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철컥- 촤자작-
소녀의 급소 부위만 겨우 가리고 있던 얇은 철판이 확장되며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갑옷에선 미세한 침이 튀어나와 그녀의 전신으로 파고들었다·
철컥- 우우웅-
[급속 자가 회복 시스템]
[현재 신체 손상률 32·68% 1차 회복 완료 2차 회복 완료까지 16시간 43분 14초]
[잔여 동력 13·2%]
[급속 자가 회복 시스템 일시 정지 전투 모드로 전환]
파스슷-
소녀는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음을 깨달았다·
“역장이 걷힌다!”
“조금만 힘내라!!”
“좀 더 힘을 모아!”
우우웅-
이윽고 소녀의 머리까지 검붉은 전신 갑주가 머리까지 뒤덮이고·
명치에 박힌 보석과 두 눈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신체 강화 모드 전환]
[근력 강화 – MAX]
[순발력 강화 – MAX]
[동체시력 강화 – MAX]
[감각 강화 – MAX]
[내구도 강화 – MAX]
···
소녀의 망막엔 위와 같은 텍스트들이 끝도 없이 나열되고 있었다·
소녀는 망막에 맺힌 텍스트를 더는 응시하지 않았다· 텍스트로 보지 않더라도 전신에서 느껴지는 웅혼한 힘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쨍그랑-
이윽고 역장의 균열이 전체로 퍼져나가 산산조각이 났다· 기사와 마법사들이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대로 소녀는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복수심이라는 이름의 그 무엇보다 어둡게 질척거리는 새까만 별이 타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됐어!!”
“방금 봤겠지? 저년에겐 뭔가가 있다!! 생포해라!”
“방어막의 내구도가 심상치 않았어·”
“저 ‘괴물’ 따위보다 훨씬 흥미로운 연구가 될 거야! 하하·”
그러나 그들이 보고 있던 검붉은 소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
“뭐야?”
초인적인 수준의 동체시력을 자랑한다는 제국 기사조차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소녀는 먼저 ‘괴물 따위’라는 망언을 내뱉은 마법사의 곁으로 접근했다· 비상식적인 어마어마한 속도에도 소녀는 강화 슈트의 서포트와 더불어 비상한 재능으로 단번에 적응해냈다·
그 결과 이 자리에 서 있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그녀가 목표 지점에 도착한 지금까지도·
소녀는 망언을 내뱉은 마법사의 옆에 서서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어마어마한 힘·’
소녀는 팔을 가볍게 휘저었다·
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풍압과 함께 팔을 휘두른 방향의 일대가 쓸려나갔다· 궤적을 따라 건물이 사나운 태풍을 직격한 듯 무너져 내렸으며 지면에는 거대한 용이 할퀴고 지나간 듯 깊은 상흔이 새겨졌다·
“끄아아아악!”
“저기 있다!”
“언 언제 저기에?”
“미친! 방금 뭐였지?”
“맙소사·”
소녀는 팔을 바라보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손을 날카롭게 펼쳐 마법사의 목으로 휘둘렀을 뿐인데·
“아 악마!”
“악마가 틀림없다!!”
“뭐 뭐야?!”
“말도 안 돼····”
“미친! 다들 자리부터 잡아라! 범상치 않은 계집이다!”
“붉은 악마····”
그들의 눈엔 경악과 공포만이 너울지고 있었다· 비르델은 저들이 외친 ‘붉은 악마’라는 말에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슬픔? 아픔? 절망?
그녀가 겪었던 참혹한 기억들이 떠올라 그녀의 마음을 헤집었다· 그러던 그녀는 이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과 같이 악마를 보듯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은 여전했으나 반응은 정반대였다· 멸시와 분노가 아닌 공포와 절망으로·
“하하하·”
그녀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털어낸 그녀의 눈에는 단호한 결심이 떠올라 있었다·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최대 최악 최흉의 악마가 되어주지·”
소녀 비르델이 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클레이라는 이름의 제국 기사였다· 소녀는 순식간에 이동한 뒤 클레이의 목을 움켜잡고 들어 올렸다·
“컥!”
그의 부단장이란 직위도 그의 드높은 경지도 그의 심후한 오러도·
그 무엇 하나 소녀를 막아내지 못했다·
소녀는 클레이의 목을 움켜쥐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와 거래했던 제국 기사 단장이 몸통에 칼을 꽂은 채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허나 그것도 이제 마지막이리라·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나요?”
“쿨럭!”
기사단장은 이미 앞이 보이지 않는 듯 동공의 색이 바래져 있었다· 기사단장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안··· 하네·”
“····”
“부디 제국을····”
단장은 마지막 말을 잇지 못했다· 소녀는 단장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알았더라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르겠다·
소녀는 단장의 눈을 감겨 주었다· 비록 그녀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었지만 분명 부족민들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음은 틀림없으므로·
소녀는 일어서서 클레이의 목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때 클레이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발악하듯 입을 열었다·
“끄아아악! 이 미··· 친 년·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객기인가? 아니면 발악인가·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건가?
“크흐흐· 아직 살아있는 부족민이 있다·”
클레이의 의미심장한 말에 소녀는 가슴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부족민?”
“크큭· 그래· 아직 살아남은 부족민들이 있을 텐데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다· 크크큭·”
“····”
클레이의 얼굴에 희망이 어렸다· 이 계집은 부족민을 살리기 위해 지옥길도 마다하지 않았던 계집· 인질을 무시할 수 없을 터다·
“지금이라도 당장 용서를 빌면 참작해 주마· 크큭· 네년이 협조만 잘 해준다면 남은 부족민들의 생존을 보장해 주겠다·”
“····”
“대우도 섭섭지 않게 해주마· 마탑에서도 함부로 손쓸 수 없게 막아주지·”
클레이는 이쪽에 인질이 있는 이상 절대 손을 쓸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 증거로 소녀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크크큭· 그러니 잘 생각해서···? 끄으아아악!”
순간 비르델이 클레이의 오른팔을 잡고 우드득 뽑았다· 피 분수가 분출하며 고통으로 인해 클레이의 눈이 흰자위로 뒤덮였다·
“끄아아악! 아아악! 감히! 감히!!”
갑작스레 팔이 통째로 뽑힌 고통에 클레이가 몸부림쳤다·
“누굴 바보로 아는 건가?”
그녀의 희번득한 눈빛이 그를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정말 혹시나 누군가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행동에 그들이 피해를 볼지도 몰랐다·
허나 더는 그런 막연한 가능성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을 위해 희생해왔다· 이제는 희생을 자처하며 얽매이지 않겠다·
아니 오히려 부족민을 건드린다면 그녀의 분노를 직접 받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리라·
비르델은 클레이의 왼쪽 눈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네게 눈 한쪽을 남겨주마· 제국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 눈으로 지켜보면 재밌을 거야·”
“끄아아악!”
비르델은 몸부림치는 클레이의 왼쪽 귀를 잡았다·
“한쪽 귀는 제국민의 비명을 들을 수 있도록 친히 남겨주지·”
으드득-
“끄아아아아악!”
클레이의 찢어질 듯한 비명에 지켜보던 마법사와 기사들이 공포로 인해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녀의 잔혹한 행위에 그들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허나 그들도 정식으로 훈련받은 전투원· 이내 마음을 다잡고 무기를 앞세우고 나섰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공격해라!”
“마법사는 전력을 다해라! 수도 안이라고 힘을 아끼지 마라!”
이제껏 구경만 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마법사들은 이미 마법을 영창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퍼어엉-
서거걱-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점에 쏟아지는 마법 폭격에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주위의 건물이 무너지며 비산했고 거대한 구덩이가 생길 정도로 엄청난 공세가 이어졌다·
이만한 공세라면 신이라고 해도 별수 없을 터!
이윽고 기사들이 연격을 위해 흙먼지 사이로 뛰어들었다·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허나·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
“설마 피한 건가?!”
“도주했나?”
“주위를 샅샅이 뒤져라!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긴장을 풀지 마라! 보통의 움직임이 아니다! 기사들도 안력에 오러를 집중하도록!”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그녀는 혼절한 클레이를 집어 던진 후· 두 다리를 굽히곤 정권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후우····”
‘왠지 될 것 같아·’
커뮤니티의 어떤 친절한 무인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호흡과 자세· 물론 그 무인도 단순히 설명한 것만으로 그녀가 재현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다·
비르델은 눈을 감고 지면을 단단하게 디딘 발끝에서부터 힘을 그러모아 주먹을 비틀며 내질렀다·
이상적인 회전 각도로 대기를 가르는 그녀의 주먹은 채 내지르기 전부터 대기가 정권을 중심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녀는 전신을 타고 이동하는 어마어마한 힘을 고스란히 느끼며 정권을 내질렀다·
천붕권(天崩拳)·
대기가 찢어지며 비명을 지른다· 그녀의 투로를 따라 일순간 진공 상태가 만들어지며 파동이 밀리며 중첩된 대기가 전방을 향해 격류를 만들어내었다·
콰아아아앙-
어머니에게 정체 모를 주사기를 들이댔던 기사와 그녀를 공격했던 기사단 마탑의 마법사들이 일격에 쓸려나간다·
어마어마한 힘의 격류에 거대한 뱀이 지나간 듯 지면이 파여 대운하를 방불케 하는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녀의 정권은 광장의 북서쪽 일부를 무너뜨리며 모든 걸 소멸시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을 무너뜨리는 일격·
“····”
소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막연히 할 수 있겠다 싶었을 뿐인데·
소녀는 전율을 느꼈다· 마치 상상을 현실로 만든 것과 같은 전능감이 느껴졌다·
소녀의 발밑으로 지면이 거미줄처럼 쩌저적 갈라졌다· 어마어마한 힘이 슈트를 매개로 맥동하고 있었다· 단지 잔류한 힘의 여파만으로도 지면이 갈라지고 거센 풍압이 일었다·
몸도 성치 않은 소녀가 일으켰다기엔 믿기지 않는 이적·
소녀는 불가능을 실현시킨 슈트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기물을 보내준 관리자라는 자는 대체 누굴까? 인간이 맞기나 한 걸까? 신이 아닐까?
소녀는 얼굴도 보지 못한 관리자를 떠올리며 전율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관리자가 말했던 파딱···· 어쩌면 할 만할지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끼에에에엑! 뿌셔뿌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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