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9
“아무래도 그년이 뛰쳐나간 것 같아·”
갑작스레 자신을 찾은 노란 눈이 그리 말하자 남자는 잠시 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너무 의외의 소식이라서 그런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는데도 의심이 간다·
“확실한가?”
“아무렴 너 앞에서 ‘거짓’을 입에 담을까 싶은데·”
“···그도 그렇군·”
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리곤 잠깐 천장을 바라본다·
대충 떠오르는 단어들을 주워서 조합하곤 입 바깥으로 내뱉는다·
“돌겠군· 그 미친 것이 정말로 제 발로 나갔다고?”
“그렇다니까· 이미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년의 영역에 보이지가 않아·”
“데리고 다니던 ‘그거’ 는·”
“마찬가지로 자리에 없어· 이 정도면 확실한 거 아닌가?”
음· 다시 한번 침음을 흘린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둬· 신경 꺼· 알아서 즐기다 오겠지·”
“아무리 그래도 제멋대로 나간 거다· 무엇보다 아무 말도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기껏 쌓아둔 에너지가 또 소진되었다고·”
그 여자가 나가서 뒈지든 말든 노란 눈 입장에서는 전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오직 에너지· 향후 자신들을 위한 것·
그걸 모으기 위해서 꽤나 긴 시간을 짐승들만 보낸 게 아닌가·
비로소 충분한 양을 쌓아서 조금씩 사용하고 있는데·
먼저 보낸 자간이란 놈은 살아서 돌아오지도 못하고·
원래는 순서가 아니었던 그년까지 제멋대로 움직이고 말았다·
“이런 식이면 피곤해· 자칫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도 있어·”
“좋지 않은 선례라고 한다면·”
“뭐겠나· 순서를 기다리지도 않고 제멋대로 그냥 나가는 거· 만약 그년이 돌아왔을 때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처벌이 있지 않는다면 그럴 가능성이 더더욱 커진다·”
처벌· 그 단어에서 노란 눈의 악센트가 들어간다·
항상 저들 욕망에 충실한 것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이다·
그런 거라도 없다면 저들 꼴리는 대로 하다가 대국을 그르칠 것이다·
그래서 처벌은 유일하게 이곳에서 지켜지는 규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이 세상의 규칙 외에도 노란 눈은 무언가 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널 보니 오히려 잘됐다 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분명 말도 없이 제멋대로 문을 연 건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야· 이 보고를 들은 왕께서 정하시는 거지·”
“····”
“무엇보다 그년에 대한 감정이 꽤나 많이 섞인 거 같은데· 꼭 하등생물들처럼·”
정곡이라도 찔린 것인지 노란 눈이 움찔 하고 몸을 떤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돌아와선 입을 연다·
“웃기니까 그렇지· 언제는 좀 움직이라고 해도 그럴 생각조차 없던 년인데· 갑자기 이제 와선 규칙까지 어기고서 멋대로 행동하잖나· 그럴 거면 차라리 평소에도 열정을 보이던가·”
“그거야 그렇긴 하지·”
남자가 수긍하자 노란 눈은 더더욱 성토를 쏟아낸다·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그년은 너무 게을러· 나태가 원래 운명이라고 하지만 이 도를 지나쳤다고· 이제껏 우리가 짐승들 키워서 쏟아 부을 때 정작 그년은 한 게 없다고·”
“····”
“그러더니 이제 와서 기껏 모은 에너지를 멋대로 사용해? 최소한 말이라도 하고 갔다면 나도 이 정도로 화를 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음· 사이가 적당히 안 좋은 줄 알았더니 그냥 최악이었군·
왕이여· 이런 것들을 나더러 어떻게 감당하라고 던져준 거란 말이야·
빌어먹을· 나는 전사이지 보모가 아니라고· 미쳐버리겠군·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누르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연다·
“일단 말이야· 나도 그년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야· 하지만 게으른 걸 무작정 뭐라 할 수는 없지· 너도 알 텐데? 그 게으름이야말로 오히려 우리에겐 아주 편안한 부분인 걸·”
“···부정할 수는 없겠군·”
“그렇지· 오히려 그년의 나태는 일종의 제약이야· 나는 솔직히 그년이 근면하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그러자 노란 눈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내 ‘빌어먹을·’ 이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왜 그가 욕을 하는지는 잘 알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본인도 아니다 싶었겠지·
“그 여자가 눈깔이라도 돌아가면 말리기가 정말 귀찮아져· 아니· 말이 좋아서 귀찮다 뭐다 하는 거지 좀 더 생각해보면 귀찮은 수준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정도야·”
“····”
“네가 말릴 건가? 아니면 다른 놈들이 그럴까? 설마 나더러 하는 건 아니겠지? 이 정도 일하고 있는데 나더러 하라고 하면 그게 누구든 모가지를 꺾어버릴 거다·”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직도 그 여자가 제 도끼를 들고 춤을 추던 과거가 눈에 선하다·
정신줄 놓고 그럴 때마다 주변이 어떻게 초토화되었는지 떠올리고 싶지가 않다·
이런 말을 하기가 좀 그렇지만 뭐라고 할까· 꺼려진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해보자고· 우리 중 완력으로는 누가 최고이지?”
“시커먼 짐승 있잖아·”
“정말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망설임이 느껴지는데?”
“···제기랄· 그래· 알겠어· 그 망할 년이지· 그년이 완력으로는 최고지· 그걸 게으름과 나태로 전부 가리고 있어서 문제지만·”
사실 노란 눈이 그년· 아스타로트를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부딪치면 기술이고 속임수고 뭐고 그냥 힘에서 그냥 으깨지니까·
무식하게 힘만 센 것이 또 더럽게 게을러서 속을 뒤집으니까·
힘보다는 다른 모든 것을 응용하여 승리를 보기 좋아하는·
그러면서 어떻게든 상대를 가지고 노는 수준으로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노란 눈의 남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상극 중의 상극이다·
“돌아오면 한 소리 해줘· 그 정도는 나도 지원사격 해주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겨우 진정한 노란 눈이 가보겠다며 검은 안개와 함께 사라진다·
‘아무튼 하루라도 바람 잘 날이 없군· 것보다 자간을 꺾은 하등생물도 참 불쌍해· 다른 놈을 먼저 보냈다면 어찌저찌 저항이라도 했을 텐데· 그것조차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라고 생각하던 남자는 문득 ‘잠깐·’ 하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년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
―콰앙! 쾅!
굉음이 한 번 울려 퍼질 때마다 세상이 뒤흔들린다·
“히히히히! 뭐해? 얼른 더 해보라니까?!”
“····”
아스타로트의 손에 들린 도끼가 점점 더 크기를 불려간다·
그런데 또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다루고 있다·
단순히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절묘한 기술도 섞여있다·
허면 무게감이 없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태산과 같다·
한 번 한 번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데우스는 팔이 시큰거림을 느꼈다·
보통 무게감이 아니다· 저 도끼 하나의 질량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자간 놈이 결국 패한 이유가 이거였어!”
온몸에 두르고 있던 나태를 이번만큼은 전부 벗어던진 채·
아스타로트는 예술적인 손놀림으로 도끼를 반 바퀴 돌린 후 데우스를 강타했다·
‘기교도 고찰도 생각도 없어· 그냥 힘이구나!’
자신들의 세상에서 아스타로트 본인은 완력으로 이름이 난 쪽이다·
그래서 본인과 비슷한 부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허나 오직 그것에만 기대어서 싸움을 하고 승부를 보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그걸 바탕으로 삼아 더 많은 수와 더 많은 기술을 고안한다·
물론 평소에는 본래 운명대로 제 영역에 처박혀 시간을 보낼 따름이다·
그것이 제약이자 동시에 이 힘의 원천이니 딱히 문제될 것도 없다·
이미 충분한 힘을 지녔으니 게으름 정도는 흠이 될 수 없을 테니!
―콰앙! 쾅!
도끼가 휘둘러질 때마다 붉은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진다·
저 하등생물은 모르겠지만 이제 준비가 거의 다 끝났다·
잠깐의 유흥거리는 되었으나 딱 거기까지가 전부였던 놈·
그러니 이 정도는 해주어도 딱히 억울해하진 않으리라·
“읏챠·”
일부러 거리를 벌려준 후 아스타로트가 상대를 응시한다·
마지막으로 가지고 놀기 전 일단 상태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
“····”
데우스는 제 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스타로트는 실소를 내뱉었다·
‘거 참· 튼튼하기는 또 더럽게 튼튼하네· 그렇게 두들겼는데 상처 하나 없다고?’
어이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저렇게 험하게 굴렸는데도 망가지지 않는 장난감이라니·
이 정도면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한다· 그래 이게 맞다·
‘기껏 에너지까지 훔쳐서 왔는데 김빠져서 돌아가면 안 되잖아·’
킥킥 웃음을 터트린 아스타로트가 입을 연다·
“대단하네· 나팔· 하등생물 주제에 그런 무지막지한 힘이라니·”
“····”
“물론 기교도 고찰도 생각도 없는 완력은 그냥 병신이지만 말이야·”
이제부터 잘잘못을 말해주려는데 데우스가 그녀의 말을 자르고 나선다·
“그래서 어쩌라고·”
“응?”
“굳이 기교니 고찰이니 생각이니· 힘을 논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나?”
저게 갑자기 뭐라는 거지? 그만큼 본인 힘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래봤자 어쩌지? 그 힘도 이제는 우위에 있을 수가 없을 텐데?
이거 아무래도 저 하등생물에게 슬슬 본인의 처지를 알려줘야 할 듯싶다·
“네가 강하다고 생각하나 본데· 음· 그래· 강하긴 하지? 그런데 그 말을 더 할 수 있겠어?”
―스스스스
도끼에서 피어오르던 붉은 기운이 아스타로트에게로 흘러들어간다·
이제껏 전투로 쌓인 모든 열기가 그녀의 신체 곳곳에 흐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내 이름 그대로 ‘힘’ 이 되어 야성을 더욱 일깨운다·
“아까 전이랑 이제부터의 나는 아예 다를 거라서·”
“····”
“이제 몸이 풀렸다고 해야 하나?”
“····”
음· 너무 놀라서 저러나? 아니면 당황이라도 했나?
잠시 눈을 가늘게 뜬 아스타로트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나 혼자 떠드니?”
“아· 혹시 대사 다 끝난 거?”
“···뭐?”
“기다린 건데· 그래도 대사 칠 때랑 변신할 때는 기다려주는 게 매너라 생각하는 부류라서·”
“···??”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그리고 하나 더·”
대충 파악도 했겠다· 네페르티도 최대한 멀리 이동했겠다·
정신을 잃은 기사들과의 거리도 충분히 벌려두었겠다·
더는 신경 쓸 게 없어졌으니 이제부터 제대로 해보자고·
코미디 장르라 생각해서 너무 마음을 편하게 하고 있었거든·
솔직히 그렇잖아· 판타지에 제육볶음과 소주와 막걸리와 파전이 있는·
신분제가 있음에도 그것으로 인해 숨이 막히지 않는 그런 세상이라서·
그런데 이렇게 보니 아무래도 그게 전부가 아닌 거 같다·
정색하고· 제대로·
마치 아포칼립스물인 것처럼·
“네가 강해졌다고 해서 내가 약해진 건 아니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품에 대해 걱정을 해주시는 댓글들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독자님들···!!
부족한 부분들은 이후 빠르게 채워가고 반복되는 패턴들은 향후 반드시 줄이겠습니다!
연참으로 부족한 글을 생각해주시는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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