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0
적막한 분위기가 흐른다·
새근거리는 아가씨의 숨소리와 카일의 차가운 눈빛이 살벌하게 꽂히는 방 안·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열심히 굴렸지만 이렇다 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떤 변명을 뱉어도· 듣기 좋은 말로 아부를 해도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으니까·
‘x발·’
어떡하지·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카일이 등장하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분노가 담긴 카일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나는 숨을 쉬지 못할 만큼의 강한 압박을 느꼈다·
흑마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와 그만두라는 훈계를 들었음에도 꿋꿋하게 수상한 짓을 하는 내게 카일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으니까·
카일은 나를 보고 있었다·
아가씨의 다리에 올린 손이 아닌 입가에 흐르는 피를 막고 있는 내 왼손을 보고 있었다·
주륵· 흘러나오는 혈흔이 내 손가락을 타고 팔뚝에 흐르자 카일은 눈살을 찌푸리며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뭐 하는 짓이지·”
나는 머릿속에 생각나는 아무 말이나 뱉었다· 침묵을 유지하는 것보다 그럴싸한 변명을 대는 것이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에 조금의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에 내가 말해도 믿지 않을 바보 같은 말을 뱉었다·
“안마를 하고 있었습니다· 닫혀버린 성장판을 열어주기 위해서··· 하하···”
“코피도 흘렸고 말이죠·”
말하고 보니 ‘성추행범으로 잡혀가려나·’ 하는 걱정이 문득 들었다· 현행범이라서 변명할 말도 없는데 말이지·
“하하··· 이건 너무 어색한가요?”
나는 카일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지만 카일의 표정은 더욱 창백하게 굳어갈 뿐이었다·
카일의 입이 열리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는 카일이 소리를 지르거나 흑마법 때문에 가문이 망할 위기를 겪은 카일이 마법을 사용하거나 할 테니까·
한 가지 작은 바람이 있다면 아가씨가 깨지 않았으면 하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바람이었다·
아가씨가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울게 분명했으니까· 아프지 말라고 약속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피를 토하고 있는 모습이라···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카일을 바라봤다· 내가 뱉은 핑계에 대한 평가를 내려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장난하나·”
역시 어설픈 변명은 카일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있는 방에서 안마를 하고 있다라···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역시 그렇죠?”
성큼성큼 걸어오는 카일의 손은 내 목덜미를 향했다·
-꽈악·
흔들림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내 멱살을 잡은 카일·
-쿠당탕!
카일은 거칠게 내 멱살을 잡아내며 아가씨의 침대에서 멀리 떨어진 어두운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갔다·
발을 구르는 거친 소리가 방안을 울리고 카일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묻지· 지금 무엇을 하는 거지·”
멱살을 잡은 카일은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딱딱했지만 미묘한 정이 담긴 평상시와 다르게 분노라는 감정을 담은 카일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말했다·
“아가씨 다리가 너무 예뻐 보여서 만졌다고 하는 건····”
장난스러운 답변이 입에서 나오자 카일의 안색은 더욱 창백하게 번졌고 동시에 그에게서 짙은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말이 안 되겠죠?”
나는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카일에게 물었다· 혹시나 못 본 척 그냥 지나쳐줄 수 없냐고 딱 한 번만 눈을 감아주면 서로에게 해가 될 일은 없을 테니까 넘어가 달라는 뜻으로 나는 입을 열었다·
“그냥 넘어 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옷깃을 쥔 카일의 손아귀에 힘이 더욱 강해졌다· 소리 없는 부정을 뱉는 카일의 행동에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를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아닌 네가 왜? 거리에서 민간요법이라도 듣고 왔나· 고작 그딴 소리를 듣고 올리비아에 다리에 손을 얹은 건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흑마법인가 보군·”
확신을 담은 말을 뱉은 카일의 손에서 짙은 마력이 흐르는 순간·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카일에게 솔직한 답변을 뱉었다·
“흑마법은 아닙니다·”
“가문에 해가 될 일 또한 아니고요· 물론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정한 짓도 아닙니다· 혹여나 문제가 생긴다면 저라는 꼬리를 자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이를 악문 카일은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고작 그딴 것 때문에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나?”
“···”
“고작··· 가문의 위협이 될 것 같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내가 네 멱살을 잡은 거라고 생각하냐고·”
“하하··· 역시 아가씨의 다리를 만져서입니까?”
멋쩍은 웃음이 흘러나왔지만 멱살을 잡은 카일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는 어설픈 미소를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카일은 고개를 숙였다·
“리카르도·”
멱살을 꽉 쥔 카일의 손아귀의 힘은 천천히 풀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카일은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네가 무엇을 하는지 이 이상 물어보지 않겠다·”
“무엇을 꾸미는지도 왜 지금 피를 흘리고 있는지도 묻고 싶지만 참겠다고·”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찰나 카일의 작게 들리는 끝말이 내게 반문을 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만둬라·”
카일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바람을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만하라고·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모르겠으나 여기서 그만두면 모르는 척 넘어가겠다고 말하는 카일의 말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가씨라는 맹점에서 내세우는 나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는 고질병이다· 특히나 아가씨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는 이제 배려하지 않기로 다짐했었고·
그렇기에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온정을 베푸는 카일에게 반문을 뱉었다·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단호한 답에 카일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내 말을 따라라 리카르도·”
“그럴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올리비아에게 말해도 그런 말을 할 건가?”
아가씨의 이름을 대며 압박하는 카일· 카일이 아가씨에게 사실대로 말한다면 아가씨는 재활의 손길이란 능력을 거부할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내 고집을 꺾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자고 있는 아가씨를 한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마 카일님은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뭐?”
“올리비아님을 사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카일은 아가씨를 아낀다·
흑마법을 사용한 이후에 그가 아가씨를 싫어할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그가 보여주는 모습· 그리고 아가씨가 깰까 봐 목소리를 낮추는 조심스러운 모습에서 그가 예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호감도 창이 그것을 바라고 있고·
카일이 아가씨에게 말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카일이 그러지 못할 거란 것을 확신했다·
카일이 나를 막는다면 사랑스러운 동생이 자신의 발로 땅을 밟을 수 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강하게 나섰다·
그가 내민 아가씨라는 카드는 어쩌면 양날의 검처럼 서로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조커와도 같았으니까·
아가씨란 카드는 카일의 무기만 아니라 내게도 쥐어진 검과 같았다·
“제가 없다면 아가씨는 걷지 못할 겁니다·”
“저번에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나는 올리비아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죠· 걸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을 때 카일님도 좋아하시지 않았습니까·”
“···”
“언젠가 예전처럼 활기차게 걷는 동생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지 않았습니까·”
단호한 답을 뱉던 카일은 내가 뱉은 반문에 길을 잃고 방황했다· 출렁거리는 눈동자는 파도와 같이 휩쓸리기 시작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카일은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내게도 아가씨라는 존재는 카일만큼이나 소중했다·
나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
동시에 내가 몰래 이어오던 짝사랑의 주인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나의 일이니까·
“저는 아무렇지 않답니다·”
카일은 고개를 떨구며 내게 말했다·
“그만둬라· 올리비아가 너를 많이 의지하고 있어· 그리고 나와 아버지 어머니도 너에게 많은 감사를 하고 있고· 그러니까···”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카일이 뱉은 답과 똑같은 말을 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랍니다·”
멱살을 꽉 쥐었던 카일의 손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입술을 꽉 깨물고 나를 노려보는 카일은 그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에 설움을 뱉고 있었다·
그도 올리비아의 다리를 흑마법으로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혹했었으니까·
방법을 알아보기까지 했었고 돈을 들여 리스크를 안을 사람을 구하려고 했던 추악한 자신을 알고 있기에 리카르도가 던진 창이 자신을 정확히 찌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카일 또한 올리비아가 소중했으니까·
나는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일을 향해 어설픈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카일은 고개를 숙이며 내게 말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나는···’이란 말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있었다·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동생을 위해 나를 희생시키는 것에 대한 죄책감·
카일은 이전과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네가 잘못된다면·”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만약에 올리비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나는 카일의 말을 끊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짓말로 꾸며주시면 좋겠습니다· 최대한 제가 나쁜 사람으로요·”
카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다·”
“아가씨에게 엄청나게 혼나시겠군요·”
아가씨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동화 속 공주님처럼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닷!
[후원 감사]
-오늘의 요정은 요정왕의 수면 부족으로 인해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SUNHYUK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무려 세 차례나 보내주신 후원!
이 요정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 소설의 끝을 궁금해 해주시다니!
-스포를 드리자면 해피엔딩입니다! 요정은 Bad엔딩을 싫어합니다· 다른 의미의 bad엔딩은 좋아하기도 합니다· 침대는 푹신하니까요·
이 요정이 최고하고 해주시다니!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하늘연달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항상 와주시는 독자님께 절을···!
지각이 잦은 요정이지만 항상 출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휴재도 줄이고···! 지각도 줄이는 요정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님들 감사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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