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
샤벨은 더는 떼를 쓰지 않았다· 깔끔하게 물러섰다·
눈앞의 저 사내가 제안을 거절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았기에·
그의 낭만을 들었으니 마땅히 존중해주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혹· 도움을 청하고 싶거든 언제든 여를 찾거라·”
“검을 든 상대와의 경험이 필요하다 하면 응해주시는 겁니까?”
“하하하! 그거야 당연하지!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데우스의 어깨를 연신 두드리던 샤벨이 갑자기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해서 하는 말인데·”
“제자로 받는 거 포기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그건 포기했지· 여가 제안하고자 하는 건 다른 부분이다·”
품을 뒤적거리던 샤벨이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민다·
배지? 증표? 무엇이 되었든 일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해골이네요·”
“응? 아· 그렇지· 해골이지·”
“····”
“···?”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요· 혹시 해골 문양 자랑하는 겁니까?
뭐야· 설마 이 증표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거야? 정말로?!
두 남녀의 눈빛이 허공에서 한 번 얽힌 후·
“이봐· 혹시 이게 뭔지 모르는 거냐·”
“네·”
“···너 요람 학생은 맞아?”
“아직 신입생에 학기 초라서 그런지 이런 거 배운 기억은 없는데요·”
아니· 지금 교육 과정을 묻는 게 아니라· 나 원 참· 황당하네·
머리를 긁적거리던 샤벨은 증표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특무대 표식이란다·”
“아하·”
“아하 는 무슨 아하? 이거 참 어이가 없구나· 설마 특무대 표식도 모르는 능력자는 여 평생 처음 본다·”
아니· 그런 거 볼 일이 없었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죠·
데우스가 억울한 표정을 짓자 샤벨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래· 생각해보니 너처럼 올곧은 자는 이런 걸 볼 일이 없겠지· 이걸 볼 것들은 이능이란 선물이자 의무를 부여 받았음에도· 세상에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혼란을 야기하는 자들일 테니·”
특무대· 이능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을 친히 방문하는 사신들·
게이트 및 몬스터 대응 업무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허나 대부분의 일은 의무를 저버린 이능력자들의 처단이다·
“특무대에 속하고 계셨습니까?”
“아무렴 제국에서 여와 같은 최고급 인재를 대충 놀리겠느냐· 거기에 여가 지닌 무력이면 어떤 과격분자라고 해도 능히 처단할 수 있고 말이다·”
당신 같은 허당 캐릭터가 그런 곳에 있다는 게 좀 놀랍긴 하네요·
“그래서· 제게 특무대 표식은 왜 보여주시는 건지·”
“혹 이곳에 들어올 생각은 없느냐· 여는 그게 묻고 싶다·”
“말씀을 드렸다시피 저는····”
“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래서 여가 특무대 자격을 논하는 것이다·”
항상 파티를 이루어 게이트 대응 업무를 행하는 보통의 이능력자들·
허나 특무대는 조금 다르다· 그들 하나 하나가 어지간한 파티 급 전력이다·
거기에 몬스터가 아니라 같은 이성체를 상대로 피를 보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혼자서 움직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예비대로 존재하든· 혹은 척후로 움직이든· 어떠한 경우로든 말이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여가 부탁한다면 논의 정도는 해볼 수가 있다·”
“설마 그거 핑계로 스승이니 제자니 요구하시려는 건·”
“아니라고 여가 몇 번을 더 말해야 하는 거니· 맹세라도 해야 하는 것이냐?”
그건 아니고요· 고개를 내저은 데우스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특무대· 특무대라· 혼자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애당초 혼자 움직인다는 건 이렇다 할 명령적 제지가 적다는 소리지 않나·
“···그런데· 저는 아직 학생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신입생이고요·”
“그렇긴 하지·”
“이능을 다루는 숙련도나 현장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원들은 아무리 뛰어나도 일정 기간의 경험을 쌓은 후에 투입시키는 것이 제국의 확고한 이능력자 방침 아니었습니까?”
데우스의 물음에 샤벨이 그건 맞다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바뀔 가능성이 생겼다며 운을 뗀다·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대규모의 게이트 발현· 그리고 그 너머 새로운 적의 등장·”
“····”
“이 정도면 제국의 방침이 바뀔 만하지 않느냐? 여는 그리 생각한다만?”
*
―달칵
휴게실 문을 닫은 샤벨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리고 들어야 할 답을 들었다·
비록 그 대답이 거절인 건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저리 의지가 확고하다면 설득하는 게 되레 실례다·
‘여의 제자가 왜 그리 눈을 반짝이던 것인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
루시엘 마르그레텔· 자신의 제자· 동시에 제국의 황녀·
무엇 하나 가벼운 게 없기에 그만큼 루시엘의 기준이 굉장히 높아졌다·
어지간한 재능이나 마음가짐은 그녀를 자극조차 할 수 없을 터·
한데· 그런 루시엘이 소녀로 돌아간 것처럼 재잘거리더라·
그 모습에 샤벨은 문득 첫사랑에 빠진 계집아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도 이렇게 탐이 날 정도이니 말이다·’
검을 부딪친 순간· 아니 그 눈을 마주한 순간 깨달았다·
저 젊은 못해 어린 사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최강이 될 것임을·
언젠가 이 자신조차 넘어설· 그리하여 자신을 채찍질할 존재가 될 걸 말이다!
얼마나 외로웠던가· 얼마나 답답했던가·
최강이라는 말은 하나라는 뜻· 그리고 하나는 결국 고독한 법·
자극이 되어주는 이도· 같이 경쟁하는 자도 더는 없다·
그로 인해 정체가 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비로소 쌍검이라는 낭만에 다다랐으나 그 이상 가지 못했다·
답답하지만 어쩌겠는가· 스스로 이 벽을 깨는 시간은 아득히 먼 것임을·
말로는 스승이니 제자이니 했지만 사실은 아니다·
자신이 원한 건 최강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해줄 자·
그런 이유로 루시엘을 냉큼 채어 제 제자로 둔 것이기도 하다·
“···음·”
것보다· 너무 대놓고 이리 주시하면 모른 척하기도 힘든데·
갑자기 걸음을 돌린다· 그리곤 휴게실 앞쪽 화단으로 향한다·
그곳에 다다른 샤벨은 그 앞에 서더니 혀를 차기 시작했다·
“숨어있어도 여 앞에서는 무의미하단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얼른 나오렴·”
그럼에도 샤벨은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치 어린 아이를· 혹은 강아지를 달래는 듯한 모습으로·
“····”
―바스락!
잠시 후· 화단 너머 수풀에서 그 누군가 슬그머니 나타난다·
여기저기 피어난 꽃들과 굉장히 비슷한 분홍빛 머리색이 인상적이다·
“저 저기····”
“엿들으려고 했다면 더 가까이 있어야 함이 옳고· 그게 아니라면 더 먼 곳에 숨어야 맞다만· 이도 저도 아닌 이유가 무엇인지 여가 참 궁금하구나·”
“죄 죄송합니다아····”
잔뜩 겁을 먹은 표정· 그러나 해야 할 말은 하고야 하는·
그 모습에 샤벨이 턱을 만지작거리다 질문을 던진다·
“이름이 무엇이냐·”
“유 유리시아····”
“유리시아·”
그 이름을 잠시 되뇌던 샤벨이 손짓으로 유리시아를 부른다·
그녀가 몇 발자국 앞으로 떼자 다시금 손짓한다· 더 가까이 오라는 듯·
“뭔가 묘하다 싶었는데·”
샤벨의 손이 유리시아의 머리· 정확하게는 귀 쪽으로 향한다·
그러자 유리시아가 움찔 몸을 떨며 반사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평소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괜찮으니 안심하거라· 설마 여가 너를 해칠까· 혹은 조롱이라도 할까·”
잔뜩 경계하고 있는 강아지를 달래듯 샤벨이 그리 속삭인다·
잠시 후 유리시아의 떨림이 잦아들자 그녀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스륵
“역시· 여가 맞았구나·”
비록 자신의 것과는 무언가 좀 다르지만·
동시에 인간의 것도 아닌·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춘 귀·
“하프? 아니면 쿼터인 것이냐?”
“···어머니가 엘프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랬구나·”
제국 안에 이종족이 살던 것이 아주 오래 전부터 있던 일이다·
누구를 노예로 삼느니 누가 지배를 당했느니 일 따위 수백 년 전 이야기다·
다만· 그럼에도· 그 이종족의 숫자가 인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섞이고 싶어도 결국엔 다르다는 걸 인지하여 소극적이게 되어버리는·
“여는 너에 대해서 잘 모른다·”
“····”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다·”
거의 모든 엘프들이 자신들의 거주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극소수만이 이렇게 제국에 섞여 서서히 융화되어갈 뿐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그들의 아이들은 그들이 없다면 혼자가 된다는 것·
이 어린 것이· 인간인가 엘프인가· 많이도 헛갈릴 녀석이·
그래서 저도 모르는 사이 소심해지고 움츠러들고 만 영혼에게·
샤벨은 여러 부분의 선배로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외롭거든· 너 혼자인 것 같거든· 네 마음 속 별빛을 따라 걸으렴· 그러면 어느 순간 모든 걸 잊고서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는 너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란다·”
“별빛····”
“그래· 혹 그 별빛이 네 마음에 있느냐? 어두울 때 고개를 들어보면· 너를 이끌듯 안내하듯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있느냐?”
샤벨의 말을 듣는 순간 유리시아는 저도 모르게 데우스를 떠올렸다·
다음으로 그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되짚었다·
“나만의 힘으로 이 긴 어둠을 끝내고 싶어·”
“주변의 어느 누구도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지 않도록 할 거야·”
자신을 그리도 사랑해주던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난다·
갑작스러운 게이트와 거기서 생겨난 몬스터가 달려드는 장면이 그려진다·
“가렴· 어서· 유리·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는 거야·”
피를 흘리면서도· 고통에 쓰러지면서도·
당신의 숨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끝까지 어머니였다·
“···네· 있어요·”
혼자서 나아가는 그 별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동경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더는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커다란 두려움과 그 짙은 죄책감을 지워낼 수 있을 듯해서·
“허면 나아가렴·”
별빛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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