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화 감옥 (1)
수도 없이 망치로 사람 머리빡을 깨본 사람으로서 말해보자면, 망치로 사람을 내려칠 때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 하나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표정’이 있다·
‘어?’
내가 맞은 건가?
‘어?’
몸에 힘이 안 들어가네?
‘···어?’
이대로···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콰직-!!!
망치로 대가리를 후려맞은 놈들은 대부분 이런 눈빛을 지으며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인지 아닌지를 헷갈려 한다·
콰직-!!
실시간으로 자기 머리통이 박살나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도 제대로 실감하지는 못한다 해야 하나?
하기야 이놈은 그게 더할 것이다·
싸우다가 대갈통을 처맞은 것도 아닐뿐더러·
[그랬다면? 날 해코지라도 할 텐가? 자네처럼 잃을 것도 많은 인물이?]
이상한 확신까지 갖고 있던 놈이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머리통이 깨진 게 더욱더 현실성 없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그만! 뭘 하시는 거요!”
이곳은 라프도니아다·
“얀델 남작이 난동을 피운다!!”
한순간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냉혹한 세계·
그래, 그러니까····
콰직-!
오판의 대가는 치러야지?
“마, 막아라!!”
기사들의 제지고 뭐고 계속해서 망치로 머리를 내리쳤다·
콰직-! 콰직-!
오르큘리스의 멤버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우리 수색대원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계속·
콰직, 콰직, 콰직-!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몇 번이고 내리쳤다·
그리고····
“····”
더 이상 옅은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고, 진흙을 때린 것처럼 뭉개지는 소리만이 들리는 그때·
콰짓!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특유의 그 손맛을 느끼며 제지하던 병사들의 손에 못 이긴 척 뒤로 물러났다·
“남작···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왕기사 할아버지는 부단장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내게 달려오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숱한 경험을 통해 보자마자 알아챈 것이다·
머리통이 저렇게 아작나면 대신관이 코앞에 있어도 살아나긴 글렀다는 걸·
“포로들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포로를 어떠한 절차도 없이 참살하다니, 관점에 따라 반역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단 말일세·”
“아, 미안하다· 갑자기 나를 보고 모욕적인 말을 한 탓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군·”
“모욕적인 말···?”
“저놈은 나를 보고 비웃으며 겁쟁이라 말했다·”
“사실인가?”
내 변명을 듣고서 주변에 있던 기사에게 사실 확인을 하는 왕기사 할배·
이내 기사는 좀 애매하다는 눈치로 고민하더니,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겁쟁이란 말은 없었습니다· 단지··· 보기와 다르게 이성적이라고—·”
오케이, 거기까지·
“그게 겁쟁이라는 뜻 아닌가!!”
기사의 진술을 끊으며 노발대발하며 소리치자, 왕기사 할배가 이마를 부여잡았다·
“···됐네· 이유야 상관없으니·”
“오, 그럼 봐주겠단 건가?”
“내가 봐주고 말 게 뭐 있나· 하나 아까도 말했듯 책임은 져야 할 것이네· 안 그래도 성이 잔뜩 난 후작이 자네의 이번 ‘실수’를 어떻게든 물고늘어질 게 분명하니·”
그리 말하는 왕기사 할아버지는 정말로 내가 후작에게 뭔가 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눈치일 뿐, 내가 한 짓 자체를 탓하고 싶진 않아 보였다·
아니, 오히려 호감도는 조금 더 올라가 보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군·”
“···?”
“솔직히 이종족 출신이라 걱정했네마는, 자네의 애국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네·”
아, 나라를 위해 조진 거라 생각한 건가?
알 수 없지만, 나도 딱 하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후작이 나라를 휘어잡고서 흔드는 판국이지만, 내 어떻게든 힘을 써 보겠네·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자네 같은 충신들이 바로 서야 이 나라도 바로 서지 않겠나?”
왕기사 할아버지는 대리국정을 하는 중인 후작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의외의 곳에서 든든한 뒷배가 생겼네·’
어쩌면 오늘 사건이 생각보다 별탈 없이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막 하며 망치에 묻은 피와 살점을 바닥에 툭툭 털어내고 있던 그때였다·
“다, 단장님!”
시체를 수습하고 있던 기사가 다급하게 달려와 충격적인 소식을 입에 담았다·
“사, 살아 있습니다!!”
“···응?”
“마안, 바노잔트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아니, 이런 미친·
“정말인가!”
···그걸 산다고?
***
간혹 미디어를 보면 그런 경우가 있다·
‘해치웠나?’ 싶던 찰나, 죽은 줄 알았던 적이 멀쩡히 일어서며 더욱 강해진 상태로 2차전을 시작하고 그런 거·
물론 지금은 그런 경우와는 달랐다·
“···커허, 커허헉·”
더욱 강해져서 달려들긴커녕, 겨우 죽다 살아난 것처럼 피를 토하며 바닥을 뒹굴고 있을뿐더러·
당연히 2차전 같은 것도 없다·
단지, 또 사고를 칠까 싶어 내 앞을 가로막은 왕기사 할아버지만 있을 뿐·
“거기까지·”
“····”
“한 걸음이라도 뗀다면 베겠네· 자네를 위해서·”
후··· 이걸 어떡하지?
잠깐 고민하며 멈춰 있는 사이에, 왕기사 할배의 눈짓을 받은 기사들이 부단장을 마차에 싣고서 신속히 출발했다·
이미 이 둔한 몸으로는 따라가기 늦은 상황·
‘···제기랄·’
결국 나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래,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거지·
저렇게 얻어맞고도 살아 있다면, 이건 내가 못한 게 아니라 적이 잘한 거다·
그렇게 마음 먹는 편이 옳을 터·
다만 이것 하나는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지?”
“이후 조사를 통해 알게 되면 전달해주겠네· 그러니 자네는 이곳에 머물며 좀 진정하고서 군사령부로 복귀하게· 내 후작에게 말은 해둘 터이니·”
그래, 이 왕기사 할아버지도 모르는 거구나·
대체 부단장놈이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뭐··· 보나마나 아이템이나 정수 중 하나겠지만·
‘나중에 알려준다고 하니 이건 그때 듣기로 하고·’
“부디 다시 봤을 때는 진정을 한 이후였으면 좋겠군·”
그렇게 왕기사 할아버지까지 떠나갔고, 이후 나는 후작가 정원에서 잠시 생각 정리를 하다가 한 번 더 후작가를 살폈다·
노아르크인들이 숨어 있던 그 피난처를 한 번 제대로 확인해 보려는 게 이유였는데····
‘이렇게 생긴 구조였구나·’
비밀 서재가 작업을 위한 공간이라면, 이곳은 말 그대로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그 있잖아?
외국 주택들을 보면 강도 침입을 대비해서 만들어 둔다는 ‘패닉룸’ 같은 거·
‘딱히 별건 없네····’
대충 쓱 들러본 후 병사들에게 마저 조사를 하라고 말하고서 밖으로 나와 대원들과 함께 왕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총사령관님께서 부르십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도착을 하자마자 후작에게 호출을 받았다·
“모두 나가 있게·”
“하지만····”
“괜찮으니,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호위 기사까지 전부 밖으로 물리며 독대 자리를 만들어 낸 후작·
이내 자리에 앉자 후작은 잠시간 나를 노려보다가 말문을 뗐다·
“그래··· 우리 가문을 수색하다가 정말로 그들을 발견해냈다고?”
“운이 좋았다·”
100%의 진실이 담긴 말이었으나 후작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지? 정말로 시체수집가가 자네 정보원이었던 건가?”
“그건 그냥 시간을 끌기 위해 했던 말이다·”
이번에도 진실만을 말했으나, 후작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았다· 그저 날 꼬나보며 내 말 중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구별하려 했다·
거, 믿을 생각도 없으면서 뭣하러 물어보는 거야?
입만 아프게·
“됐고, 그러면 이제 약속이나 지켜라·”
의미없는 문답을 하며 시간 낭비할 생각이 없기에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가 말한 대로 도시에 숨어든 노아르크인들을 모두 색출했다· 심지어 그중에는 오르큘리스의 부단장도 껴있지· 이 정도면 임무는 초과 달성한 거 아닌가?”
“자네가 기습적으로 죽여버리려 했다는 바로 그 ‘마안’ 말인가?”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흐음, 그런 것치고는 계획적인 사고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 않네· 예를 들면 ‘입막음’을 해야 할 것이 있었다든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가만 있을 순 없었다·
탱커가 할 말은 아니지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인 법이니·
“글쎄,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제일 수상한 건 너 아닌가?”
“···?”
“부단장의 대가리를 깨뜨린 나보단, 노아르크의 특수 부대를 가문에 숨겨 준 네가 더 수상하게 보이는데 말이지·”
사실 이는 공격하려고 그냥 없는 말을 만들어 내서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수상하게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물론 나도 처음엔 그냥 노아르크 놈들이 후작도 모르게 후작 가문에 숨어들었다고 생각을 했지만····
[좋습니다· 항복하지요·]
암만 생각해도 그 대응은 왕실 높은 곳에 배후가 있는 게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짓이었거든·
정황상 가장 유력한 건 역시 이놈일 테고·
“···난 숨겨 주지 않았네·”
“그럼 잡혀온 그놈들은 어떻게 됐지?”
“현재 왕실 지하 감옥에 투옥되었네· 곧 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되겠지·”
“흐음··· 그렇단 말이지···?”
다만 이 화제는 여기까지만 하고서 아까 얘기하던 주제로 다시 얘기를 돌렸다·
“아무튼, 약속은 지켰으니 이제 날 7구역으로 보내줘라·”
“···그건 불가하네·”
“어째서?”
“오해하지 말게· 아예 보내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니까·”
“그럼 제대로 말해봐라·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자네가 우리 가문을 멋대로 수색한 것? 이건 그럴 만한 결과가 나왔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네· 하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중요한 포로를 죽이려 한 것은 좀 다르지·”
쉽게 말해서, 공은 공이고 실책은 실책이라는 뜻·
“그러니까 딱 잘라서 말해보라 하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거냐?”
“카리투무어 경의 말도 있고 하니, 많이는 바라지도 않겠네· 군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이틀, 딱 이틀만 징계를 받게·”
징계에 대해 물어보자, 후작은 ‘금고형’이라 답했다·
하나 왕실 지하 1층에 위치한 귀족들이 머무는 감옥에 갇힐 거라고, 어지간한 여관들보다 훨씬 더 시설이 좋으니 쉰다 생각하면 될 거라고 설득했다·
뭐, 환경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시간·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후작 놈의 ‘의도’다·
‘이틀이라····’
하, 어떡하지?
일단 이 양반이 허락 안 해주면 7구역으로는 절대 못 돌아갈 텐데·
“마지막 제안이고 타협은 없네· 설령 자네가 탈영을 할지라도 말일세·”
합법적으로 7구역에 가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
이내 고민하던 나는 끝내 결정을 내렸다·
당장 여기서 탈영을 하든가 징계에 불복했다가는 오히려 더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을 테니까·
심지어 구속구도 안 차도 된다 하지 않았던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면 바로 철창을 깨부수고 밖으로 나가면 될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이틀· 딱 이틀이다·”
“···잘 생각했네·”
잠시만 상황을 지켜보자·
‘후작, 이 새끼가 아주아주 수상하단 말이지·’
후작 놈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게 둘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