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3화 나비 (3)
공성 살육자는 굉장히 좋은 아이템이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비슷한 서열의 넘버스에 비해서 값을 후하게 쳐준다는 점에서 특히나 더·
‘이 세계관에는 철퇴 전사들이 꽤 많으니까·’
검 망치 메이스 폴암 창····
세상에는 수많은 무기들이 있으며 대부분의 게임들에서 ‘철퇴’는 비주류 무기로 취급 받는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무기지·’
[던전 앤 스톤]에서 철퇴류는 꽤 괜찮은 무기다·
느린 공격 속도란 패널티가 있긴 하지만 대미지 하나만큼은 그 어떤 무기들보다 높다는 이점이 있으니까·
그야 그렇잖아?
사용자의 스펙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원심력까지 동원되는 철퇴를 따라갈 무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 물론 초심자들에게는 말이다·
‘나도 초창기에는 자주 키웠지····’
물론 철퇴가 가진 한계 때문에 이후엔 다른 무기로 갈아탔지만 그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곳 사람들에겐 2회 차 3회 차가 없으니까·
무기란 쓰면 쓸수록 숙련도가 쌓이기 마련이고 생계가 걸린 대부분의 탐험가들은 쉽사리 쓰던 무기를 바꾸지 못한다·
즉 초반에 쓰던 무기를 후반에도 쓰는 경우가 많단 뜻인데····
‘7층 이상에서도 어딜 가나 한 명씩은 보였지·’
실제로 7층 이상 탐험가들 중에도 철퇴 사용자는 꽤 많다·
다만 문제는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간단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넘버스 아이템 중에 철퇴류가 몇 개 없거든·
‘사실상 걔네한테는 이게 졸업 무기지·’
고작 600번 대의 장비이긴 하지만 철퇴를 무기로 쓴다면 이것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다·
그리고 그걸 철퇴 사용자들도 잘 알고 있다·
경매장에 올리기만 하면 비싸게 팔려나가는 것도 바로 그게 이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고개를 흔들며 억지로 잡념을 지워낸다·
No·687 공성 살육자·
팔아도 좋고 스왑 무기로 써도 좋을 귀한 아이템·
그 아이템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것도 운 좋게 ‘주사위’를 이겨서·
두근-!
처음에는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자꾸만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기뻐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불안해서인지·
다만 차차 시간이 지나니 알겠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이 감각은 결코 좋은 의미의 흥분이 아니다·
그야 ‘아이기스의 장벽’을 먹었을 때도 이렇게까지 심장이 뛰지는 않았거든·
기쁜 것만 따지면 비교가 되지 않을 텐데도·
“뭐 해요? 계속?”
혼자 멍하니 서 있는 것도 조금 그랬기에 일단 정신을 차리고서 ‘공성 살육자’를 집어들었다·
「캐릭터가 No·687 공성 살육자를 착용했습니다·」
「종합 아이템 레벨이 +2800 상승합니다·」
딱 손에 쥐자마자 육체 수치의 변화가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게 이 아이템엔 스탯이 붙어있거든·
그것도 무려 퍼센티지로·
「근력 수치가 40% 증가합니다·」
「민첩 수치가 80% 감소합니다·」
민첩이 줄어들고 근력이 높아진다·
전반적인 스펙은 악마분쇄기에 비할 바 아니지만 그럼에도 때에 따라 직접 쓸 수 있다고 판단한 가장 큰 이유다·
근력이 필요할 때 이걸로 뻥튀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근데 진짜 몸이 둔해지긴 하네·’
물론 반대급부로 얻은 것도 있기는 하다·
뭐 정확한 건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휘두르기·’
시험 삼아 허공에 대고 스킬을 시전한다·
그야 일단 ‘철퇴’도 ‘둔기’로 판정이 되거든·
“엥? 남작 뭐 그리 굼뜨게—·”
바로 이렇게·
파아아아아아앙-!!!
철퇴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자아낸 풍압 소리·
이에 나를 포함해 모든 일원이 움찔했다·
“어?”
그 표정들을 보며 나는 판단을 끝마쳤다·
‘역시 파는 것보다는 갖고 있는 게 낫겠네·’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물론 찝찝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성 살육자가 마음에 들면 들수록 마음속 불안도 커져간다·
하지만····
두근-!
···그래 차라리 보상이라고 생각하자·
꿈속 세상에서 몇 달 동안 개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
두근-!
어··· 그래도 주의는 좀 하고 있자·
혹시 이게 다음 불행의 전조일 수도 있으니까·
갑자기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대비할 수 있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자·
그래 그러면—·
“다 다 다···!”
그때 돌연 궁수가 다급하게 뭐라 소리친다·
“다들 피하십시오!”
···응?
이게 이렇게 빨리 터진다고?
***
대체 무슨 상황인 걸까·
사건이 터진 즉시 크게 주변을 쓱 훑어본다·
무엇이든 직접 보고 판단하고자 하는 내 버릇 중 하나·
민첩 수치가 줄어들며 기감 자체가 무뎌진 탓일까·
당장 느껴지는 위협은 없었다·
하지만····
“···씹!”
“···!”
주변인들의 표정이 너무도 위급하다·
아니 단순히 표정만 그런 걸 넘어서 헐레벌떡 움직이며 자리를 벗어나고 있다·
“제이나!!”
기동력이 떨어지는 신관은 궁수가·
“할배!”
파멸할배는 이백호가·
“업히쇼!”
얼빠진 얼굴인 GM은 바로 근처에 있던 렉 아우레스가 들쳐메며 황급히 있던 자리를 벗어난다·
그때까지도 나는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했지만 단 한 가지만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두근-!
이곳은 위험하다·
나도 저들을 따라서 도망쳐야 한다·
그런 마음에 일단 다리부터 움직여보았지만····
‘니미럴·’
공성 살육자를 착용하며 80% 굼떠진 몸은 너무나 느렸다·
뒤늦게 현 상태를 인지하고 무기를 아공간에 다시 집어넣으려 했으나 애석하게도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나간 상태였다·
“뭐 해! 위를 봐!!”
파멸할배를 들쳐메고서 자리를 벗어난 이백호가 뒤돌아 나를 보며 외친 순간·
‘위···?’
이백호의 시선이 하늘 위를 향하는 걸 깨닫고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리고····
‘아 이래서 튄 거구나·’
저들이 왜 그렇게 다급했는지를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소름끼치는 익룡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하강 중인 초거대 비행 생명체·
전반적으로 무난한 난이도를 지닌 용골산의 유일한 특이 케이스·
통칭 ‘별무덤 3인방’ 중 하나·
1등급 불사종·
‘본 드래곤····’
앞에 ‘본’이 붙기는 했으나 드레이크나 드래고니안 따위가 아닌·
「캐릭터가 [드래곤 피어]의 범위 내에 있습니다·」
용족의 상징인 그 패시브까지 지닌 진짜 드래곤·
아 참고로 이 패시브의 효과는 아주 간단하다·
「격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10레벨 미만일 시 렙차에 따라 ‘항마력’이고 뭐고 영향을 받지 않는 디버프를 뿌린다·
물론 9렙일 땐 ‘마비’에 그치지만····
5레벨 이하는 즉사·
6레벨부터는 ‘기절’ 및 ‘영혼 탈진’·
7렙에는 ‘경직’ 및 ‘영혼 탈진’·
그리고 내가 포함된 8레벨일 경우에는····
「캐릭터가 10초간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무려 10초간 몸이 굳는다는 지랄 맞은 상태에 빠지는데 심지어 이게 전부가 아니다·
경직은 최초의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 발동되며 전투 시간이 길어지며 중첩 횟수가 쌓이면 특수 효과까지 발동된다·
때문에 드래곤 레이드는 반드시 10레벨 레이드가 권장되며 최소 컷이 9레벨이다·
···지금 생각할 건 그런 게 아닐 테지만·
‘초월·’
‘경직’ 상태에서 재빠르게 스킬을 시전한다·
「캐릭터가 [거대화]를 시전했습니다·」
우선 거대화(초월)로 깡스탯부터 끌어올려준 뒤·
「캐릭터가 [철옹성]을 시전했습니다·」
물리 내성·
「캐릭터가 [탐욕의 비늘]을 시전했습니다·」
마법 내성 수치를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앙-!
추락하듯 착지한 녀석의 앞발이 돌처럼 굳은 내 몸을 짓뭉갠다·
물리적인 충돌은 버틸 만했다·
“커헉···!”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며 피를 토해내긴 했지만 버틸 만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지만 말이다·
「캐릭터가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드래곤 피어]와 마찬가지로 용족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공통적인 패시브 스킬·
「[용발톱]의 조건이 충족됩니다·」
효과는 아주 직관적이다·
「입은 물리 피해만큼 마법 피해가 적용됩니다·」
저 개같은 패시브 스킬은 물리 피해를 입히면 마법 피해를 추가로 주고 반대로 마법 피해를 주면 추가 물리 피해를 입힌다·
쉽게 말해 하이브리드 대미지가 들어오는 건데····
삐이이이이이이-!
몸 안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느낌이 피어남과 동시에 이명이 들려온다·
열심히 키운 방패바바가 한 방 맞자마자 거진 빈사 상태에 빠진 격이었으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게 바로 [던전 앤 스톤]이란 게임이니까·
1등급 몬스터들은 전부 비상식적일 만큼 강하며 그중에서도 용족들은 특히나 더 악질이다·
「제이나 플라이어가 [치유 거머리]를 소환했습니다·」
「제이나 플라이어가 [재생의 저주]를 시전했습니다·」
「제이나 플라이어가 [긴급 수혈]을 시전했습니다·」
「저주 받은 피가····」
그래도 미리 캐스팅을 하고 있었는지 다행히 대미지가 들어오자마자 힐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음··· 다행이라 하기엔 이른가?
「신체가 빠르게 재생됩니다·」
「신체가 빠르게 재생됩니다·」
「신체가 빠르게 재생됩니다·」
「신체가 빠르게 재생····」
자칫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던 부상이 순식간에 회복되기 시작했으나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몸이 굳자마자 숫자를 셌거든·
‘4초·’
경직이 풀리려면 아직 4초가 남았다·
그리고 그사이에 이 뼈다귀 용새끼가 평타 두 방 혹은 스킬 하나만 제대로 박아도····
‘그대로 뒈지겠지· 그게 1등급 몬스터니까·’
아무리 잘 키운 캐릭터라도 무방비한 상태에서 1등급 몬스터에게 처맞으면 뒈지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렇게·
콰아아아아아앙-!
이내 본 드래곤이 앞발로 다시금 나를 공격한다·
고양이가 작은 동물들을 갖고 노는 것처럼 가벼운 움직임·
하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커헉···!”
체감상 생명력의 3분의 2가 날아간 듯한 기분·
한데 그 와중에 이놈의 앞발이 또 움직인다·
다만 또 내리찍거나 하려는 움직임은 아니고····
‘날개가 벌어지는 걸 보니·’
니미럴·
「본 드래곤이 [본 브레스]를 시전합니다·」
그걸 쏘려는 거구나·
다음 행위를 직감한 순간 눈앞이 아득해진다·
‘맞으면····’
100% 죽겠구나·
그런 확신이 들 정도로 위험한 상황·
“이 시밸럼이!!”
그때 뒤에서 이백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타닷!
뭐지? 날 구하러 오는 건가?
타다닷-!
그런데 얘는 어떻게 여기서 뛰지?
마치 [드래곤 피어]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아··· 이미 10레벨인 거구나····’
이백호에 대한 정보가 하나 더 늘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게 더 이상 의미가 있는가 싶기는 하—·
‘···기는 개뿔·’
몇 방 처맞으며 아득해졌던 정신이 확 돌아온다·
아무리 숨 쉬다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9층이라 한들 내가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까 봐?
후웅-!
이내 본 드래곤이 뼈로 이루어진 날개를 한 번 더 크게 뒤로 젖히며 아가리를 내민다·
그리고····
파아아아아아아아앗-!!
입에서 흑색의 광선 비슷한 브레스가 쏘아진다·
다만 나는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애초에 경직 상태라 감지도 못하지만 아무튼·
꽈악·
그도 그렇잖아?
그런 각오를 새기고서 꿈속 세상에서 미련 없이 등을 돌렸는데 벌써 포기하면 그것만큼 우스운 게 없—·
“세이프!!”
그 순간 가까이서 이백호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무언가가 나를 뒤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건 좀 감동일지도·’
설마 용이 브레스를 뿜는데 구하러 올 줄은 몰랐는데·
‘0초·’
속으로 마지막 카운트를 외친 즉시·
「‘경직’ 상태가 해제됩니다·」
굳어 있던 몸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그와 동시에 나를 잡아끌던 이백호가 외쳤다·
“뭐 해! 가드 올려!!!!”
뭐야 얘도 나랑 똑같은 각을 본 건가?
경직 시간까지 쟀던 거고?
정확한 건 나중에 물어봐야 알겠지 일단 나는 바로 방패를 들어 올리며 온몸을 감쌌다·
「방어 성공·」
「아이기스의 장벽이 모든 피해를 흡수합니다·」
하 진짜 뒈지는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