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종일 전투를 치르느라 피와 얼룩으로 꼬질꼬질한 강남 쉘터의 각성자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붉은 빛줄기가 빗발치고 있었다· 그뿐인가? 수천의 미사일이 꼬리에 회색 연기를 달고 지상을 폭격했다·
수천 개의 유성이 빛줄기와 함께 낙하했다·
콰콰콰콰쾅!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저것’의 몸체 주위로 생성된 푸른 구체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 진화 개체를 정확히 가격했다·
파츠츠즛- 콰앙-
강철 같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그로울리’가 한순간에 재가되어 소멸했고 붉은 빛줄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색의 실선만이 남아 매캐한 냄새를 풍겨대고 있었다·
아····
‘저것’의 전면부로 거대한 구체가 응집되고 있었다·
단순히 응집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구름을 소멸시키고 대기를 밀어내 강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솜털이 쭈뼛 서며 소름이 돋았다·
우우웅-
대기가 비명을 지른다·
‘저딴 게 떨어지면 이곳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시간이 멈춘 듯 구체의 응집이 멈추었을 때·
이성이 없는 좀비든
지휘하는 진화 개체든
일반인이든
각성자든·
너나 할 것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태양이 떨어진다·
세상이 종말한다·
눈부신 빛이 온 하늘을 뒤덮고 세상이 녹아내린다·
번쩍-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후폭풍이 소닉붐처럼 퍼져나갔다· 지면이 뒤집어지며 건물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으아아악!”
“으헉!”
“피해!!”
모두가 머리를 감싸고 몸을 숙였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생명을 가진 자로서 목숨을 지키기 위한 무의식의 행동·
허나·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모두가 깨달았다·
어··· 어째서 살아있는 거지?
살았나?
아무 상처 없이 멀쩡하다는 것을·
허억·
흡·
하아····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곧이어 그들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우우웅-
폭발의 중심지를 반경으로 육각형의 푸른 역장이 모여 거대한 돔 형태로 펼쳐져 있었다· 아마 그것 때문에 후폭풍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을 터·
“말도 안 돼·”
누군가의 허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단체로 마약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보는 광경이 현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기에·
역장의 돔 안으로는 세상이 파멸한 듯 검은 번개가 치며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온갖 시체와 재가 허공을 부유하며 중심지로 몰려들고 있었다·
폭발의 중심지에는 검은색의 소용돌이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천천히 소멸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사람들은 고개를 올려 쉘터 위로 고고히 떠 있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쉘터의 총력을 기울여도 절망밖에 보이지 않았던 재앙이 한순간에 끝이 났다·
도무지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는 거대 전함 아래에는 S급 각성자로도 흠집조차 내지 못했던 6단계의 거대한 진화 개체 무더기가 저항다운 저항도 못 해본 채 머리가 날아간 채 쓰러져 있었다·
더는 좀비가 보이지 않았다·
***
[차원 중계기 설치에 필요한 동력원 수집을 완료했습니다·]
“응? 그게 뭐야?”
[차원 중계기를 설치하시겠습니까? Y/Y]
“어? 예스밖에····”
[거절은 거절합니다·]
영식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결국 차원 중계기인지 뭔지의 설치에 한창인 히페리온을 두고 하차해야 했다·
이전처럼 사다리를 타진 않아도 되었다· 비행 원반을 타고 내려오니 수많은 사람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째 좀 무서운데····”
모두가 입을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했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1급 보호 대상자입니다· 해당 등급에 걸맞은 보호 프로그램을 가동합니다·]
그리고 지상에 도착했을 땐 그런 걱정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전처럼 멸시와 무시가 아닌 경외와 공포가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기에·
유병태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
유병태의 시선에 쉘터 주민의 환영받고 있는 김영식의 뒷모습이 보였다·
“····”
허탈했다· 지난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등바등했다· 쉘터의 간부들과도 자주 싸웠다· 왜 미리 준비하지 않았냐부터 시작해 웨이브를 조심하라는 김영식의 말을 왜 무시하냐 꼭 쫓아내기까지 해야 했냐까지·
며칠 전만 해도 손을 비비며 아양을 떨던 주제에 말이다· 자기들도 웨이브라는 가설이 터무니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놈이 괜히 분란만 일으키고 단합력을 해치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간부진들의 험악한 분위기 탓일까?
쉘터의 모든 것이 삐걱거렸다·
그에 반해 저 녀석은 10분도 안 되어 모든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유병태는 살아남았음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론 질척한 감정이 들끓었다·
저 녀석과 엮이면 늘 이랬다·
마치 정답을 알고 있는 양 묘하게 확신어린 눈빛· 미래 예지 능력자들도 30% 정확도를 넘어서지 못하는데 제깟 놈이 뭘 안다고?
그런데 항상 일이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은 김영식의 뜻대로 흘러가 있었다· 쉘터의 리더는 엄연히 자신이건만·
더 이상의 분열을 용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쫓아냈다· 더 큰 위협이 되기 전에·
지금도 봐라· 쉘터의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구세주 바라보듯 그를 보고 있지 않은가?
으득·
“뭘 또 열을 내고 그래요?”
그의 곁으로 요염한 차림새의 미녀가 다가왔다· 녀석의 전 여자친구였던 백슬기였다·
‘이런 와중에도 이런 옷차림이라니·’
한심했다· 녀석의 여자를 빼앗았다는 성취감에 콩깍지가 씌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백슬기가 평소 칭얼거리는 걸 듣고 있으면 머리털이 빠지는 것 같았다·
“어디 가?”
“어디긴요? 당연히 저쪽이죠·”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김영식이 보였다· 병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반면에 백슬기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서 어쩌려고?”
“반갑다고 인사나 하는 거죠 뭐·”
병태가 그녀의 눈에 깃든 진득한 욕망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너····”
능력이 괜찮은 남자 각성자만 보면 꼬리 치는 그녀를 어찌 모를까· 지긋지긋했다·
그는 결국 허탈함에 입을 다물었다·
유병태는 저 멀리에서 영식에게 매몰차게 외면당하는 백슬기를 보며 좋아해야 할지 기분 나빠 해야 할지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
은하 제국의 수도 테라 행성 심처의 연구실·
오랫동안 씻지 못한 듯한 모습의 사내 둘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히페리온의 차원 중계기 설치가 완료된 시점이었다·
“드디어 중계기가 설치된 모양이군·”
데이터로 구축된 반물질 통로로 아스트랄 신호가 증폭되어 수많은 차원으로 뻗어나갔다·
이를 확인한 그들은 한숨을 쉬었다·
“축배를 들지·”
황제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그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마키아 장관과 칼렌 차관은 와인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혔다·
쨍-
“후····”
“고생하셨습니다·”
그들은 잔에 담긴 붉은 와인을 가볍게 한 바퀴 돌린 뒤 한 모금 들이켰다·
“하아····”
“훌륭한 맛입니다·”
칼슈타인 바빌론 황제 폐하의 즉위식 기념 한정판으로 1000병만 제작된 최고급의 와인이다· 제국 상위 0·1%의 부를 가진 그들이라도 구할 수 없는 와인이라 ‘최고급’이라는 수식에도 모자란 감이 있었다·
한 모금만으로도 혀끝에서 느껴지던 향기가 전신으로 퍼져 황홀감을 선사했다· 끝맛 또한 오감을 자극하더니 사르륵 사라져 찝찝함을 남기지 않고 여운만을 남기고 떠났다·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제국에서도 이 와인을 음미한 사람은 몇 되지 않겠지·”
“아무래도 특별한 명령을 수행한 이들에게만 상으로 내려지는 와인이니까요·”
“칼렌 차관· 사실 나는 이 와인의 맛보다도 우리가 해낸 일이 훨씬 더 달콤하게 느껴지네·”
둘은 성취감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데이터를 반물질로 구축하는 작업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들은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 이제 좀 쉴 수 있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오랜만에 집에서 푹 잘-”
말을 잇던 칼렌이 멈칫했다· 둘에게 황제 폐하의 칙령서가 동시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
“····”
[1급 명령서]
-메타버스로 고급품 상점에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상점 주인 모델링을 은하 제국의 아이돌 ‘뉴세라핌’으로 설정·
-추후 포인트 적립제 및 각종 프로모션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후략)
-아무튼 기한은 최대한 빨리·
“····”
“폐하께선 도대체 뭘 하시고 싶으신 걸까·”
“그 글쎄요····”
“폐하의 심중을 파악하긴 불가능하겠지·”
“···예·”
아무래도 그들의 밤샘 작업은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었다·
***
[차원 상점 오픈 베타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차원 통합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위와 같은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ㄴ떴냐?
ㄴ떴냐구우우!!
ㄴ아 기다리다가 턱 빠지는 줄ㅋㅋㅋㅋ
ㄴ뭐야 난 아무것도 안 떴는데?
ㄴ응 넌 탈락^^
ㄴㅅㅂ이거도 뽑혀야 이용 가능한 거여?
ㄴ난 그냥 자연스럽게 들어가지던데?
ㄴ(삭제된 댓글입니다·)
ㄴOBT래잖어ㅋㅋㅋㅋ서버가 모자란 듯 ㅋㅋㅋ
ㄴ뭔···· 게임도 아니고 오픈 베타여?
ㄴ아 PTSD온다· 오픈 베타 테스터에 참여했다가 빙의한 놈 손들어 봐
ㄴ2222
ㄴ333333
ㄴ444
ㄴㅅㅂ테스트는 무슨··· 극한의 인내심을 테스트 중임·
ㄴ끊이지 않는 테스트· 대체····
ㄴ난 전이ㅅㅂㅋㅋㅋ남들은 미남미녀로 빙의한다는데 나는···· 리세마라 어디갔노
ㄴ야 누가 이용 후기 좀 올려 봐!! 궁금해 미칠 거 같아!!
ㄴ엄마 나 주딱이 될래요 엄마 나 주딱이 될래요 엄마 나 주딱이 될래요 엄마 나 주딱이 될래요 엄마 나 주딱이 될래요
ㄴ(삭제된 댓글입니다·)
ㄴ이 와중에 파딱 열일 하누 ㅋㅋㅋㅋ
모두의 기대 속에 차원 상점이 개시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깨꼬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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