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3
불안한 마음은 있었다.
충분히 많은 수의 3성 마물을 토벌해놨지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철밥통의 영혼이 걸린 일이니까.
혹여나 영혼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중.
【초월에 성공하였습니다.】
【근처에 있는 영혼이 감지되었습니다.】
【모든 영혼을 흡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영혼 중 7912개를 흡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걱정이 무색해지게.
단 한 번의 시도만에 진화에 성공했다.
‘…사실은 꽤 확률이 높나?’
아무래도 좋았다.
성공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물론 깨비 때처럼 초월 진화는 하지 못했다.
정석적인 진화.
안드로이드로 진화를 끝마쳤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성공했다는 거에 의의를 둬야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자 탁재환 교관이 다가와 질문했다.
“성공한 거냐?”
“네. 다행히도 한 번에 성공했네요. 근데 초월 진화는 못했어요.”
“음…. 그건 좀 아쉽게 됐군.”
그런 대화를 나누던 그때.
팟!
검은빛이 튀어나갔다.
철밥통이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현현한 모양이다.
─왜 안 부르십니까?
백설같이 하얀 머리의 여자가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외모는 물론 목소리도 달라졌지만.
특유의 딱딱하고 무심한 말투 덕에 철밥통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무생물에서 생물로 바뀐 느낌이네.’
외관을 찬찬히 살폈다.
키는 깨비보다 크다.
그래도 내 옆에 나란히 서면 꼬마처럼 작았다.
대략 160보다 조금 안 되지 않을까?
─주인님? 대답.
“아 미안 바로 부르려고 했어.”
─주의하십시오.
말투가 더 차가워진 느낌이다.
얼굴도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어서 더 냉랭한 분위기였다.
진화로 인해 성격이 바뀌어 나를 싫어하는 건가 싶었지만.
─저도 머리털 생겼습니다. 쓰다듬으십시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철밥통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채 머리를 들이밀었다.
깨비를 따라 해 애교를 부리려는 거 같은데….
살벌한 표정 때문에 귀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 머리는 쓰다듬어줬다.
─만족.
탁재환 교관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밥통이의 모습을 천천히 관찰하며 얘기했다.
“인간 모습으로 바뀌니 이질감이 많이 사라졌군.”
밥통이가 탁재환 교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후원 감사합니다. 덕분에 진화했습니다.
“…그래.”
철밥통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탁재환 교관.
그럴 만도 했다.
휴머노이드는 물론 안드로이드 또한 정보가 일절 없는 마물이니까. 고대종인 깨비처럼.
“아무튼 거봐라. 여성형으로 진화시키니까 얼마나 좋냐. 남성형 안드로이드가 머리를 쓰다듬어달라 했다고 생각해 봐라. 잠깐만 상상해도 끔찍하군.”
탁재환 교관은 그리 말했지만.
나는 철밥통이라면 성별이 어떻든 크게 개의치 않았을 것 같다.
반려 동물을 귀여워할 때도 성별을 가리지 않듯 말이다.
─주인님.
“응?”
─전투 타입을 설정해 주십시오.
“전투 타입?”
─원거리와 근거리 중 선택해 주십시오.
철밥통 앞에 홀로그램이 생성됐다.
두 개의 네모난 화면.
왼쪽은 광선검 그림
오른쪽은 난생처음 보는 형태의 저격총 그림이 표시되어 있었다.
“둘 다는 안 돼?”
─욕심이 많으십니다.
가능하면 원거리와 근거리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닌 복합형을 바랐다.
역시 그건 무리였던….
─하나를 선택하시면 다른 전투 타입으로 바꾸기까지 2시간의 대기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리가 아니었다.
대기 시간이 있지만 전투 타입을 교체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둘 다 가능하다는 말이군.”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탁재환 교관이 끼어들었다.
“남자의 로망은 광선검ㅡ”
─현재는 원거리 타입을 추천합니다.
철밥통이 탁재환 교관의 말허리를 자르며 타입을 추천했다.
탁재환 교관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밥통이 추천대로.
원거리 타입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럼 원거리 타입으로 할게.”
─전투 타입. 원거리 설정 완료.
홀로그램이 스르륵 사라졌다.
허공이 일렁이더니 방금 봤던 그림과 같은 저격총 하나가 툭 떨어졌다. 어림잡아도 3미터는 넘는 길이였다.
공상과학에서나 나올법한 저격총.
설계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외관이었다.
─전투 돌입 전. 잠시 주인님의 도감을 확인하겠습니다.
밥통이가 내 앞에 띄어진 도감을 만지며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만졌었지. 내 소환수는 만질 수 있나 보네.’
진화 목록도 확인이 가능한 듯 보였다.
다만 직접 사용하지는 못했다.
─현재 도감의 분석이 가능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주인님의 가이드가 되겠습니다. 빅슬라임의 진화 목록을 확인하여 주십시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 뜻이 있는 행동일 테니 부탁을 들어줬다.
빅슬라임의 진화목록을 띄웠다.
===
◎진화
[★★빅슬라임]
★★★랜턴 슬라임
조건 : ★★마석 3900/100
★★★도플갱어
조건 : ★★마석 3900/100
★★★킹슬라임(최종 형태)
조건 : ★★마석 3900/50
===
마석은 전부 탁재환 교관이 지원해 줬다.
참고로 도감 속에 넣은 건 다시 빼낼 수 없기에 진화에 밖에 사용 못한다.
─제일 유용한 개체는 랜턴 슬라임입니다. 지상에 떠도는 영혼을 속박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철밥통이 도감을 훑으며 말했다.
랜턴 슬라임.
이 개체 또한 정보가 없는 마물이었다.
“밥통아. 그런 건 어떻게 알아?”
─도감을 분석했습니다.
갈수록 성능이 놀라워진다.
도감 설명서에도 없던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니….
혹시나 해서 다른 것도 물어봤다.
“그럼 3성에서 4성으로 진화할 때의 확률도 알 수 있어?”
─개체마다 다릅니다. 평균적으로는 50퍼센트입니다.
슈퍼 컴퓨터라도 되는 것일까.
인간보다 더 격이 높은 존재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탁재환 교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턱을 매만지며 얘기했다.
“볼수록 신기한 마물이군. 비록 4성이 최종 형태라지만 이 정도 성능이면 안드로이드를 다수 만드는 것도 좋아 보인다.”
나도 속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철밥통이 곧장 만류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저 이외의 안드로이드 및 휴머노이드는 양산형 쓰레기 고철덩어리입니다.
…그렇단다.
철밥통이 특이 개체인가 보다.
아무튼.
밥통이가 추천해준 대로 빅슬라임을 랜턴 슬라임으로 진화시키기로 했다.
‘영혼을 묶어놓을 수 있다 했지. 확실히 나한테는 도움이 되겠네.’
영혼을 사전에 모아둔다면.
3성에서 4성으로 진화시킬 때마다 매번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게 진화를 시키는 도중.
철밥통이 허공에 두둥실 떠있는 저격총을 몸에 밀착시켰다.
─진화가 끝나기 전에 고위험 마물부터 제거하겠습니다.
─반경 5KM 이내 적을 탐지합니다.
─3성 최상급 마물 체리 블라썸 엔트가 감지되었습니다.
─주인님. 사살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허락을 내렸다.
동시에 저격총에서 푸른빛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명령 입력을 확인하였습니다. 목표 체리 블라썸 엔트. 사살하겠습니다.
총구 끝에서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슉.
발포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듯한 작은 소리였다.
‘응? 뭐가 나간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총구에서 초록색 탄환이 튀어나간 걸 얼핏 본 것 같다.
이게 끝인가 싶어 철밥통을 빤히 바라봤다.
─사살 완료.
…일단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
철밥통이 안내한 곳에 도착했다.
독가스를 연상시키는 초록 연기가 자욱이 깔려있는 광경.
주변에는 체리 블라썸 엔트의 흔적인 벚꽃 잎이 간간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던 다른 마물들까지 휘말렸다.
‘이건…. 인간지옥인가?’
인간지옥.
인간 여성의 나신을 모방해 남자를 유혹해서 포식하는 식물형 마물.
그 녀석들의 잔해가 사방에 이리저리 튀어있었다.
“밥통아. 이 연기에 독 같은 건 없지?”
─식물이 아닌 인간에게는 무해합니다. 주인님 그보다 랜턴 슬라임을 소환해 보십시오. 갓 죽은 영혼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아 맞다 그래야지.”
곧장 도감을 펼쳤다.
===
◎소환
[★★★☆랜턴 슬라임(라임)]
===
랜턴 슬라임으로 진화한 라임이를 불러내자 도감 속에서 검은빛이 튀어나갔다.
바로 앞 지면.
푸른빛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작은 랜턴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랜턴 겉면에는 검은 해골이 하나 부착되어 있었다.
“라임아?”
불러도 대답이 없다.
랜턴답게 무생물인 모양이다.
“음. 아이템 느낌이라고 봐야 하나?”
당연히 걷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내가 직접 다가가 랜턴을 집었다.
그때였다.
─영혼을 흡수하시겠습니까?
랜턴에 붙어있던 해골에서 꺼림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주인과 접촉해야지만 활동이 가능한 건가?
우선 라임이의 말에 대답했다.
“얼마나 흡수할 수 있어?”
─영혼을 흡수하시겠습니까?
“…흡수 가능한 영혼의 제한 같은 건 없어?”
─영혼을 흡수하시겠습니까?
지능이 없는 것 같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고 영혼을 흡수하겠냐는 질문만 내뱉고 있었다.
─3성 이하 마물의 영혼이면 전부 흡수 가능합니다. 숫자 제한은 없습니다 주인님.
옆에 있던 밥통이가 대신 설명했다.
그러면서 랜턴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
해골 모양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표정 푸십시오.
퍽!
한 대 더 맞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후.
얌전해진 라임이는 내 명령대로 근처에 있는 영혼을 모두 흡수했다.
입이 쩍 벌어진 해골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
내 눈에 영혼은 보이지 않았지만.
랜턴 뒷면에 적힌
「★105」
「★★332」
「★★★72」
라는 표시를 보고 영혼이 흡수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 가능했다.
그렇게 영혼 흡수가 끝나갈 때쯤.
밥통이는 시선을 옮겨 탁재환 교관을 쳐다보며 말했다.
─주인님의 스승님.
“음? 나 말이냐?”
─예. 줄여서 주스님이라고 칭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해라.”
─그럼 주스님 잠시 고개 좀 돌려주십시오.
“고개를 돌려달라고?”
탁재환 교관이 의아한 듯 가만히 서있자 철밥통이 다시 얘기했다.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탁재환 교관이 눈을 돌리고.
철밥통은 주위를 한 번 두리번거리더니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갑자기 상의를 탈의했다.
─일전에 가공했던 정령석을 부착하겠습니다.
철밥통이 주머니에서 칠흑색 보석을 꺼내 들었다.
210호 방바닥에 숨겨져 있던 고대 정령석이었다.
밥통이의 흉부가 세로로 갈라졌다.
이어서 그 부위에 자연스럽게 정령석을 꽂아 넣었다.
─현재 고대 정령의 힘을 5퍼센트 흡수하였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밥통이의 머리 끝자락이 검게 물들었다.
─100퍼센트 도달 시 존재의 격이 상승합니다.
다시 상의를 주섬주섬 챙겨 입은 밥통이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다른 정령을 제물로 바치면 퍼센트를 올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정령 사냥에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잿불 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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