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3
파사삭 맨션.
외벽에 딸린 계단을 타고 올라 2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복도 끝에서.
낯익은 인형이 우두커니 서서 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지야.”
“…왔어?”
180CM는 훌쩍 넘는 키.
짧게 커트 한 검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와 턱선.
기억 속 여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여동생에게 접근 후.
힐긋.
『210호』
내가 살고 있는 집의 호수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복도의 끝은 209호가 아니라 210호였다.
“210호 있잖아.”
“그러게 있네.”
“…뭐 하자는 거야?”
“없었는데 지금 막 생겨났어.”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지만
표정을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여동생 이현지는 나를 지나치고
뚜벅뚜벅 복도를 거닐며 말을 이었다.
“잠깐만 따라 나와 봐.”
“응? 갑자기 왜?”
“잔말 말고 빨리.”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 여동생을 따라서 1층으로 내려갔다.
*
맨션 앞마당.
여동생은 고개를 치켜들고
건물의 2층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이상하지?”
“뭐가? 생략하지 말고 제대로 좀 얘기해.”
“눈이 있으면 봐. 2층에 창문이 몇 개인지.”
그 말에 여동생의 시선을 따라 맨션의 외벽을 올려다봤다.
제일 왼쪽.
201호가 있는 방의 창문이 보인다.
다음으로 202호. 203호….
‘뭐야?’
잘못 센 건가 싶어 다시 왼쪽에서부터 천천히 창문의 개수를 확인했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창문이 아홉 개.
210호까지 합치면 열 개가 되어야 정상인데 아무리 세어봐도 아홉 개라는 결과만 나올 뿐이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그 창문은 왜 또 없지?’
이상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사는 집의 아이덴티티.
깨진 창문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멀쩡한 창문들이었다.
“그냥 말하면 못 믿을까 봐 확인시켜준 거야.”
멍하니 위층을 바라보고 있는 내 어깨에 여동생이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네가 2층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복도가 갑자기 증축됐어.”
“그게 대체 뭔….”
“공간이 새로 생겨났다고. 210호가 있는 방까지.”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짐짓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여동생과 시선을 마주하고 물었다.
“현지야. 내가 왔을 때 210호가 생겨났다고 했지? 지금 다시 한번 올라가 볼래?”
“…알았어.”
그렇게 여동생이 계단을 올라간 뒤.
나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묻기도 전.
여동생이 먼저 말문을 떼었다.
“방금도 똑같아. 네가 올라오기 시작하니까 공간이 늘어났어.”
“그래…?”
거짓말은 아니리라 본다.
기억 속 여동생은 이런 실없는 장난을 칠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근데 대체 왜 내가 계단을 오르면 공간이 생겨나는 거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의문을 곱씹던 중.
이현지 쪽에서 먼저 추리를 시작했다.
“이현성. 너 여기에 누구 데려온 적 있어?”
“예전에 교관님 한 번 모셔온 적이 있기는 해.”
“그때는 별일 없었어?”
“있었으면 그때부터 이상함을 감지했겠지.”
탁재환 교관이 집들이를 왔을 때.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을 생각해봤다.
‘아. 그때는 내가 1층까지 마중 나갔었구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더욱 생각이 깊어졌다.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가며.
왜 내가 있을 때만 저 공간이 생겨나는지 한참을 추리해봤다.
‘최첨단 생체 인식은…. 아닐 거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상념에 잠겨있던 중.
손끝에 작고 차가운 금속이 걸리적거렸다.
‘…이거 설마?’
나는 곧장 그 금속을 꺼내 들었다.
210호의 열쇠.
어쩌면 이것에 어떠한 힘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허무맹랑한 추리는 아니었다.
비슷한 효과가 있는 아티팩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현지야. 이 열쇠 가지고 잠시 내려가 있어봐.”
그래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 열쇠를 가지고 2층에 올라오는 게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서는 방법이 맞는지.
“….”
그리고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여동생이 1층에 도착한 순간.
복도의 공간이 빠르게 수축되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뭔 집 열쇠를 아티팩트로 주고 있어….’
아무래도 평범한 맨션은 아닌 모양이었다.
***
이후로도 여러 가지 실험을 해봤다.
알아낸 사실로는.
이 열쇠를 가지고 2층에 올라와야만 210호가 등장한다는 점.
열쇠를 가진 사람이 210호로 들어갔을 때.
밖의 공간은 다시 수축된다는 점.
이 정도가 있었다.
‘나중에 집주인한테 연락 한번 해봐야겠네.’
아무튼.
오늘 일어난 기이한 현상의 원인을 알아챈 우리는 현재….
“자 커피.”
“…고마워.”
평범하게 방에 들어와서 앉아있는 중이다.
아티팩트로 이루어진 방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딱히 없으니까.
안전하고 좋지 뭐.
“아니 근데…. 뭔가 더 안 알아봐도 돼?”
아무렇지도 않은 나와는 다르게.
커피를 건네받은 여동생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어.”
“지장 많을 것 같은데….”
여동생은 방을 두리번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이 맨션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한테 연락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
“응? 부동산에서 얻은 방 아닌데?”
참고로 이 방은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집주인과 직접 계약했다.
요즘 유행하는 집 구하기 어플.
‘찍빵’이라는 게 있더라고.
예전에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에 들어가려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서 알려준 어플이었다.
물론 워낙 행색이 의심스러워서 얼굴은 왜 가렸냐고 물어보기는 했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부동산 직원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나?
그 남자는 여기 부동산에서 사기를 당하고 보복을 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손님들을 빼돌리고 있다고 했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찍빵에 올라와있던 글 하나를 보고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대충 이런 글이었다.
===
『파사삭 맨션』
:210호 하나 남았습니다. 월세는 다른 방의 절반인 15만 원만 받겠습니다. 연락 주셔도 잘 안 받을 테니 웬만하면 연락 주지 마세요.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방입니다.
※귀신 안 나옵니다.
===
딱 여기다 싶었다.
15만 원에 방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계약도 구두계약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얘기를 들은 이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집이라고? 뭐 이딴 곳에 살고 있어!?”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만도 했다.
나는 별 신경 안 쓰지만
여동생은 불안한 모양이니 안심을 시켜주기 위해 도감을 소환했다.
밥통이의 위험 감지 능력으로 이 방이 무해한 장소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소환을 진행하려던 그때.
─키이!
─등장.
깨비와 철밥통이 지들 멋대로 튀어나왔다.
…이제는 안 불러도 나오네.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이름을 붙여준… 아니 코스트를 보유한 소환수들은 자신들 의지로 밖에 나올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아무 때나 튀어나오지 말라고 주의는 줬다.
지금도 내 방이라는 걸 알고 나온 것뿐이다.
“얘네가 전화로 맨날 얘기하던 그 소환수들이야?”
“응. 그리고 그것도 말했었지? 우리 밥통이가 위험 감지 능력이 뛰어나다고.”
여동생과는 하루에 한 번씩 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기에 백룸에서 철밥통의 활약상도 얘기한 바 있다.
그렇기에 구태여 설명을 보탤 필요는 없었다.
“밥통아. 위험 감지.”
─명령 입력 확인. 감지.
명령을 내린 뒤.
대략 5초쯤 지나고.
─위험. 없음.
철밥통이 보고를 올렸다.
당연한 결과였다.
어제도 혹시나 싶어 한 번 내렸었던 명령이니까.
“봤지? 아무런 문제없는 방이라니까.”
“…그럼 지금 느껴지는 오한은 뭔데? 귀신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여동생은 철밥통의 유능함을 말로만 전해 들어서 그런지 여전히 못 믿는 눈치였다.
거 안 위험하다니까 그러네.
귀신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랬으면 집주인과 방을 둘러봤을 때.
한 맺힌 악령이 있다는 걸 진작에 눈치채고 다른 방을 알아봤을 테니까.
귀신에게서 느껴지는 한기와는 엄연히 다른 느낌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내왔던 것이다.
‘가위에 눌렸던 건 그저 심신이 피곤해서 그랬던 것뿐일 테고.’
입주 초기에 악몽을 꾸기는 했지만
지금은 악몽은커녕 꿀잠만 잘 자고 있다.
더해서 자고 일어나면 회복 포션이라도 마신 것처럼 몸이 쌩쌩해지기까지 했다.
이런데 악령 씐 집이라고?
다른 건 몰라도.
이곳이 귀신이 없는 집이라는 건 100퍼센트 장담할 수 있었다.
내가 악령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후.
과한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여동생을 설득하고 있던 중.
깨비가 내 옆에 바싹 붙어 이현지를 살피며 조용히 물었다.
─저거. 수컷?
“암컷이야.”
나도 조용히 대답했다.
─키이이….
깨비가 으르렁거리며 이현지를 매섭게 노려봤다.
이현지는 그 시선을 개의치 않고 철밥통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도 얘한테 명령 하나만 해도 돼?”
“응? 무슨 명령?”
“위험한 건 없다고 했잖아. 그럼 안 위험한 것도 감지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여동생은 악령같이 위험한 건 없더라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는 않겠냐고 말을 덧붙였다.
평범하지 않은 방이라는 건 나도 알기에 의견을 받아들였다.
물론 명령은 내가 내렸다.
철밥통은 내 명령이 아니면 안 들으니까.
─탐색 중….
방 내부.
대충 내 물건이 아닌 것을 감지해달라는 두루뭉술한 명령이라서일까.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나고.
─무언가 있는 걸로 추정…. 오류. 확실치 않습니다.
밥통이가 탐색에 실패한 듯보였다.
그런데 그때.
─키이!
깨비가 밥통이를 보고 비소를 머금더니
개처럼 킁킁거리며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 중앙에서 우뚝 멈춰 섰다.
─키이이! 여기!
“깨비야 뭐해!?”
깨비는 갑자기 바닥을 마구잡이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돌발행동에 놀란 내가 깨비를 만류하려고 다가서려는 순간.
뜯어낸 바닥 아래에서.
깨비가 칠흑색 보석을 하나 꺼내 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키이!
철밥통을 향해 보란 듯이 보석을 내밀고 있는 깨비.
휙!
철밥통은 깨비의 손에서 보석을 그대로 낚아채버렸다.
─감지 중.
─내놔!
─꺼지십시오. 감지 중.
돌려달라고 덤벼드는 깨비의 머리를 한 손으로 밀어내고 보석을 얼굴에 가져다 댄 후 유심히 관찰하던 철밥통은 이내 나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정령석…. 고대 정령의 시체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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