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속에서 대치가 이어진다·그리고 그런 시간 속에서 이백호도 생각 정리가 다 끝났을까·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세게 나올 수 있는 건가도 싶었는데··· 뭐 어느 쪽이든 됐어· 일단 해보면 알겠지·”
“····”
“우리 남작님 옷부터 벗자·”
“···?”
“그래야 중성화를 하든 뭘 하든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이백호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
내 민첩 수치로는 쫓기 어려울 만큼 빠른 움직임·하나 수많은 역경을 넘은 전사의 본능이 놈의 공격을 캐치하고서 방패를 내밀었다·하지만····
“PVP인데 되겠어 그게?”
주먹의 동선을 예상해서 내민 방패에선 어떠한 충격도 감지되지가 않고·
“딜 씹는 건·”
전혀 예상치 못한 뒤통수에서 충격이 발생한다·
“방패를 때렸을 때만이잖아·”
콰아아아아앙-!흡사 공성 병기에 때려맞은 듯한 충격·악 소리를 낼 새도 없이 [거대화]까지 쓴 몸체가 앞으로 젖혀진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어?’정신을 차렸을 땐 턱주가리에서도 큰 충격이 발생하며 몸이 다시금 뒤로 젖혀진다·
뭐지? 어퍼컷인가?저 각도에서 어떻게 했는진 알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이번에는 대미지가 제대로 들어갔다·
속을 다 게워내고 싶어질 만큼·
“우욱····”
“신기하지? 이렇게 치면 체감상 딜이 두 배는 더 들어가는 거 같더라고· 아 참고로 게임엔 없던 추가 효과인데··· 읏차!”
어떻게든 자세를 잡고 악마분쇄자를 휘둘렀지만 얄미울 정도로 민첩하게 점프로 회피하는 이백호·
“아 준비 다 됐나보네·”
돌연 이백호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린 그 순간·
“악감정은 없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이 붉었다·이에 멍하니 고개를 위로 드니 태양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구체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웅-!불길할 정도로 검붉은 마력으로 뒤덮인 구체·애석하게도 구체는 [거대화] 상태인 내 방패보다도 컸다·
한 수십 배는 더·‘완벽하게 가드는 불가능·’빠르게 판단을 마친 즉시·방패를 들어 하늘을 가림과 동시에 드래곤 모드를 활성화한다·
「캐릭터가 [탐욕의 비늘]을 시전했습니다·」「캐릭터의 항마력이 500 이상입니다·」「받는 모든 마법 피해가 50% 감소합니다·」
무적 바바리안(최종본)에서 ‘항마력’ 파트를 맡고 있는 벨라리오스의 액티브 스킬·
그 스킬을 쓰기 무섭게·번뜩-!소음마저 집어삼키는 강렬한 빛이 내 전신을 감싼다·그리고····치이이이이이익-!
피부를 덮은 비늘 위로 팔팔 끓던 냄비의 뚜껑을 연 것처럼 피어나는 연기가 치솟는다·뜨겁고 따갑고 쓰라리다·하지만····
“와 저걸 맞고도 끄떡이 없네·”
치명상까지 갈 부상은 결코 아니다·그야 방패로 몸의 중요 부위는 전부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우리 남작님 진짜 괴물이 됐구나?”
멀쩡하게 서 있는 날 보며 감탄하기도 잠시·이백호가 다시금 거리를 좁혀 날파리처럼 공격을 해온다·
콰앙! 콰앙!묵직한 잽을 연신 날려대고·콰아아아아앙-!그사이에 강렬한 일격을 한 방씩 섞어넣는다·
솨아아아-!파멸할배의 저주 마법 제이나의 각종 디버프가 내 몸을 뒤덮고·후우우우우우웅-!
방패로는 막을 수 없는 파멸 할배의 마법이 중간중간 내리꽂힌다·하지만····퍼억-!도리어 나를 복날에 개패듯 하던 이백호 쪽에서 고개를 갸웃한다·
“뭐야 이제는 목이 돌아가지도 않네?”
그야 방패바바는 처맞을수록 단단해지는 성질을 가졌으니까·
「흡수한 마법 피해에 비례해 물리 내성 수치가 상승합니다·」지금까지 마법을 몇 대나 처맞았는데?
「캐릭터의 물리 내성 수치가 750 이상입니다·」「모든 물리 피해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이미 [진화형 외피] 3단계가 활성화됐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가 [철옹성]을 시전했습니다·」「[진화형 외피]의 효과가 1·5배 증가합니다·」이제 이것도 켤 거거든·
퍽-!아까에 비하면 간지러울 정도로 약해진 평타·숫적 4:1에 상황에서도 배짱을 부릴 수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여기서 필살기들은 못 쓸 거 아니야·’[별의 소멸]이라든가·아니면 황금 유적에서 브라이엇을 잡기 위해 사용됐던 ‘그것’이라든가·
주위에 아군들이 있는 이상 그것은 함부로 쓰기가 어렵다·뭐 반대로 말하자면 주위에 아군만 없으면 그걸 서슴없이 쓸 수 있다는 뜻이지만····
“이 정도면 걱정할 필요는 없었겠네· 남작님 이제 진심으로 갈게요? 야! 너네 다 물러나!”
어찌 보면 아까 이백호가 내 방패의 특징을 알고서 영리하게 싸웠던 상황과 비슷하다·‘거 내가 멍청한 몬스터인 줄 아나·’
나 역시 다 아는 상황에 거리를 벌리는 걸 기다려 줄 리 만무·
“베헬—라아아아아아아아!!”
전투 함성을 내지르며 물러나려는 후열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한다·그도 그럴 게 하루 온 종일 처맞기만 했는데·
“아우레스!!”
슬슬 하나쯤은 잡을 때도 됐잖아?타닷!내가 닥돌을 시작하자 후열에서 대기하던 렉 아우레스가 방패를 치켜들고서 앞을 가로막는다·
탱커 대 탱커의 상황·일반적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치명타를 입히지 못하며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걱정 마시오! 루인제네스 공은 내가 지킬—·”
뭐래·내가 너 같은 퓨어 탱커인 줄 아나·No·87 크라울의 악마분쇄기·No· 687 공성 살육자·거기에 오우거의 [휘두르기]·
이러한 공격기들은 사실 이제 평타에 가깝다·그도 그럴 게 얼마 전에 필살기를 얻었으니까·「캐릭터가 [아이기스의 용갑]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백호의 평타에 처맞고 파멸할배의 마법에 지져지고 하며 열심히 쌓아온 피해량·「누적된 피해를 반사합니다·」암 이거면 충분하다·
No· ???? 아이기스의 용갑·이 아이템의 액티브 이펙트는 꽤 화려한 편에 속한다·아니 정확히는····
‘이건 볼 때마다 가슴이 웅장해지게 하네·’내가 가진 어떤 이능 장비보다도 ‘압도적인’ 이펙트를 보인다·
바로 이렇게·솨아아아아아아아-!어느새 내 등 뒤로 소환된 영혼의 전사가 단칼에 성벽도 무너뜨릴 것 같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른다·
목표 대상은 파멸학자 루인제네스다·그야 신관인 제이나는 둘째치고 이 할배만 없어지면 훨씬 더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거 같거든·
다만 문제는 그 앞을 지키는 문지기 렉 아우레스라 볼 수 있는데····‘음 문제까지는 아닌가?’
실제로 이후 상황은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초거대 방패를 들고서 파멸할배 앞에 선 렉 아우레스 위로 수십 장이 겹쳐진 두터운 마력 장벽이 형성된다·
‘마법사를 보호하는 탱커와 그런 탱커를 지키기 위해 마법을 쓰는 마법사라····’
말만 들으면 어딘가 낭만적이게도 들린다·하지만····‘지랄들을 하네·’암만 저래 봤자 변하는 건 없다·
그도 그렇잖아?둘이 힘을 합친들 어떻게 막겠어?실험을 할 때도 제대로 막지 못했던 걸·콰지지지직-!!
최상위권 마법사가 형성한 마력 장벽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간다·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몇 겹을 쌓았든 의미는 없었다·
저 무자비한 전사의 대검은 그런 걸 전혀 가리지 않는 듯했으니까·콰지지지직-!
거침없이 휘둘러진 대검이 이윽고 마지막 마력 장벽마저 박살내고서 최후의 벽 역할을 하고 있던 렉 아우레스마저 날려보낸다·
“커헉!”
오케이 그러면 탱커는 이제 다운·퍽-!이백호가 열심히 뒤에서 평타를 넣어대고 있지만 이거는 그냥 무시하면 그만·
‘GM은 방관 중에····’
성벽 밖에선 제물을 바칠 수 없는 이상 신관도 딱히 나를 막을 방법은 없어보인다
따라서 이제 내가 할 일은 ‘방어 계열 주문’을 모두 소모한 파멸학자를 조지는 것뿐인데····
“···응?”
그때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터져나왔다·정말 놀랍게도 나에게는 ‘긍정적인’ 변수였다·처음에는 나도 잘 몰랐지만·
“왜··· 안 사라지죠?”
아이기스의 용갑으로 소환된 영혼의 전사가 한 방을 때려놓고도 사라지지 않는다·아니 사라지기는 커녕·
스으윽·한 번 휘두른 대검을 회수하고는 다시금 일격을 내리꽂을 자세를 취한다·한데 어째선지 그 짧은 순간들이 슬로우 모션처럼 선명하게 느껴진다·
“어어···?”
나를 견제하는 것도 잊고서 멍한 표정을 내짓는 이백호·
“···!”
걱정 어린 표정의 제이나·눈을 동그랗게 뜬 채 보고만 있는 GM·그리고····
“이건 곤란하겠군·”
다급하게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한 파멸할배까지·감각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뇌에 내리꽂히는 가운데·
나는 직감적으로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처맞다보면 스택이 쌓이고 그 스택에 비례해서 단계별로 물리 대미지를 입히는 매커니즘·]
실험의 한계로 인해 우리는 아이기스의 용갑의 4단계 효과까지밖에 보지 못했다·따라서 이게 몇 단계 효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적된 피해가 일정 수치를 초과했습니다·」「사용 효과가 한 번 더 시전됩니다·」연타라니·
‘더 윗단계에는 또다른 추가 효과가 있으려나?’합리적인 추측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야 이거 하나로도 충분하니까·‘아이기스의 용갑’이 싱글 넘버스급이라고 평가를 하기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이윽고 느려졌던 시간이 확 가속하며 영혼 전사의 대검이 파멸할배를 향한다·그리고 그 순간·
“···라 에비에스투카 비에란·”
때마침 영창이 끝나며 검붉은빛의 장막이 구체의 형태로 파멸할배를 감싼다·
‘보호’가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불길한 느낌으로 일렁거리는 장막·
‘이건 처음 보는 건데?’딱 보니 이게 파멸할배가 숨겨두고 있던 패들 중 하나인 듯한데····뭐 성능이 어떤지는 곧 알 수 있겠—·
“···응?”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직관하던 중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그도 그럴 게 이런 상황은 전혀 생각 못했거든·
보호막이 부서지든가·그도 아니면 내리친 대검이 튕겨져나간다든가·그런 거라면 크게 놀랄 일도 없었을 것이다·다만····후우웅-!
보호막에 닿는 대로 사라지는 대검·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통째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저 구체가 다른 세계로 이어진 통로라도 되듯·‘저 정도면 그냥 무적기 아닌가···?’
심지어 캐스팅 시간도 매우 짧았던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스킬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억울해하지는 않기로 했다·내가 아이기스의 용갑 같은 아이템으로 사기를 쳤던 것처럼 이 할배도 그런 비장의 수가 하나쯤은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노코스트도 아닌 거 같고 말이지·’강한 힘엔 책임이 따른다는 건 영화 속 이야기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강한 힘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저기 지금 파멸할배가 숨을 헐떡이는 것처럼·
“후우··· 후우····”
미래의 전력까지 다 끌어다 쓴 것처럼 거친 호흡을 내뱉는 파멸할배·새하얀 백발이 땀에 젖어 피부에 달라붙은 걸 보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할배가 이 지경까지 몰린 걸 본 적이 있었던가?’문득 그런 생각이 들며 굉장히 이질적인 장면처럼도 느껴졌으나 구경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그야 이제 막 장막이 사라졌거든·타닷-!뛰던 걸음에 박차를 가하며 파멸할배와의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막 망치를 휘두르던 찰나·이때 또 예상 밖의 상황이 연출된다·후웅-!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는 망치·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피했다고?’
파멸할배가 내 일격을 회피했다·내 민첩 수치가 아무리 낮아도 마법사 따위가 결코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할진데·
심지어 운 같은 것도 아니었다·후우웅-!이어진 연타를 피하는 할배의 움직임은 어느 무술의 오묘한 한 동작처럼 부드러웠고 이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몰랐나 보군·”
“····”
“마법은 전쟁 속에서 발달한 학문일세· 때문에 고대의 마법사들은 모두 다 근접 무술을 수련했다네· 난전 속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끔·”
니미럴·마법사가 무술까지 하면 우린 뭘 먹고 살라고?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거리를 좁히려던 때였다·
타닷·거리를 벌릴 거라 예상했던 파멸할배가 역으로 내게 다가오며 손을 뻗는다·그리고····툭·손이 내 배에 살포시 얹어진 순간·퍼엉-!
안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충격이 전해진다·분명 영창을 하거나 큰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 것도 아닐진대·
“커헉!”
대체 뭐지 이건?드래곤 모드까지 활성화한 내 항마력을 뚫는다고?‘···이렇게 쉽게?’순간 머리가 멍해졌으나 사태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잠시 잊고 있었을 뿐 분명 알고 있던 ‘기술’이었으니까·
[자네 정도면 아는 수법일 텐데? 일시적으로 몸이 닿지 않았던가· 그때 회로를 연결해 자네의 육신을 매개체로 마법을 완성했네·]
[아 그래서 내 항마력이 안 통했구나·]저리 말해도 원리는 잘 모르겠다·하나 확실한 건 파멸할배는 이백호와의 전투에서 ‘항마력’을 무시하고 딜을 넣었다는 것인데····
‘오케이 마법사 주제에 근접전도 쉽지 않다 이거지?’목구멍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이 정도면 그렇게까지 큰 사고도 아니다·
다만 정비를 위한 시간 정도는 필요하단 판단하에 거리를 벌렸다·
‘스택까지 다 써놓고 못 잡은 건 좀 아쉽긴 한데····’그래도 급할 건 없었다·일단 렉 아우레스 한 놈은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지 않았던가·
“아우레스 씨···!”
뭐 살아있긴 한 듯하니 힐을 받고 금방 복귀할 거 같긴 하지만·
‘첫 턴에 한 새끼는 잡았어야 했는데·’상황은 좋지 않다·그리고 그걸 아는지 이백호도 잠시 평타를 멈추고 내게 말을 걸어온다·
“봤지? 암만 발악해도 안 된다니까?”
거 기세등등하기는·아직 끝난 것도 아니건만·
“그러니까 그냥 이쯤에서 그만하자· 응? 말만 하면 되잖아· 그 늙은이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른 사람도 아니야 그냥 나한테만 말해주면 된다니까? 그럼 여기서 끝낼게· 응?”
이미 이긴 것처럼 구는 이백호를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
“좀 지쳤나 보네?”
난 아직인데·「캐릭터가 [영혼 잠수]를 시전했습니다·」「소모된 영혼력에 비례해 영혼력이 재생됩니다·」
동네 거리 싸움이든 링 위에서의 싸움이든·정글이든 바다든 또 다른 어느 세상이든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하나 있다·
“베헬—라아아아아아아아!!”
결국엔 끝까지 서 있는 놈이 이긴 거다·***1분 2분 3분····이후로도 전투가 이어진다·10분 20분 30분····바닥을 구르고 피를 토하고·1시간 2시간 3시간····
잠시 기절했다가 불에 타는 듯한 격통을 느끼며 깨어나기도 하면서·4시간·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이미 지나간 10대처럼 느리면서도 너무나 빠르게 흘러간다·
“허억··· 허억··· 허억····”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뜨거운 숨소리·
“나 남작···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소···?”
몇 번이나 전투에 이탈했다가 복귀한 렉 아우레스가 파멸학자의 앞을 지킨 채 내게 간곡히 부탁한다·
“남작도 한계이지 않소····”
글쎄 보통은 그런 말을 꺼내는 놈이 제일 한계에 몰린 거던데·멀리서 날 보며 제이나도 한 마디 곁들인다·
“······괴물·”
질릴 대로 질린 듯한 짧은 읊조림·
“아하··· 하····”
나와 대치 중이던 이백호도 구슬 땀을 닦아내며 입을 열어온다·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기는 했네· 설마 그게 자기 자신일 줄은 몰랐지만·”
놈은 이 상황이 되어서도 뭐가 즐거운지 자꾸만 헤실거리며 웃었다·
“이 정도면 그리 멀진 않았겠는데?”
아무래도 놈은 내가 이렇게 강해진 게 나름 마음에 들었던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