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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mn Family Is Back Again Chapter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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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6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운 피가 스멀스멀 돌았다.

아직 찬 밤바람조차 느끼질 못할 정도로 차가워진 이 감각은 내 이성의 끈을 더 견고히 만들어주었다.

기분 나쁜 과거를 봤지만 나는 오히려 되살아난 경각심과 함께 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빠르게 되새겨볼 수 있었다.

그래. 나는 탈출해야 한다.

이 게임에서 탈출해야 하고.

빌어먹을 가족들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딱 그 두 사실만 알면 된다.

연무장의 내 숙소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의자에 앉아 하르니에가 준 샤트렌 영지 보고서를 살폈다.

“제법 상세히 쓰여 있어. 전월 대비는 물론이고 1개월 단위로 몇 년간의 데이터를 이렇게 함축해서 넣어놨을 줄이야.”

이 정도라면 오차 범위도 적다. 성장률이 얼마나 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기도 쉽고 영지 내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하르니에는 그걸 콕 짚어놓았다.

[ 샤트렌 딸기 생산률 ] [ 샤트렌 포도 생산률 ]

[ 샤트렌 딸기 판매율 ] [ 샤트렌 포도 판매율 ]

과거 샤트렌 영지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두 개의 작물과 관련된 데이터가 굉장히 꼼꼼히 정리되어 있다.

“좋아. 이쪽은 됐어.”

다른 상세한 건 지금 여기서 알아두기보다 영지 내로 진입해 알아보는 게 좋다.

챕터 2를 진행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메인 에피소드를 진행하게 되는데 카르세인이 샤트렌 영지에 발을 들이는 건 필연적인 전개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전개를 피할 생각이 없다.

이 에피소드의 해결로 내가 얻는 건 다름 아닌 탈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돈이니까.

단순해 보이지만 제법 중요하다.

샤트렌 영지 건을 해결한다면 내게도 사유 재산이 생기고. 그간 공작가에서 받았던 돈을 갚는 게 가능해진다.

즉 가문에서 발을 떼기 전 그들에게 책잡힐 수 있는 중요한 요소를 말끔히 끊어낼 수 있다는 거다.

샤트렌 영지 보고서는 한쪽으로 치워 두고 이번에는 헤론이 적적할 때 읽어보라며 갖다 준 책을 하나 꺼냈다.

사실 적적할 때 읽을 만한 건 아닌 게 이 책은 영지 관련 농법이 담긴 책이었다.

눈치 빠르게 동부 귀족 회의 쪽 일을 예견하고 내게 주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리고 헤론이라면 단순히 책만 주었을 리가 없단 말이지.”

샥.

“역시나.”

책갈피가 끼워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책 틈 사이. 양장의 앞 부분에 끼워진 자그마한 쪽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 아르시엔 황녀 전하께서 각 가문에 전달한 공문에 의하면 이번 동부 귀족 회의에서는 가주들의 힘이 완전히 끊길 예정이라고 합니다. 모쪼록 조심하십시오. 도련님. ]

“흠… 그렇게 된단 말이지?”

어떤 분기를 타느냐에 따라 동부 귀족 회의는 참가 시 세 가지 루트로 나뉜다.

첫째는 가주와 함께 참석해 공작가 전원이 시험을 보는 루트.

둘째는 가주와 함께 참석하되 각 자제들이 조언 정도만 받으며 따로 시험을 보는 루트.

셋째는 가주의 참석조차 허용하지 않고 자제들이 홀로 시험을 보는 루트.

첫째의 경우에는 카르세인이 아무 발언도 할 수 없게 되어 탈락이고 둘째의 경우는 그나마 이사벨라의 조언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헤론이 보내 온 쪽지를 보아하니 셋째 루트를 탄 것 같다.

이사벨라는 참관도 안 되고 조언도 불가. 그러니 카르세인은 홀로 아리나에게 빼앗긴 참가 권한을 어떤 식으로든 얻어서 해결해야 한다.

원래라면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어 가장 헬 난이도의 루트라 볼 수 있으나 나는 오히려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혼자 해결하는 편이 나아. 메인 에피소드도 미리 받아둔 상태고 혼자 움직여서 직접 따내야 아무 말 못 하지.”

부탁할 게 아니라 스스로.

그게 현재 내 모토였다.

-똑똑.

“도련님. 카밀라입니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카밀라는 꾸벅 인사를 마친 뒤 후드를 벗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샤트렌 영지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했으니 그것과 관련된 정보들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하르니에가 조사한 특대 보고서가 존재하므로 카밀라에겐 미안하게도 헛걸음을 하게 만든 거나 다름없었다.

들을 건 다 들어보고 일이 이렇게 된 점엔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카밀라가 뜸을 들이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네? 아…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것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그럼 왜 그러고 있어.”

“그게…”

카밀라는 자꾸만 뒤쪽으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닫힌 문 뒤에 뭐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쪽을 보니 살짝 열린 문 사이로 금빛 머리카락이 찰랑인다.

추측해보건대 저 문틈 사이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단 사실을 카밀라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만했네.’

뒤를 밟힌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고 플로라가 따라왔는데 뭐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런 거겠지.

내가 눈치채게끔 눈동자를 굴린 건 여기서 보고라도 하면 내가 뭘 했는지 새어 나갈 테니 카밀라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잠깐 나가 있어. 내가 해결할 테니까.”

“네. 도련님.”

카밀라를 내보내며 나는 숙소 문앞에 섰고 문 뒤에 숨은 플로라에게 대놓고 말했다.

“또 뭔데?”

미처 숨기지 못했던 금발 몇 가닥이 움찔거렸다.

***

플로라가 우물쭈물거리며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또 뭐냐는 직설적인 물음에 숨고 모른 척이나 할 줄 알았는데.

이번엔 그냥 숨기지 않고 물었다.

“…저기 잠깐 들어가도 돼?”

지금 이 꼬맹이를 보는 건 솔직하게 말해 별로지만…

뭐 때문에 나를 찾아왔는지는 아마도 짐작이 간다.

아리나가 했던 소릴 들었었으니까.

“들어와.”

우선은 들어오라고 말했다.

친밀도까지 깎아가며 아리나로부터 떨어졌는데 또 깎이는 건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나름 나도 할 말이 있기도 했다.

주변을 흘깃거리며 숙소 안으로 들어온 플로라는 어디 앉을 자리가 보이지 않자 허둥지둥대다 그냥 침대에 앉으란 내 말을 듣고 고분고분 자리를 잡았다.

아마도 플로라에게 뭐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간 시간이 크게 낭비될 것이므로 본론은 내가 직접 꺼냈다.

“동부 귀족 회의에 참여할 내 권한을 아리나가 뺏어서 온 거지?”

“어? 으 으응… 마 맞아. 그거 얘기하러 왔어.”

침을 꿀꺽 삼키며 플로라는 첫 운을 뗀다.

“정말 언니 말대로 동부 귀족 회의 참여 안하는 거… 아니지?”

“글쎄. 어떨지.”

그러자 꼬맹이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나 깨운 것 때문에 그런 거면 언니한테 내가 말할 수 있어!”

침대에 붙였던 엉덩이까지 다시 떼며 플로라는 거듭 말했다.

“거기서 내가 기다리다가 이렇게 된 거면… 언니한테 내가 말할 수 있어. 엄마한테도 아직 말 안 했지만 얘기하면…!”

내가 동부 귀족 회의에 참여할 권한 정도는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한결 같기는.

이 꼬맹이는 역시 셋째랑 똑같다.

나는 단호하게 그 말을 끊어 버렸다.

“그냥 하지 말지? 방해만 되니까.”

“뭐어…?”

“예전에도 똑같은 소리 했었잖아. 방해만 된다고. 기억 안 나냐?”

기억 안 나면 직접 말해줄까 싶었는데.

플로라는 재판장에서의 일을 반사적으로 떠올렸는지 재차 발끈했다.

“알아! 엠마랑 테오 때문에… 내가 내가 못 미덥다는 거. 그치만 이번에는 거짓말도 안 할거고 네 잘못이라고 우기지도 않을 거야. 이번에는… 이번에는 정말로…”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꼭 쥐고서.

이번엔 다름을 주장한다.

그러니 나는 더더욱 빈정거릴 수밖에 없었다.

“필요 없는데.”

“…”

그 말을 듣고서 숨죽이며 고개를 풀썩 내리던 플로라는 훌쩍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흡 그럼 어쩔 건데! 너 이대로 귀족 회의에서 흡 참여 안 하고 공작가에만 있을 거야?!”

“참여 안 한다곤 안 했는데.”

“뭐어?”

그렁그렁 열려 있던 은빛 이슬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다시 한 번 얘기해주면 말이지. 네 도움을 일일이 받아 가면서 참가 권한 돌려 받을 생각은 없어. 그건 내가 스스로 할 일이지.”

“그치만…! 내가 도와주면 더 쉽게 갈 수 있짜나!”

플로라는 내가 회의에서 빠지려는 게 아니란 사실에 희망이라도 얻은 것처럼 재차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반박했다.

“글쎄. 내가 생각할 땐 그게 오히려 더 힘든 길일 텐데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너도 잘 알잖아. 아리나가 묻지 않겠냐? 나한테 플로라를 부추겼냐고.”

“…!”

“그렇게 되면 난 또 다시 몰리겠지. 동생을 부추겨서 참가 권한을 얻으려고 하는 쓰레기로 말이야.”

쉬운 길이란 건 때로는 독이 되기 마련이었다.

아리나에게 박탈 당했던 권한을 다시 얻으려고 가족의 힘을 빌리는 순간 선택지에서 데드 플래그가 서 버린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멀리 돌아가는 길을 고르고 만다.

“…”

플로라의 푸른 두 눈동자에서 세찬 파도가 일고 있었다.

저 조그마한 머리 안에서 무슨 생각이 돌아 다니고 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플로라에게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 없다.

“카밀라.”

“네. 도련님.”

“플로라를 저택까지 데려다 줘.”

카밀라가 명을 받들자 플로라는 입술을 꾹 물며 훌쩍였다.

“회의 참여는… 하는 거 맞지?”

“카밀라.”

“아가씨. 그만 돌아가시죠.”

“이거만 확실하게 답해줘. 그럼… 얌전히 돌아갈게.”

눈가에 눈물을 주렁주렁 단 채로 이거 하나만은 꼭 들어야겠다는 듯 물었다.

뭐.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참가할 거야.”

“…알았어.”

주눅든 모습으로 플로라가 돌아선다. 카밀라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뒤따르며 숙소에서 빠져나가 배웅을 시작한다.

문이 닫혔다.

더 훌쩍이는 소리 같은 건 나지 않았다.

***

잠시 후 플로라의 배웅을 마친 카밀라가 찾아왔다.

“플로라는 잘 데려다 줬어?”

“네. 도련님. 아가씨도 별 말 없이 돌아가시더군요. 그리고 도련님께 전해주라고 한 말씀이 있으셨어요.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뭔데.”

“아무 말도 안 할 테니까 회의만 꼭 참여해달라고. 그렇게 한 번 더 당부하시더군요.”

“쓸데없는 걸 다 묻네.”

참가 안 하면 배드엔딩인데 내가 미쳤다고 빠지겠냐.

뭐 그래도 일단 플로라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 같다.

자기가 입 닫는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잖아. 내 입장에선 좋을 일이지.

그렇다면 다음은.

▶에피소드 I. 루스마이어의 고립이 진행 중입니다!◀

▶루스마이어 영지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세요!◀

이 에피소드를 해결할 때였다.

“여기 있습니다. 도련님.”

카밀라가 내게 보고서를 건넸다.

며칠간 조사한 샤트렌 영지 주민들의 동태 등을 정리한 보고서였지만 그쪽은 애석하게도 하르니에 쪽이 더 빠삭하므로 도중 조사를 그만두고 다음 지령을 내렸다.

그게 바로 이 루스마이어 영지 보고서였다.

‘근데 어째 양이…’

좀 많이 두툼한데?

그 짧은 시간에 샤트렌 영지 조사한 것보다도 많이 나온다고?

급하게 선회를 시킨 것 치고는 많아도 눈에 띄게 많았다.

내용도 전부 읽어본 건 아니지만 제법 꼼꼼한 편이고.

“오해하실까 싶어 말씀드리자면 대충 조사한 건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이 좀 있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카밀라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루스마이어 영지는 제가 알기로도 좀 익숙한 장소라서요.”

“익숙하다고?”

“고립된 그 영지는 주위 가문들 중에서 그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죠. 그러면서도 통행료는 다 받으려 하고 이번에는 아예 테러까지 감행했다죠? 키얀이라는 그 녀석을 필두로요.”

놀랐다.

마치 그 파티장에 있었던 것처럼.

카밀라는 내가 본 그 장면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당사자와 직접 만나 대화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잠깐 루스마이어라면… 카밀라. 너 설마…!”

“역시. 도련님은 금방 눈치 채시네요.”

내 짐작이 맞다는 듯 카밀라는 긍정의 미소를 보였다.

“루스마이어는 과거 데올 가에서 도맡아 관리하던 곳이다 보니 알고 있던 게 많았습니다.”

세상에.

이건 진짜로 쉬운 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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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n Family

Damn Family

The Damn Family Is Back Again
Score 8
Status: Ongoing Released: 2023
The torment was over. I thought my ties to them had been severed by escaping from the place where nothing belonged to me. Yet, the game I had started with the intention of seeing the ending to the bitter end, ended up dragging me into hell. The hell of a house full of damn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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