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보고도 놀라웠다.
ㅡ키릭…!
ㅡ키 리릭….
진화한 깨비는 탈 2성급 마물이었다.
정확히는 2.5성이긴 하지만 사소한 건 넘어가고.
‘난쟁이들이 상대가 안 되네.’
깨비의 무력은 압도적이었다.
1성과 2성의 차이가 크긴 하다지만 단신으로 저 많은 난쟁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의 격차는 아니다.
그런데 깨비는 일반 2성급들과 달랐다.
─키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내 야구 배트를 낚아채가더니 양손에 배트를 쥐고 적진에 뛰어들어 무쌍을 찍고 있는 상황.
부웅! 배트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풍선 터지듯 난쟁이들의 머리가 우후죽순 터져나간다.
전투가 아닌 사냥.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두더지 잡기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다.
덤벼들던 난쟁이들도 이제는 수준의 차이를 깨닫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특이 개체인가?’
두 가지 루트 중.
난쟁이 대장은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녀석이다.
5급 던전의 보스 또는 4급 던전에서 난쟁이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반면에 일각 난쟁이는 정보가 없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목격담 하나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소설에서도 따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
진화로만 탄생할 수 있는 마물이라는 것.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세운 가설일 뿐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던전에서 등장하는 마물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확실한 것은.
─키이!
삽시간에 나머지 난쟁이들을 학살할 만큼 강하다는 것.
3성급 마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역시 우리 깨비! 믿고 있었다고!”
─키이이!
믿고 있지는 않았다.
내 손에서 배트를 낚아채고 난쟁이들한테 돌진했을 때 저걸 말려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
‘말릴 틈도 없긴 했지만….’
그 사실은 묻어두기로 했다.
자신의 소환수를 믿지 못했다는 걸 알려봤자 득 될 건 없으니까.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칭찬만이 답이다.
“깨비는 고생했으니까 쉬고 있어. 마석은 나 혼자 담을게.”
양심상 그리 말했는데.
어찌나 착한지 쉬지도 않고 마석 줍는 걸 도와준다.
이런 충성스러운 소환수를 5년이나 방치했다니.
전 몸 주인은 뒤져도 싸다.
둘이 사이좋게 마석을 줍던 중.
─키이?
깨비가 파란색 보석을 들고 쫄쫄 다가왔다.
오?
“이게 여기서 뜨네.”
─키이이?
깨비한테 보석을 건네받았다.
영롱한 푸른빛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이건 각성석이라는 거야. 복용하면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보석.”
파란색 각성석.
일반 등급의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보석이다.
시세는 보통 100만 원 정도.
좋은 직업이면 몇 배가 뛸 수도 있다.
본래는 측정 도구로 감정해야 하지만.
상태창을 보유한 나는 걸어 다니는 측정 도구.
나를 제외하고 생물만 아니면 정보를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
◎일반 각성석
─응원가
최하급으로 분류되는 직업.
“뭐…. 꽝이긴 하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야?”
무려 100만 원이다.
100만 원이면 1성 마석이 100개.
거진 난쟁이를 125마리를 잡아야 얻을 수 있는 돈이다.
이 정도면 외쳐도 된다.
심봤다!
물론 속으로만.
“우리 깨비가 아주 복덩이네.”
─키이!
깨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준 뒤.
각성석을 배낭에 담았다.
─키이….
녀석이 아쉽다는 듯이 쳐다본다.
혹시 이거 복용하고 싶니?
참고로 깨비도 각성석 복용이 가능하다.
인간들처럼 직업 코스트를 보유 중이니까.
하지만.
“미안. 이 각성석은 팔 거라서 못 줘.”
이건 줄 수 없다.
─키이이….
시무룩해진 모습이 퍽 귀여웠다.
실망한 것 같아서 말을 덧붙였다.
“더 좋은 걸로 준비해뒀으니까 걱정 마.”
─키이?
내 첫 소환수인 깨비한테 고작 일반 직업을 배우게 할 수는 없지.
깨비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우선 마석부터 담고 나가자. 기숙사로 돌아가면 아주 끝내주는 걸로 하나 줄게.”
마침 깨비한테 찰떡인 각성석이 하나 있다.
오늘 깨비의 현란한 무쌍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아카데미 입학생에게 한 개씩 지급되었던 전설 각성석을 깨비한테 먹이자고.
미래를 위한 투자다.
투자한 것 이상의 가치가 깨비한테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네 옷도 좀 사가야겠네.”
적나라하게 드러난 가슴도 좀 가릴 겸.
***
“5급 탐색꾼 이현성 씨. 아카데미 1학년 재학 중. 던전 발견 경위는 먹을 것을 찾으려고 쓰레기 더미를 뒤적거리다… 가 맞습니까?”
“예. 배고팠거든요.”
던전을 나온 후.
곧장 협회에 신고를 하니 관계자들이 여럿 몰려왔다.
발견 경위는 대충 둘러댔다.
이런 구석진 골목까지 온 이유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거든.
다행히도 못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대신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뒤쪽에서 나를 부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현성?”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비 색상을 머금은 포니테일 머리.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깔끔하게 배치된 이목구비.
순수 한국인이라고 믿기 어려운 서구식 미형의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
앙칼진 고양이상인 건 덤이다.
‘쟤는 분명….’
그녀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나같이 검은 머리 한국인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 뿌리까지 촘촘히 물들어있는 자연스러운 붉은 머리칼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염색한 사람이야 소수 있겠지.
그녀의 머리는 염색 따위가 아니다.
엄연히 자연적인 색상이다.
속성이 담긴 전설급 직업 보유자는 머리색이 그 속성을 따라가니까.
희귀한 머리 색상과 특유의 개성적인 외모.
이건 못 알아볼 수가 없다.
“백소아?”
백소아.
대한 아카데미 1학년.
소설의 히로인은 아니다.
히로인의 친구 포지션인 여자다.
서브 히로인이라 하기에도 조금 애매했다.
주인공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니.
그보다 백소아가 왜 여기서 나타나?
“네가 왜 여깄어?”
“나? 협회 일 좀 배울 겸 따라왔는데? 너야말로 왜 여깄는데?”
맞다. 백소아는 협회장의 딸이었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뭐….”
백소아의 역질문에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소유권 임시 등록을 마친 협회 관계자가 내게 서류를 건네는 모습을 백소아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이 던전 네가 발견한 거였어? 와 운이 좋았네. 로또 맞은 거나 다름없잖아.”
“…그렇지.”
백소아는 거리낌 없이 내 옆에 붙어 서류를 확인했다.
너무 가깝지 않나?
나하고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야.
그것보다 대화를 해본 적이 있긴 하던가?
매일 기억 계승을 위해 꾸는 꿈을 되짚어봤다.
빙의 전 읽었던 소설 속 이야기도 포함해서.
입학 3개월 차.
지금 쯤에 이현성과 백소아의 접점은… 아!
떠올랐다.
빙의 전 이현성이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다녔던 과거.
거기에는 백소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너. 내 여자가 되어라.]
멘트 뭔데?
정신 나간 놈인가?
왜 내가 이런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하는 거냐고….
백소아뿐 아니라.
메인 히로인 삼인방 중 두 명에게도 이 짓거리를 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수치심이 밀물처럼 흘러들어왔다.
아직 나머지 한 명한테는 고백하기 전이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전에 내가 빙의했으니까.
고개를 못 들겠네.
빨리 절차만 마치고 돌아가야지.
“아참. 이현성 씨. 탐색도 어느 정도 마치셨다고 하셨죠? 혹시 보스룸까지 가신 겁니까?”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협회 관계자가 물었다.
“아뇨. 깊게는 안 들어갔어요.”
“원하신다면 저희 쪽에서 보스룸까지 탐색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괜찮아요. 직접 끝까지 탐색할 생각이라서요.”
“…그러시다면야. 알겠습니다. 5급 던전이니까 문제는 없겠죠. 대신 주기적으로 던전 청소는 꾸준히 해주시고 보고도 올려주셔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전적으로 소유주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협회 관계자의 말대로 꾸준히 던전 내 마물을 토벌하는 게 상식이다.
개인 소유이니만큼 토벌 관련 보고도 협회에 올려야 하고.
조금 얽매이는 감이 있지만.
협회 측에서 다른 탐색꾼들이 접근할 수 없게 던전 포탈 앞에 검문 아티팩트를 설치해주는데 보고를 올리는 것쯤이야 귀찮은 일도 아니다.
오늘 토벌한 마물의 종류 및 숫자는 정식으로 소유권이 등록되기 전까지만 보고하면 된다. 집 가서 문자로 보내면 되겠지.
“뭐야. 탐색도 진행했다고? 이현성 네가?”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었는지.
백소아가 우리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발견한 김에 조금. 깊게는 안 들어갔어.”
“의외네. 맨날 술만 마시고 다니고 아무 노력도 안 하는 애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실행력 있다?”
그 말에 멋쩍게 웃기만 했다.
어째선지 부정은 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맞지만 내가 아니야….
뭐라 변명할 수도 없고.
그런 식으로 이미지가 낙인찍혔다면 천천히 개변해나가면 되겠지. 나는 이전의 이현성이 아니니까.
우선은 옷이나 사고 기숙사로 돌아가야겠다.
깨비한테 각성석도 먹여줘야 하거든.
“저는 이제 가봐도 되나요?”
“아 잠시만요.”
협회 관계자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뒤 초록색 지폐 세 장을 건넸다.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으면 탈 납니다. 우선은 이거로 뭐라도 사 먹으시고 던전 소유주가 되셨으니 앞으로는 돈으로 쪼들릴 일은 없을 겁니다.”
…아까 한 얘기를 신경 쓰고 있었나?
보기보다 착한 사람이네.
받기에는 양심이 찔려 거절하려 하자 이를 눈치챘는지 협회 관계자는 서둘러 내 손에 돈을 쥐어줬다.
이러면 다시 돌려주기도 뭐하네.
“아… 감사합니다.”
돈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협회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다.
그러지 마….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백소아도 놀란 듯 눈이 커다래졌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고…?”
이거 왠지 이상한 오해를 산 것 같은데.
발견 경위를 조금 제대로 둘러댈 걸 그랬다.
협회야 상관없다지만 같은 아카데미 학생한테 거지로 낙인찍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전 바빠서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오해를 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지.
앞으로 백소아하고는 엮일 일도 없을 텐데.
엮여도 좋을 건 없다.
백소아는 은근 다혈질이다.
성격도 불같고 입도 험한 편에 속한다.
저 살벌한 표정을 봐라.
방금까지 어디서 사람 하나 담그고 온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추측을 하게끔 만든다.
딱 일진녀의 표본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괜히 이유 없이 처맞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트라우마 도질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깨비의 정보 확인은 상태창이 아닌 마수 도감으로 확인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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