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9
[외장 에테르 순환 시스템]
다른 말로는 ‘에테르 외부 순환 운용’이라고도 하는 이 시스템은 그녀가 오롯이 얻어낸 성과나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강화 슈트 내에서만 동력이 순환하는 걸 넘어서 체내에 순환 회로를 구성하고 제2의 기관처럼 작동하는 시스템·
이는 관리자마저도 잘했다며 칭찬했던 그녀의 재능이요 결실이었다·
우우웅-
잔여 3퍼센트의 동력이 체내와 슈트를 순환하며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력 3%·
과거 진공참 한 번에 10%를 소모했을 때를 생각하면 극히 적은 양이다· 몇 번 움직이고 나면 동력이 바닥날 만큼· 허나 그녀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이 동력원은 활용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보여주는 미지의 에너지원·
그녀는 동력의 극히 일부분만을 사용하고도 이전과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그녀가 슈트의 건틀릿을 강하게 쥐었다·
뿌드득-
주먹에서 금속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전의를 눈치챘는지 사방에서 달려들기 시작한다· 몇몇은 천장과 그림자에 숨어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검을 들이밀었다·
그녀는 주변의 상황을 천천히 인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무기를 들고 다니며 수틀리면 검부터 들이대는 녀석들이 정상적일 리 없지·
그녀의 입꼬리가 꿈틀했다·
굳이 빌미를 찾을 수고까진 없을 듯했다·
보자·
다대일의 전투 상황은 이미 신물이 날 만큼 겪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전투를 효과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지도 잘 알았고·
주위를 훑어본 그녀의 눈에 중년 사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놈·’
가장 강하다고 하기에는 애매했으나 가장 높은 신분의 사람임은 쉬이 알 수 있었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그녀는 얼른 이곳을 정리한 후 ‘성화’라는 것을 살펴보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는 불꽃이었다·
겸사겸사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도 둘러보고·
“후우·”
그녀의 귀로 ‘천마재림! 만마앙복!’이라는 구호가 연신 들려왔다·
‘···종교인가?’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신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그럴 리가· 있다고 해도 저치들이 생각하는 그런 존재는 아닐 터다· 그녀는 온갖 신을 찾으며 울부짖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러다 그녀가 머뭇거렸다·
아니다· 꼭 그렇진 않지·
그녀를 구원하고 커뮤니티의 전 차원을 쥐락펴락하는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마땅히 신에 걸맞은 존재·
그에게서 들었던 본명을 떠올렸다·
칼슈타인 바빌론·
그래· 만약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주저 없이 그를 선택하리라·
천마(天魔)?
그녀에겐 시답잖게 들릴 뿐이다·
어쩌면 이곳의 종교를 ‘올바른’ 방향으로 계도하는 것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멸족보다는····’
그녀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이윽고 그녀의 신형이 빛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붉은 피가 난무했다·
“끄아아악!!”
“교주님!”
“감히!!”
서거억-
***
쾅!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퇴각이라니요!”
“마교놈들의 생각을 내 어찌 알겠나?”
개방의 부방주가 호리병의 술을 들이켜며 한숨을 쉬었다· 그에 점창파의 장로 하나가 씩씩거리며 분을 참지 못했다·
“이렇게 그냥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겁니까?!”
“허허· 그렇다고 조용히 돌아가는 놈들을 붙잡고 전쟁이라도 벌일 텐가?”
“당연히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시작은 놈들이 먼저 했습니다· 그런데 끝도 멋대로 정하는 것에 어찌 동의하겠습니까!”
“일반 민초와 중소문파들의 의견은 어찌하고? 그들은 과거의 정마대전처럼 확전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야·”
“그건····”
“뒤에서 지켜보는 사도련도 생각해야지· 술판을 벌이고 있을 텐데·”
무림은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교 셋이서 삼분하고 있다· 사도련은 사파 연합· 당연히 정마대전의 정파 마교 간의 전쟁을 손뼉 치며 기뻐하고 있을 터·
“끙···· 그래서 마교에서 평화 협정이라도 맺자고 하더이까?”
“그게 말이야····”
개방의 부방주는 무언가를 생각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부방주의 새빨개진 코끝이 움찔거렸다·
“단신으로 오겠다더군·”
“누가요? 부교주? 아니면 마도 육종의 종주 중 하나가 직접 찾아오기라도 하겠답니까?”
이곳에 자리한 무림맹의 장로들은 부방주의 입을 쳐다봤다· 무림맹주에게 올라간 마교 측 서신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었다·
“신임··· 교주가 직접 방문할 것 같더군·”
“신임 교주요?”
“전쟁 중에 지도부가 교체되기라도 했답니까?”
“신임 교주가 직접 방문?”
“아미타불·”
“그쪽도 사정이 복잡한 모양이군·”
“헌데 간도 크군· 홀로 적진 한복판에 찾아올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이참에 누가 위이고 아래인지 확실히 가르쳐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위의 반응은 ‘평화 협정’ 내지 ‘항복’ 등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 부방주 걸운개가 입맛을 다셨다·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묘하게 불길했다· 마교에 심어놓은 간자에 의하면 순식간에 상부를 뒤집고 교주에 오른 자라고 했다·
또한 이제까지의 마교 측 공문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대화가 아니라 통보라는 점에선 같았지만····
요약하자면 ‘퇴각 후 이른 시일 내에 찾아가겠다·’ ‘천마신교는 위대한 지배자를 모시는 은하신교로 거듭나겠다·’ ‘죄를 짓는 자 타인을 해하는 자 모두 본교의 적으로 간주한다’· 등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제멋대로이기도 했고·
게다가 위대한 지배자라니····
황제인 천자를 말하는 것인가?
아무리 마교라도 간덩이가 붓지 않고는 관을 건드릴 이유가 없을 텐데· 아니지· 위대한 지배자를 모신다고 했으니 관에 무릎을 꿇겠다는 말인가? 어조를 보면 그건 또 아닌 듯싶은데····
뭐지? 비유적인 표현인가? 정치적인 수사인가?
신임 교주라는 자의 소문이 심상치 않기도 했고·
부방주는 골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천마 재림····’
무림맹의 장로들은 부방주의 속도 모르고 전리품과 배상에 관해 큰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
“맹주! 굳이 우리 배분에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를 직접 찾아가는 게 맞는 일이외까?”
이제는 멸문해 사라진 무당파의 장로 독기만 남은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무림맹주의 귀를 괴롭혔다·
무림맹주는 배분만 앞세워 목소리를 높이는 그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무형신검의 신위를 직접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만약 무당파 마지막 생존자라는 정치적인 쓰임새가 아니었다면 아니 최소한 그와의 사적인 친분만 아니었어도 당장 그 입을 틀어막았을 터다·
“이번에 무형신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우리 쪽이니 직접 찾아가는 것이 도리겠지·”
“본도는 그것도 마음에 차지 않더이다·”
맹주는 그래서 네가 어쩔 거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지금은 말코 도사 하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천마신교의 신임 교주·
그에 대한 해결이 급선무였다·
개방은 정파의 정보 단체라는 한계 때문에 상세한 정보는 모르는 듯했다·
허나 맹주인 그는 개인적으로 심어둔 정보원에 의해 상세히 아는 축에 속했다·
위대한 지배자를 모시는 신의 사자를 자처해 나타나 마교의 지도부층을 쓸어버리고 단숨에 천마신교를 차지한 여인·
서신엔 직접 찾아와 담판 짓겠다고 적혀 있었다·
강자존인 천마신교 지도부층의 경지를 생각하면 그녀의 경지는 최소 현경 최대 생사경에 도달한 무인으로 추정됐다·
과연 그녀가 조용히 교섭만 하고 떠날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현경의 무인을 그냥 보내줄 수도 없는 노릇· 훗날 더 큰 재앙이 될 것을 감안하면 기회를 봐서 미리 처리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기 위해선····
“무형신검· 긴히 할 말이 있네·”
무림맹 구석진 곳에 마련된 무형신검의 거처에 도착했다· 무얼 하고 있는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맹주는 남궁진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에게는 무형신검이 있지 않은가?
이전 그는 무형신검의 신위를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심검이 이러할까? 절대지경이 이러할까·
가히 무신에 버금가는 신위· 누구도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심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날려대던 무형신검·
게다가 통제에도 수월한 인물이라는 것이 행운이었다·
이전엔 무형신검을 경계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옛말이다·
아직 어려서인지 정치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녀석이었다· 어린 녀석이 어떻게 그런 힘을 손에 넣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였고·
무형신검이 무림맹의 거래에 응한 순간부터 이미 그는 자유로이 검을 뽑을 수 없는 처지와 같았다·
적극적으로 너라는 칼을 뽑아 쓰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지레 놀라 소극적으로 칩거한 듯한 형세가 되었다·
거래 자체는 ‘단 한 번 무림맹을 위해 무력을 빌려주겠다는 것· 그 외에는 쉽게 검을 뽑지 않을 것·’이었지만 이러나저러나 거래만 성사된다면 무림맹으로서는 손해가 없는 장사였다·
무형신검이 제힘을 맘껏 휘두르려 하면 위의 약조를 근거로 손발을 무겁게만 해도 이득이었다· 대화를 거부하거나 강자 특유의 막무가내식 태도만 아니라면 충분했다·
게다가 신임 교주가 직접 방문한다고까지 하였으니·
무형신검에게 의뢰해 마교주를 격살하면 완벽한 그림이 나올 듯싶었다·
사자로서 홀로 적진까지 찾아온 상대를 죽이는 것은 정파로서는 책임을 피하지 못할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만·
오명은 무형신검이 이득은 무림맹이 챙기면 일거양득이리라·
아 물론 양패구상이 가장 좋은 결과겠지만 말이다·
뭐··· 무형신검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고 한다면 그때 가서 대응 방안을 논해도 될 문제였다·
“무형신검? 안에 있는가?”
그리고 무림맹주가 찾아올 그 무렵·
남궁진은 누군가와의 대화에 정신을 쏙 빼놓고 있었다·
(궁진아니고진): 아이고 선생님!! 어쩐 일로 저를 다 불러주시고!
(궁진아니고진): 예? 아 맞아요· 저도 강호 무림 출신이에요!
(궁진아니고진): 아 비슷한 세계가 많지요· 예예·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궁진아니고진): 아이고 선생님! 제가 영광입니다!
그는 정신적 스승 논검 비공식 랭킹 3위의 메시지에 기쁘게 답을 달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 이런!! 비인간적인 공백이·· 또!!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그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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