흔적을 추격해라·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이동한다·”
빠르게 오더를 내리며 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흔적을 뒤따랐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
초원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몇 달은 씻지 않은 것처럼 굉장히 남루하고 꼬질꼬질한 옷차림을 한 남자·
이 묘사만 보면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한 ‘데일란’과 공통점이 있었지만····
스윽·
이내 우리들의 기척을 느낀 남자가 등을 돌린 순간·
우리는 저것이 ‘데일란’도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검은색 거미가 얼굴에 붙어 있었거든·
“···뭐야 바이욘이었네·”
3등급 인간형 마물 바이욘·
내가 가진 [초월] 스킬의 원주인이기도 한 마물·
참고로 이놈은 7층 암흑대륙의 필드 중 하나인 ‘불멸의 땅’에서 주로 출현하는데····
9층 ‘옛바위 초원’에서도 가끔씩 등장한다·
“하 나는 무조건 데일란 그놈일 줄 알았는데·”
“결국 허탕이었군요····”
흔적의 정체를 알게 되자 기운이 빠진 듯한 모습을 내비치는 일행들이었으나 사실 나는 이놈을 만난 게 꽤 기뻤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할 만큼 말이다·
‘드디어 찾았네·’
‘바이욘’은 방패바바를 키울 때 가장 많이 잡아야 하는 마물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게 [초월]도 얻어야 할뿐더러·
바이욘의 부산물 중 하나인 ‘기생 거미’는 정말 어지간하면 경매장에는 안 올라오거든·
“그래도 남작님은 좋겠네? 쟤가 8단계 각인 재료를 주니까·”
“····”
“그래도 부럽네요· 더 강해질 게 아직 한참이나 더 남았다는 게·”
이내 이백호가 뼈가 담긴 농담을 하며 스트레칭을 하듯 팔을 휙휙 돌린다·
그리고····
타닷-!
즉시 바이욘을 향해 대시·
리더 자리를 좀 해본 사람이라면 본 즉시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돌발 행동·
“잠깐!”
“고작 3등급 몬스터인데 뭘?”
고작 3등급 몬스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바이욘은 꽤 위험한 마물이다·
다른 마물들과 달리 개체마다 그 전투력의 편차가 몹시 크고 능력도 제각각 다르기에 반드시 탐색전을 가진 후에 사냥하는 게 정석적인 공략법—·
콰지직-!
···뭐 상관없으려나?
“아! 개운해!”
흑색의 오오라가 실린 이백호의 정권 찌르기 한 방에 심장부가 꿰뚫리며 쓰러진 바이욘·
그와 동시에 뭔가 차오르는 기분이 피어난다·
탐험가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바이욘을 처치했습니다· EXP +7」
전에 ‘기가제르오스’를 잡았을 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긴가민가 했는데·
여기서도 확실하게 경험치 수급이 되는 거구나·
“어디보자··· 우리 남작님 각인 재료부터 루팅해 볼까··· 응?”
완전히 명줄이 끊긴 바이욘에게 다가가 얼굴에 달라붙어 있던 거미를 떼어내려던 이백호가 돌연 흠칫하며 굳는다·
“백호? 왜 그러는 것··· 으악! 뭐요 이게!”
그 뒤에 다가간 아우레스마저 화들짝 놀라는 걸 보니 뭔가 변수가 발생한 듯했다·
따라서 나도 얼른 다가가 바이욘의 시신을 확인—·
“···어?”
뭐야 이거·
이내 거미가 치워지며 드러난 ‘바이욘’의 얼굴을 본 나 역시 앞선 사람들처럼 똑깥이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색이 검게 변했긴 하지만 이 이건 그 사람 아닙니까?”
옛바위 초원에서 마주친 인간형 마물 ‘바이욘’·
그놈은 ‘데일란’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
점점 더 사건이 미궁으로 빠진다·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하고서 사라진 데일란·
이놈이 왜 마물로 변해서 이곳을 배회 중이던 걸까·
“···혹시 고견을 들을 수 있을는지요?”
GM의 조심스러운 요구에 파멸학자가 뭐라 입을 열었다·
“확실한 건 아니네만 예전에 오래된 고서에서 읽은 적 있네· ‘바이욘’은 미궁에서 죽은 고대의 탐험가들이라고·”
공교롭게도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히든피스에 대한 정보가 있지 않을까 해서 매일 게임 세계관 설정 같은 걸 연구했거든·
“아! 그럼 바이욘이 탐험가들처럼 정수를 쓰는 것도 전부 다 그런 이유였던 거군요!”
“그렇다고는 하네만 그리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닐세· 오히려 대중 오락을 위한 설화에 가까우면 가깝지·”
“···그렇습니까·”
도대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일까·
더더욱 알 수 없게 되는 가운데 일단 이백호에게서 빼앗듯이 부산물을 넘겨받았다·
그야 궁금한 건 궁금한 거고 이건 이거잖아?
‘이제 하나만 더 얻으면 되는 건가····’
이로써 8단계 각인까지 남은 재료는 단 하나·
‘뭐 이것도 성벽 바깥의 특성을 이용하면 금방 구할 수 있을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개체 수가 적은 이곳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바이욘’을 마주치다니 여러모로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
“오! 정말 데일란이 맞긴 한가 보구려! 여기 품을 뒤져보니 신분증도 있소!”
그때 아우레스가 흥분해서 몸을 일으킨다·
수박만 한 손에는 명함 크기의 신분증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어디 보자 이름이····”
두근-
“한스···? 아! 그랬지! 맞아! 한스였소!”
두근-!
세차게 뛰기 시작한 심장·
나는 서둘러 판단을 내리고서 다급히 외쳤다·
“이동 준비!!”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최대한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