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
케이샤는 전 재산을 투자해 [삼류를 위한 주딱의 자비 패키지]를 구매해야 했다·
“이 이익!”
수량이 하나인 것으로 보아 그녀만을 위해 준비한 물품 같았지만·
‘어째서 상품명이···!’
심지어 주딱의 농간인지 커뮤니티에 휘황찬란한 전광판이 지나갔다·
경) ‘마법은거들뿐’님이 차원 상점에서 ‘삼류를 위한 주딱의 자비 패키지’ 구매에 성공하였습니다· (축
ㄴ이뭐병····
ㄴㅋㅋㅋㅋㅋㅅㅂ 미치겠다
ㄴ주딱 뭐하고 있나 했더니 저딴 거나 만들고 있었어?
ㄴㅅㅂ 저건 또 파딱 아녀?
ㄴ삼류는 또 뭐냐 ㅋㅋ
ㄴㅋㅋㅋㅋㅋ주딱 도랐나 ㅋㅋㅋ 커뮤에 뭔 짓을 하는 거야 ㅋㅋㅋ
ㄴㄹㅇㅋㅋㅋ
ㄴ(리치왕은리치해) 어째서 주딱은 나 같이 말 잘 듣고 수명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나를 놔두고!!
ㄴ오열ㅋㅋㅋㅋ
ㄴ여기 무급 노예 지원자 하나 있네 ㅋㅋㅋ
ㄴ미친놈인가ㅋㅋ 커뮤에 제정신 박힌 놈이 없누ㅋㅋ
그녀는 당분간 커뮤니티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작게 다짐했다·
그녀는 커뮤니티 창을 얼른 닫고 고개를 내렸다·
탁자 위에는 그녀의 카르마 포인트 전 재산을 들여 구매한 패키지가 놓여 있었다·
부들부들-
그녀의 볼이 수치심에 푸들푸들 떨렸다·
[신속! 정밀! 한방 컷! 오토 타겟팅! 초소형 플라즈마 광자포 – 마법봉 커스텀(1회용)]
[완벽! 철통! 보온! 청결! 전신 방어 슈트(3성) – 마법 소녀 코스튬]
[해킹 칩(???)]
아니! 어째서! 대체 왜!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수한 의문이 지나갔지만 답을 구할 길은 없었다·
“진정하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게다가 사용법은 따로 들었고·”
애써 합리화한 케이샤는 거적때기 같은 슈트를 시착하고 마법봉 아니 초소형 광자포를 들었다·
“큿!”
수치심에 죽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대의를 위해 수치심쯤은 눈감을 수 있는····
끼익-
열린 문으로 황태자가 들어오다 멈칫했다·
“····”
“····”
정적이 흘렀다·
“그···· 취향은 존중하네만··· 아니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지·”
절레절레-
끼익- 쿵·
그녀는 마법봉을 내려다봤다·
···쏠까?
그녀는 갑자기 죽고 싶어졌다·
***
“나는 생각보다 마음이 넓네· 취향은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하겠네·”
“죽고 싶어요?”
“그··· 황태자에게 할 말이라고는 조금····”
“조용히 하세요!”
“····”
큐티뽀짝한 핑크빛 샤랄라 의상을 입은 케이샤는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게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로 보아 빨리 이동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황태자 또한 그녀를 바삐 쫓으며 황궁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은 어떤가?”
“저도 신중하게 생각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 차림으로 말인가?”
“····”
그녀의 희번득한 눈빛에 황태자가 얼른 입을 닫았다·
“아무튼·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보면 되네· 녀석이 어떤 제안을 해올진 모르겠지만 밀실 회담을 제안하더군·”
“···아마 황제 폐하의 차도에 대해서 얘기하겠지요·”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녀는 황태자에게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황제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황태자는 명백히 데브라인을 의심하고 있었다·
“아마 함정이겠지· 하지만 우리쪽에서도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거사를 치를 유일한 기회야·”
황태자의 눈이 결연하게 빛났다· 황태자는 폐위도 각오하고 그 녀석을 암살할 생각이었다·
품속을 더듬는 것을 보아 그 또한 나름의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둔 듯했다·
“이런 기회가 또 오지 않을 것 같아 결심했다지만··· 너무 서두른 건 아닐까 싶군·”
그녀는 걸음은 멈추고 그를 보았다·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잘 아시잖습니까? 미루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고요· 이 이상 오염이 가속화되면 회복이 불가능할 거예요·”
“자네 말이 맞네· 그런데····”
“왜 그러시죠?”
“자네 복장이··· 크흠·”
빠직-
그녀는 결국 황태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끄악!”
그녀는 정강이를 부여잡고 방방 뛰는 황태자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더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
거친 진동음을 토해내며 빛을 반짝이는 거대한 기둥을 한 사내가 바라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름다워·”
성인 열 명이 팔을 벌려도 둘러쌀 수 없는 거대한 기둥이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천장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기둥처럼 생긴 거대한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바라보며 검은 동공을 반짝였다·
“에타니움····”
별의 힘이라고도 불리는 기적의 연료 ‘에타르’·
에타르를 광석 형태로 결정화시킨 금속이 에타니움이다· 지금 행성에서 뽑아낸 에타르를 효율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에타니움으로의 가공은 필수였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거의 끝났군·”
행성의 수명을 대폭 소모하는 거친 방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에타르만 잘 뽑아내 본국에 바치면 그가 할 일은 끝이다·
“이 지긋지긋한 파견 생활도 이제야 끝이 보이는가?”
참으로 지난한 세월이었다·
데브라 행성을 떠나 처음으로 조우한 외계의 문명· 그곳에 정착해 앞으로의 방침을 결정하고 탐색하는 일로 파견된 그였다·
그가 내린 선택은 ‘행성의 자원화’·
이들의 마도 공학 발전 속도가 그들의 첨단 문명에 뒤지지 않았으며 에타르 매장량이 매우 높았기에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들이 발버둥 치며 발전을 계속한다고 해도 데브라 행성을 어찌할 수는 없다· 발전 속도가 조금 빠를 뿐 실제 두 문명 간의 격차는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졌기에·
허나 에타르 매장량은 다른 이야기·
안 그래도 본국의 행성은 자원의 고갈 때문에 우주 각지로 탐사선을 보낸 상태·
아마 이대로 복귀하기만 해도 남은 평생을 큰소리치며 살 수 있을 테다· 그 때문에 그가 이런 미개하고 야만적인 곳에서 버티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등한 종족·”
그가 내린 인류에 대한 평가였다·
탐욕적이고 비이성적이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분열을 일삼는 족속들·
육체는 허약하며 냄새도 지독한 놈들은 가축으로도 쓸 수 없을 듯했다·
“괜히 의심만 많아서·”
사사건건 일을 귀찮게 만드는 녀석이 현재 그와의 밀담을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가 기계를 조작해 홀로그램을 띄웠다·
에타르 저장고가 되어버린 그의 우주선에 내장된 기능 중 하나였다·
삐빅-
검은색 옷을 입고 품을 더듬거리며 긴장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있는 황태자가 보였다·
“흥· 네놈의 저열한 수작을 내 모를 줄 알았더냐?”
참으로 한심하다·
아마 놈은 일거수일투족 관찰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터다·
“응? 그런데 저건····”
황태자의 옆엔 그도 아는 여인이 동행하고 있었다·
뭐 녀석들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었기에 사람이 늘어난 것은 문제없다지만·
“흐음·”
그는 턱 끝을 쓸었다·
“기대되는군·”
그는 주위에 떠도는 기기들을 둘러봤다·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 발견할 수 없게 투명화로 숨겨진 기기들이었다·
마나 무효화 장치부터 시작해 방어 요격 시스템이 갖춰진 최첨단 무기였다·
“여차하면 위성 폭격도 있으니·”
걱정할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는 얌전히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
황태자는 떨리는 심장을 달래느라 주먹을 굳게 쥐어야 했다· 어떻게 보면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이기도 했다·
허나 이는 어쩔 수 없었다·
‘실패하면 나 하나 잘못되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무거운 중압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녀석을 처리하지 못하면 제국은 멸망기로에 들어선다·’
그 꼴을 볼 순 없었다· 황태자의 눈에 결연함이 감돌았다·
이미 제국의 많은 중신들이 놈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황태자는 자신의 안위보다 제국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그는 품속의 단검을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놈에게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한 ‘독룡의 어금니’가 품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드래곤과 신이 살아있던 신화시대의 고대 유물 ‘독룡의 어금니’·
현시대 가장 강한 독극물의 몇백 배에 달하는 독을 뿜는 유물이다·
‘접근하기만 하면 된다·’
단검으로 스치기만 해도 된다· 독룡의 어금니가 놈의 상처를 통해 죽음을 선사할 테니·
황태자와 그녀는 황궁의 지하로 향했다· 놈의 연구실이 있는 곳이었다·
황태자는 복도에 드문드문 보이는 전선 배관을 바라보며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과거엔 죄수를 가뒀다는 지하 감옥이 지금은 통째로 개조되어 놈의 연구실로 쓰이고 있었다·
제국의 현실이 피부에 와닿는다·
끼이익-
두꺼운 철문의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른다·
문이 열리자 푸른 피부의 녀석이 그들을 반겼다·
“오랜만이군· 그쪽은 케이샤 양이라고 했나? 오늘따라 아름답게 꾸미고 왔군·”
놈의 독사 같은 시선이 케이샤에게 머물고 있었다·
“···뭐?”
순간 황태자의 사고가 정지했다·
저 녀석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아니면 비꼬는 걸까?
아니다· 저 녀석의 표정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크읏! 역시 외계놈···! 인간과는 근본부터가 다르군·’
녀석의 심미안에 다시 한번 종족적 차이를 느낀다·
그런 황태자의 뒤에서 수치심에 고개도 들지 못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으읏!”
그녀가 기어코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황태자는 그녀의 말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죽엇!!!!!!!!!!”
뭐라고?
아니 아직 아무것도-
콰아아아아앙-
섬광이 공간을 뒤덮는다·
황태자는 신화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다는 드래곤 브레스를 직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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