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화 별무덤 (4)
이게 얼마 만에 한스더라?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만에 마주치는 그것····
한스다·
‘마지막이 K였지····’
한스 카이사르·
내가 리헨 슈이츠로 활동할 당시 암흑대륙에서 우연히 조우하게 된 녀석이다·
그리고····
‘만난지 불과 2시간도 채 되기 전에 노아르크 놈들 기습이 시작됐지·’
결과적으로 큰 희생 없이 헤쳐 넘기긴 했지만 자칫 큰일이 날 뻔했었다·
중간에 레이븐이 마음을 바꿔 먹지 않았더라면 그날 내 여정은 ‘침묵의 우리’에 갇힌 채로 끝날 수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한스 L·’
이번에 마주치게 된 한스의 코드다·
뭐 마물로 변했다가 뒈진 놈도 ‘한스’ 판정인지는 조금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 조심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
두근-!
미친듯이 뛰기 시작한 심장의 울림을 따르기로 하며 힘껏 소리친다·
“이동 준비!!!”
물론 사람들은 그런 내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응? 갑자기?”
“마물의 기척은 전혀 감지되지 않습니다만····”
이해를 못하겠단 표정을 짓는 이백호와 궁수·
그러나 내 얼굴에서 다급한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인식을 했는지 일단 자세는 바로 잡으며 몸을 움직일 준비는 착실하게 해준다·
“긴급 상황이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 한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래야—·”
비상 사태 때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한 법·
여러 의문들은 일축하고 먼저 달려나가기 시작하자 다들 일단 영문도 모른 채 내 뒤를 따랐다·
그냥 군중 심리 때문에 그랬다기보다는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데 이유가 있으리라 여기는 믿음이 더욱 컸다·
“···우선 가봅시다! 얀델 남작이 저런 행동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예고 없이 시작된 도주·
하나 일행들은 날 따라오면서도 계속해서 의문의 말을 꺼냈다·
“아니 남작님! 그래서 뭔데요! 이제 좀 말해봐요· 뭐한테 도망치는지 정도는 알아야지!”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의문에 답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 나도 모르니까·
앞으로 우리가 ‘뭐 한테’ 도망을 쳐야 하는지·
“···곧 너희도 알 수 있을 거다·”
이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대충 얼버무렸다·
“아니 이 남작님 진짜 사람 답답하게 만드네!”
이백호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한 반응이었으나 도중에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람?”
우리의 시야 범위 끝에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난다·
“사람이 아니라 바이욘입니다·”
안면 부위에 검은색 거미가 내려앉은 거무튀튀한 피부의 마물·
놀랍게도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숫자가 꽤 많군요·”
선두에 있던 한 명을 시작으로 암흑 시야로 가려져 있던 뒤에서 나타난 다섯 마리의 바이욘·
“어이 남작님! 이제 어쩔 거야!”
“최대한 빨리 제거하고 다시 이동한다·”
“오케이· 다들 들었지?”
이내 오더를 내리기 무섭게 이동 진형이던 일행이 전투 모드로 돌입하며 바이욘을 상대한다·
전투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적의 숫자가 꽤 됐던 만큼 이백호도 아까처럼 무리하며 달려들지 않았고 속도는 좀 빠를지언정 착실하게 ‘바이욘’들을 파악하며 전투를 치렀다·
“이 새끼 뭐야! 왜 스킬을 다 써?”
“···수호자의 정수입니다!”
“뭐? 이런 좆밥 같은 애가 피아닐의 정수를 갖고 있다고?”
이번에 마주친 바이욘들의 경우에는 보유 중이던 정수의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기에 전투 시간 자체는 꽤 소요됐다·
‘15분이라····’
사실 3등급 몬스터 여섯 마리를 잡았다고 하면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지만 한스 L에 대한 불안감이 생긴 나로서는 그 시간조차 길게 느껴졌다·
‘아무튼 아무도 안 다쳤으니 됐나····’
전투가 마무리된 즉시 다시금 이동을 재개하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거기까지는 내 통솔력이 닿지 않았다·
“에이 이걸 다 버리고 가요? 잠깐만 기다려 봐· 이거 루팅만 다 하고 가자고요·”
서둘러 이동해야 한다는 내 말을 싹 무시하고 루팅을 시작한 이백호·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을 해도 그럴 거면 뭐가 그리 급한 건지 말이라도 해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하····”
나로서도 조금 답답했다·
솔직히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한스··· 라는 이름 때문이라고 하면 코웃음만 칠 테니까·’
내 곁에서 보고 듣고 직접 느껴봤다면 모를까·
암만 사례를 들어도 미신으로 치부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내 억지에 어울려주지도 않겠지·
그런 이유로 하는 수 없이 루팅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때였다·
“바이욘이 여섯 마리라니··· 조금 특이하군요·”
“그렇네· 불멸의 땅이라면 모를까· 이곳에서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개체는 아니거늘·”
마법사 두 명이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다·
그들의 말처럼 바이욘이 이렇게 여럿 등장한 것은 엄연히 이상 현상이었다·
다만····
‘이게 끝일 리는 없겠지·’
고작 이것으로 한스 효과가 끝났다고 믿기에는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게 그간 당한 게 한둘이었어야지·
“오케이 이제 루팅 끝!”
어찌 됐든 이백호도 신속하게 루팅을 끝냈고 이로써 다시 이동을 할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그런 내 발걸음을 잡는 이가 또 있었다·
“잠시만! 잠시만 다들 기다려보시오!”
이백호 팀의 탱커 렉 아우레스·
그가 무언가 발견한 것처럼 소리를 쳤고 이번에도 또 실없는 소리나 할 거 같아 무시를 하려 했지만····
“이놈들! 이놈들도 얼굴이 익숙하오!”
넘겨 들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
“브라이엇! 자네도 이것 좀 보시게! 이 녀석들··· 우리 쪽 탐험가가 아닌가?”
“···그게 무슨 말이오?”
아우레스의 요구에 궁수가 다가가서 얼굴을 가리던 거미가 뜯겨져 나간 바이욘의 시신을 확인했다·
그리고····
“맞군요· 전부 다는 아니지만 그중에 아는 얼굴이 몇몇 섞여 있습니다·”
아우레스의 말에 동의하는 궁수 브라이엇·
그 말을 들은 GM이 조심스레 한 가지 가설을 입 밖으로 꺼냈다·
“혹시··· 그 한스 데일란이라는 남자의 일행들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응?”
“그 있지 않습니까· 얘기를 들어보니 처음에는 백 명도 넘는 인원이 함께 바깥 세상을 돌아다녔다고 하던데···· 혹시 그들인 게 아닌가 해서····”
“엥? 하지만 그놈들은 중간에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아우레스가 의문을 내비쳤지만 나로서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거짓을 숨기기 가장 좋은 곳은 진실의 곁이니까·
‘수백 명이 성벽 바깥에 남은 것은 진실·’
다만 그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은 거짓이고 어쩌면 무언가 사건에 휘말린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증거들도 발견이 되고 있고·
“···제 생각에는 이들이 마물로 변한 지 최소 몇 달은 지난 듯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바이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 목에 칼집이 나 있던 개체를 보시겠습니까? 필시 이 부상으로 인해 사망 후 ‘마물화’가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한데 여기 상의 목부분에 묻어 있는 핏자국은 적어도 몇 달 전에 생긴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실험이 일상인 마법사다운 합리적인 추론·
파멸할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음··· 그럼 그 한스 데일란이란 친구도 사실은 몇 달 전에 죽은 걸 수도 있겠—·”
나느 중간에 말을 끊었다·
“데일란·”
“···?”
“이름 말고 그냥 데일란이라고만 호명해라·”
그도 그럴 게 ‘한스’란 말이 들려올 때마다 조건반사처럼 몸이 움찔거리거든
“자네는 별 이상한 걸 다 신경 쓰는군·”
말까지 자르며 태클을 넣은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도 잠시 파멸할배가 마저 말을 잇는다·
“여하튼 데일란이란 친구 역시 몇 달 전에 사망을 했고 ‘마물화’가 진행된 거라면 일이 복잡해지네·”
“예· 우리가 만난 그 ‘데일란’이란 자는 ‘데일란’이 아니란 뜻이니까요·”
“응? 둘 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해를 하나도 하지 못하겠소이다!”
“아우레스···· 쉽게 말해 누군가 ‘데일란’인 척 연기를 하며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다는 뜻이에요·”
“···그런! 함정에 빠진 것인가!”
이내 제이나가 풀어서 설명해주자 크게 놀라며 괴성을 터트리는 렉 아우레스·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기에 녀석이 그러거나 말거나 마법사 둘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듯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가설이 맞다면 바이욘들도 이게 끝이 아닐 수 있을 걸세·”
“예····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정말로 백 명도 넘는 이들이 이곳에서 무언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면····”
“그 많은 바이욘이 이 근처를 떠돌아 다니는 중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둘이 티키타카를 하며 결론을 내린 순간이었다·
“마물들의 접근이 감지됐습니다!”
탐색꾼 포지션인 궁수 브라이엇이 크게 소리친다·
“숫자는 다섯··· 아니 여섯··· 일곱 열 열다섯···? 계속 늘어나는 중입니다!”
실시간으로 감지된 숫자를 말하는 브라이엇·
처음엔 다섯이었던 숫자가 서른을 넘어가기까지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마물 급류! 이 정도면 마물 급류라 칭해도 모자람 없을 정도입니다!”
마물 급류란 급작스럽게 마물들이 몰려드는 현상을 뜻하는 탐험 용어로····
“이야 갑자기 몬스터 웨이브?”
플레이어는 이를 몬스터 웨이브라 칭하기도 한다·
“브라이엇 마물 급류가 시작된 위치가 어디지?”
“위치랄 것도 없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중입니다· 마치 우리를 목표로 하는 것처럼!”
명백한 이상 현상이었다·
내내 돌아다닐 때는 잘 보이지도 않던 바이욘들이 갑자기 수십 마리 넘게 떼를 지어 모여든다니·
‘···한 마리를 잡은 게 뭔가 트리거가 된 건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우선 당장은 고민보다 행동을 하고 나설 시기였다·
“아무리 이 멤버여도 수십 마리는 좀 힘들 거 같은데?”
“혹여 다른 마물이 나타나거나 중간에 운석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 곤혹을 치를 것일세·”
“동북부 방향이 그나마 숫자가 적습니다·”
“앞장서라· 최대한 전투를 피하는 쪽으로 가겠다·”
“예·”
이후 우리 중에 가장 탐지 반경이 넓은 궁수에게 길잡이 역할을 부여하고서 그 뒤를 따랐다·
한데 확실히 탑 클래스의 탐색꾼이어서 그럴까?
“이쪽입니다!”
넓은 기감을 바탕으로 최대한 바이욘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궁수·
“어때요? 우리 궁수 길안내는 좀 치지 않아요?”
동료를 자랑하는 이백호의 말에 궁수가 무안하다는 듯 웃는다·
“백호 이번엔 그래도 틈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만약 아까 그 자리에 계속 있어서 뒤늦게 알아챈 거라면 전투가 불가피했을 겁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이제는 확실합니다· 처음 바이욘을 처치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들의 기척을 느꼈을 때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상태였을 겁니다·”
겸손함이 묻어나는 브라이엇의 말에 아우레스가 호들갑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오 그게 정말이오?! 대단하시오 남작! 갑자기 벗어나야 한다고 하더니!”
“···저도 궁금하군요· 남작님께선 대체 어떻게 알았던 건지·”
궁수마저 동조하는 말에 이백호의 눈이 음흉하게 변했다·
“헤에··· 우리 남작님한테 그런 스킬이 있나보네? 어디 보자 탱커가 먹을 만한 것 중에 그런 게 뭐가 있더라····”
진심으로 내게 그런 탐지 계열 스킬이 있다고 믿으며 쉐도우 복싱을 시작한 이백호·
“음 [과민성 근육]엔 그 정도 탐지 효과가 없고 [후회의 시계바늘]은 절대 아닐 테고 ‘운명 추적자’도 별 반응은 없던 거 같던데···· 뭐지 대체?”
내 반응을 떠보듯 하나씩 툭툭 던지며 말하는 이백호를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어찌 말하겠는가·
스킬이 아니라 ‘한스’였다고·
말을 해도 믿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다른 스킬이 있다고 믿게 하는 편이 내게는 이득이다·
그런 판단으로 입을 꾹 다물고서 ‘바이욘’들의 포위를 뚫고 도망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나 또 시간이 흘렀을까·
「캐릭터가 특수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우리들은 옛바위 초원을 벗어나 새로운 필드에 들어섰다·
「필드 효과 – 맹독 용암지가 부여됩니다·」
「캐릭터의 독 내성 수치가 0으로 고정됩니다·」
「영혼력 회복 속도가 99% 감소합니다·」
「경고: 폭발에 주의하십시오!」
부글부글 끓는 녹색빛의 용암·
연기처럼 자욱한 독성 가스·
“···더 이상 따라오지는 않는 듯하군요·”
새 필드에 진입하며 탐색꾼이 상황 종료를 말한다·
“살았군·”
“그래도 다행히 무조건적인 추격은 아닌가보네·”
바이욘의 몬스터 웨이브에서 벗어났다·
다만 문제는 여전히 힘차게 뛰는 전사의 심장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근-!
이대로 끝일 리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