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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mn Family Is Back Again Chapter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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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7

기어코 땅이 다 파였다.

종이가 들어가 묻히기에는 충분했다.

후원 근처에 누가 그런 짓을 하겠느냐만 카르세인은 진심이었다.

이런 쓸데없는 건 묻어 버려야 한다며 온 손에 흙을 다 묻혔다.

하지만 막상 그걸 묻으려는 직전의 순간에는 손이 멈췄다.

혹시 이걸 보여준다면 혼나지 않고 자매들처럼 따스한 온기를 나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라면 자신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인정까진 아니더라도 최소 짤막한 칭찬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였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런 나약한 마음을 먹어버린 탓에 카르세인의 손이 허공에서 멈춘 것이다.

그도 제법 열심히 했었다.

아니. 제법이 아니라 자매들처럼 인정받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했다.

이건 개떡 같은 교사에게 수업에서 커다란 차별을 받으면서도 홀로 쟁취해 낸 선명한 증표다.

자기 나이대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과목들을 독학해 만든 만점짜리 성적표를 봤을 때 얼마나 기대에 젖었었던가.

그렇기에 구겨진 종이를 정말로 이 구덩이에 넣어 버리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었다.

입술을 질끈 문 채로 고민이 이어졌다.

그래서 카르세인은 이 현장을 들키고 만다.

“카르세인?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

사나운 첫째의 목소리.

카르세인은 곧바로 팔을 내리고서 뒤로 돌았다.

그리고는 주먹을 꾹 쥔다.

안 그래도 구겨진 성적표가 더 심하게 구겨지며 아예 공 모양으로 쪼그라들었다.

주먹을 꾹 쥔 탓에 들고 있던 종이의 정체를 들키진 않았으나 아리나에게 있어 이런 건 시선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 어머니의 후원에다 지금 이런 짓을 벌여?”

그렇다.

아리나가 보고 있는 건 카르세인이 든 것 따위가 아니다.

카르세인이 망친 후원의 땅.

저걸 보고서 눈매를 사납게 찢은 것이다.

“언니? 왜 그래?”

“큰언니? 무슨 일이야?”

두 자매가 아리나의 목소리를 듣고 나오자 그녀는 아예 들으란 듯이 고했다.

“카르세인이 어머니의 후원에다 저런 짓을 해놨어. 잘 가꾼 정원에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건지.”

“참나. 이번엔 또 거기다 화풀이를 한 거야?”

클레어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카르세인을 말썽꾸러기 보듯 쳐다봤다.

아리나는 한숨을 푹 쉬어 버렸고 플로라는 언제나 그랬듯 반달눈으로 곱게 접은 채 카르세인을 비웃고 있었다.

클레어가 행동에 가장 먼저 나선다.

카르세인의 이마를 검지로 쿡 찌르며 그녀는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야 너 후원이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래? 정원사도 손을 안대는 곳이야. 직접 식물을 가꾸는 취미가 있으셔서 엄마가 직접 가꾼다고. 근데 이딴 짓을 저질러?”

“클레어의 말대로다. 설마 여기서 모른다고 거짓말이나 할 셈은 아니겠지. 카르세인.”

“…”

꾸욱.

카르세인의 주먹에 힘이 더 실렸다.

희게 질린 피부에서 한층 분노가 우러나온다.

분명 기대로 점철되었을 텐데.

이걸 보여주면 인정받고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리 야단을 맞고 있으니 텅 빈 가슴엔 물기만 차오른다.

그렇기에 오히려 분노라는 감정이 사그라들어 버렸다.

어디 뭘 하러 왔었는지 여기서 저걸 판 이유는 뭔지 그게 아니라면 할 변명이라도 있는지.

자매는 카르세인을 몰아세웠다.

흙투성이가 된 두 손은 귀족스럽지 못하다며 지적했고 경망스러운 이 행동 자체도 따끔하게 지적 받았고 무슨 꿍꿍이든 간에 그만 두는 게 좋을 거라며 대놓고 엄포를 받기도 했다.

이사벨라가 실내 정원에 물을 다 주고 난 뒤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

마침내 이사벨라가 그 장면을 보았을 때라고 한들 변화는 없었다.

“…무슨 일이니 카르세인?”

무미건조한 공작 부인의 물음.

그걸 듣고 카르세인은 확신했다.

결론이 나와 버렸다.

아무런 기대도 하면 안 된다.

인정받을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칭찬?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

전부 갖다 버려야 했다.

카르세인 바그란드에게. 아니 카르세인에게.

공작가의 볕은 결코 들지 않는다.

-툭.

몰래 숨겼던 성적표가 구덩이 안으로 정확히 낙하했다.

그게 소년이 후원에서 얻은 결론이었다.

***

-띠링!

▶구겨진 성적표 메모리얼이 종료되었습니다!◀

후원에 비쳤던 비참한 카르세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빛이 주변을 감싸며 현실로 되돌아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후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산뜻한 볕이 드는 실내 정원과 벽을 등지고서 그늘이 진 한 모퉁이. 이 후원은 명백하게 명암이 갈리는 장소였다.

그 명암이 갈리는 장소에서 암(暗)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던 메모리얼과 카르세인을 보며 나는 또 다시 기분 나쁜 과거를 떠올리고 말았다.

“하 씨발.”

카르세인은 멍청이였다.

이 빌어먹을 가족들에게 저 성적표를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품고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었으며 칭찬이라는 허울없는 걸 받고 싶어 미련처럼 그 성적표를 쥐고 있었던 멍청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멍청이였다.

나도 기대를 품었었다.

인정받고 싶단 헛된 희망을 가졌었다.

칭찬이라는 그 쓸데없고 허울없는 걸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 들뜬 적이 있다.

매번 날 괴롭히는 셋째의 기를 눌러주고 싶었다.

뭐든 맘에 안 들어하는 둘째에게 나도 너보다 잘하는 게 있다며 으스대고 싶었다.

나를 민폐 덩어리로 취급하는 첫째에게 확실히 보여주며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날 데려오고 난 뒤 언제부턴가 정신병이 사라져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어머니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명문교로 취급 받는 그 학교에서 모의고사 전교 석차 1등을 당당히 차지했다는 성적표를 보여줄 생각에 잔뜩 들떴었다.

그걸 본 가족들의 색달라진 반응을 바라며 모종의 희망을 품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멍청한 생각이지 않은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딴 건 아무런 소용도 없다 소리치며 그 성적표를 빼앗아 찢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근데 그게 눈앞에서 똑같은 상황으로 펼쳐질 줄이야.

성적표 때문이라는 것도 그렇고. 이루어질 리 없는 염원을 품은 것도 그렇고.

끝내 그 성적표를 밝히지 않으면서 현실을 뒤늦게 받아들인 것도 다르지 않았다.

참 얄궂지 않은가?

하지만 그 덕분일까? 싸늘한 피가 감돌기 시작한다.

내가 당한 게 아닌데 과거의 일만으로도 두 번이나 경험하게 되는 듯한 이 역겨운 느낌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걸 느끼고서야 비로소 냉정해질 수 있었다.

-띠링!

▶5초 후 시간이 다시 흐릅니다!◀

타이머가 떴다.

5초 후 다시 이 세상의 시간은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 다음 에피소드나 똑바로 진행하란 거겠지.

나도 동의한다.

미래의 나는 과거의 자신을 보며 헛소리나 지껄일 바에야 현재의 나 자신에게 에피소드나 똑바로 진행하라고 말해주겠지.

▶메모리얼 효과가 끝났습니다!◀

▶선택지를 완료하세요!◀

굳었던 몸이 다시 움직인다.

카르세인에게 공작가의 명암과도 같았던 이 성적표는… 내가 직접 들고 가는 게 낫겠지. 이건 적어도 내가 가져가서 없애주는 게 맞을 거다.

흙먼지를 적당히 털어내고서 나는 꾸깃꾸깃 접힌 성적표를 고이 접어다 주머니에 넣은 뒤 실내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메모리얼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이사벨라가 분무기로 물을 주고 있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왔니.”

덤덤히 목소리를 내자 이사벨라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동시에 내 눈도 그녀의 친밀도 박스로 향한다.

[ 이사벨라 바그란드 ]

[ 친밀도 : 58% ]

지난번에 봤던 이사벨라의 친밀도가 50%였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상승한 건진 몰라도 그게 58%까지 올라가 있으니 게임 내적으로 카르세인에게 별다른 말은 안 할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 장담컨대 절대 그렇지 않아.’

이사벨라의 눈빛이 나를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다.

뭔가 기대하는 눈빛은 아니다.

뭔가를 인정해주려는 눈빛도 아니다.

칭찬? 가당치도 않다.

그녀는 지금 나를 꾸짖으려 하고 있었다.

“네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알고 있단다. 카르세인. 허나 이번에는 제대로 꾸짖어야겠구나.”

역시나.

예상이 빗나가질 않는다.

돈을 받자마자 그렇게 함부로 쓰다니. 참 잘못된 지출입니다. 그렇죠?

어차피 이 말이나 하고 싶어서 부른 거겠지.

“계속 말씀하시죠.”

나는 무덤덤히 답해주었다.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설령 내가 혼날 일을 하지 않았다 주장해 참작의 여지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

공작가의 하인들과 기사들이 싹 물갈이된 이후 카르세인에게는 그간 엠마의 횡령으로 인해 받지 못했던 용돈을 일시불로 지급했다.

동시에 재무 관리에 조금 더 힘을 썼다.

다음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철저하고 꼼꼼하게 관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탓에 카르세인이 최근 얼마나 큰 지출을 냈는지 알 수 있었다.

제법 큰 돈이 일시불로 지급됐고 공작가에서도 이에 응하는 양의 돈이 한 번에 빠져 나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카르세인의 이름으로.

이사벨라는 그걸 알아차리고서 카르세인을 이곳으로 불러다 이야기할 참이었다. 그리 막 사용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고 조금은 따끔하게 지적해야 했다.

“네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알고 있단다. 카르세인. 허나 이번에는 제대로 꾸짖어야겠구나.”

이사벨라는 카르세인이 도착하자마자 그리 운을 떼며 매를 들 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마냥 카르세인의 잘못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나쁜 선례가 있었다. 그때처럼 속상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조금 기다릴 예정이었다.

카르세인이 생각을 마치고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 들어보기 위해서.

헌데.

“계속 말씀하시죠.”

카르세인은 제 이유를 대기보다는 태연한 얼굴로 그리 답하는 게 아닌가.

“…먼저 할 말은 없는 거니?”

입술을 달싹이던 이사벨라가 한 번 더 물었다.

그러자.

“예.”

카르세인은 이번에도 단답으로 긍정했다.

정말로 돈을 막 쓴 것이 맞다고 인정이라도 하듯이.

‘순순히 그리 인정한다면 별 수 없겠구나.’

그렇다면 이건 따끔하게 지적해야겠지.

귀족으로서도. 한 명의 바그란드로서도. 그리고 한때는 한 영지를 다스렸던 영주로서도 지적받아 마땅했다.

“카르세인. 너는 네 용돈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알고 있니?”

“아니요. 잘 모릅니다.”

“그럼 이참에 알아 두거라. 네 용돈은 바그란드 공작가가 다스리는 영지들과 가신들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특히나 영지민들로부터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이 우리의 평온한 생활을 책임지고 떠받쳐주는 거란다.”

분무기를 한쪽으로 치우며 이사벨라는 말을 이어간다.

“네겐 한낱 용돈에 불과하겠지. 허나 그들에겐 생활비를 넘어 몇 달 몇 해의 풍족한 생활이 가능한 돈이다. 그런 돈을 한낱 사치에 사용해 날려 버리는 건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

“어느 정도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정도라면 뭐라 하지 않겠다만 귀족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이 과한 사치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거라. 다음에는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르지 말고 백성들의 충성을 저버리지 말고 감싸 안아 주거라.”

이 정도면 카르세인도 어련히 알아들었을 테지.

이사벨라도 꾸짖는 건 여기까지만 할 생각이다.

그 큰 돈을 어디다 썼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부정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러니 이젠 손을 뻗어줄 때다.

채찍을 휘둘렀으니 이젠 당근을 주기도 해야 하는 법.

카르세인을 부른 건 이 이야기와 더불어 동부 귀족 회의에서의 참여 권한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다.

이사벨라는 카르세인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려 했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련히 달랜 뒤 샤트렌 영지 때의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었다.

그러자 카르세인은 이사벨라의 손을 밀어냈고.

“잘 알아들었습니다.”

이사벨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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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n Family

Damn Family

The Damn Family Is Back Again
Score 8
Status: Ongoing Released: 2023
The torment was over. I thought my ties to them had been severed by escaping from the place where nothing belonged to me. Yet, the game I had started with the intention of seeing the ending to the bitter end, ended up dragging me into hell. The hell of a house full of damn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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