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5화 꿈 (2)
세찬 급류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와중에도 이 무식할 정도로 무거운 몸뚱이는 수직으로 하강한다·
술로 절여진 듯한 의식 속에서도 생각했다·
‘···이렇게 끝이라고?’
그 길고 험났했던 여정의 끝이 고작 이거?
‘그럴 리가·’
잠에 들면 안 돼·
무조건 정신을 차리고 위로 올라가야 돼·
그러한 의지를 먹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헤엄을 치려 했지만····
스으으윽·
마치 귀머거리라도 된 것처럼 몸 전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대로 잠에 들면 안 되는데·
그러면 진짜 큰일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포기했다·
‘아 몰라····’
이제 버티는 것도 한계다·
배 위에 있는 이백호나 다른 애들이 알아서 구해주겠지·
응 그래 그럴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냥··· 자자····’
부여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으려던 찰나·
솨아아아아아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며 까맣게 물들던 눈앞이 돌연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한다·
또한 그와 동시에·
삐이이이이이이—
뇌를 인두로 지지는 듯한 이명이 귓가에 맺힌다·
강제로 잠에서 깨우는 듯한 빛과 이명·
또각 또각·
어디선가 구두 소리가 들려오다·
겨우겨우 들어 올린 눈꺼풀 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귀신이라도 삼킨 듯 희멀건 피부색·
손에 쥐고 있는 정체 모를 누더기 인형·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생머리를 가진 열살배기쯤 되어 보이는 평범한 여자아이·
멍한 정신 상태인데도 얘가 누군지는 바로 떠올랐다·
‘엘리스 그라운디아····’
일전에 오두막에서 만났던 땅의 마녀·
‘네가 왜 여기에····’
그리 말하려 했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내 목소리가 들린 것처럼 땅의 마녀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의 꿈을 이뤄줄게요·”
어딘가 몽환적이면서도 유혹적인 목소리·
또한 동시에 왠지 모르게 당부하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돌아오지 마·”
내 기억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
“허억···!”
물에 빠졌다가 겨우 탈출한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상체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
흠칫·
온몸이 굳는다·
이번엔 물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로·
“···얇아·”
손을 내려다보며 몇 번인가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 나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늘 그렇듯 시간이 필요했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지끈-
일단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평소 느끼던 그 무한한 활력이 완전히 사라진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술을 마신 다음 날 같달까·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또한····
스륵·
다시금 눈을 떠 바라본 공간 역시 그대로다·
“여긴····”
내게 있어서 익숙하다는 말로도 모자란 바로 그 장소·
“내 방이잖아·”
이한수의 방·
대체 내가 왜 이곳에서 눈을 뜬 걸까·
설마 고스트 버스터즈 서버가 다시 열린 건가?
불현듯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달라·”
커뮤니티 내에서 보았던 그 공간과 지금 내가 자리한 이 공간에는 명백한 이질감이 존재한다·
고스트 버스터즈의 내 방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던 데 반해·
‘뭔데 이건···?’
여긴 난장판이란 말로도 모자라다·
컴퓨터 책상 옆 책들은 다 쏟아져 있고 모니터는 누가 떼어갔는지 사라져 있다·
장농과 서랍은 활짝 열린 채로 방치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널브러진 옷가지들이 가득하다·
‘···어쩐지 허전하더라니·’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라는 걸 뒤늦게 눈치챈 나는 일단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대충 골라서 입었다·
그리고····
툭·
냉기가 전해지는 장판 바닥을 맨발로 밟으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 역시 난장판이라는 말로도 모자랐다·
마치 한바탕 압수 수색이라도 지나간 거 같달까·
서랍이란 서랍은 전부 다 열려 있고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바닥에 뿌려져 있다·
“하아····”
왠지 목이 타기 시작한 나는 찬 물이라도 마실까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웨엑···!”
한참 전에 전원이 꺼진 듯한 냉장고에서 확 풍겨져 나오는 썩은내·
구역질과 함께 재빨리 문을 닫은 나는 쓰러지듯이 마루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오 죽겠네····’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 와중에 썩은내까지 맡아서 그럴까?
어지럼증이 더욱 심해졌다·
다만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벽에 기대어 주저앉은 채 진정이 되길 기다리며 머리로는 끊임없이 현 상황을 분석했다·
결론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고스트 버스터즈의 서버가 활성화 되어서 타이밍 좋게 이곳에 온 것도·
실제 지구로 귀환한 것도 아니다·
필시 높은 확률로 이곳은····
“꿈속이겠지·”
필드 효과 ‘꿈결 폭포’로 인해 잠에 든 나는 환상 속에 갇혔다·
배경이 현대인 것? 이것도 딱히 이상하진 않다·
실제로 앞서 잠들었을 때도 현대에서의 인연들이 환상으로 나오기도 했었으니까·
뭐 그땐 이런 식으로 두통이 느껴진 적이 없어서 그게 좀 의문점이긴 하지만·
아무튼·
상황은 명료하며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더욱더 명료하다·
어딘가 숨어 있을 적과 싸우거나 미션을 해결해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열쇠를 얻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꿈이겠지?’
마지막에 의식을 잃기 전에 만났던 땅의 마녀·
그리고 땅의 마녀가 내게 했던 말들까지····
곰곰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왠지 모르게 석연찮은 느낌이 가시질 않는—·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진 순간·
띠디디 띠 띠 띠디····
현관문 쪽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근-!
야만 전사의 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위기를 감지한 심장이 크게 철렁였다·
타닷·
전자음이 들려온 즉시 나는 곧장 일어나 부엌 아래 선반을 열었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앞서 말했든 이곳은 꿈속 세상이다·
지금 저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자는 나를 죽이려 드는 ‘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
‘칼이··· 없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나 어디 이런 적이 한두 번인가? 나는 즉시 판단을 재고하고 몸을 돌려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무기가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어야 하는 법·
게다가 이렇게 육체 능력을 다 빼앗아갔으니 적의 수준 역시 그리 높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배경도 현대이고 말이지·’
띠 띠디····
남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듯 천천히 하나씩 눌러지는 번호·
이내 현관문 앞에 선 나는 기다리지 않았다·
자고로 기습이란 적이 절대 예상하지 못한 시기일수록 효과가 좋은 법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벌컥-!
비밀번호가 완성되기 전에 오히려 이쪽에서 문을 확 열어젖히며 앞으로 나아간—·
“아악!”
대뜸 열린 문에 코를 박고 비명을 내지르는 정체불명의 남자·
다만 혼란이 가득한 저 눈빛은 나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터였다·
“어····”
한 놈이 아니네?
“여러 명인 건 예상에 없었는데?”
안 그래도 어지럽던 머리가 더욱더 멍해지지만 늘 그랬듯 판단은 번개와도 같았다·
휘이익·
팔을 뻗어 코가 맞은 남자의 멱살을 잡고서 그랩을 날리듯 실내로 잡아당긴다·
그리고····
쿠웅-!
다시금 문을 쾅 닫고서 수동으로 잠금 장치를 돌려서 밀실을 만든다·
“뭐 뭐야! 넌···!”
이내 내팽개치듯 던져져 신발장 아래에 쓰러진 남자가 날 보며 당황해 소리친다·
또한 그와 동시에·
“뭐야! 강 팀장님! 강 팀장님!”
“너 이 새끼 뭐야! 당장 문 안 열어?”
문 밖에서 들려오는 적대적인 음성들·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퍽-!
주먹을 잘 말아서 쓰러진 남자의 얼굴에 있는 힘껏 꽂아넣는다·
바바리안 때처럼 수박이 터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들어간 일격····
‘···이 아닌가 보네·’
“이 미친 새끼가!”
얼굴에 정타를 맞고서도 멀쩡히 일어난 사내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나를 벽에 밀어붙인다·
“하 씨발 돌겠네····”
나보다 훨씬 더 큰 체격·
심지어 소위 말하는 장사형 체형·
예전에 나였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위축이 되어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을 상대·
“너 뭐야? 너 뭐냐고? 어?”
그것 하나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뭐 이리 어설퍼?’
딱히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죽을 고비를 얼마나 넘겼는데?
아무리 일반인 스펙이 되었다고 한들 이 정도도 혼자 해결하지 못하면 나가 죽어야 한다·
따라서····
“아아악!!”
어깨를 잡은 손가락을 반대편으로 꺾은 뒤 고통스러워 하는 상대의 면상에 스트레이트 한 방·
퍼억!
주먹에 맞고 밀려난 사내가 비틀거리는 순간을 이용해 안으로 파고들며····
꽈악—
자연스럽게 뒤를 잡으며 백 초크·
“컥 커 커허 읍···!”
목을 졸라 산소와 뇌로 가는 혈류를 차단한 자세를 단단히 고정시키자 사내의 몸부림이 심해진다·
퍽! 퍽! 퍽! 퍽!
팔꿈치로 내 갈비뼈를 가격하고 발로 내 발을 내리찍는 등·
열심히 발악을 했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씨바 내가 탱커 경력이 얼마인데·”
물리 내성 보정을 못 받는다고 이거 맞고 아파서 힘을 풀까봐?
“커 컥··· 사 살려····”
이내 반항을 해봤자 의미가 없음을 직감했을까·
이내 발버둥을 멈춘 사내는 방법을 바꿔 내 팔에 탭을 치며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밖에서도 이 소란을 들었을까·
쾅쾅쾅!
더욱 거칠어진 노크 소리·
“강 팀장님! 강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너 이 새끼 뭔 짓을 하는 거야! 문 열어!”
“뭐 해! 비밀번호! 보고만 있지 말고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아 예···!”
이내 다시금 현관문에서 삐빅거리는 도어락 전자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하 진짜 시작부터 난이도 장난 아니네·
“사 살려····”
우선 목을 조르는 팔에 힘을 더욱 불어넣으며 앞으로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그린다·
총 인원은 다섯·
‘일단 여기서 한 놈을 잡으면 넷이니····’
뭐 어떻게 가능하긴 할 거 같다·
죽도록 힘들기는 하겠지만·
‘오케이 한 놈은 보냈고·’
잡고 있던 사내의 몸이 축 늘어진 즉시 손의 힘을 풀고 일어선다·
그리고····
“오 시작 무기 달달한 거 보소·”
축 늘어진 사내의 허리춤에 달린 삼단봉을 바로 루팅해서 장착했다·
어쩐지 자꾸 허리에서 뭔가 꺼내려는 거 같더라니 이런 꿀무기를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이거면 난이도가 확 쉬워졌는데?’
이내 삼단봉을 최대 크기로 펼친 뒤 허공에 몇 번 휘둘러 보던 나는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악마분쇄기는 물론이고 상점에서 20만 스톤이면 살 수 있던 철제 메이스보다도 손맛이 적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름 상급 무기였다·
애초에 지금 근력으로 그런 무기는 무리기도 하고·
띠디 띠 띠 띠····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눌러지는 비밀번호·
사실 여기서 강제 잠금 버튼만 눌러도 저쪽에서는 문을 열 방법이 없어진다·
다만 나는 문을 잠그는 대신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그야 바바리안의 삶이 내게 가르쳐주었으니까·
모든 것에는 골든 타임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상황을 회피하면 나중에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 찾아온다·
따라서····
벌컥·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먼저 문을 대차게 열며—·
“아악!”
비밀번호를 누르다 머리를 찧은 남자의 정수리를 향해—·
“[휘두르기]·”
삼단봉을 내리찍는다·
악마분쇄기가 아니라 내려찍기 시의 방어 관통 효과는 볼 수 없었지만····
퍼억-!
나름 깔끔하게 전해지는 손맛·
이내 급소를 가격당한 사내가 바닥으로 쓰러지며 주위에 있던 사내들이 달려든다·
“이 미친 새끼가!!”
“잡아!!”
길목이 좁은 지형적 특성을 사용하는 것이 내 특기이지만 이번에는 피지컬이 받쳐주지 않기에 일단 뒤로 백스탭을 하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가 강 팀장님!!”
거실로까지 물러서자 이내 실내에 진입한 사내들이 축 늘어진 사내를 보며 아연을 금치 못한다·
“동료애가 끈끈한 타입인가 보네?”
개인적으로 그런 부류는 좋아하지만 그 상대가 적일 경우에는 약점일 뿐이다·
“강 팀장님! 정신 좀 차려보십시오! 예?!”
‘한 명은 상태를 봐주고 있으니····’
당장 상대해야 할 놈은 두 명이다·
문제는 이제 저 두 놈도 맨몸이 아니란 거겠지만·
촤아악-!
아까 잡은 ‘강 팀장’이 일반 고블린이라면 이놈들은 변이종에 속한다 볼 수 있었다·
고블린 검사····
“아니 삼단봉을 들었으니 고블린 경관인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웃고 있던 때·
“이 씨발놈이 웃어!!”
‘도발’ 당한 고블린 경관이 삼단봉을 휘두르며 내게 달려든다·
후우우우웅-!
나름 좋은 파공음이 피어날 정도로 기세가 실린 일격·
하나 내가 보기엔 너무나도 정직했다·
스윽·
따라서 허리만 살짝 뒤로 젖히며 회피·
바로 반격기를 넣듯 삼단봉을 휘둘러 관자놀이에 정확히 가격했다·
퍼억-!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찌 보면 이게 일반인과 탐험가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무기를 있는 힘껏 휘두르거나 찔러넣었을 때·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목표로 한 위치를 가격하지 못할뿐더러····
‘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지·’
아 물론 나는 진작에 그 단계는 지나쳤지만 말이다·
바로 이렇게·
털썩-
딱 한 대를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얻어맞고서 힘 없이 쓰러지는 사내·
한데 이런 내가 갑자기 무서워졌을까?
“····”
갑자기 옆에 있던 한 놈이 나를 보며 뒷걸음질을 친다·
나로서는 굉장히 좋은 상황이었다·
공포에 질린 적만큼 요리하기 쉬운 상대는 없으니까·
타닷·
고로 적극적으로 앞으로 대시·
충분한 거리에 도달했을 때는 허리의 힘을 사용해 삼단봉을 휘둘렀다·
하지만····
후우우웅-!
어쭈 이걸 피해?
‘그래도 자세가 무너졌네·’
숯한 전투 경험에 의거했을 때·
이 자세에서는 절대 추가타를 피할 수 없다·
즉 사실상 승기가 굳어진 거나 다름없다·
이놈만 잡으면 나머지 한 놈을 잡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테니까·
스윽·
그렇게 씨익 웃으며 균형을 잃은 ‘고블린 경관C’의 머리통을 향해 삼단봉을 내리찍으려던 찰나였다·
탕-!
총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맥빠지는·
BB탄 총을 쏜 것만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푸욱-
길고 날카로운 침 형태의 무언가가 살가죽을 파고들며 따가운 고통을 선사한다·
이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을 때·
“뒈져 이 새끼야!”
‘강 팀장’에게 인공 호흡을 해주고 있던 사내가 일어나 내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뭐에 당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이런 씹····”
지지지지지지지직-!
“···테이저건은 반칙··· 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