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8
사회자는 청아한 목소리로 해설을 이어갔다·
-어른이 된 소년은 비루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운명만이 아닌 구겨진 호박처럼 굴러들어온 괴팍한 소녀의 꿈도 이뤄주고 싶었으니까요·
단아하게 울리는 사회자의 목소리는 딱딱하지도 그렇다고 감정이 담겨있지도 않은 낮은 목소리였다·
사회자 뒤에는 소년과 소녀가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모습이 이어졌다· 초콜릿을 두고 머리끄덩이를 잡으며 싸우는 꼬마 배우들의 열연에 객석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푸하하! 저 꼬맹이 좀 봐!”
“빨간 머리야 이겨라!”
“몰락한 귀족한테 지지 말라고!!”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아가씨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팔짱을 끼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는 아가씨는 코웃음을 치며 한숨을 뱉었다·
“원래 강한 사람이 먹는 게 당연한 거야! 몰락한 귀족이든 천민이든 강한 놈이 초콜릿을 쟁취할 수 있다고···· 초콜릿에 대한 예의가 없어···!”
-원래 강한 사람이 먹는 게 당연한 거야!
배우와 똑같은 대사를 뱉는 아가씨의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 저 몰래 이 연극 보고 오신 거 아닙니까? 어떻게 똑같이 말합니까!”
얼굴이 새빨개진 아가씨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우이씨’라며 위협적으로 나오셨지만 그 모습이 귀여운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아가씨의 손에 캐러멜 팝콘을 건네줬다·
“왜!”
“드시라고요·”
“웅· 고마워·”
“네·”
먹을 거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 아가씨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연극에 집중했다·
“리카르도·”
“네?”
“나도 저랬어?”
머리끄덩이를 잡으며 소년과 싸우는 루시아를 보며 멍한 눈으로 말하는 아가씨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의 말로 답했다·
“아가씨는 더 심했습니다·”
“···아니야· 나는 머리끄덩이는 안 잡았어· 주먹으로 싸웠지·”
“그게 더 심한 거 아닙니까·”
“승부의 세계는 원래 냉정한 법이야·”
“···”
초콜릿에 대해서만큼은 정의가 불타오르는 아가씨였다·
작은 대화를 이어간 뒤·
사회자는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해설을 이어갔다·
-소년은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빈민가에서 구걸을 시작해 소매치기한 물건들을 팔아 이윤을 조금씩 남기기 시작했고 조금씩 소년의 지갑은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소매치기한 지갑에서 보석을·
보석에서 드레스 옷감을·
드레스에서 작은 집을 팔며 많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루시아와 많이 싸우고·
자신과 놀아주지 않고 일만 하는 소년을 루시아가 질투를 하며 다투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이라는 끈끈한 감정이 굳건한 매듭을 짓고 있었습니다·
단지 소년의 가슴 속에 사랑이라는 싹이 수줍게 피어오르긴 했지만 말이죠·
마음속에 품어있던 사랑이라는 작은 씨앗은 소년의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에 루시아의 몸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린다거나 어깨에 기대 조용히 잠에 든 루시아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들이 소년의 마음을 뜨겁게 간지럽혔습니다·
사랑을 짐작한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큰일 났네·
연민에서 시작된 관계는 점차 분홍빛의 사랑으로 커져 나가고 루시아는 소년이 피운 작은 싹에 물을 주기 시작했고요·
-나는 나중에 멋진 남자랑 결혼할 거야!
-멋진 남자···? 그게 누군데?
-귀족이고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 돈도 많으면 좋겠어!
소년은 손가락을 접으며 웃음을 삼켰습니다·
‘세 개는 합격했네·’
소년의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꼬마 배우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어른이 된 주인공들이 무대의 양 끝에서 서서히 걸어 나왔다·
누더기 드레스를 입고 있던 루시아는 어느새 성숙한 여인이 되어 근사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상인이 된 소년은 깔끔한 정복의 차림으로 당당히 걸어 나왔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췄다·
밝은 스포트라이트는 루시아를·
어두운 스포트라이트는 붉은 머리의 소년을·
밝기가 다른 조명을 받는 배우의 얼굴에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밝은 미소를 짓는 루시아·
그리고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인 소년·
무거운 음악과 함께 무대는 열렸고·
아가씨의 표정은 어두웠었다·
“아가씨 표정이 어두워 보이십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신가요?”
“아니· 그냥 뭔가 마음이 아파서·”
“흠···”
나는 소년의 어두운 얼굴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을 겁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겠습니까?”
“제목이 슬픈 사랑이야기라고 하잖아·”
“그렇군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결말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었지만 끝으로 치닫는 연극의 흐름은 슬픈 결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이야기·
처지와 상황이 조금은 달랐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감정은 비슷했다·
무관심에 상처받는 것도·
헛된 희망을 품는 것도·
과거의 나와 비슷한 궤도를 걷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나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언제나 해피엔딩을 바라왔으니까·
그래서 나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저는 다릅니다·”
두 손을 꼭 쥐고 연극을 보고 있는 아가씨의 볼을 살짝 잡아당기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저는 잘생겼으니까 말이죠·”
“아으으···! 왜에 꼬집어!”
“그냥요·”
연극은 이어졌다·
-사람의 인연은 끊이지 않는답니다·
-사랑을 깨달은 소년은 루시아가 좋아하는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루시아는 소년을 보지 않았습니다·
상반된 두 개의 무대가 하나의 커튼을 벽 삼아 그려지고 있다· 마법으로 만든 무대의 요소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건축하기를 반복했다·
루시아가 서 있는 무대는 밝고 사람들이 많은 연회장·
소년을 비추는 곳은 비바람이 부는 차가운 길거리· 끊임없이 일하며 수첩에 무언갈 적는 소년의 작은 미소는 행복해 보였다·
-귀족이 되면 고백해야지·
작은 설렘을 담은 듯한 미소는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기분 나쁘게도 말이지·
-철이 없던 루시아는 소년이 주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나 아카데미 합격했어!
-그래···? 나랑 같이 일하기로 했었잖아·
-내가 똑똑해져서 도와주면 되지!
-가고 싶다면 가야지·
-많은 등록금을 혼자서 감당하면서 말이죠·
-친구가 많아진 루시아는 소년을 점차 잊어갔고·
-언제 오지· 오늘 내 생일인데···· 까먹었으려나·
-점차 루시아는 소년과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대는 소년의 방으로 바뀌었다·
흥분한 얼굴로 소년에게 자신의 사랑을 말하는 루시아와 당황한 표정으로 루시아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얼굴이 우리에게 보였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누군데?
내심 기대하고·
-아카데미 3학년 루카스· 귀족이야! 작은 가문이긴 한데 엄청 잘생겼고···! 착해!
-···어?
실망하고·
-루시아 그게 사실···
-응원해줄 거지?
절망했다·
소년의 얼굴에 실망이란 감정에 찾아오고 있었다· 수 십 년간 좋아했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소년의 얼굴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년은 티를 낼 수 없었다·
루시아의 행복은 자신의 행복이었으니까·
-축··하해·
소년은 어색하게 웃으며 루시아의 사랑을 응원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루시아를 축하해주던 소년의 미소와 함께 연극의 흐름은 종점을 향해 다가갔다·
-소년은 묵묵히 루시아의 사랑을 응원했고 언젠가 돌아와 주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일에 집중했습니다·
-귀족이 되고 싶다는 루시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올 차례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무대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연극의 끝을 달려가듯 장엄한 음악과 함께 거센 바람이 관객을 향해 돌풍처럼 불어왔다·
-루시아· 그 남자 위험한 사람이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제발 내 말 좀 들어! 한 번만 내 말을 들어주면 안 돼?
-시끄러!
루시아가 좋아하는 사람은 살인자였다·
소년은 의도치 않게 루시아가 좋아하는 남자의 정체를 봐 버렸고 소년은 루시아를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이야기긴 했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의 열연에 관객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봐·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잖아·
루시아를 대신해서 죽었다·
비가 내리는 차가운 길바닥이었다·
소년의 배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루시아가 좋아했던 남자는 소년의 손에 죽음을 맞이해 차가운 주검으로 쓰러져있었다·
소년은 어두운 표정으로 작은 스포트라이트를 맞으며 떨고 있는 루시아를 꼭 안아줬다·
-더러운 거 싫어하는데 미안해· 오늘이 아니면 못 말할 것 같아서·
낮은 목소리로 고요하게 퍼지는 소년의 목소리· 처절한 울음이 아닌 잔잔한 목소리임에도 깊은 몰입감을 주고 있었다·
객석에서 작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지금 이 순간· 소년은 입가에 흘러나오는 피를 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해·
루시아는 소년에 대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 늦게도 말이다·
*
“···웁니까?”
“안 울어·”
“풉·”
“놀리지 마!”
연극이 끝난 뒤·
아가씨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못 이겨 자리에 앉아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바늘로 찌르면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거라는 별명이 붙은 악녀지만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가씨는 코를 한번 킁 풀고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리카르도·”
“네·”
물기가 서린 목소리로 말하는 아가씨·
“리카르도는 죽으면 안 돼·”
나는 아가씨의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안 죽습니다·”
[재활의 손길을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요·”
나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죄송합니닷···!
이 요정 이번화 심혈을 다해 만들었지만···!
원고가 날라가는 바람에 급하게 써내려 갔습니다·
본래 2화 가량되는 내용이었지만···!
순살의 요정이 원고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맛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닷···!
[후원 감사]
SUNHYUK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달달하다고 해주시다니! 이 요정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비록 이번화··· 맛이 많이 떨어졌지만··· 다음화부터 퀄리티를 높이기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독자님에게 사랑과 달달함이 가득한 어른들이 부린 악마! 탕후루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연달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찾아오신 하늘연달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요정 응원해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에 원고가 날라가는 상황에서도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독자님에게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는 저장의 요정! ‘컨트롤+S’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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