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7
환하게 극장 안의 비춰주던 머리 위의 조명은 서서히 소멸하며 극장 안을 은은한 어둠으로 감싸게 했다·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소리·
팝콘과 맥주를 마시는 소리·
여러 가지 소음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아가씨는 손을 꼭 쥐고서 흥미로운 눈을 뜨고 계셨다·
“오··· 리카르도 시작하려나 보다!”
무대를 가렸던 커튼이 아주 작은 틈을 만들어내자 화사한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사회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이번 ‘어느 소녀의 슬픈 사랑이야기’의 각본가이자 사회자인 코웬입니다·”
“저희 연극에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이며·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는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자신이 만든 연극이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을 담은 사회자의 미소는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
사회자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객석을 향하여 소리쳤다·
“지금부터 연극 ‘어느 소녀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는 사회자의 인사와 함께 아가씨의 흥분된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오···”
“기대되네요·”
“웅· 근데 이거 무슨 내용이야?”
“음··· 슬픈 사랑이야기라고 했으니까 멜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추천받은 연극이라서 말이죠·”
“멜로···!”
아가씨는 콧김을 뿜으며 의자를 고쳐앉았다· 심성이 차가운 아가씨지만 로맨스란 장르에서 하나가 되는 여자였으니까·
기대할 수밖에 없었지·
“엄청 두근 거리겠지?”
“모르죠·”
“막 사람들 패고 그런 것도 나와?”
“보고 싶습니까?”
“조금···?”
아가씨는 수줍은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리카르도가 고른 연극··· 기대돼·”
“너무 기대하시면 곤란한데·”
“별로 기대 안 해·”
“뭡니까·”
“히힛··· 그냥·”
괘씸한 아가씨의 볼을 잡아당기려 하는 순간·
“어··· 시작한다!”
반쯤 무대를 가려졌던 커튼이 열리며 아가씨와 나의 눈에 반짝이는 무대의 불빛이 비쳤다·
화사했다·
물론 아가씨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말이다·
“재미있겠네요·”
“웅·”
*
-옛날옛적에 어느 시골 영지에 악독한 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탈세와 뇌물을 좋아하는 영주는 영지민들의 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악인이었답니다·
-쿠궁···!
웅장한 음악이 무대를 울리자·
사회자를 비추고 있던 조명은 천천히 빛을 잃어가며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바닥에 꿇어앉은 몰락한 귀족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스포트라이트· 아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 망해·”
“네?”
“탈세는 멍청한 놈이 하는 짓이야· 귀족이 되었으면 탈세가 아니라 세탁해야지·”
“똑똑하시군요·”
“탈세하면 큰일 나· 제국군이 찾아온단 말이야·”
“뇌물은요?”
“뇌물은 받으면 같이 죽으니까 괜찮아·”
“역시··· 데스문트 가문의 막내답습니다·”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시시 한 미소를 지었다· 욕을 했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
역시 악녀다운 모습이었다·
냉혹한 아가씨는 내게 속삭이며 말했다·
“쟤 지금 당장 망할걸?”
“왜요?”
“세금을 떼먹었잖아·”
“후반에 망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바로 망할 것 같아·”
클리셰를 깨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담은 나의 말에 아가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이 맞아·”
“에이·· 설마요·”
바닥의 꿇어앉은 중년의 배우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더러운 평민들···! 감히 나를 배신해!
‘어라?’
아가씨의 말처럼 연극은 클리셰를 깨고 단숨에 악역을 퇴장시켜버렸다· 내가 예상한 스토리는 악역 영주가 개과천선을 하는 것 아니면 비운이 여주인공이 혁명을 일으키는 이야기로 흘러갈거라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악독한 귀족을 맡은 배우는 단 한마디를 뱉고는 뒤이어 나오는 평민들에게 커튼 뒤로 끌려나가며 괴성을 질렀다·
-안돼!
-악독한 영주는 영지민들의 손에 이끌려 내려왔습니다· 그동안 억압받던 일들에 대한 보복으로 영주를 죽인 영지민들은 그의 자식도 죽이려고 했지만···
말끝을 흐리는 사회자의 해설과 함께 커튼 사이에서 조그마한 꼬마 배우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의 어린 딸· ‘루시아’의 작은 생명은 밟을 수 없었답니다·
꼬마 배우는 당돌한 표정을 지으며 무대의 가운데에 서 있었다· 망해버린 가문의 여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거만한 표정·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 건방진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마 배우의 연기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실수한 것 같은데···’
배역을 이해하지 못한 아역의 어설픈 실수라고 생각했다· 가문이 망했는데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동시에 작은 기대를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내가 보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런 연기를 보여주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으니까·
천장 위의 조명은 여자아이를 비추기 시작했고 동시에 여자아이는 큰 목소리로 관객에게 소리쳤다·
“X팔!”
‘미친···’
-웅성웅성···
‘뭐지·’
덩달아 놀란 아가씨는 벙찐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리카르도 쟤 이상해·”
“푸핫···! 저는 익숙한 데요·”
“익숙해?”
“아닙니다·”
아가씨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 무대 가운데에 선 꼬마 배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억울해! 부러우면 너희도 나처럼 잘나게 태어나던지 어디다 대고 성질이야!
익숙한 모습이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어느 귀족 영애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드는 꼬마의 연기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연극에 집중했다·
“아 옛날이 생각나는군요·”
“···그래?”
“아가씨는 그런 기분 안 드십니까?”
“나는 저 나이 때 착하게 살아서 모르겠어·”
“양심이 없으시군요·”
“힛·”
아가씨는 작은 웃음으로 답했다·
-바보···! 멍청이···! 멍청한 평민들···!
꼬마 배우는 귀여운 발길질로 바닥을 구르며 성질을 부렸다· 대부분에 평민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귀족의 이미지를 그대로 그려낸 듯한 연기에 나는 작은 감탄을 뱉었다·
‘근데 저렇게 놔둬도 되는 걸까·’
시대가 변하면서 자극적인 내용을 사람들이 좋아한다지만 이런 내용은 귀족이 싫어할 텐데·
내 말에 긍정이라도 하듯 관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란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연극의 첫 줄에 ‘잘못 골랐나’하는 생각이 들던 그때·
-야! 거기 평민!
등 뒤에 커튼이 열리며 꼭꼭 숨겨두었던 무대가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은은한 갈색의 조명·
먼지가 날리는 듯한 착각을 일게 했다·
배경은 익숙한 빈민촌이었다·
수도에서 버려졌던 기억의 일부분을 잘라놓은 것처럼 무대의 뒤편에 설치된 세트장은 아가씨와 나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했다·
낡은 건물의 벽들·
양철로 만든 지붕·
먼지가 자욱이 낀 것 같은 세트장에서 꼬질꼬질한 드레스를 입은 꼬마 배우의 목소리가 향한 곳에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붉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서 있었다·
-나 불렀어?
-응·
-왜?
-특별히 나에게 먹을 것을 줄 기회를 줄게· 영광인 줄 알아·
-응· 잘 가·
“푸하하하!”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앉아있던 아가씨는 뾰로통한 눈을 뜨고서는 나를 노려봤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웃음을 짓는 관객들의 반응이 마음이 안 드는 모양·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한 아가씨는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쟤네들 왜 웃어?”
“웃겨서 웃는 게 아닐까요?”
“리카르도도 웃었잖아·”
“저는 따라 웃는 거고요·”
아가씨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 말했다·
“웃지마· 배고프다고 하잖아·”
“조심하겠습니다·”
“웅·”
아가씨는 팔짱을 끼고 콧김을 뿜었다·
다시 연극은 이어졌다·
사회자는 배우들 앞을 살며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더 이상 귀족이 아닌 소녀는 빈민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갈 곳이 없었던 소녀는 소년을 따라서 빈민가 생활을 시작했고 점차 소년과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싸우긴 했지만 말이죠·
-밥 줘!
-싫어· 너희 집 가·
-나 집 없는데···
-나도 없어!
-해를 거듭할수록 소년과 소녀의 관계는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구걸하면서 얻은 음식을 나눠 먹고 때로는 불량배들에게 맞을 뻔한 루시아를 소년이 구하기도 하면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를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소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말이죠·
재미없을 것만 같았던 연극에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봄과 같은 산들바람이 향긋한 꽃 냄새를 풍기며 극장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투닥거리며 싸우는 루시아와 붉은 머리카락에 소년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편식하지마!
-맛없으니까 안 먹어·
-너는 이제 귀족이 아니라고! 주제를 알아!
-어···? 아···아니야! 나는··· 나는···
때로는 상처주는 말을 하고·
때로는 같이 울어주고·
점차 가까워지는 그들의 모습이 가슴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븕은 머리의 소년은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며 틱틱거렸고 루시아는 언제나 한결같이 당당하게 살아가고·
때로는 구걸을 해야 살 수 있는 자신의 초라해진 인생에 어둠을 느끼게 되면 조용히 찾아와 이야기를 해주는 붉은 머리 소년의 사랑이야기는 뭔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소년은·
-내가 어른이 되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그러니까··· 나랑 평생 같이 있자·
사랑이란 감정에 눈을 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kimdoyunniming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복을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작가 24년에는 휴재를 최대한 피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님에게 새해에 복이 찾아오는 요정 복주머니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SUNHYUK님 1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항상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요정 독자님에게 새해에 복이 가득하기를 빌어봅니다!
24년 올 한 해에는 이루지 못했던 일들이 모두 일어나기를 바라며!
항상 행운이 따르기를 빌겠습니다!
독자님에게 24년에 완벽이라는 요정이 찾아오는 요정! 세벳돈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HKM813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요정···! 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복이 가득하기를 빌며!
독자님에게 올 한해 행복만 가득한 요정···! 건강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연달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도 많고 미흡한 부분도 많지만 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장할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요정!
독자님에게 올 한해 기분 좋은 일들만 가득하도록! 잃어버리지 않는 가방 단속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닷!
비공개로 3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흐에에에엑!!!!!!!!
이 요정···! 눈을 비비며 새해복을 가득 받습니다!
24년 한해 독자님의 앞길이 눈길이 아닌 비단길이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독자님에게 24년도는 항상 살아있는 뜨거운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요정!
연초의 행운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닷! 감사합니다!
데코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새해를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요정 독자님에게 새해에 복이 가득하기를 빌며!
독자님에게 올한해 빙판길이 많은 가운데 어둠에 숨어있는 적군 결빙현상을 사라지게 만드는 따뜻한 바람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비공개로 3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AI삽화는 추가하지 않기로 했습니닷!
나중에 천천히 삽화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닷!
새해가 찾아왔습니닷!
독자님에게 올 한해 가장 기쁜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는 요정의 마음으로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요정! 사랑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op2351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굿!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닷!
비록 부족한 요정이지만 천천히 발전해나가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습니다!
독자님에게 올 한해 드림카를 뽑을 수 있는 마법의 요정! 3D프린터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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