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
“UFO?”
유선형의 수려한 곡선·
하얀 광택이 나는 두툼한 원반 중심엔 반구형의 몸체가 달려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불빛이 감도는 전조등·
천장을 부숴버리며 등장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UFO였다·
게다가 UFO는 분명 허공에 떠 있었다·
‘뭐지?’
영식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저 저딴 게 등장할 수 있는 세계관이었나?
아무리 쉘터라도 저런 이질적인 비행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리고 그건 각성자도 마찬가지였다·
영식은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둘러봤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그냥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그때·
[임시 집사로 간택되었습니다·]
“···뭐?”
갑작스레 머릿속에 울린 목소리에 영식의 입이 벌어졌다·
***
차가운 인상의 단발머리 여인이 등에 기다란 창을 메고선 바삐 걸음을 옮겼다· 여인의 곁으로 사내 하나가 따라붙었다·
“D섹터에 소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소란? 좀비가 습격한 건가?”
여인은 D섹터라는 말에 인상을 미미하게 굳혔다· 여인의 심기가 편치 않은 것을 눈치챈 사내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좀비나 습격은 아닌 모양입니다· 다만··· 소란이 일었던 곳이····”
“됐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되겠지·”
D섹터라면 쉘터 외부에 조성된 빈민 거주 구역을 뜻했다· 그리고 그곳은 그의 ‘전’ 동료가 머무는 곳이기도 했다·
‘멍청한 녀석····’
윤승아는 호구처럼 착해빠진 녀석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 좀 차리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혀를 차며 걷던 그녀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어머 승아 언니 아냐? 바쁜가 봐?”
“백슬기····”
김영식의 ‘전’ 여자친구· 최근엔 쉘터의 리더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백슬기였다·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화장을 한 20대의 여인은 청초하면서도 묘한 색기가 있는 얼굴이었다· 원숄더 니트와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에 승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세상에서도 저런 옷차림과 화장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신머리였다· 식수와 식량은 언제나 부족했고 전투원이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죽어 나가는 상황이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꾸미는 거야 이해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
윤승아는 현장에서 뛰는 전투 간부인 만큼 치장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누군가는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거나 화사한 모습으로 주위 사람의 우울함을 달랠 수도 있었다·
허나 승아의 머릿속으로는 저런 행색을 하고 돌아다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식수가 소모되고 옷과 화장품을 구하기 위해 수색대의 인원들이 죽어가는 것만 떠올라서 결코 좋게 보이진 않았다·
“흐응· D섹터에 문제가 생겼다며?”
“너는 알 거 없잖아?”
승아는 슬기를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허나 슬기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왜 상관없겠어? 거긴 영식 오빠 있는 곳 아냐?”
윤승아는 백슬기에게 경멸의 눈빛을 쏘아 보냈다· 윤승아의 눈빛을 받은 그녀는 실실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녀가 김영식을 뼛속까지 이용하고 버린 여자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
“그래· 경비대의 부대장께서 어련히 바쁘시겠어? 직접 발로 뛰셔야지? 언니가 그토록 감싸는 오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면 어떡해?”
그 속에는 비웃음과 함께 멸시가 들어가 있었다· 마치 ‘네가 관심 있는 남자는 내가 버린 남자야·’라고 비꼬는 듯한 비웃음이었다·
사실 승아로서는 김영식에게 갖는 감정은 이성보다는 존경에 가까웠다·
“그래· 적어도 꼬리만 치고 다니면서 쉘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네 녀석보다는 중요하겠지·”
“호호·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릴· 누가 들으면 내가 놀고먹는 줄만 알겠어?”
“그럼 아니었나? 좀비 한 마리 잡아본 적 없는 네가 딱히 내정을 담당하는 것도 아니고· 아 쉘터의 꽃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
“···뭐· 무뚝뚝한 목석같은 언니가 뭘 알겠어? 도대체 왜 그런 머저리에게 관심을 가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해봐·”
잔뜩 비웃음을 보인 슬기는 향수 냄새를 풀풀 풍기며 멀어졌다·
“흥·”
승아는 슬기와 만나느라 지체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D섹터에서 벌어졌다는 소란에 불길함을 느꼈던 탓이다· 현재 리더 유병태의 미움을 받고 있는 그에게 자그마한 분쟁이라도 생겼다간 괜히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외부의 D섹터라고 해도 쉘터의 크기를 생각하면 절대 작지 않다· 그러니 꼭 영식과 연관이 있으리라곤····
“김영식! 당장 나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라!”
“건물을 무너뜨렸다는 건 우리 쉘터를 향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냐?”
“혹시 슬래터들과 손을 잡고 테러를 한 건 아니겠지?”
그녀가 도착했을 땐 각성자들이 영식의 거처를 포위한 뒤였다·
으득-
그 바보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각성자들이 포위하고 있는 건물은 폭격이라도 당한 듯 지붕과 2층이 와르르 무너져 있었다·
“김영식! 네 녀석이 우리 리더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알고 있으니 어서 나오라고!”
“만약 불응한다면 이쪽에서 강경하게 나가더라도 할 말이 없겠지?”
사실 각성자들이 아무 능력 없는 김영식을 경계할 리 없었다· 다만 저들이 연극을 하듯 과장되게 외치고 있는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꼬투리를 잡아 추방하려는 의도이리라·
그녀는 인상을 굳히곤 그곳으로 다가갔다·
***
“그··· 우주선님? 대체 어떻게 하면 좋냐구요! 안 그래도 저를 쫓아낼 궁리만 가득한 녀석들인데····”
[주인님이라고 부르십시오·]
“아 아니 그게 무슨···!”
어이가 없는 영식은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고 낑낑대고 있었다·
끼이익-
“끄으응!”
하필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입구의 철제문도 비틀려 그의 힘으론 쉬이 열리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밖에서는 평소 그를 아니꼽게 보던 각성자들이 진을 치고 수작질을 부리고 있었다·
“어이! 김영식 근신 중인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여긴 엄연한 우리 쉘터 거주 구역이라고·”
“하하· 지금 안에서 달달 떨고 있는 거 아냐?”
“그럴지도·”
“리더는 이런 병X 같은 놈을 왜 신경 쓰는지 모르겠군·”
“어쨌든 근신 중 이런 테러를 일으킨 것에 대해선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지·”
결국 각성자들이 작정하고 진입할 때까지 영식은 나가지 못했다·
“포박해!”
“살살하라고· 무각성자니까·”
“하하· 대개 하잘것없는 능력이라도 각성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녀석은 아무런 능력도 각성하지 못했다며?”
“그래 몸도 예전 그대론가 봐·”
“큭·”
영식은 과잉 진압하는 각성자들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영식은 진실을 밝히라는 각성자들의 추궁에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밝혔지만·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없는데·”
“이젠 헛것까지 보는 거냐? 완전 미친놈이네·”
“그냥 우리 놀리는 거 아냐? 무슨 우주선이니 뭐니 헛소리하는데?”
“····”
영식은 자기 눈엔 버젓이 보이는 우주선이 타인에겐 전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술 먹고 얌전히 처잘 것이지·”
“그런데 진짜 이건 어떻게 무너뜨린 거야?”
“뭐 어디 수류탄이라도 공수했나? 별다른 흔적은 안 보이는데·”
“알 게 뭐야· 어쨌든 현행범을 잡았으니 끌고 가자고·”
그 이후로는 그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리더의 근신 명령에 항명하는 건가?”
“초창기 멤버로서 대접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리더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주제에·”
“능력이 없으면 알아서 조용히 살 것이지·”
“슬기 누님도 저 녀석을 어떻게든 이끌어주려 했지만 구제불능이라 포기했다며?”
“쯧쯧·”
여기 쉘터를 세우고 운영하는 능력자인 유병태는 이곳에서 ‘신’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런 유병태가 아니꼬워하는 김영식은 천인공노할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영식의 공로를 아는 멤버들은 말을 아끼기도 했으나 그들도 유병태의 위상을 생각하면 쉬이 나서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초창기라면 몰라도 어느 정도 쉘터가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된 지금은 영식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추방이라뇨? 각성자도 아닌 사람을 추방하면 그냥 죽으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
“승아야 모르면 빠져 있어라·”
“왜요? 영식이가 이 쉘터에 공헌한 게 적지 않다는 걸 다들 알잖아요?”
“그래도 무능력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
그들은 눈을 피하며 제대로 답해주지 않았다·
“승아야· 너 그 발언 위험한 거 알지? 리더가 너를 좋게 보고 있으니까 그나마 넘어가 주는 거야· 적당히 해·”
결국 영식의 추방 명령을 승아 혼자서는 막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 네가 나를 구해줬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러게 왜 그렇게····”
승아는 영식의 앞에서 ‘바보 같다’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야 그녀도 그의 바보스러움 때문에 목숨을 구한 것이니까·
“아니다 승아야· 너도 괜히 나 감싸다가 밉보이지 말고 얼른 들어가·”
영식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녀도 각성했다곤 하나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아 쉘터 내에서의 영향력이 약했다· 정치질에 약하기도 했고· 괜히 눈에 띄었다간 좋은 꼴은 못 보리라· 특히 쉘터 내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그녀에겐 조심해야 할 사안이었다·
쉘터의 입구·
자동차 철조망으로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는 곳 앞에는 그와 승아만이 서 있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엔 팔짱을 끼고 경계를 서는 각성자만이 날카로운 눈을 뜬 채 그들을 보고 있었다·
“하하····”
영식은 길고 긴 장벽으로 감싸인 쉘터를 눈에 담았다·
그간 세상이 멸망하는 와중에도 정신을 다잡고 동료를 규합해 쉘터를 운영하며 온갖 위기를 극복해 모두를 이끌었던 그를 배웅한 사람은 승아가 유일했다·
승아는 한숨을 쉬며 자그마한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거라도 챙겨 가· 맨몸으로 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거니까·”
“이건···· 난 있어도 쓰지도 못하는데·”
영식이 가죽 주머니의 내용물을 보자 요사스러운 붉은빛의 보석이 한 아름 들어있었다·
“각성자의 능력을 키우는 데 쓰인다지만 밖에서는 화폐로도 사용한다고 하더라고·”
“승아 너····”
영식은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으나 잠시 멈칫거리더니 받아들였다·
“잘 쓸게·”
“그래 꼭 무사히··· 아니다· 잘 가라·”
“···그래·”
영식은 자신이 지난 몇 년간 가꿔왔던 쉘터를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몸을 돌렸다· 승아도 그의 성화에 못 이겨 쉘터 내부로 들어간 뒤였다·
“····”
영식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비행체가 보였다·
[순순히 손에 든 것을 넘긴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영식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순순히 댓글을 달아 주신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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