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
오거.
4성 마물.
단순 무력 면에서는 중급으로 책정해도 모자람이 없는 녀석이다.
ㅡ흐히힛! 먹는다!!!
하지만 오거의 지능은 인간으로 치면 다섯 살 배기 어린아이 수준.
심각한 지능 퇴화로 인해
욕망과 본능에 충실하며 이성적인 판단은 거의 못하는 녀석이기에 하급으로 분류되고 있는 마물이었다.
ㅡ남자부터 먹는다!
우스꽝스럽게 팔을 허우적거리며
초고도 비만의 몸뚱이를 이끌고 뒤뚱뒤뚱 접근해오고 있는 오거.
철밥통은 그런 오거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총구속도. 241m/s
─사격모드. 연발.
─발사속도. 분. 350발.
─유효 사거리. 1500m
─사격 개시. 발포합니다.
두! 두! 두! 두!
뚝뚝 끊기는 발포음과 함께
두꺼운 탄환이 오거의 머리와 몸을 끊임없이 직격했다.
한 발 한 발이 수류탄에 비견되는 파괴력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내구가 워낙 높아서일까.
오거는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우리를 향해 꿋꿋이 전진해왔다.
ㅡ우어어어! 아프다!
그렇다고 타격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얼굴 일부가 함몰되고
뒤룩뒤룩 찐 뱃살의 살점들이 너덜거리는 게 보였다.
오거의 재생력보다 철밥통의 화력이 더 우세한 것은 확실했다.
다만 녀석의 돌진을 저지하기에는 약간 모자랐을 뿐.
탄환이 전부 머리에만 명중하면 철밥통만으로도 오거를 토벌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움직이는 표적의 머리를 연속으로 맞춘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뭐 그래도 문제는 없다.
소환수는 철밥통만 있는 게 아니니까.
“밥통아. 일단 각도 좀 낮춰서 하반신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려.”
─명령 입력 확인.
철밥통에게 먼저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밥통이를 지원하기 위해
현재 소환되어 있는 소환수를 전부 활용하기로 했다.
“라임아. 깨비 발에 점액 좀 둘러줘. 최대한 끈적한 걸로.”
─스스.
우선 빅슬라임의 점액을 깨비의 다리에 코팅하고.
“차유라. 빙결 검 다섯 개만 만들어서 깨비한테 건네줘.”
“어?”
“그리고 오거가 오고 있는 방향으로 바닥 좀 전부 얼려주고.”
“…아 알았어.”
차유라의 빙결 검을 깨비에게 건넨 뒤.
오거와 우리 사이.
이어진 바닥을 전부 얼려 빙판을 생성했다.
ㅡ으어어!
다리에 집중되고 있는 총격.
느닷없이 생성된 빙판길.
이 두 개가 어우러져 오거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지막으로.
“깨비야.”
─키이!
“차유라한테 받은 검 전부 저 놈 팔다리에 찔러 넣어.”
─키이이!
발에 점액을 두른 깨비가 저돌적으로 빙판길을 내달리며 엎어져 있는 오거의 등 뒤로 올라타 팔과 다리에 빙결 검을 가차 없이 쑤셔 박았다. 차유라의 근력으로는 오거의 피부를 뚫지 못할 게 분명했기에 깨비에게 이 역할을 맡긴 것이다.
그렇게 오거는 바닥에 꼼짝없이 고정되었다.
“깨비야 일단 남은 검으로 머리 찍어볼래?”
─키이!
마지막 남은 빙결 검 하나.
깨비는 온 힘을 다해 오거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하지만….
─키이?
깨비의 근력으로도 오거의 머리는 뚫지 못했다.
오히려 빙결 검이 부서져버렸다.
‘…역시 머리는 안 되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오거의 머리 가죽 및 두개골은 다른 부위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질기고 튼튼하니까.
말 그대로 대가리만 내구력이 높다는 뜻이다.
“깨비야. 이제 물러서.”
─키이….
깨비는 힘이 빠진 듯.
터덜터덜 걸으며 되돌아왔다.
“너한테 실망 안 했으니까 시무룩해하지 마.”
─키이….
혹시나 해서 시도해봤을 뿐.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거가 하급 마물이라 해도
지능이 낮아서 그런 거지 신체 능력만큼은 중급으로 책정되는 마물이니까.
어차피 오거의 몸을 바닥에 고정시킨 것만으로도 작전은 성공이었다.
“밥통아. 이제 머리만 집중적으로 노릴 수 있지?”
─명령 이행. 대가리. 집중 사격.
팔다리가 포박된 오거를 향해.
밥통이는 사격을 개시했다.
두! 두! 두! 두!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오거의 머리를 직격하는 유탄.
ㅡ아파! 아 파! 아파…!
놈의 머리가 점점 짓뭉개지고
흰 두개골이 드러나며 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ㅡ…파.
2분쯤 흘렀을까.
흘러나오던 신음이 멎어 들고
들썩거리던 몸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생명 반응 없음. 제거 완료.
철밥통의 선언과 함께
오거의 저질스러운 삶이 끝을 맺었다.
‘…철밥통이 유능해서 그런가. 4성 마물 토벌도 간단하네.’
물론 방법이 좀 비겁하기는 했어도
생사를 건 싸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당연하니까.
‘나도 많이 바뀌기는 했네….’
전생에서 한창 히어로로 활동했을 때의 나였더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을 고집했을 거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에는 이기는 쪽이 정의인데 말이지.
상념을 빠르게 떨치고
오거의 시체가 서서히 소멸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뭔가 나도 네 소환수로 다뤄진 기분이었는데….”
차유라가 슬쩍 다가와 말을 건넸다.
혹시 자존심이라도 건드렸나 싶어 일단 사과하기로 했다.
탐색 도중 조원들의 불화는 패망의 지름길이니까.
“기분 나빴으면 미안.”
“응? 아냐. 난 명령받는 게 더 편해서 상관없어. 그리고 네가 리더니까 진두지휘하는 게 맞지.”
“…내가 왜 리더야?”
“아까 리더라고 직접 말했잖아.”
차유라는 씩 웃으며 나를 지나치고 오거가 소멸한 곳으로 걸어갔다.
김영지에게 내보였던 비소를 제외하면 오늘 처음으로 지어 보인 미소였다.
“아무튼 우리 실습 점수는 만점이겠네. 이거 봐봐.”
빙판길을 자연스럽게 거닐며 오거가 있던 자리에 도착한 차유라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마석을 하나 들어 올렸다.
“4성 마석…? 대박!”
그것을 본 김영지의 눈이 커다래졌다.
기뻐할 만도 했다.
4성 마석의 드롭 확률은 통계상 20 퍼센트니까.
시세도 무려 1500만 원에 달한다.
하나 안타깝게도 아카데미 던전에서 얻은 이상 우리가 소유권을 가지지는 못한다.
던전 내에서 얻는 모든 전리품은 아카데미에 반납하는 게 원칙.
대신 그만큼 실습 점수에 반영이 되는 방식이었다.
차유라는 다시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4성 마석을 제출하면 오늘 실습은 우리 조가 무조건 1위겠네.”
그리고 철밥통의 앞에 멈춰 선 후.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밥통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다 너하고 이 로봇 덕분이네. …진짜 얘가 3성 마물이라는 게 안 믿긴단 말이야.”
“뭐…. 최상급 3성이니까. 사실상 4성으로 보는 게 맞지.”
그렇게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던 중.
─제법이군. 도와줄까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지켜봤다.
한참 이전에 전투를 끝내고
뒤에서 여유롭게 우리를 구경 중이던 오니가 입을 열었다.
‘…근데 이 오니는 진짜 최상급 4성인가 보네.’
오니의 전투는 곁눈질로 살펴봤다.
검을 검집에서 살짝 넣다가 뺐을 뿐인데 오거의 목이 공중으로 치솟더라고.
얼핏 들어봤던 발도술인가 뭔가 하는 기술인 것 같았다.
확실히 철밥통의 말대로 규격 외 마물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까 마석으로 기이한 물건을 만드는 세계도 있다고 들었는데 반응을 보면 그게 너희 세계인가 보군. 자 필요하면 가져라.
오니가 김영지에게 마석 하나를 내던졌다.
다른 오거한테서도 마석이 드롭된 모양이었다.
“아 앗! 감사 감사합니다!!”
김영지는 그걸 또 좋다고 넙죽 받아들였다.
하나만 제출해도 실습 점수는 충분할 텐데 욕심도 많네.
설마 몰래 챙겨서 팔아 치울 생각은 아니겠지?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감시 아티팩트가 현재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전부 걸리게 되어 있다.
던전에서 이탈할 때.
숨겨놓은 전리품이 없는지 검문을 진행하니까.
‘내 도감에 흡수시키면 절대 안 걸리긴 할 텐데.’
욕심이 났지만 애써 참았다.
같은 조원들이 함구해준다면야 문제는 없지만 우리가 그리 끈끈한 사이는 아니었으니.
─그럼 다른 녀석들이 몰려들기 전에 서둘러 이동하지.
나는 아쉬움을 삼키고 오니의 뒤를 따랐다.
*
*
*
조금 당황스럽다.
─뭐 하냐. 얼른 타라.
승강기가 대체 왜 던전에 있는 걸까.
아니 생각해보면 호텔과 비슷한 지형이니까 승강기가 있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닌가?
생각할수록 점점 상식이 뒤틀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뇌를 비우고 승강기에 탑승했다.
─내려갈 때 흔들림이 거세니까 벽에 꼭 붙어있어라.
승강기의 문이 닫히고
오니는 「7」이라고 쓰인 버튼을 일곱 번 클릭했다.
그러자 외부에서 무슨 충격이라도 가한 것처럼 큰 진동이 한 번 울리더니 승강기가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조금 흔들리는 게 아니잖아!!!”
풀썩 자리에 주저앉은 김영지가 비명을 내질렀다.
한참 동안 곤두박질치던 승강기가 어느새 잠잠해지고.
푸스으으-
뿌연 연기와 함께 승강기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우리를 반긴 것은 잎이 우거진 푸른 숲이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네.’
이러다가 나중에는 마을까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앞서 이동하던 오니의 뒤를 계속 따라갔다.
그렇게 푸른 숲을 헤치고 도착한 곳에는 작은 오두막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저곳이 오니의 거처인 모양이었다.
─먼저 들어가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가져올 게 좀 있으니.
오니가 오두막 뒤편으로 이동하고.
우리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정리를 안 하고 사는 건지
내부는 여러 물건들로 심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와…. 뭔가 되게 많네. 이건 일본도인가?”
김영지는 혼잣말을 흘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나와 차유라도 마찬가지였다.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물론 건드리지는 않고 조용히 구경만 했다.
그러고 있던 중.
“얘 얘들아…! 잠깐 여기로 와 봐!”
김영지가 무언가 발견한 듯 급하게 우리를 호출했다.
“왜 그래?”
넋을 놓은 듯.
입을 쩍 벌리며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는 김영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구석 한편에 자리 잡은 큼지막한 상자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왜 김영지가 그토록 호들갑을 떨며 우리를 불렀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미쳤네.’
상자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황색 빛.
그 빛을 발산하고 있는 작은 보석들.
‘족히 천 개는 넘어 보이는데….’
전부 전설 각성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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