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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mn Family Is Back Again Chapter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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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1

엠마 우르넨이라는 꼬리를 자른 시점에서 테오 람스테어는 더 이상 자신의 비밀을 알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카르세인의 나쁜 평판을 고려하면 라디엘을 베었다 하더라도 의심을 가지기보단 또 문제를 일으켰으리라는 의견이 나오기 쉽고.

라디엘이 직접 나서서 이를 무마하려 한들 모두 카르세인을 범인으로 가리켰단 옛 재판의 증거가 여전히 유리한 고지를 잡고 있고.

엠마가 온갖 증거들과 증인들로 인해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것과 달리 헛소리를 할 만한 자들이 감옥에 갇혀 원천에 차단됐거나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

어느 쪽으로 말하더라도 거짓이라 우기는 게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덜미가 잡혀 버렸다.

샤펠 숲에서 벌어졌던 라디엘 피습 사건이 언급되며 이 때만큼은 가장 강력한 아군이었을 엠마가 사라지자 이 사건까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출됐던 약점을 모두 제거했지만 가지고 있었던 힘 모두 동시에 사라졌다.

알리바이 증명 및 의뢰 관련 증언이 사라지자 피해자인 라디엘의 증언만이 전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게…! 지금 감옥에 있는 제 동기들을 데려와 주십시오!”

“그들이 무슨 의미가 있지?”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잘못 알려지고 있는 사건을 바로잡아 줄 증인으로…!”

“헛소리를 하는군. 피해자가 지금 널 지목하고 있고 당시 그 두 사람은 카르세인에 의해 어떤 이유로든 쓰러져 기절하지 않았나. 그들이 알 만한 게 어딨지?”

“그 그건…”

아르시엔이 맹점을 짚자 테오는 사색에 질렸다.

더 변명할 것이 없다.

어떤 머리를 쥐어 짜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추가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그건 정말로 우연이었다.

훈련생에 불과했던 나는 수돗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뒤늦게야 견습 기사로 인정받게 되었다.

구보 이후 견습 기사들의 숙소로 옮기게 된 나는 곧장 짐부터 정리했다.

그런데.

짐을 풀기도 전에 어쩐지 벽의 위치가 살짝 튀어나와 보이는 게 아닌가.

덕분에 뭔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그곳에 손을 대자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 메모리얼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아예 발견조차 못했지만 이걸로 또 다른 카르세인의 기억을 엿볼 수 있었고 보상으로 테오의 목줄을 채울 물건을 얻었다.

당시 테오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탓에 증거로 쓸 수 있는 물건을.

“엠마가 보냈던 의뢰서와 라디엘의 이름으로 모방해 쓴 편지를─”

그 순간.

쿵! 하고 테오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증거 들이대시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이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지?”

“엠마에게 받은 의뢰로 큰 돈을 벌 수 있었기에 받아들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녀석들을 좀 더 꼬드겼고… 겸사겸사 보기 싫었던 카르세인 도련님을 빈민촌에다 다시 버리고 올 수 있다고도 생각했었습니다.”

“호오?”

놀랍게도 놈은 자백을 하고 있었다.

“그대는 지금 자백을 하는 것으로 보이네만.”

“예. 라디엘 단장의 말이 모두 맞습니다. 일을 벌이고 난 뒤에 돈도 돈이지만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이제 와서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물음엔 고개를 숙인 채 두 주먹을 파르르 떨며

“…툴레아 광산에는 형의 깊이에 따라 층이 갈린다고 들었습니다. 또 판결의 보옥에 낙인이 찍히고 싶지도 않고요.”

그리 말한다.

“흥. 판결의 보옥과 형의 집행 수준이 두려웠던 건가.”

아르시엔이 테오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테오는 한 마디로 쫄았다는 거다.

재판에 있어 선서를 했음에도 거짓을 담았을 경우 판결의 보옥을 쥔 자는 이를 벌할 수 있다.

플레이어블 텍스트에선 안면과 전신에 대놓고 낙인이 찍히며 타들어가는 고통을 준다고 쓰여 있다.

또한 얼굴에는 30일간 효과가 유지되지만 몸에 찍힌 낙인은 지워지지 않고 죄인을 지독하게 괴롭히기까지 한다나. 이러나 저러나 노역을 하는데 저런 게 괴롭히기까지 하면 두려울 만도 할 것이다.

‘근데… 이렇게 쉽게 클리어했던가?’

에피소드 VI. 샤펠 숲 재심 에피소드는 실제로 내 리트라이 횟수가 가장 적었다.

그만큼 예상하기 쉬웠고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쉬워도 너무 쉽게 깨진 느낌이란 말이지.’

어느 정돈가 하면 증거를 제시하기도 전에 달성도가 100%를 찍어버렸다.

게임 속 진행대로라면 이 증거를 제시하고 테오의 주장을 한 번 정도 더 완파하고 나서야 달성도는 100%를 달성한다.

그 이후는 동일하게 아르시엔의 판결에 따라 엠마와 마찬가지로 끌려 나가며 에피소드 종료. 결과는 다르지 않지만 이 과정이 스킵된 건 제법 크게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중간중간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최선의 선택지가 골라졌었다.

클레어가 나섰을 때도 그렇고.

나를 옹호하는 하녀들과 시종들이 나섰을 때도 그렇고.

헤론이나 셰이든도 그랬다.

따라서 내가 할 거라곤 몇 안 되는 선택지와 올바른 타이밍의 증인 호출 증거 제시가 전부였다.

에피소드 VI가 나한테 좀 쉽게 느껴지긴 했지만 이 정도로 쉽진 않았는데.

‘흠… 친밀도 탓인가?’

흰색 박스들의 수치가 게임 때보다 조금씩 더 올라가 있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긴 하네.

“끌고 가라. 람스테어 남작가에 서신을 보내 제적될 때까지는 공작가 감옥에 가둬두고 확인이 끝나면 곧바로 툴레아 광산으로 보내도록.”

““예!””

그 사이 테오가 기사들에 이끌려 나간다.

재판은 금세 종료되었다.

아르시엔이 내린 판결은 볼 것도 없는 카르세인의 무죄.

그리고 누명을 써온 게 확실하다는 판결이었다.

내가 꼴사납게 패배하길 바랐던 귀족들은 떫은 표정으로 퇴장했다. 증인으로서 나를 도와줬던 자들은 고개를 숙이며 퇴장했고

“바깥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카르세인.”

이사벨라는 슬픈 표정을 지은 채 내게 그 말을 남기고 먼저 발걸음을 뗐다.

이제 나도 나갈 시간이었다.

CHAPTER 1의 보스나 다름없는 둘이 사라졌으니 당분간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발길을 옮기려는 찰나.

판결의 보옥의 기록 내용을 서류에 담아 옮긴 아르시엔이 나를 향해 말했다.

“영리하게 대처하더군. 훌륭한 언변이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야. 처음 이 판결을 맡을 때만 해도 안건이 그대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치우쳐져 있었잖나.”

그건 어쩔 수 없다.

클리어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놓은 게임이니…

“자칫 방청객들에 의해 여론이 생겨나 그대가 주눅이라도 들었다면 그것대로 위험했을 거야. 쯧. 참으로 불공평한 재판이었어.”

실제로 위험한 게 맞다.

방청객들은 테오와 엠마의 주장에 동요하고 그들은 내 적이 되어 달성도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린다.

그래서 한 번에 분위기를 휘어잡으려 한 거였고.

하지만 이 불리함은 나 혼자만으로 이겨낸 게 아니다.

“그러는 황녀님께서도 제 편을 들어주셨잖습니까.”

“…호오 이건 또 무슨 흥미로운 소릴까. 잘 모르겠으니 꼭 말해주었으면 좋겠군.”

아르시엔이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

눈가가 아주 곱게 휜 걸 보면 진짜 들을 생각인 모양이네. 괜히 말했나 보다.

“논제 자체를 처음부터 샤펠 숲 사건이 아닌 수돗가에서의 일로 잡아주신 점 때문입니다. 아마 그 두 사람 중 한 명은 반드시 샤펠 숲 사건을 들먹이며 제 평판을 꺼냈을 테니까요.”

“호오. 더 있는가?”

“재판에 와서도 그러셨습니다. 엠마 우르넨을 노골적으로 공략하려는 제 의사를 제지하지 않으셨죠. 엄밀히 따지면 저와 테오 람스테어의 공판인데 말입니다.”

그밖에 딴소리가 나오기 전에 전부 꺼냈다.

혹시 모를 증인이 될 수 있는 클레어보다 귀족들인 방청객들에게 좀 더 무겁게 지적하며 여론을 누르려 했던 거나 엠마 테오의 주장의 부실성을 강조해 의문을 살리는 등 여럿 있었다.

-짝짝짝.

“대단한 통찰력이군. 어디까지 수를 내어다 봤나 했는데 사실은 그 증거가 쐐기였겠어?”

“…예. 사실입니다. 테오가 미처 처리하지 못했던 엠마의 의뢰서만 해도 충분했을 테지요.”

“역시 그랬던 겐가. 후후.”

아르시엔은 만족했는지 옅은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던 수치가 바뀌었다.

[ 아르시엔 리헤른 페셀로스 ]

[ 친밀도 : 7% ]

“그래서 가짜 약혼녀인 하르니에 테레시아와는 언제까지 만날 셈이지?”

“…예?”

“모르는 척해도 소용 없네. 귀족들은 다 속고 있겠지만 나는 두 사람이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거든.”

절로 몸이 움찔하자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아아. 오해 말게. 협박하려는 게 아닐세. 단지 황제가 되기 위한 패권이 필요하다 보니 내 입장에선 중요한 정보라 말이지.”

그러고 보니 아르시엔은 두 오빠가 있고 그들과 함께 정쟁을 통해 황제가 되고자 하는 인물이란 설정이 있다.

바그란드와 테레시아.

두 가문의 일체가 이루어질 수 있으니 그녀로서는 눈여겨 봐야 했을 정보였을 거다.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겠군요.”

“흐음. 그런가. 제법 중요한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군.”

“하지만 황녀님께 영향이 갈 만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봐야 단순 계약 약혼이지 않은가.

합칠 일은 없다. 1년만 지나면 자연스레 떨어지게 될 테니.

“알겠네. 그대가 그리 말하니 믿어야지. 하지만 제법 약혼녀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후후. 그건 그대가 알아서 하게.”

아르시엔은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만 남기고 떠났다.

***

재판을 끝냄으로서 에피소드 VI도 끝났다.

옆에서 상태창이 뭐라 뜨는 것 같지만 지금은 몸이고 마음이고 너무 피곤하다.

엠마 뿐만 아니라 내 현실 가정부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는 걸 밝히고 쫓아냈을 땐 그날 피곤해서 아예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황녀님과의 대화는 끝났나?”

밖으로 나와도 나를 쉬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게임에서도 이건 달라지지 않는구나.

“어머니는 클레어와 함께 먼저 돌아 가셨다. 공작저에서 얘기하자고 하시더군.”

“아 그래.”

나는 체념한 채 심드렁히 대답했다.

“근데 넌 왜 여기 있는데? 뭐 재판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냐?”

“카르세인.”

“그런 거 아니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잖아?”

살짝은 비아냥이 담긴 내 태도에 아리나의 미간이 좁혀졌다.

“후. 그래.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게 있어서 말이지. 플로라의 입장은 왜 제한했지?”

뭘 묻나 했더니 그건가.

내 입장에선 당연한 거였지만 아리나 입장에서 보기엔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거다.

이럴 땐 빠르게 대화를 끝내고 치워 버리는 편이 낫다.

“플로라가 테오 엠마의 편을 들 수도 있으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너는 지금 네 동생이 그 두 죄인을 편드리라 의심하는 거냐?”

“틀린 거 없잖아. 실제로 샤펠 숲 재판 때도 테오 람스테어의 편을 들었던 데다 엠마 우르넨은 플로라의 유모였으니까.”

아리나의 표정이 한층 사나워지고.

▶아리나의 친밀도가 감소합니다!◀

[ 현재 수치 : 21% ]

“가족으로서 참여해 널 도와주려는 동생을 그딴 식으로…!”

일갈하는 아리나로부터 나는 또 잘못을 저지른 놈이 되어 있었다.

이거면 됐다.

친밀도를 소모하는 것으로 이 대화는 끊어버릴 수 있다.

“난 그 재판에서 또 죄인이 되고 싶진 않아서. 누구 때문에 그날 누명을 써서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거든.”

“하아… 카르세인. 너 정말…”

“간다. 오늘 훈련이 재판 때문에 미뤄져서 지금 해야 하거든.”

그리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맺자 아리나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이사벨라나 클레어와의 대화도 이걸로 끊어버릴 수 있으니 다른 이벤트는 더 발생하지 않는다.

셋의 친밀도야 좀 떨어지겠지만 다음 챕터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시간을 위해서도 이 편이 낫다.

-띠링!

알람음까지 마침 떴다.

이걸로 전부 끝이었다.

에피소드 VI도 끝.

CHAPTER 1도 끝.

한 챕터를 끝내 버렸으니 걱정할 건 당분간 아무것도 없다.

피곤하다.

숙소로 돌아간 나는 씻지도 않고 눈부터 붙였다.

***

-띠링!

▶플레이어가 에피소드 내에서 주요 이벤트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필수 이벤트를 허용하는 방식의 분기로 전개를 뒤틀어 진행합니다!◀

기사들의 등에 떠밀려 테오 람스테어는 다시 창살 안으로 들어간 상황이었다.

이 상태로 하루를 보낸 뒤 내일 동이 트게 되면 테오 람스테어와 엠마 우르넨은 중죄인으로서 끌려가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 기사가 빛 하나 들지 않는 수감실에 들어섰다.

테오는 기사의 얼굴을 알아보고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륀! 여기다!”

그는 2기사단으로 쫓겨났던 자신의 수하였으니. 클레어에게 오히려 책을 잡혀 쫓겨난 바람에 이쪽은 의심을 벗은 상태였다.

그러나 륀은 테오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다른 수감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곳엔 파르르 떨고 있는 엠마가 있었다.

“멍청한 년. 일을 이딴 식으로밖에 처리하지 못한 거냐?”

“죄 죄송합… 어윽!”

목을 졸린 엠마가 고통스러운 듯 버둥거렸다.

“엠마. 지원금은 물론이고 공작가에 대한 정보라면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마 맞습… 니다… 커윽!”

“그럼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좀 해보시지. 하인들을 구슬릴 만한 하녀장의 자리에 올랐으면서 그깟 천민 하나 못 쳐내서 오히려 네가 갇힌 이유가 뭔지 설명해보란 말이다.”

“그 그게… 죄송 컥 커억!!”

“죄송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분께서 네게 맡긴 임무는 본디 이렇게 처리될 것이 아니었다. 아니면 하녀장 자리에도 올랐고 돈도 받았으니 그분이 만만해 보였나?”

잔뜩 겁에 질린 엠마와 목을 조르고 있는 기사.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테오는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이게 자신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단 사실을.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툭.

엠마의 목에 가해지던 악력이 줄어들었다.

콜록거리며 목을 붙잡던 엠마를 두고 기사의 고개가 옆으로 돌려졌다.

“네가?”

존댓말을 써야 한다. 저 사내는 자신이 알던 륀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승부수를 확실히 던져야 했다.

“엠마 저년은 판결의 보옥으로 낙인이 찍힌 상태지만 전 아닙니다. 이 창살만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죠.”

“호오?”

“어쨌거나 카르세인만 처리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놈을 불러낼 방법이 제겐 아직 존재합니다.”

그 말에 륀이 피식 웃었다. 속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계속해 봐. 뭘 어쩔 건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 천것을 불러들여 죽이면 될 일 아닙니까. 재판장엔 놈이 손을 써서 못 온 모양이지만 제겐 플로라 아가씨라는 아군이 있으니 가짜 인질극 같은 걸 펼쳐서 불러들인 뒤 처리하면 됩니다. 아가씨께선 저한테 푹 빠져 계시기도 하거든요.”

“하긴 네놈이 공작가의 막내딸을 꼬신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녀를 이용한다면 카르세인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도 어렵진 않겠지. 하지만 놈이 눈치를 채고 오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확실한 증거를 남겨서 안 오면 의심 받게 만들면 됩니다. 플로라 아가씨를 납치했단 흔적을 새긴 뒤 카르세인 때문이라고만 써두면 공작가는 어차피 카르세인을 향해 분노를 쏟을 테니까요.”

“어찌 되든 카르세인의 인식은 여전히 나쁘니까 금지옥엽의 막내딸이 납치된 게 카르세인 탓이라 묻을 거란 건가.”

“예. 저와 카르세인만 뭔가 있었다는 식으로 떡밥까지 물려두면 절대 거부할 수 없을 테죠.”

이걸로 외통수다.

카르세인이 몸을 사린다면 공작가에서 그 뻔한 증거를 알아보고서 악감정을 카르세인에게 쏟으려 들 것이다. 납치된 동생을 구하러 오는 방법 외엔 다른 길이 없다.

테오는 여기서 모든 패를 꺼낸다.

“어차피 놈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전 그걸로 충분합니다. 남작가? 그런 내려앉고 있는 가문 따위 제 알 바 아닙니다. 이쪽이 훨씬 더 큰 물이잖아요? 그런 물에서 놀 수 있다면 타국으로 망명을 가든 말든 그런 건 개의치 않습니다.”

“흐음…?”

저 말을 들어보자면 바그란드 공작가에 손을 썼단 것이 아닌가.

페셀로스 황실이라 한들 이런 일을 함부로 벌일 수는 없다.

즉 이들의 뒤는 못해도 타국이란 얘기다.

“계속 해봐.”

도박수를 던지는 데에 성공했다. 그럼 이제는 자신이 있을 자리를 마련할 차례였다.

“저 멍청한 년은 황실 지하 감옥에서 구금될 겁니다. 그럴 바에야 싹을 완전히 여기서 잘라 버리는 게 나을 거고요. 이참에 새로운 부하 하나를 얻으면서 갈아치우는 셈 치시죠.”

“뭐 뭐라고! 테오 네놈이!”

“한심하게도 죄송하단 말만 반복하던 저년보다는 오히려 이런 계획이라도 낸 제가 더 쓸모있지 않겠습니까?”

턱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던 륀은 고개를 끄덕이며 테오의 창살로 걸어갔다.

“자 잠깐만요! 서 설마…!”

-철컹!

곧바로 테오의 창살이 열렸다.

“제법 머리를 쓰는군. 좋아. 일단 네가 뱉은 말은 먼저 실행해야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륀이 테오에게 검을 건네자 엠마는 위기를 직감했으나 저항할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창살이 열리고 검이 허공을 비행한다.

붉은 선혈이 사선으로 튀어 오르며 한 여인의 숨은 그 자리에서 끊어졌다.

“네 충성심은 잘 확인했다. 허나 조건을 둘 더 걸지.”

“뭡니까?”

“심문이나 고문을 받을 놈들이 제법 많아서 말이야. 그놈들도 직접 숨통을 끊어라. 겸사겸사 난 좀 쉽게 빠져 나가야 하지 않겠어?”

이 공작가에서 책잡힐 모든 건을 네 검으로 끊어내라는 뜻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럴 만한 실력을 보이라는 의미기도 하고.

제법 힘든 조건이지만 테오로서는 뒤가 없었다. 이 정도는 해야 했다.

“두 번째는 뭡니까?”

“…아니 굳이 이럴 필요는 없어 보을 것 같으니 철회하지. 대신 필요한 거나 말해라. 가져다 줄 테니까.”

“아하. 그렇습니까.”

륀은 어차피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나 테오는 그런 속도 모르고 비릿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띠링!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할 전개 방향을 잡았습니다!◀

***

후원은 고요했다.

평소에는 줄줄이 뒤따르던 하녀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아무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저 발소리뿐.

그 후원을 걷고 있는 가벼운 발소리뿐이었다.

하지만 발걸음 소리에 비해 그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다.

갑갑한 마음 아래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으며 그림자가 늘어질 때마다 생기를 잃은 눈에서는 마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죄송합니다. 플로라 아가씨께선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재판장에서 들은 그 한 마디가.

카르세인이 친 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들어갈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손에 엠마의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을 한가득 들고 있었음에도.

얄밉게 조소하며 휘어지던 눈은 생기를 잃었다.

푸른 눈빛에 채워져 있던 발랄한 열기는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탁하게 흐려진 동공은 공허해져 빛이 들어갈 틈새조차 없었다.

-풀썩.

후원을 수없이 돌던 플로라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이 까졌는데도 무던히 바라보게 된다.

통증이 이상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뒤집힌 시야에선 져가는 해와 더불어 가려졌던 달이 뜨고 있었으니.

동트는 달이 마치 숨기고 숨겼던 그 일들을 저지른 자신의 과거처럼 비쳐지고 있었다.

아무리 가려봤자 달은 존재한다.

해로 인해 보이지 않을 뿐 어디엔가 다른 곳에 숨어있을 뿐이다.

카르세인을 괴롭혔던 자신의 과거도 그랬다.

가리고 숨기고 외면해봐야 그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카르세인의 기억 속에서는.

플로라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시간이 지나 이젠 가려도 가릴 수 없어진 보름달을 보며 카밀라의 조언에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려 본다.

“그치만 뭘 해야 하는 건데…?”

-그 죄는 씻을 수 없습니다. 평생 안고 가셔야 하는 겁니다.

“씻을 수 없는 죄라니. 그런 거 너무하자나…”

-도련님은 이미 아가씨께 몇 번이고 자비를 베푸셨을 테니까요.

“난 몰라… 바깥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가지고 있는 걸 뺏겨본 적도 없어서…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아…”

플로라가 다시 눈물을 머금은 채 훌쩍거렸다.

바로 그 순간.

“흐읍?!”

누군가가 거칠고 난폭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느껴진다.

피부 위로 닿은 이 익숙한 감각을.

떨쳐내야 했다.

이 자는 여기 있을 자가 아니었다.

“우읍!”

그러나 플로라는 이미 달콤한 향을 잔뜩 들이마셔 버렸다.

저항해보려 해도 몸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안… 되는데…’

결국 몸은 늘어지고 눈마저 감겨 버렸다.

-띠링!

▶히든 에피소드가 진행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 03. 22

내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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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n Family

Damn Family

The Damn Family Is Back Again
Score 8
Status: Ongoing Released: 2023
The torment was over. I thought my ties to them had been severed by escaping from the place where nothing belonged to me. Yet, the game I had started with the intention of seeing the ending to the bitter end, ended up dragging me into hell. The hell of a house full of damn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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