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4
류승훈과 이현성의 대련.
이유나는 대한 아카데미 소속임에도 속으로 이현성을 응원했다.
그 이유는 이유나 본인도 몰랐다.
마치 자신의 감정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이 대체 왜 이런 거지? 요즘에 자꾸 머릿속에 현성이가 떠오르고 가슴이 뛰질 않나 예전에는 그 찌질한 김수한을 좋아하질 않나…. 이상해 정말.’
혼란스러웠다.
이현성에 대한 감정은 그렇다 쳐도.
김수한을 좋다고 따라다닌 과거의 자신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을 지켜주는 남자가 이상형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난 오히려 어렸을 적에 현성이한테 도움받고 나도 다른 사람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카데미에 입학하고나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번 자신을 도와주는 김수한에게 자연스레 호감을 품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뇌를 당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갑자기 내가 미쳤었나? 왜 그때는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 없던 이상형이 느닷없이 생겼는데 마치 처음부터 그게 내 이상형이었다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고…. ’
김수한에 대한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진 후에야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 이상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은 머릿속에 낀 안개가 걷힌 느낌이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다시금 머릿속에 안개가 낀 느낌이 들었다.
이후에는 이현성에 대한 호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단지 마나 물약을 건네받았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대체 뭔데….’
이유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의 감정도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물론 이현성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호감이 있었기에 크게 이상할 건 없지만 이미 김수한을 좋아했던 사례가 있었으니까.
‘김수한에 대한 감정은 우릴 버리고 도망쳤을 때 확 바뀌었지. 그것도 이상해. 사람 마음이 어떻게 한순간에 바뀌어?’
이현성이라면 이 변화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
그도 그럴게.
이현성도 어느 순간부터 망나니가 되고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 이질적인 감정을 억제할 해결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하면 염치없으니 관계 먼저 회복하려고 했는데…. 설마 여자친구가 생겼을 줄이야.’
이유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한 이현성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고 질투를 느끼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고 우스웠다.
‘이것도 전부 거짓 감정이겠지.’
쓴웃음을 지은 이유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승훈이 추하게 패배하고.
이제는 자신이 출전할 차례였다.
‘…만약 이 대련에서 일부러 져주면 조금은 호감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일부러 패배한다면 오히려 이현성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겠다 싶어 관두었다.
‘에휴 됐다. 적당히 싸우자 적당히.’
이기긴 할 거지만 압도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기로 했다.
너무 손쉽게 이겨버리면 이현성의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니까.
봐주는 티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예정이었다.
‘마물에다가 언데드면 고전하는 척하기도 힘들겠네.’
그런 생각도 잠시.
대련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현성은 기다렸다는 듯 마물을 하나 더 소환했다.
대련장의 절반을 메울 정도의 거대한 마물이었다.
물론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마물이 5성 마물 히드라라는 점이었다.
‘…뭐 뭐야? 5성을 두 마리나 소환할 수 있다고?’
이유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전력을 다해 진심으로 싸우기로.
***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허억 헉….”
이유나는 이현성의 솜털조차도 건드릴 수 없었다.
소환사와 대결할 때는 소환수보단 소환사를 노리는 게 정석.
그 정석적인 방법대로 이현성을 노리려고 했지만 좀비 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타있는 이현성에게 닿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현성이를 잡으려면 일단 나도 날아야 할 것 같은데.’
이현성은 좀비 드래곤에 올라탄 채.
하늘 높은 곳에서 팔짱을 끼고 대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빛의 날개 스킬을 사용하면 히드라의 공격을 피하기 버거워져.’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부릅뜨고 히드라를 노려보는 이유나.
방금 아홉 번째 머리를 절단시켰지만 그 머리는 단 몇 초 만에 재생되고 있었다.
이유나는 스킬로 만든 성검을 바로잡았다.
“머리를 한 번에 전부 베어버리면….”
그때 히드라의 머리 위에서 불과 얼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읏!”
이유나는 빠르게 빛의 보호막을 형성했다.
‘대체 몇 마리나 소환하는 거야?!’
그리고 히드라의 머리 위를 짧게 살폈다.
여덟 개의 머리 위에는 이현성이 소환한 마물들이 올라타 있었다.
방금 불과 얼음을 쏘아댄 것은 불꽃 난쟁이와 얼음 난쟁이로 추측됐다.
─…왜 내 머리 위에는 아무도 없지?
막 재생된 아홉 번째 머리가 불평을 늘어놓자 이현성이 도감에서 마물을 하나 더 소환했다.
─드디어 제 차례입니까?
“그냥 히드라 머리 위에서 공격만 해. 근접전은 우리가 불리하니까.”
도감에서 튀어나온 철밥통은 히드라의 아홉 번째 머리 위에 착지한 뒤 곧장 이유나에게 저격총을 겨눴다.
“밥통아! 머리는 쏘지 마! 완전히 터뜨리면 치유가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명령 입력 확인. 사살 금지. 주인님께서는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것을 요망.
타앙-!
철밥통이 쏜 탄환이 이유나의 다리에 작렬했다.
이유나는 초인적인 속도로 반응해 자신의 다리에 빛의 보호막을 집중시켰다.
“크 큰일 날 뻔했네.”
가까스로 방어에 성공한 이유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것을 본 철밥통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저게 인간 맞습니까? 반응속도가 뭐 저리 빠릅니까?
빛의 심판자는 마물이라는 종족 한정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성검’뿐만이 아니라 마물에게 받는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빛의 보호막’도 생성할 수 있었다.
마물을 상대할 때만큼은.
공격이나 방어 그 어느 부분에서든 모자람이 없는 직업이었다.
물론 성검과 빛의 보호막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기는 했다.
─확실히 빛의 심판자는 저희한테 위험한 직업이 맞나 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그냥 머리만 집중적으로 노리겠습니다.
철밥통은 다시 이유나에게 저격총을 겨눴다.
이번에는 머리였다.
그러나 이미 저격수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이유나는 모두 여유롭게 막아냈다.
물론 반격은 하지 못했다.
공격을 퍼붓고 있는 마물은 철밥통만이 아니었으니까.
‘…소환수가 너무 많아서 까다로워.’
이유나는 접근하는 것을 포기한 뒤 히드라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를 한 번에 베려면 벨 수 있긴 하지만….’
빛을 최대로 출력해 거대한 성검을 만들어내면 히드라의 모든 머리를 단숨에 썰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히드라만 상대하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불가능한 전략이었다.
‘방어에도 전념해야 하니까 계속해서 성검하고 보호막을 체인지해줘야 돼. 성검을 키울 시간 따윈 없어.’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현성에게 닿기는커녕 히드라조차 넘어설 수 없었다.
‘…이런데 봐주기는 무슨.’
깔보았던 건 아니지만.
이현성을 내심 낮춰보고 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지게 생겼네. 일단 뭐라도 해야….’
푸욱.
찰나였다.
철밥통의 저격을 막아내기 위해 머리 부분에 빛의 보호막을 집중시키는 그 짧은 시간.
길고 날카로운 발톱이 이유나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크읏…. 근처에서 마물은 감지되지 않았는데 대체 언제 접근을…?”
─내 속도는 눈으로 좇지 못하지 요.
웨어울프 킹이 입꼬리를 올리며 이유나를 조롱했다.
이유나는 보호막의 빛을 곧바로 성검으로 치환해 휘둘렀다.
─커헉!
“…늑대주제.”
웨어울프 킹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아윌비백 요….
그리고 몸전체가 검은빛이 되어 이현성의 도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복부에 뚫린 구멍을 손바닥으로 지혈하던 이유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봤다.
빛의 보호막을 제대로 두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 히드라는 드디어 최대 스킬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지옥불로 이루어진 메테오.
‘인페르노 메테오’ 스킬이었다.
─받!
─아!
─라!
─인!
─페!
─르!
─노!
─메테오!
─…얍.
이유나는 자신을 향해 낙하하고 있는 거대한 불구덩이를 보며 반쯤 체념했다.
“하하…. 이번에는 완벽하게 무효화시키기는 글렀네.”
일단 빛의 보호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긴 했지만 현재 몸상태로는 저 메테오를 전부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이 들지 않았다.
“…아티팩트가 있으니까 죽지는 않겠지. 몸이 다 타버리긴 하려나?”
이유나가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메테오가 대련장을 강타하며 그녀를 집어삼켰다.
***
빛의 심판자와 마물 소환사.
직업 간 상성 차이는 명백했다.
마물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빛의 심판자는 거의 무적이라 불리니까.
특히 이유나는 직업 적성 또한 높았다.
역대 빛의 심판자 중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도 종종 나올 정도였다.
대인전에서 힘을 못쓰는 직업이기는 하지만 마물 소환사인 이현성에게만큼은 직업의 힘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유나가 패배했다.
대련에서 우위를 점하기는커녕 마물들의 공격을 막는데만 급급했다. 누가 봐도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그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한 여자는 손톱을 깨물며 불안에 떨었다.
‘뭐냐고 저게…. 저건 대련의 범주를 넘어섰잖아….’
랭킹 4등 지혜지.
그녀는 이제 자신의 차례가 오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현성하고 싸우는 게 특급 던전에 단신으로 들어가는 거하고 뭐가 달라…?’
대련장의 땅은 싱크홀이라도 생긴 것처럼 움푹 파여 있었고 이유나는 메테오를 맞고 온몸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지혜지는 냉정하게 생각해 봤다.
아카데미에서 은밀하게 지급해 준 약은 이미 복용한 상태지만 이현성은 도핑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마물 특화 직업을 가진 이유나 조차도 저렇게 무기력하게 당했으니까.
‘미치겠네. 어떻게 하지?’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약 따위는 없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약을 100알 정도는 먹어야 싸워볼 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저건 절대 못 이겨.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지혜지는 결론을 내렸다.
***
세 번째 출전 학생인 지혜지가 대련장에 들어서지 않자 관객석이 술렁였다.
그리고 그때.
아카데미 교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혜지 학생이 기절했습니다!”
“뭐? 갑자기 왜?!”
“모르겠습니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 실수로 세게 부딪힌 것 같습니다!”
지혜지는 벽에 머리를 박고 기절하는 것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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