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잔뜩 긴장했던 영식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흘렸다·
“하아·”
푸른 귀신이라 불리는 중간 보스가 서포트계 각성자의 도움을 받아 하늘로 날아올랐을 땐 식겁하는 줄 알았다·
쾅-
“으악!”
놈이 쏘아 보낸 수정 창이 기체에 직격했다·
이제껏 공격당한 적 없던 히페리온이 처음으로 공격을 허용한 순간이었으니·
허나 히페리온의 불벼락 앞에 자비는 없었다·
플라즈마 집속 커터기에 푸른 귀신이 붉은 귀신이 될 뻔하곤 황급히 물러났던 탓이다·
[흥미롭군요·]
“!!”
영식은 히페리온이 그렇게 관심 있어 하는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웨이브’라는 재앙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이후로·
어쩐지 질투가 아주 조금 나기도 했다·
전생에 자신이 먹이를 줄 땐 온갖 시크한 척하던 고양이가 귀찮아하며 발로 툭툭 밀고 괴롭히기만 했던 동생에게 유독 관심을 보였던 그때처럼·
게다가 푸른 귀신이라 불리는 저 녀석은 인간 말종 아니던가?
슬래터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원흉이었다· 좀비에게서 살아남기에도 급급한 세상에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혼자 저지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범죄를 부추기고 구조화시켜 쾌락과 폭력에 미친 집단을 만들어낸 각성자·
그런 녀석에게 흥미를?
[충분히 쓸모가 있을 것 같습니다· 훗·]
“···?”
분위기가 조금 미묘한 말투였다·
[상처 없이 수집해야겠습니다·]
히페리온의 말에 이전에 했던 쓸데없는 생각이 싹 달아났다· 어쩐지 수집이라는 단어가 그리 좋게 들리지 않았다·
뭐야 뭐야· 무서워·
이후로는 히페리온의 독주 무대였다· 1-12단계의 업그레이드만으로도 적수가 없었다· 겨우 유효타를 남길 뻔한 푸른 귀신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히페리온은 제자리에서 퍼붓기만 하던 공격을 멈추고 고속 비행을 시작했다·
급가속 급정지 방향 전환 S자 커브·
온갖 비행술을 펼치며 슬래터들을 털어댔다·
슬래터들은 인질들로 방패막이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히페리온의 고속 비행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히페리온은 각이 나오는 순간 가차 없이 타깃의 머리통을 뚫어댔다·
슬래터들은 인질로 몸을 가렸다고 생각했겠지만 완벽하게 가릴 수 있을 리가· 틈이 보이면 작은 틈으로 공격을 적중시키고 자세가 무너지면 그대로 진공 압축탄 기관포로 몸을 뚫어댔다·
슬래터들을 가지고 놀 듯 쉽게 처리해 버렸다· 미쳐버린 몇몇 슬래터가 인질의 숨통을 끊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멀쩡했다· 나머지 슬래터들은 혹시나 싶어 끝까지 인질을 죽이지 못했던 탓이다·
어느새 남아 있는 슬래터는 푸른 귀신 하나·
“거기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반드시 네놈의 머리통을 부숴주마!”
어··· 제가 한 거 아닌데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히페리온이라고····
“네놈의 창자를 씹어먹고 네놈이 아는 사람 네놈을 아는 사람 모두 하나하나 찾아내 죽지도 못하는 삶이 뭔지 보여주겠다!!”
놈은 제 분노에 못 이겨 온갖 욕설을 퍼붓는 중이었다·
아니 제가 아니라니까요?
“!%@&@##%!%@^#!!”
듣는 것만으로도 손발이 떨릴 만큼의 흉악한 욕설이 이어졌다·
“그··· 히페-”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요·]
미미한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집사를 욕할 수 있는 것은 저뿐입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욕을 먹··· 아 아니·
어쨌든 말이 조금 이상했지만 영식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묘하게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 그래! 예전에 키우던 우리 집 돼냥이도 동생에게서 밥을 얻어먹고는 결국 자신의 곁으로 돌아왔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교육’을 시작합니다·]
이후로 무자비한 응징이 이어졌다·
고열의 광선이 놈에게만 집중되었다· 히페리온은 일부러 고도를 낮춰 놈을 약 올리며 끊임없이 광선을 쏘아댔다· 128개의 빛줄기가 놈에게 집중되며 수정으로 변한 놈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적어도 영식이 느끼기에는 히페리온이 일부러 죽지 않을 만한 공격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
“끄아아악!”
결국 능력의 한계 때문인지 놈이 고통을 느끼며 능력이 풀리려 하면 히페리온은 공격을 멈추고 허공에서 유유히 기다려주었다·
그러다 회복하면 또 패고· 또다시 회복시킨 후 또 패고· 회복할 땐 고통을 느낄 만큼만 출력을 줄여 쏘아대고·
놈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정신이 무너질 때까지 도망치지도 못하도록 탄도를 조절하며 끊임없이 괴롭혔다·
결국 놈은 무리하게 능력을 사용한 탓인지 혼절에 이르렀다·
히페리온은 놈이 의식을 잃은 후로도 한참을 괴롭히다가 작은 비행 로봇을 보내 놈을 수거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금속을 ‘생산’해내는 인간이라니·]
[광자포 BRX-2A가 저등급 초소형 광학 무기라지만 잠시나마 공격을 버텨낸 걸 보면 훌륭한 금속입니다· 쓸모가 많겠군요·]
그렇게 푸른 귀신은 히페리온에게 감금당해 죽을 때까지 금속을 뽑아내는 광산이 될 운명이었다·
영식은 고개를 절레철레 젓고는 히페리온에게 부탁해 잡혀 있던 사람들을 인근의 쉘터로 인계하곤 유유히 떠났다·
***
윤승아는 황당했다·
“아니····”
분명 떠날 땐 조금 큰 자동차 크기의 비행체였던 것 같은데····
“하하· 놀랐구나·”
어지간한 군함의 크기가 되어서 돌아왔다·
“····”
영식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고 있었다· 왠지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
분명 크기는 커졌지만 이전과 비슷한 구석이 많아 같은 기종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어서 와· 우리의 우주 전함으로·”
우주··· 뭐? 우주 전함?
그리고 우리? 또 누가 있다고? 하기야 이렇게 큰 기계를 혼자서 운용하는 것도 이상····
[새로운 집사 후보?]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승아는 화들짝 놀랐다· 허나 그 이후로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하녀라니··· 히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뭐라 뭐라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영식이었다·
“일단 어서 와· 최근에 2단계로 넘어가면서 생활 편의 쪽으로도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서 지내기 나쁘지 않을 거야·”
우주··· 전함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윤승아는 올라탄 후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공중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안정감· 소음 또한 전혀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영식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어지간한 호텔 방에 머무는 느낌이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물론이고 식당과 세탁실 등 온갖 것이 다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시설 이름이 같다고 다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현대의 호텔과 비교도 안 되는 기술이 곳곳에서 보였다·
샤워실의 경우 자동 세차처럼 들어가 3초 만에 뽀송뽀송하게 나왔다· 세탁 시설은? 옷을 넣었다가 빼면 다림질까지 완벽한 상태로 나왔다· 비록 식사는 알약 하나로 대체했다지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기술력이었다·
아니 이걸 단순히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마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이 정도 수준은 아무것도 아니라네? 서민 중에서도 중하층 서민 수준이라고····”
듣기로는 그동안 자린고비로 버텨왔다고· 그나마 훌륭한 경험치원들을 만났기에 가능했다고·
그녀는 그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는 쉘터에서 추방당한 후 머리를 다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게 혼잣말을 하거나 영문 모를 소리를 하지 않나 멀쩡히 걷다가 함선의 벽에 대고 사정사정하지 않나·
여러모로 정신이상자로 보이기 딱이었다·
“아무튼 좀 쉬고 있어· 며칠 내로 데려다 줄 테니까·”
“그··· 괜찮을까?”
“음····”
그녀는 쉘터에 있는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영식이 쉘터에서 경고했던 ‘웨이브’라는 재앙의 전조 현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영식을 기다리는 동안 좀비들이 인간을 공격하기보단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고 또 무언가의 명령을 받는 듯한 모습도 관찰할 수 있었다·
소름 돋는 일이었다· 심상치가 않았다·
지능이 없는 좀비들에게도 숱하게 죽어 나가는 인간들에게 있어 군대처럼 단체 행동하는 좀비는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각성자는 사정이 조금 나을 수도 있지만 진화 개체를 생각하면 절대로 마음 놓을 순 없다· 현재 A급 각성자도 손을 못 대는 개체가 수두룩하다· S급으로서도 감히 접근하지 못할 개체도 존재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진화 개체들이 일시에 몰려든다면···?
끔찍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쉘터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나도 네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만 이쪽도 웨이브가 터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쉘터라는 능력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거든· 우리가 도착할 때까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야·”
하기야 그녀도 염치라는 게 있었다· 영식은 쉘터에서 온갖 멸시와 무시를 당한 처지였다· 결국 추방까지 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그를 보고 쉘터를 구해달라니·
정확히는 어머니를 구해달란 거였지만 영식에게는 이러나저러나 같을 터였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도 영식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허나 어머니가 자꾸 눈에 밟혀 졸라본 것이었다·
그녀는 불안했지만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급하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솔직히··· 그녀 혼자 쉘터로 복귀해서는 아무런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세 시간 후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단 세 시간도 되지 않아 좀비 백만 마리 이상을 학살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난 뭘 타고 있는 걸까?’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그녀는 함락 직전인 쉘터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애타는 그녀의 마음과 별개로 영식의 귀에는 히페리온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선별적 제거를 시작합니다·]
[모든 무기를 개방합니다·]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진화한 히페리온의 37종의 광학 무기와 2048문의 포신에서 나온 무수한 빛줄기가 지상으로 내려꽂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호에에· 방법은 연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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