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0
플로아가 하고 있는 모종의 오해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제니얼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해명할 여력도 시간도 없었으니까·
“그래· 명심하도록 하마·”
그리 답한 제니얼이 손에 들고 있던 일지를 펼쳤다· 고요하게 내려앉은 눈이 일지의 첫 페이지를 읽어내려간다·
[체류 7일차]
『체류 기간이 생각 이상으로 길어질 것 같았기에 7일차인 오늘부터 일지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자면 이 마을에 퍼진 전염병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자연 발생으로 보기는 어렵다·
높은 확률로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아래는 일주일간 이 마을에서 체류하며 알아낸 정보들이다·
1· 특정 집단(개인으로 보기에는 그 범위가 광범위하고 체계적이었으므로)이 의도적으로 마을과 그 인근의 공기에 마기를 깃들게 한 것을 확인하였다·
2· 공기에 깃든 마기는 혈마법에 의해 이차적으로 변형되었다· 변형된 마기가 공기에 섞여 기관지를 통해 흡입되는 것이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3· 마을에 돌고 있는 전염병의 증상은 가지각색이나 크게는 정신 착란과 식욕의 증폭으로 이어진다·
4· 마기에 오래 노출된 사람일수록 눈에 탁기가 서린다· 눈자위가 검게 물들수록 전염병의 증상이 심각해지나 회백색의 경우 이성을 유지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가지지는 않는다·
상기의 내용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며 동료 의사들과의 교차 검증을 통해 도출한 결과라는 것을 명시한다·』
반듯한 필기체를 보니 어머니가 직접 쓴 글임이 확실해진다· 낮게 숨을 내쉰 제니얼은 페이지를 뒤로 넘겼다·
[체류 13일차]
『환자들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반적인 병이 아닌 이상 나와 동료 의사들의 지식으로는 쉬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드레이크의 뿌리 분말과 잘게 다진 활명초의 잎을 섞어 환자에게 먹이면 전염병이 진행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또한 환자들의 상태를 살펴본 결과 몇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1· 환자들의 하복부에서 팽만 현상이 일어난 것을 확인하였다·
2· 병에 시달린지 일 년 내외의 환자들은 압통을 느끼지 않았다· 피부의 감각이 일정 부분 마모된 것이다·
3· 하지의 소견에 주의한 결과 발의 종부(발뒤꿈치)가 검게 썩어들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는 무릎의 전슬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정신적인 증상과 육체적인 증상을 모두 확인하였으니 이제 제도로 돌아가 의료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다·
나는 이곳에 더 남아있어도 상관은 없지만 세릴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서두르는 게 좋아보인다·』
제니얼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어머니는 비교적 일찍 마을을 떠나려고 하였다· 그것이 의아했던 제니얼이 페이지를 넘겼다·
[체류 14일차]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성국에서 파견을 나온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마을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들은 마을이 이단의 신을 섬겼기에 천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내뱉고 있었는데 확신에 찬 눈빛을 보니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더해 전염병이 밖으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며 마을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인원들을 가로막고 통제하고 있었다·
그건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믿기지가 않는다· 제아무리 성국의 사제와 성기사들이라고 해도 어찌 제국의 땅에서 이리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말인가?
분하였으나 외부에 연락할 수단이 없었기에 나는 다시 마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동료 의사들 또한 마을 안에 고립되고 말았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대체 왜? 목적이 무엇인가? 정말 전염병의 확산을 막으려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진정하자· 우선 외부에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국의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마을을 포위하였다고? 설마 성국에서 이 마을의 전염병에 관여한 것인가· 눈살을 찌푸린 제니얼이 페이지를 넘겼다·
[체류 27일차]
『그간 경황이 없어서 일지를 적지 못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외부에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마을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었으며 마을 내부에는 외부와 연락할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남편이 이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하지만 내가 타지에 진료를 나갈 때 두 달 내지 세 달 정도를 체류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 사태에 대해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덕분에 별 수 없이 외부의 구조를 기다리며 우선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기로 하였다·
환자들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기에 계속해서 걱정이 늘어난다·
부디 신께서 우릴 도우시길·』
호흡이 점점 무거워진다·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려던 제니얼은 멈칫하고 말았다· 이후의 페이지가 모두 잉크에 젖어 읽을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철두철미한 어머니가 자신이 작성하던 일지에 잉크를 쏟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설마···’
제니얼이 고개를 돌려 방 안에 놓인 침대와 벽면을 살펴보았다· 침대보가 찢어져 있었으며 벽면의 이곳저곳에 피가 묻어 굳은 얼룩이 보였다·
혹여 어머니는 이곳에서 환자를 진료하다가 언데드가 되어버린 환자와 몸싸움을 벌인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잉크가 담긴 병을 넘어트린 거라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어머니는 환자를 제압하는 것에 성공했겠으나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 상처로 인해 자신 또한 언데드가 될 거라고 판단한 어머니는 한 가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플로아· 아무래도 어머니는 네게 거짓말을 한 것 같구나·”
“거짓말이라니요?”
탁· 일지를 덮은 제니얼이 플로아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치료제를 만들어 이곳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치료제를 만들 수가 없었던 것이지· 자신은 이미 언데드가 되어가는 와중이었으니까·”
“마님이··· 병에 감염되었다는 건가요?”
“그래· 그것도 환자에게 직접 물려서 병이 빠르게 악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을 떠난 것이다· 너희들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가 병에 걸려 언데드가 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그건 모두의 희망을 짓밟는 짓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셨겠지·”
하여 어머니는 치료제를 개발하여 오겠다며 마을을 떠났다· 남은 이들이 거짓된 희망 속에서라도 삶을 이어가기를 바랐을 테니까·
거기서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어머니가 병에 감염된 상태에서 성국의 포위망을 뚫고 저택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러 추론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성국 내부의 고위 관계자가 일부러 어머니를 보내주었을 경우였다·
‘성국의 고위 관계자란···’
성녀 벨로레스·
‘그 여자밖에 없다·’
이 마을에 일어난 전염병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고위 성직자는 제니얼이 알기로 성녀 벨로레스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벨로레스가 마을의 전염병을 주도하였나? 그건 아닐 것이다· 벨로레스가 모든 일의 흑막이라면 이걸 숨기려고 했지 들키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설마 성녀와 대척점에 있는 교황이 이 모든 것을 주도하였나· 대체 왜? 골이 아파오는 것을 느낀 제니얼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자 플로아가 가까이 다가온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잠시 안 좋은 생각을 했을 뿐이니까· 그보다 어서 이곳을 나가야 할 것 같구나· 지금 당장 성녀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으니·”
호흡을 진정시킨 제니얼이 플로아를 돌아보았다·
“너 또한 나와 함께 나갈 준비를 하도록 해라·”
플로아가 보기 드물게 당황한다·
“저도 말입니까?”
“그래· 어제 말하였지 않은가· 나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이곳의 병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이다· 너는 감염도가 비교적 높지 않으니 제도로 돌아가 시간을 들이면 내가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인가요? 그럼 아이들도-”
“그건 불가능하다·”
제니얼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묘지에 아이들을 직접 묻었던 너라면 알 수 있을 텐데· 마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아이들의 감염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너라면 몰라도 아이들은 치료할 수 없다·”
“···그럼 아이들은 이곳에 남겨지는 겁니까?”
“그래· 안타까운 일이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플로아의 안색이 어둡게 물든다· 한동안 침묵하던 플로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문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
플로아가 짐을 챙겨 오겠다고 하였기에 집 밖으로 나온 제니얼은 루이넬과 함께 플로아를 기다렸다·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 플로아는 아이들과 함께 머무는 집에서 나와 제니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제니얼은 의아함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짐을 챙겨 나오겠다고 하였으면서 플로아의 두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련님·”
가까이 다가온 플로아가 품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든다·
“가능하시다면 이걸 가주님에게 전해주시겠습니까·”
편지를 전해달라는 말이 플로아의 결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제니얼은 편지를 받지 않은 채 플로아의 두 눈을 응시하였다·
“이곳에 남는다면 너 또한 언데드가 되고 말 것이다· 어차피 병으로 죽을 아이들을 위해 네 목숨을 버리겠다는 것인가·”
플로아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비합리적이며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플로아에게 있어서 마을의 아이들은 포기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있어 저는 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저 또한 아이들을 마음으로 낳은 자식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곳에 남아 아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미련한 짓이다·”
“알고 있습니다·”
저 굳은 결심을 어찌 되돌릴 수 있을까· 플로아를 설득할 수 없음을 느낀 제니얼은 망설임 끝에 편지를 받아들었다·
편지를 받았으며 플로아의 마음도 알았으니 더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 발길을 돌려 마을을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데 쉽사리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플로아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마음이 발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미련한 것은 서로가 마찬가지라고 느낀 제니얼이 쓰게 웃었다·
“플로아·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완벽한 치료제를 개발하도록 하마· 그때가 되면 언데드가 되어버린 모든 사람들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니얼의 말을 들은 플로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돈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제니얼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긴다· 둘의 눈치를 보던 루이넬 또한 작별 인사를 건네고는 제니얼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제니얼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플로아 또한 몸을 돌린다· 해가 떠오르고 있으니 슬슬 아이들에게 줄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하는 것이다·
죽음이 드리운 이 일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으나 플로아는 몸이 허락하는 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마님과의 마지막 약속이자 플로아의 신념이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고··· 또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감히 변명하자면 더위 때문인지 집중이 잘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너른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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