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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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는 거야?”
영식의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아포칼립스가 터지고 세상이 망해버린 지 어언 3년하고도 6개월·
멀쩡하던 사람이 좀비로 변하고 사회가 무너지고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죽고 죽이던 나날·
6000년 동안 이룩한 인류 문명이 고작 4년도 되지 않아 멸망을 앞두고 있었다·
끝을 모르고 진화하는 좀비에게 대항해 인류는 능력자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려 했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시기 질투 탐욕 의심은 이런 세상에서조차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덩치를 불리며 인간을 갉아먹어 갔다·
대강의 미래를 아는 영식조차도 소속 집단에서 추방당하고 빈털터리로 쫓겨났으니 오죽했을까?
허나 희망이라는 놈은 참으로 신묘한 놈인지라 죽지 않고 살아남아 기어코 꽃을 피워냈다·
‘그것’은 혜성처럼 나타나 천둥소리를 몰고 다녔다·
좀비를 피해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생존자들은 처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을 듣게 되면 저마다 체념하기 마련이다·
이제 빌어먹을 삶도 끝이구나·
허나 잠시 후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소란이 끝난 후 찾아온 기이할 정도의 정적·
좀비? 각성자? 포탄? 굉음의 정체가 궁금했던 생존자들은 숨어있던 곳에서 기어 나오기 마련이다· 직후 볼 수 있는 것은 총탄과 포탄이 휩쓸고 간 듯한 참혹한 전장의 모습·
허나 어디에도 좀비 따위는 보이지 않는 거리의 모습에 그들은 할 말을 잃게 된다·
영식은 히페리온과 함께한 지난 몇 개월간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사실 그는 강행군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러나 영식은 묵묵히 일정을 소화했다· 히페리온과 그가 부지런히 움직일수록 누군가는 안도할 수 있는 것을 알았기에·
사실 영식이 한 일이라고 해봤자 변변치 않은 잡무뿐이었다· 이따금 생존자들과 만나 히페리온의 전언을 전달하고 필요한 조치들을 하고· 히페리온이 시키는 잡무를 수행하고·
그러나 그가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히페리온이 이뤄낸 어마어마한 이적 때문이겠지·
좀비를 찾아내고 쓸어버리길 몇 개월·
더는 지구에 좀비 따위는 남지 않았다·
믿을 수 없게도 히페리온은 아포칼립스의 종말을 고하며 인류에 자유를 선사했다·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허허····”
무슨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듯 집요하게 좀비들을 찾아내는 모습에 의아함이 들었으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좀비를 찾아내 제거하고 재앙이라는 좀비 웨이브를 폭격으로 지워버리면서 히페리온의 모습은 점차 바뀌어갔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영식은 자신의 상상력이 이다지도 모자랐었나 자괴감이 들었다· 히페리온은 끝을 모르고 거대해졌으며 온갖 무기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영식은 그때쯤 히페리온이 지구를 폭파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 뻔했다· 남북한과 일본을 정리하고 중국에 진출했을 때는 이미 우주선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했다·
그냥 날아다니는 공중요새 아니 공중 도시라고 불러도 상관없으리라· 온갖 무기로 무장한 공중 도시 히페리온이 지나간 곳에 살아있는 좀비 따위는 없었다·
그뿐인가? 귀신같이 슬래터들을 찾아낸 히페리온은 친히 불벼락을 선사했다·
무슨 부모님의 원수라도 만난 듯 집요하게 좀비와 슬래터들을 수색하던 히페리온이다·
“하하····”
영식은 그때가 생각났다· 중국을 휩쓸고 히페리온 위로 거대 연구소 단지가 설립되었을 당시·
중국의 최대 생존자 집단이 찾아왔다·
“좀비 또한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이요 재산이외다· 그대의 폭거에 우리 중화인민의 재산이 침탈당했으니 보상을 바라는 바요·”
영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얘네는 뭘 믿고 이리 당당하게 나오지? 히페리온이 무섭지도 않나?
“우리도 공중 도시에 거주하게 해주면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지 않겠소? 일꾼이 필요할 거 아니요?”
히페리온의 외벽을 닦고 있던 영식은 그들을 보며 깨달았다·
지금 이놈들이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히페리온은 도시가 아니었으며 이들을 태워줄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영식은 좋은 말로 타일러 보려고 했다·
“물어는 보겠지만 기대는 하지····”
“고작 청소부 따위가 우리들의 길을 막아서느냐?! 너 같은 잡부 말고 고위 관리를 불러오라는 말이다!”
끝내는 칼까지 뽑은 그들이 어떻게 됐냐고?
절레절레-
몇몇은 히페리온에 탑승하는 데 성공하고 나머지는 히페리온의 불벼락에 산화되었다·
탑승···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식은 오히려 그들이 불쌍했다·
이제는 히페리온의 광산이 된 푸른 귀신 옆에 자리하게 된 그들은 죽을 때까지 능력이 뽑히는 신세가 됐다·
그들뿐 아니라 히페리온을 향해 탐욕을 부리던 다른 능력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동료였던 병태를 포함해서·
병태는 몇번의 암살 시도 후 결국 영원히 긴긴 잠에 빠져 얌전히 능력을 뽑히는 신세가 되었다·
한때 그 문제로 히페리온과 다투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옛일·
실제 뽑아낸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모습을 보자 할 말이 안 나왔다·
히페리온에 각성자들의 쉘터 능력을 포함해 온갖 이능력이 장착되기 시작했다·
‘····’
어쨌든 세상이 안정되고 나면 풀어주기로 약속했으니 믿어야겠지·
물론 석방 후엔 능력이 모조리 뽑혀 일반인으로 살아가야 할 테지만·
“함께해서 즐거웠어 히페·”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귓가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헛소리하지 말고 거기나 제대로 닦으십시오 휴먼·]
“어?”
영식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운동장 크기의 반구 형상의 복잡한 기계 장치가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어제 설명할 땐 졸았던 것 아닙니까?]
영식은 뜨끔했다·
[이곳의 카르마를 모두 빨아먹을 때까진 어림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 동력원을 함부로 썼다가 누군가 무서운 분에게 혼났다고 했지···?
[연구소를 비롯한 본체는 이곳에 남을 겁니다·]
기본적인 무장은 갖추고 있다지만 얼마 전과 비교하면 맨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물론 기본적인 무기만으로도 감히 대적할 존재는 지구에 없겠지만····’
그리고 그건 세상이 아포칼립스를 맞이하기 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터다·
[칫·]
그래도 영식은 히페리온이 아쉬워하는 것이 이해 갔다·
그야 어마어마하게 자원을 투자한 공격 설비와 무장 전부를 떼어 내야 했으니·
[Mk·2 분열체는 또 다른 식민지를 찾아 차원을 떠돌 예정입니다·]
“시 식민지?”
[뭘 새삼스레·]
“그 그런가?”
어감이 묘하긴 하지만 막상 히페리온이 무언가를 수탈하거나 약탈하는 것은 따로 없다·
그저 무너진 문명을 재건하고 아포칼립스라는 괴물에 파괴되었던 질서를 회복하는 데 일조할 뿐·
어쨌든·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농작물을 수확하고 문명을 재건하며 사회기반시설을 복구하고 있다· 그 속에서 치안에 대한 걱정이라거나 생존에 대한 걱정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37-A12B 구역 강간 시도 후 살인을 저지르려던 범죄자 사살 완료·]
히페리온의 눈은 어디에나 존재했으며 범죄자에 있어선 한 치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폭력과 약탈에 절여졌던 사람들은 강제로 교화되기 시작했다·
범죄를 저지르려 하면 곧장 머릿속으로 경고가 날아오고 이를 어기면 사살된다·
그 간단하고도 심플한 명제로 인해 사람들은 이미 모범 시민이 아닌 자가 없었다·
참····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어? 아··· 그거·”
영식은 씩 웃었다·
“난 상관없어· 어차피 잘 사용하지도 않았고· 그래도 마지막으로 후기 하나 정도는 남겨도 되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영식은 [차원 통합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차원 @$&% 커뮤#&%&에 오신 것을 ^$&#$#니다·]
이전과 달리 글씨가 깨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보자····”
[@*!&#^& ##^@&@ @%#@]
온통 글씨가 깨져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조심히 글쓰기를 눌렀다·
“쉽지 않구만·”
이제 조금 있으면 영영 [차원 통합 커뮤니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히페리온의 설명에 따르면 분열체를 차원 너머로 보내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아직은 연구가 완전하지 않아 그의 커뮤니티 채널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고·
대충 그런 설명이었던 것 같다·
‘뭐 분열체라고 해봤자 같은 개체라는 알쏭달쏭한 말도 했었지·’
어쨌든 영식은 하늘의 사진을 찍어 커뮤니티에 정성스레 글을 썼다·
‘우주황제님! 감사해요!’
그런데··· 이거 열심히 써도 제대로 올라갈지는 모르겠네·
영식은 어두웠던 하늘이 점차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씩 웃었다·
‘상관없겠지·’
하늘 전체를 뒤덮고 있던 히페리온 Mk·2가 차원을 넘어갔다· 그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깜깜했던 밤이 순식간에 낮으로 바뀌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
[목표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파츠츠즛-
은하 제국의 일반적인 워프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격렬한 아스트랄 통로를 헤치며 히페리온의 몸체가 앞으로 나아갔다·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나 영겁이라고 느껴질 시간이 지나고·
쿠구궁-
[엔진 손상률 : 72·01%]
[냉각 설비 손상률 : 62·04%]
[전면부 기체 손상률 : 34·28%]
[외벽 손상률 : 46·41%]
···
[AT 배리어 잔여량 : 18·02%]
[잔여 동력 : 37·12%]
쿠구궁-
[12-17단계 히페리온· 목표 차원 이동에 성공했습니다·]
히페리온이 도착한 곳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수만 척의 우주 전함이 히페리온의 존재를 발견하곤 천천히 진형을 물렸다·
삐빅-
[마스터의 명령에 따라 대상을 선정합니다·]
기이잉- 철컥- 철컥-
데브라인의 전장 1800km 테라급 모함보다 몇 배는 거대한 히페리온의 몸체에서 도합 128만 개의 포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포문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며 우주에 별을 수놓았다·
데브라 행성의 전력이 순식간에 증발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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