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화 꿈 (3)
천천히 실눈을 뜨고서 들려오는 소리 보여지는 시각 정보를 종합한다·
“···맞지? 맞는 거 같은데?”
일단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진 채 손잡이에 고정이 된 상태고····
덜컹!
장소는 이동 중인 대형 승합차 안·
“아니 근데 그놈이 맞다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년 넘게 실종 됐던 사람이 느닷없이 집에서 발견된 것도 그렇고··· 이렇게 공격적인 사람이란 말은 들은 적이 없었는데····”
음 이런 설정인 건가?
어쩐지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 부분인데 난이도가 너무 높더라·
건장한 성인 남성 다섯이 비밀번호를 치며 들어온 것도 모자라 테이저건이라니?
‘암 칼 한 자루도 안 주고 원거리 몹에 테이저건을 달아놓은 건 그냥 당하라는 거지·’
내 예상에 따르면 필시 시작 위치에서 패배 후 포박당하는 것은 확정된 일이었을 거다·
아마 높은 확률로 이 다음부터 시련이 진행—·
“다들 그만! 서에 가서 손가락부터 찍어보면 알겠지· 이놈이 그 이한수가 맞는지 아닌지는·”
···후 그래도 다행이네·
아직 살아 있어서·
“강 팀장님? 이 새끼 웃는데요?”
“뭐어?! 깼다고?”
옆에 있던 남자가 내가 깨어난 사실을 말하자 조수석에 타 있던 ‘강 팀장’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뭐야 얘도 못 죽였었네?’
너무 일찍 풀었나?
그래도 차에 세 명밖에 안 타고 있는 거로 보아 두 놈은 병원으로 이송돼서 힐을 받는 중인 거 같은데····
“이한수! 너 가만히 있어! 네가 뭔 일을 겪었든지 간에 여기서도 또 난동 부리면 그땐 진짜 어머니가 뭐라 말하든 법대로 하는 수밖에 없어!”
아무래도 강 팀장은 내가 또 차 안에서 난리를 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거 내가 병신으로 보이나?
“예· 죄송합니다· 가만히 있겠습니다·”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더 이상 트러블을 만들지 않을 것임을 상대방에게 인식시킨다·
한데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을까?
“뭐야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렇게 얌전해졌어?”
그야 지금은 CC기에 당한 상태니까·
수갑 정도는 순식간에 박살낼 괴력을 지닌 전사의 몸뚱이를 지닌 상태라면 모를까·
일반인 이한수는 수갑만 채워져도 병신이 된다·
따라서····
‘탈출 미션 같은 걸 수도 있겠네· 그냥 몬스터들 때려잡으면 끝나는 꿈이 있으면 이런 꿈도 있으니·’
되도 않는 탈출 시도를 하는 것보단 비위를 맞추며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지금은 일종의 튜토리얼 과정이라 볼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경관님 아까는 제가 너무 경황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들이 비밀번호를 치고 제 집에 들어오려 하다보니까 놀라서··· 아까 일은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바바리안으로서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깔끔하고 예의 바른 현대인식의 사죄를 상대방에게 보낸다·
한데 어째서일까?
내 사죄를 받은 강 팀장의 표정은 풀릴 기미 없이 더욱더 기괴해질 뿐이었다·
“지랄하네·”
···허 사람이 사과를 했는데 지랄이라니·
그때 진짜 확실하게 보내버렸어야 했—·
“웃고 있었잖아 너·”
···응?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경관님·”
“하··· 진짜 미친놈한테 제대로 걸렸네· 야 아까 이 새끼가 우리 보고 뭐라 그랬지?”
“고블린 경관이라고 했습니다·”
아 그거····
“하하 제가 흥분하다 보니 말이 헛나왔습니다· 좀 진정하시고 저한테 상황 설명을 좀 해주시는 건 어떨는—·”
강 팀장은 듣기 싫다는 듯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닥쳐!!”
뭐야 이 급발진은?
“그냥 닥치고 있으라고 새끼야!! 지금도 겨우겨우 참고 있으니까!”
아오 침 튀기기는·
“····”
솔직히 왜 저렇게까지 급발진하는지 이해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상대를 더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했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서 혼자 생각을 정리했다·
그로부터 차로 얼마나 이동했을까·
이내 근방 경찰서에 들어선 차가 멈추고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드르륵 열렸다·
눈을 찌르는 따사로운 햇살·
향긋한 꽃내음을 품은 자유의 공기·
“내려·”
오 드디어 탈출각이 생기는—·
“혹여나 이상한 마음 품지도 말고· 전기 맛 또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에라이····
‘그래 뭐··· 일단 수갑부터 풀어야 하니까· 수갑이 풀리는 순간이 기점이라 보고 지금은 참자·’
탈출각은 깔끔하게 포기하고서 ‘강 팀장’을 따라 양팔을 포박당한 채 경찰서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조사실에 도착·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건물 전체도 아니고 같은 층에만 고블린 경관들이 한가득이다·
대체 튜토리얼은 언제 끝나는 거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강 팀장의 지시대로 지문을 찍고서 유치장에 잠깐 갇혀 있자니 머지않아 다시 불려나가 조사를 받게 되었다·
“가족에게는 연락을 넣었으니 곧 오실 겁니다· 아 그리고 아까는 기절하느라 못 들었을 거 같아서 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이한수 씨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아까와 달리 존댓말을 써주기 시작한 강 팀장은 미란다의 원칙 고지가 끝나자마자 이것부터 질문을 해왔다·
“성명 이한수· 나이 30세· 1년도 더 전에 자택에서 실종· 우선 이것부터 말해보십시오· 그런 당신이 왜 오늘 거기에 있던 겁니까?”
“그냥 눈을 떠보니 거기였다·”
조금의 과장도 없는 진솔한 답변·
한데 나도 모르게 나온 바바리안 화법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을까?
옆에 있던 잡졸이 발끈하며 위로 팔을 올린다·
“···거기였다? 나이도 어린 게 감히 강 팀장님한테 반말이야 반말은!”
“그만해 박 형사! 실종됐다가 1년도 더 넘어서 발견된 사람이잖아!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모르는데 일단은 참아·”
“하지만 팀장님! 이놈 때문에 지훈이가 응급실에 실려갔다고요! 응급실에!”
“···됐으니까 조사 방해할 거면 나가있어 이 새끼야!”
강 팀장의 불호령에 분한 티를 팍팍 내며 등을 돌리는 잡졸A·
“하···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한수 씨· 다시 조사 시작할게요· 지금 우리는 한수 씨한테 궁금한 게 아주 많아요· 물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 걱정 마십시오· 성실히 조사에 응하겠습니다·”
“아니 허투로 듣지 말고 정말로요· 대한민국 형사가 다쳤어요· 한 명은 목이 졸려 죽을 뻔했고· 우리가 당신을 감싸지 않으면 당신 진짜 큰일나는 거야· 알겠어요?”
“예·”
한 귀로 대충 흘리며 답하자 강 팀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조사를 재개했고 나도 나름 성실하게 조사에 임했다·
문제는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지 않았단 거지만·
“그러니까··· [던전 앤 스톤]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던 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게임 속 세상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그렇다·”
“그 말투도 그쪽 세상에선 당신이 ‘바바리안’이란 종족으로 살아남아야 했기에 생긴 거고· 지금은 꿈결 폭포란 곳을 탐험하다가 잠에 들었는데 여기가 그 꿈속 세상이다?”
“오 맞다·”
깔끔한 정리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옆에서 탄성 아닌 탄성이 들려온다·
“와··· 이거 진짜 꼴통 새끼네····”
“조현병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 거 같다·”
기껏 진실을 말해줘도 정신 병자 취급을 하는 게 좀 억울했지만 그래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약해보이면 상대도 방심을 할 테니까·
이들은 전부 다 ‘적’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딸깍 딸깍·
앞에 있는 볼펜을 집어들고서 만지작거린다·
‘끝이 제법····’
날카롭다·
눈 같은 급소에 찌르면 얄짤없이 영구적인 신체 결손을 입히며 무력화 시킬 수 있을 만큼·
‘아무튼 수갑 푸는 방법도 체크 완료·’
조사를 받으면서도 주변 탐색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택에 수갑을 푸는 방법도 알게 됐다·
옆옆 테이블에서 조사를 받던 남자의 수갑을 푸는 걸 보고 알게 된 것인데····
‘허리춤·’
경관들은 수갑 열쇠를 벨트에 보관한다·
쉽게 말해 강 팀장만 제압하면 허리춤에서 열쇠를 빼내 CC기를 풀 수 있다는 뜻·
“팀장님··· 이거 조사 이전에 정신 감정부터 맡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업무나 보고 있어· 한가해?”
이후에도 조사를 받으며 솔직하게 말했고 강 팀장은 의외로 진지하게 혹은 흥미롭게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흘렀을까·
“배고프죠? 일단 밥부터 먹읍시다· 짜장이 좋아요 짬뽕이 좋아요?”
“짜장· 아 그리고 사이다 사이다도 같이·”
“···알겠습니다·”
강 팀장이 시켜준 짜장에 코를 박고 흡입하다가 처음으로 위화감이 들었다·
“캬아아아아····”
이게 이렇게까지 리얼할 것인가?
“왜 갑자기 그런 표정입니까? 맛있게 먹다가·”
“그야··· 뭔가 이상해서·”
“뭐가 이상합니까? 멀쩡해보이는데·”
“예전에 꿨던 꿈에서도 뭔가 먹어보기는 했지만 그땐 맛이 안 느껴졌었다·”
그런 내 답변을 들은 강 팀장은 정말이지 오묘한 눈빛으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무릎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는 이만하면 됐고 다 드셨으면 그릇 이리 주세요· 곧 만나볼 사람이 있으니까·”
“만나볼 사람이라면····”
“누구겠어요· 이한수 씨 당신··· 아 저기 오셨네· 어머니 이쪽입니다 이쪽!”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드는 강 팀장을 따라 등을 돌렸을 때였다·
“한수야····”
늘상 즐겨 입던 긴 치마·
낡고 헤진 운동화·
푸석한 머리를 가리듯 깊게 눌러쓴 벙거지 모자·
그 아래로 보이는 늘 보고 싶으면서도 다신 보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얼굴·
“아흐흑···!”
어머니가 입을 틀어막은 채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그걸 보며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푸흐흡····”
확실히 덕분에 꿈속이라는 실감이 나긴 했는데·
“푸흡! 푸하하하하!”
그래도 기분 참 엿같네 이거·
***
어느 이름도 모를 고시원의 단칸방이었다·
어머니는 늘 일로 바빠 밤 늦게 들어왔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나이였다·
너 때문이란 말을 달고 살던 어머니·
왜 나 같은 걸 낳았느냐 울던 어머니·
난 그래도 어머니가 좋았다·
항상 같이 있어 달라며 졸랐고 어머니는 딱 한 번 그 어린아이의 투정을 들어주었다·
그날 우리는 같이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좋아했던 동화책을 읽어줬고 배가 고프면 컵라면을 끓여줬다· 추운 단칸방 이불 안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과자를 까먹었다·
나는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어머니도 그러자고 했다·
다음 날 엄마는 놀이공원에 나를 데려가 주었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회전목마 앞에서 어머니는 홀연히 종적을 감췄고 나는 폐장 시간이 되어서야 놀이 공원 측 사람들에 의해 거둬졌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수많은 어른들이 나에게 다가왔고 매일매일 잠드는 곳이 다를 만큼 수많은 기관을 전전했다·
아동 유기 및 학대·
양육권 박탈·
어른들은 내가 없는 곳에서 쑥덕이며 어려운 말을 썼고 당시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이해해· 넌덜머리가 나는 것도·’
물론 이제는 어머니의 심정을 모르진 않는다·
아픈 아이·
그래서 부모의 골치를 썩이는 그런 아이·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는 곳마다 불행한 사건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역병 같은 존재·
이한수·
그게 나였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어머니라 해도 사실 지금의 나보다 고작 몇 살 많은 나이였지 않은가·
미워할 곳이 필요했을 것이고·
모든 걸 털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매 순간 유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뭐 그다음 일은 그것과는 또 별개지만·
[꺄아아악! 오지 마! 다시는! 내 인생에서 제발 사라져 달라고!]
언젠가 성인이 되어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어머니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렇게 외쳤고 나도 다시는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그래서 현별이에게 어머니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참 신기했었다·
[유산에 대해서 한참이나 얘기를 하다가··· 실종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사망 신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경찰에게 묻더라고요·]
어찌 소식을 알고서 돈이 탐나긴 했나 보지?
아니면 내가 하루라도 빨리 사라지길 바랐나?
정확한 생각이야 이 여자만이 알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아흐흑···· 한수야···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이제 와서 이렇게 눈물 흘릴 여자가 아니다·
뭐 그 덕분에 이곳이 꿈속 세상이 맞다는 확신이 더욱더 크게 들기는 했지만·
“꼭··· 꼭 만나서 말하고 싶었어· 내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용서해 줄 수 있겠니···? 이 못난 엄마를····”
훌쩍이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판단을 끝냈다·
‘이건··· 이용할 수 있을지도?’
오히려 나쁘지 않다·
따라서 나는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모든 감정을 억누른 채로·
“용서··· 할게요····”
“저 정말이니···?”
“네····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마치 모든 죄를 사하여 주는 신부처럼 손을 뻗어 어머니의 손 위에 다정하게 내 손을 겹친다·
두툼하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먼 이한수의 손·
포옥·
어루만지듯 어머니의 손등을 매만지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 팀장을 보았다·
“형사님··· 수갑 좀 잠시 풀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안 됩니다·”
“에라이·”
이게 안 통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