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
수천 개의 태양이 한 번에 폭발해 그 섬광이 온 하늘을 검게 물들인다면·
이 세상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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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머리를 부여잡으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산이 해를 띄우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로테는 옆 침대에서 새근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틸레트에 입학하고 처음 맞이하는 주말이다· 이틀간 황자와 교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무슨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글쎄 악몽 같은 건 아니다· 이 몸이 된 뒤로는 아예 꿈을 꾼 기억이 없다·
“슬슬 모기가 나올 때라서 그런가·”
이쪽 세계에서도 모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이쪽의 모기는 마수로 분류된다는 점· 잡아 족치면 머리카락 두께보다 살짝 작은 크기의 마석을 준다·
주말이지만 할 일은 많았다· 화계마도를 제외한 다른 계열의 마법도 익혀야 하고 절멸급을 상대하기 위한 고유마도도 완성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오늘은 로테에게 과외를 해 주기로 한 첫 날이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보니 아직 쓰지 않은 은화 두 장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며 짤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은화들은 교수나 황자가 나에게 주겠다고 말했던 금화 수십 장보다도 훨씬 값진 것이었다·
웃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로테에게 마도이론을 가르쳐주기 전에 먼저 들려야 할 곳이 세 군데 정도 있었다· 상념을 접어두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첫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틸레트의 도서관은 밤샘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24시간 운영되고 있었다· 읽었던 책을 반납하고는 다른 책들을 빌려 빠져나왔다·
두 번째 장소는 아카데미에 부속으로 딸려 있는 학회에서 주관하는 기관이었다· 간단히 말해 영국의 왕립 학회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돈을 내고 일련의 가입 절차를 마치면 학회의 인물로 등록되어 논문을 낼 수 있게 된다·
나는 등록과 동시에 미리 작성해 두었던 논문 한 편을 제출했다·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의 유도과정이 담긴 논문이었다· 금안족 소녀가 된 후로는 처음으로 써 보는 것이었는지라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양식 확인되었습니다· 심사까지 최소 2주에서 최대 3개월 정도 소요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기관을 나왔다·
마지막으로 들를 장소는 헤를라인 선생님의 개인 연구실이었다·
“왔니?”
“안녕하세요·”
헤를라인 선생님과 인턴 계약을 체결한 건 불과 이틀 전의 일이었다·
원래 헤를라인 선생님은 내가 합격한 시점에서 인턴으로 쓰고 싶어하셨으나 이제 막 대학원의 굴레에서 벗어난 애를 굴리면 안 될 것 같다며 말을 아끼셨다고 한다·
“와줘서 이 선생님은 정말 감동이란다· 3개월간 많은 걸 가르쳐 줄 테니까 우리 열심히 해 보자·”
[주인님· 저 앞이 안 보여요·]
나도 그래·
나는 스크롤 작성법을 웬만큼 알고 있었기에 배우는 게 빨랐다· 원래 원소마도는 한 계열을 알면 나머지 계열에 속한 스크롤도 쉽게 구축할 수 있을 만큼 각각의 속성에 유사한 점이 많았다·
“지계마도의 기초는 여러 종류의 고체를 만드는 거야· 고체는 보통 결정성 고체와 비정질 고체로 나뉘지·”
“그럼 오늘은 결정을 만드는 법부터 배우는 건가요?”
“어머 알고 있었네? 맞아· 지계마도의 기초는 공간에 병진 대칭성이 있는 고체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이건 연금술과도 맞닿아 있는 영역이라 고학년 과목을 이수할 때 중요하단다··”
헤를라인 선생님은 간단한 예시 하나를 보여주겠다면서 비품실에 잠깐 들렀다 나오셨다·
얇은 막에 싸인 고체 결정판 하나와 짙은 갈색의 유리병에 담긴 한 액체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그 아래로는 조합식을 새겨 넣은 간이 연성진이 부착되어 있었다·
“이건 최근에 화계마도를 전공한 학자들과 합작해서 만들고 있던 거야· 한 번 볼래?”
나는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연성식을 짠 뒤 병과 결정판을 넣은 헤를라인 선생님은 짧은 영창과 함께 두 재료를 식각하고 섞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편광판?”
“이것도 알고 있네· 혹시 금안족은 이런 것도 다 미리 개발하고 있었니?”
나는 침묵으로 응대했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랬다· 나를 제외한 금안족은 한 명도 몰랐으니까·
별다른 말이 없자 주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헤를라인 선생님은 이어서 설명했다·
“너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건 지계의 원소를 조절하여 화계의 원소를 조작하는 장치야· 빛도 일단은 화계에서 다루는 원소로 취급하기 때문에 학계에선 편광판 개념을 얘기할 때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어·”
[□물질 탐색]
[주로 탐지된 물질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폴리비닐알코올(PVA) 요오드]
“신기하네요·”
“그렇지? 학계에서는 이런 복합적인 마도를 두고 ‘혼성’이랑 표현하고 있어· 두 마도를 섞어쓰는 거지· 혼성마도는 혼자선 연구할 수 없기에 보통 둘 이상의 연구실에서 공동으로 연구하는 경우가 잦아·”
혼성마도라· 도서관에 있는 책으로는 배우지 못하는 개념이었다·
“최근에 정립된 건가요?”
“한 1년 남짓 됐지· 화계마도만으로는 절멸급을 상대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난 상태니까 이런 식으로 변화를 줘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역시 헤를라인 선생님 밑으로 들어오길 잘했다· 하스펠트 교수의 눈에서도 벗어나고 황자의 대시를 피하는 것만 해도 일거양득인데 비로소 연구다운 연구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탈출도 먼 일이 아니었다·
**
그 뒤로 해가 중천을 넘을 때까지 몇 가지 실습을 해 보며 크리스탈 몇 개를 만들어보곤 했다· 간만에 마력초를 하도 펴 댔더니 입이 바싹 마를 지경이었다·
쉴 수는 없다· 오후 시간의 대부분은 로테에게 할애해야 했다· 과외를 해 주기 위함이었다·
과외 장소는 기숙사였다· 만약 다른 방을 썼다면 어디 벤치에 앉아서라도 했겠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화계마도 책 몇 권을 내려놓으며 로테에게 물어보았다·
“뭐부터 알고 싶어?”
“네가 알고 있는 건 전부·”
욕심도 많으시지·
“우선 테스트부터 진행해야겠는데· 네가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알아야 그에 맞춰서 과외를 나갈 수 있어·”
내 말에 로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할 일은 두 가지였다·
첫째· 수학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할 것·
마도는 원래 세계의 과학과 일맥상통하는 학문이다· 비록 쓰이는 원리나 양상은 다르더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자연법칙인 이상 그러하다· 그 유사성으로 인해 이쪽 세계의 인류 또한 수학을 기반으로 마도이론을 구축해왔다· 그중에서 가장 발달한 건 기하학이었다·
로테는 대부분의 기하 문제를 쉽게 해결했다· 물론 잘하는 영역은 기하뿐만이 아니었다· 대수나 해석학 조합론에도 재주를 보였다·
“너 필기에서 수학 몇 점이었어?”
“89점이었나···? 아마 그쯤 됐을 거야·”
이 정도 실력이면 보통이 아니다· 지구상의 학제로 치자면 명문대 3학년에서 4학년 사이에 해당하는 수학적 사고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다음으로 둘째· 화계마도를 알고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것·
화계마도로 유명한 살리에르 백작가의 영애답게 로테는 대부분의 상급 마도까지 꿰차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가르쳐 줄 게 없는 수준이었다·
원래 과외 첫날은 간단한 것만 알려주고 끝내는 게 정석인데····
“혹시 절멸급 마수도 잡을 수 있을 만한 연성식은 없을까?”
뭐라도 가르쳐야 체면이 섰던 나로서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플레어라고 알아?”
“플레어?”
내가 진짜 하스펠트 교수 닮아가는 거 같아서 여기까진 얘기해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슬프게도 당장 ‘절멸급 마수를 잡아 족칠 수 있을 것 같은 마도’가 이거밖에 없었다·
나는 힙색을 뒤적거리며 34인치 모니터만 한 크기의 마전지를 꺼내들었다· 안쪽에는 팔정도(八正道)를 덧입힌 플레어의 기초 제작진이 제작되어 있었다·
“와· 되게 복잡하다· 어떤 마도야?”
“아직 학계에서 개발 중이라 어떤지는 자세히 알려진 게 없어· 내 생각엔 강력한 빔 같은 거로 마수의 두꺼운 장갑을 뚫어버리는 마도일 것 같은데·”
플라즈마를 방출하는 레이저라고 표현해야 하나· 이쪽 세계에 정확히 대응하는 용어가 없어서 묘사하기가 까다로웠다·
플레어는 기초를 닦은 마법진만 하더라도 거의 빼곡할 정도였다· 이쯤되면 멀리서 봤을 때 하나의 점으로 인식해도 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나는 플레어의 개발 기간을 넉넉히 1년으로 잡았다·
“이게 왜 개발이 어려울까?”
핵심을 파고드려는 근본적인 질문· 좋은 자세였다· 나 또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장 큰 문제는 플레어에 담아야 하는 마력량이겠지·”
“마력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트랜지스터를 쓰면 되지 않을까?”
“안 돼· 해봤는데 터지더라· 마석에도 담을 수 있는 총량이 있어·”
“어느 정도로 마력을 순환시켜야 하는데?”
“못해도 10만 시버트 이상· 계산해봤는데 이게 되려면 제국과 카우렐리아를 합친 것만 한 크기의 마전지가 필요해·”
로테는 입을 떡 벌리며 플레어의 초식이 담긴 스크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렇게 1분에 가까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다시 깨뜨린 건 로테 쪽이었다·
“있잖아· 이런 마도진도 멀리서 보면 점처럼 보이잖아· 그지?”
“그렇지·”
“그러면 다른 형태의 마법진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직선 형태로 순환하는 거라든가·”
“조화진동자가 진동하듯이 말이야?”
“응·”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마법진을 툭툭 건드렸다· 멀리 떼어놓아 보기도 하고 일부 경로를 수정해보기도 했다·
급기야 새 마전지를 꺼냈다· 로테가 말해 준 형태의 스크롤을 작성해 봤다·
역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쓸 만한 주제였다· 나는 잠시간 더 고민하다가 이내 마전지 한 장을 더 꺼내 두 개를 맞대는 형태로 이어붙였다·
여태까지 2차원에서만 그렸던 스크롤을 3차원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2차원에서 볼 땐 직선 형태 그러나 3차원에서 펴 보면 원형을 지니는 복합형 마도진을 만들 생각이었다·
당연히 쉽진 않았다· 로테 또한 계속해서 고민하는 듯했다· 이거 원래는 과외 활동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같이 연구를 하고 앉아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 어때?”
“이게 훨 낫네· 이쪽에 자철석이랑 토파즈 결정을 붙이고 뒤집는 거야·”
“그럼 출력이 절반으로 깎이는 대신 마류가 네 배로 늘어나니까···· 이쪽에 트랜지스터를 붙여서 보완하면 되겠다·”
“I-V 특성 곡선을 그려볼게· 예상대로라면 낮은 교류 진동수에서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구간이 여덟 개 있을 거야·”
과외를 시작할 땐 오후 1시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토요일이 지고 일요일이 오고 있는 중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렇게 주도적으로 뭔갈 연구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탁─·
“됐다····”
“됐어···!”
짜악!
새벽 두 시· 우리는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하며 각자 침대에 쓰러졌다·
[■ 연구개발 완료 : n차원 스크롤 (n=3)]
[복합적인 도형 형식을 지닌 스크롤· 보다 상위 차원으로 확장된 토폴로지는 이론적으로 마나 응집량을 늘려준다· 하위 차원에서 압축 저장된 마법을 격발 후 일련의 필터를 통과시키면 새 마법을 구축할 수 있다·]
[◆ 진행도 변화 공지]
[위의 연구개발 완료에 따라 다음의 마도를 자동으로 습득했습니다·]
[최상급 고유마도 ─ 스크롤 작성 마스터(Scroll Writing Master)]
[진행도 변경 : 고유마도 2개(전체 149개 中) → 3개 (전체 149개 中)]
“흐·”
플레어 개발에 1년을 투자한다고?
그따위 장기 계획은 깡그리 엎어졌다·
개발에 문제가 되는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졌으니 앞으로 완성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달·
아무리 못 해도 그 안엔 끝내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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