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4
빠르게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도착했다.
서한빛은 이유나의 저주를 해주하기 위해 이곳에 남고 백소아와 윤자림도 함께 남아 주변을 경계하기로 했다.
군인들에게 정황을 전해 들은 뒤.
나와 탁재환 교관은 둘로 나눠지기로 결정 내렸다.
“멍청한 놈…. 5성급 소환수를 둘이나 부리려고 하다니….”
탁재환 교관은 민규환의 기존 소환수인 도철을 추격하기로 하고 나는 김수한을 쫓고 있는 새로운 흉수를 처리하기로 했다.
“소환된지도 얼마 안 지났을 테고 아직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못했을 테니 잘 쳐줘봐야 상급 4성 정도일 거다. 그래도 방심은 하지 마라.”
탁재환 교관이 말했다.
원래는 도철을 포기하고.
함께 김수한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환상 도깨비가 된 깨비의 실력을 시험해본 탁재환 교관은 작전을 변경했다.
깨비 수준이면 충분히 다른 흉수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판단 내린 모양이었다.
그 의견에 나도 불만은 없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군인들도 김수한을 추격하고 있으니 위험한 일도 아닐뿐더러.
‘원작에서도 혼돈은 들러리나 다름없었지.’
솔직히 철밥통이라도 비빌 수 있을 수준이라고 짐작한다.
차유라 일행이 당한 것은 단순히 상성이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탁재환 교관은 도철을 쫓는 게 맞아.’
도철이 도망치는 것을 방관한다면.
훗날에 북쪽 전선이 더 혼란에 빠질 테니까.
소환한 상태에서 계약을 해제해주지 않는 이상.
소환사가 죽으면 소환수의 소환이 해제되는 게 정상이기는 하지만 지금 흉수들은 인간의 몸을 차지한 상태다.
그 말은 즉슨.
영혼이 이 세계에 안착했으며 계속해서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
완전히 제 모습을 현현하기 전에 서둘러 처리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아 그걸 잊을뻔했군. 자 받아라.”
탁재환 교관이 검은색 부적 하나를 건넸다.
어디선가 본 듯한 부적이었다.
“소환 아티팩트다. 혹시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그 부적을 찢어라.”
아. 이게 그 부적이구나.
인터넷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최근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신생 아티팩트 기업에서 발명한 신제품.
한 장에 가격이 무려 1억에 달하는 초고가 아티팩트였다.
‘거기 회사 사장 이름이 백치율이었지 아마? 백치열이랑 비슷해서 기억에 남네.’
그리고 이 부적의 소환 대상은 탁재환 교관 본인이라고 한다.
나를 믿고 보낸다고는 했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 보험을 철저히 챙기는 탁재환 교관이었다.
‘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이게 있으니까 더 든든하기는 하네.’
나는 부적을 주머니에 챙긴 뒤.
웨어울프 킹의 어깨에 올라타며 다시 생각을 정리해봤다.
‘김수한이 부상을 입자마자 겁먹고 도망갔다고 했지.’
시점이 너무 이르다.
김수한에게 부여된 축복이 사라지는 것은 스토리의 후반부.
한데 이번 에피소드는 겨우 초반부의 끝자락.
현재 시점에서는 건재해야 할 축복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김수한이 마음에 안 들어서 축복을 거둔 것은 아닐 터.
‘분명…. 축복을 거둔다 해도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사라지는 거였지.’
…모르겠다.
아무리 미래가 바뀌고 있다 해도.
김수한에게 축복을 내려준 존재가 돌연 사망한 게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김수한부터 빠르게 구하자. 녀석이 죽으면… 아니 백호가 사라지면 리버레이션이 아카데미를 습격하는 걸 막아내지 못할 테니까.’
리버레이션이 본격적인 테러를 시작할 때.
탁재환 교관의 부재가 크게 다가온다.
아카데미 최강이라 불리는 남자가 교직을 내려놓은 것도 문제인데 주인공까지 없다면 스토리가 개판이 되고 말 것이다.
“가자. 울프킹.”
─간다 요.
이미 군인들이 추격하고는 있다지만.
그전에 녀석이 죽으면 안 되니 빠르게 이동하기로 했다.
***
“왜 겁을 먹고 그러냐. 너한테 뭐라 할 생각 없으니까 일단 손부터 잡아.”
“어 어….”
아슬아슬하게 김수한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자식.
생각보다 꼴이 말이 아니다.
김수한은 눈물을 왈칵 쏟으며 내게 안겨들었다.
내 상의는 눅진한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나는 기분이 더러워져 김수한을 슬쩍 밀어내고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거두절미하고 말할게. 저 흉수는 내가 잡아줄 테니까 아카데미와 협회에는 네가 마무리 일격을 가했다고 보고해라.”
이 말을 하기 전.
감시 아티팩트부터 부숴버렸다.
내 것과 김수한 것 두 개 다.
“으 어…? 내가 죽였다고 보고하라고…?”
“하라는 대로 해. 살고 싶으면.”
“아 알았어!”
민규환의 새로운 흉수.
혼돈.
그 녀석이 차지한 육체에는 이제 민규환의 영혼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 사실을 밝혀내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무죄는 확실히 증명된다지만.
잠깐이라도 살인죄로 엮이는 건 사양이었다.
김수한은 고위 탐색꾼들과 연줄도 많고
아카데미 수뇌부와도 친분이 두터우니까 상관없다.
‘원작에서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쉽게 덮어줬으니까 뭐.’
나하고는 대우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였다.
김수한은 아카데미의 얼굴이며 홍보대사.
더해서 일종의 광고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아티팩트 회사에서 아카데미에 광고비를 주고 김수한은 던전 실습 때 그 아티팩트를 활용한다.
이른바 뒷광고라고나 할까.
그리하면 매출이 수백 배는 뛴다고 들었다.
아카데미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김수한을 매몰차게 버릴 리가 없지.
물론 이번 사건은 이미지에 타격이 커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뒷배가 없는 이유나와 김영지는 몰라도.
대형 길드의 길드장 딸인 차유라가 중상을 입었다.
‘음….’
소설에서 본 그대로라면.
자기 딸이 중상을 입든 말든 신경을 안 쓸 것 같기는 하다.
아카데미에서도 김수한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덮어줄 듯한 느낌이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나하고 한 약속을 어기지는 않겠지.’
원인은 모르겠지만.
김수한은 현재 고통을 느끼고 말았으니 이 세계가 현실이라는 것도 자각했을 터.
녀석만의 신념이 있는 이상.
여기서 나하고 나눈 약속을 깨트리진 않을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은 절대 아니니까.’
나를 NPC가 아닌 인간으로 보고 있다면 말이다.
“이현성…. 나 나는 어디 숨어있을까?”
뒤에 서있던 김수한이 목소리를 떨며 질문했다.
“…숨어있지 말고 백호는 소환 못하냐?”
“지금 소환하면…. 나를 안 따를 것 같아서….”
“에휴 됐다. 밥통아. 얘 좀 지키고 있어.”
“고마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얘가 병신이 다 됐네….’
너무 이르게 축복이 풀려서일까.
원작보다 더한 찌질이가 되어버렸다.
‘저거 고칠 수 있겠지?’
원작에서는 이유나가 성심성의껏 케어해줘서 빠르게 호전되지만 둘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관계가 파탄날 확률이 높았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서브 히로인들이 살아있는 시점이니까 걔네들이 대신 도움이 되려나…?’
김수한은 진짜 인간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주 잠깐 폐인이 된다.
죽인 인간이 전부 훗날에 빌런이 될 예정이었다 하더라도 살인은 살인.
녀석이 살았던 세계는 지극히 평화로운 세계였다고 하니 살인의 무게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제발 여기서 무너져 내려서 망가지지만 않기를.
너 없으면 아카데미 망해….
나는 곁눈질로 김수한을 살폈다.
“흐 흑….”
어휴.
당장은 신경 끄기로 했다.
혼돈 먼저 처리해야 하니까.
“깨비야. 가자.”
─응!
벌벌 떨고 있는 김수한을 뒤로하고.
나와 깨비는 혼돈이 날아간 방향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방금 일격으로 죽었을 리는 없지.’
혼돈이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해오기 전.
잠깐의 틈을 이용해서 생성해놨었던 도깨비불을 소환해 깨비에게 건네줬다.
─장난감!
푸른 불꽃이 깨비의 주위를 맴돈다.
깨비는 자유자재로 도깨비불을 다루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때.
─건 방진 놈들….
땅에 처박혀있던 혼돈이 공중에 떠오르며 살기를 내뿜었다.
오한이 온몸을 덮쳐온다.
살갗이 찢어지는듯한 추위였다.
‘아직 완전한 모습이 아닌데도 이 정도라니….’
제 모습을 현현해 5성급이 된다면.
아무리 깨비라 해도 승산이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충분히 이기고도 남았다.
깨비가 허공을 밟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꺄하하하하하!
깨비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진다.
척박하던 토양 아래에서 무지개색의 거대한 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도깨비박이었다.
박이 갈라지고.
─꺄하하하!
─꺄하하하하하!
깨비와 똑같은 모습을 한 도깨비들이 하나둘 튀어나온다.
수십….
수백….
수천에 이르는 숫자.
계속해서 늘어나는 깨비들.
묘한 광경은 끝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마저 바뀌어 있었다.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고.
대지는 푸른빛을 발산했다.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모든 물체가 둥둥 떠다니기까지 했다.
이곳은 이미 지구가 아니었다.
환상 도깨비의 영역.
깨비만의 독자적인 세계.
환상이었다.
─누가 진짜일까?
─내가 진짜야!
─꺄하하하!
늘어난 깨비와 함께.
도깨비불도 끊임없이 늘어났다.
─뭐 뭐냐 이것은…!
당황한 혼돈이 지옥불을 내뿜었다.
깨비가 아닌 소환사인 나에게.
하지만 닿지 못했다.
지옥불은 도깨비불에 먹혀 사라질 뿐.
도깨비불은 계속해서 화력을 키워나가며 환상 속 세계를 범람했다.
내 몸마저 도깨비불에 휩싸였지만.
화상을 입기는커녕 뜨겁지도 않았다.
그저 따뜻했다.
─뜨 뜨겁다! 살 려….
혼돈에게는 그 어떤 지옥불보다도 뜨거운 듯 보였다.
작열하는 혼돈의 몸.
고통에 몸부림치던 녀석의 움직임이 서서히 늘어지고 있다.
─꺄하하하!
─뜨거워? 뜨거워?
─난 안 뜨거운데? 꺄하하하!
혼돈의 주위를 빙빙 날아다니는 깨비들의 웃음이 세계를 가득 메웠다.
농락이 아닌 즐거움에서 비롯된 청아한 웃음소리였다.
─꺄하하하!
─그 그만…!
그렇게 결국.
도깨비불이 혼돈을 삼키고.
혼돈은 환상 속으로 사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요뜨_614 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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