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1
아버지의 말에 로테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던 마법이라뇨?”
“말 그대로란다· 10년 전부터 연구하고 있던 게 있었어·”
귀족이 다른 가문 몰래 마법을 연구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국 사회에선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로테가 아버지의 말에 놀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네가 성인이 되었으니 슬슬 말해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단다·”
비밀리에 연구하는 마도는 보통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가족 중에서 말실수를 했다가 일을 그르친 선례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몰래 연구하던 마도를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건 특별한 의미를 내포한다·
[너를 차기 가주로 지목하겠다·]
“너에게 내 분신과도 같은 연구를 맡기고 싶구나·”
가문마다 세세한 기준은 다르지만 기틀은 같다· 살리에르 가문처럼 학구열이 뛰어난 집안에선 후계자를 대놓고 지목하는 대신 이런 화려한 방법을 사용하여 돌려 말하곤 했다·
총명한 로테가 그런 아버지의 말뜻을 받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
로테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후계 지목이라니·
아버지는 정정하시다· 잔병치레 하나 안 가지고 계시다·
그에 비해 로테는 아직 어리다· 이제 막 아카데미에서 1학년 1학기를 끝낸 풋내기일 뿐이다· 지금은 학업에 전념해야 할 때였다·
심지어 자신 위로 형제자매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언니는 상술에 밝았고 오라버니는 연금술에 상당한 재능을 지녔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수재들이었다·
로테는 자신에게 차기 가주로서의 정당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로테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니까 잘 들어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말을 서둘렀다·
달그락· 은화 한 닢만한 크기의 돌멩이가 집무실 책상 위로 떨어졌다·
“이게 뭔지 알겠니?”
“검은 돌멩이잖아요·”
검고 불길하게 생긴 조막만 한 크기의 돌이다·
이 돌이 어디서 많이 굴러다니는지는 알고 있었다·
“피치블렌드 산에서 주워 오셨나요?”
“그렇지· 사실 이건 그냥 돌이 아니란다·”
아버지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마석이란다·”
“마석이요?”
아버지의 대답에 로테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이리 와서 이걸 쥐어보렴·”
아버지의 권유로 돌멩이를 움켜쥐었다· 손끝에 신경을 집중하더니 이내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정말 마석이네요· 마기가 느껴져요·”
어렸을 때는 그렇게 가지고 놀아도 낌새 하나 못 알아차렸는데· 자신의 성장을 내심 놀라워하며 로테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많이 약해요· 등급을 매긴다면 기껏해야 하급에 불과할 거예요·”
“그래 그렇게 느낄 법도 하지·”
순간 기시감이 들었다·
이상하다· 왜인지 모르게 이 마석의 쓰임새를 알 것 같았다· 의미심장한 표정을 한 채 멀뚱히 서 있던 로테를 보며 살리에르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딸 이번엔 이쪽으로 와 봐·”
집무실 의자에서 일어난 살리에르 백작은 커다란 책장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로테의 고개가 아버지의 움직임을 따라 돌아갔다·
“이쪽에는 사실 숨겨진 공간이 있단다·”
그 말과 함께 아버지가 책장을 옆으로 밀었다· 아버지의 말처럼 숨겨진 틈이 나타났다·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로테는 탄성을 내지르며 아버지를 따라 비좁은 공간 사이를 향해 몸을 욱여넣었다·
“와아·”
감탄은 한 번 더 터져 나왔다·
“이게 다 뭐에요?”
집무실의 숨겨진 공간에는 거대한 마도구 하나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중심부에는 고등 축조식을 새긴 스크롤이 수십만 장씩 있었고 그 주변에는 온갖 비싼 마석이랑 마석은 다 때려 박은 듯한 동력부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정련기라는 거다·”
“정련···?”
“말보단 보여주는 게 빠르겠지·”
정련기에 놓인 검은 돌이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입구로 들어갔다· 여러 스크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소리가 났고 기계가 중저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일련의 과정을 마친 기계는 끝부분에 위치한 시험관을 향해 연노랑 빛 돌가루를 파스스 토해냈다·
부드러워 보이는 가루· 그러나 위험한 빛깔을 지니고 있다·
연성술 공부하며 익힌 지식으로 어렴풋이 알아챘다· 저 물질에 화염 계열의 원소를 충돌시킨다면 돌이킬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눈치챘니?”
아버지의 물음에 로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석은 피치블렌드 산에선 흔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저 뒷산에서나 볼 수 있는 마석이라는 뜻이란다· 그리고 이런 쓰임새가 있다는 건 오직 너와 나만이 알고 있지·”
“그러면····”
“우리 로테는 마법적인 재능이 아주 훌륭해· 분명히 이 마석을 좋은 마도를 만드는 데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단다·”
“아직 어떤 마법으로 만드실 건지는 결정하지 않으신 건가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 폭발력을 보면 전쟁용으로도 쓸 수 있고 석탄을 대체할 만한 땔감이 될 수도 있을 거란다·”
아버지가 창안하시려는 마도는 사실 마도가 아니었다· 어쩌면 공학적인 무언가였다·
마도의 한 분과를 새로 만드시려고 하는 듯하셨다· 로테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전부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일단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잘못하면 위험한 곳에 쓰일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당장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는 거란다·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아· 누군가가 악용하면 안 되니까요?”
“그렇지· 똑똑하네 우리 딸·”
갑자기 책임이 막중해졌다·
권력승계는 나중에 언니오빠들과 천천히 한다고 치자· 현재로서 이 검은 마석의 쓰임새를 알게 된 사람은 아버지와 자신 둘뿐·
집 앞에 있는 산에서 발에 챌 정도로 많이 굴러다니던 돌멩이를 정제하면 이런 고급품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 당장은 생각하지 말자· 모처럼의 방학인데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있기에는 청춘이 아까웠다·
“알겠어요 아빠· 그러면 전 이만 자러 가 볼게요·”
정신없이 얘기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끝마친 로테는 꾸벅 인사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넓디넓은 방이다· 사람 네 명이 사용해도 넉넉할 정도의 크기· 이곳은 로테가 어릴 적 언니와 함께 사용했던 곳이었다·
언니와 함께 썼던 탓에 침대는 두 개였다· 소싯적에는 로테가 안쪽 그녀의 언니가 창가 자리에서 하루를 정리하곤 했다·
지금 창가 자리를 메우고 있는 건 다른 사람이다· 열린 창문 너머로 나부끼는 바람에 칠흑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삼라만상을 담은 금안이 고명한 자태를 흩뿌리며 달빛을 반사했다· 로테의 눈에 한 쌍의 정련된 황옥석이 비친다·
금안족 소녀는 저 멀리 창가 너머에 있는 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탓에 로테가 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산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에선 어딘가 모를 적적함이 묻어 나온다·
그래·
─ 지베 보내저어·
저건 향수를 느끼는 눈동자다· 마차에서 에테르가 했던 잠꼬대를 떠올린 로테는 스리슬쩍 그녀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저쪽에 뭐가 있어?”
로테는 피치블렌드 산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피치블렌드 산은 엘랑카야 산맥의 일부다· 엘랑카야는 금안족의 고향으로 유명하고· 어쩌면 에테르는 저 산맥 너머에서 온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 추측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고향·”
“고향?”
에테르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 수인족이 사는 곳이었다· 제국의 땅이 아니요 그렇다고 마대륙으로 향하는 북부 지대도 아니었다· 얼마 안 가서 에테르의 손가락이 피치블렌드 산봉우리에 걸려 있다는 걸 알았다·
순간 로테의 등줄기에 오한이 들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무지로부터 나오는 본능적인 불안감이었다·
생각해보니 로테는 에테르에 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이제 알고 지낸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탓이었다·
이건 차차 알아가면 될 일이었다· 로테는 자연스럽게 스몰 토크를 이끌어나갔다·
“혹시 고향에 가면 아는 사람이 있어? 형제자매라든지·”
“한 명 있지·”
“정말?”
에테르에게 형제자매가 있다는 건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로테의 맑은 눈동자가 희번덕거렸다·
“정말? 누구?”
“누나가 한 명 있어·”
“누나?”
에테르가 눈두덩을 비비며 말을 정정했다·
“언니· 언니 한 명·”
“어떤 분이셔?”
“인생 막사는 녀석이었지·”
대화는 그것으로 더 이어지지 않았다·
에테르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펜을 돌리며 책과 산을 번갈아봤다· 양장본의 책장 위로 쓱쓱 펜촉을 그은 궤적에 미분기하의 이론이 담겼다·
계속해서 양장본의 빈 곳에 복잡한 수식을 전개해나간다· 3학년까지 수학 선행학습을 마친 로테가 봤을 때도 전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내용투성이였다· 아는 기호도 몇 없어서 마치 외계어를 보는 것 같았다·
툭 사각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언니가 지금 어디 사는지는 몰라· 사실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 명줄에 죽지는 않았을 거 같거든· 고향에 돌아가서 찾으면 언젠간 다시 보지 않을까?”
“···사이가 나쁜 게 아니야?”
“인생 대충 살던 건 나도 똑같았거든·”
누군가의 하품 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바깥의 달은 어느덧 중천을 넘어 산 뒤편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자자·”
두 사람은 세안한 뒤 각자 자리에 누웠다· 광원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도 에테르의 금안은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로테는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조금 전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 때문에 머릿속이 잘 정돈되지 않고 있다·
째깍 째깍 째깍·
초침 소리에 뒤척이길 얼마일까·
완전한 암흑 속에서 로테는 일어났다· 잠을 자긴 잤는데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몇 시지?”
불안한 낌새에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테는 손에서 미약한 불씨를 당겼다· 슬리퍼를 신고는 얼떨결에 창가 자리의 침대까지 느릿느릿 걸어갔다·
눈을 비비고 정면을 쳐다본 로테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에테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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