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8
마탑은 어두웠다·
속박을 위한 마도구는 마정석과 함께 박살이 나 있었고 마탑주가 심혈을 기울여서 방비한 결계 또한 누군가의 어리석은 실수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고 지워져 있었다·
어리석은 실수 말이다·
머리가 있다면·
생각이라는 것이 하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의 흔적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깜빡이는 전등 아래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마탑의 탑주 ‘하인리’는 험악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인자한 미소를 지운 채 차가운 눈으로 방의 구석을 내려다보고 있는 하인리는 차가운 입김을 뱉으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길 바란다·”
“알고 있긴 뭘 알고 있어· 대차게 깨졌지·”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엉망진창이었다·
전등은 깜빡이고·
경계를 위해 세워둔 마법사들은 쓰러져 있고 깨진 플라스크들이 하인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이곳에 있어야 할 죄수가 없다는 것·
고위 관계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마법 감옥에 탈옥이라니 하인리는 ‘허허····’ 헛웃음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신기하구나· 살면서 이런 적이 처음이라서 뭐라 할 말이 없어·”
하인리는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자신의 제자를 내려다봤다·
얼굴에 피가 가득 묻어있고 격한 전투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가득 채우고 있는 제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책감 때문이 아닌 패배라는 감정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자의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패배했다는 굴욕이 담긴 제자의 눈빛은 하인리에게 깊은 분노를 끌어 오르게 했다·
“루인·”
루인은 하인리의 말을 끊고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영감· 한스··· 그 새끼가 아가리만 안 털었어도 이길 수 있었어· 그 새끼가 순위전 때 이야기를 해서···”
“할 줄 아는 건 ‘아가씨’라고 징징거리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새끼랑 나를 왜 비교하는 거냐고·”
루인은 주먹을 쥐었다·
“다음에는 이길 거야· 그치 영감?”
반성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제자의 모습에 하인리는 깊은 한숨을 뱉었다·
“너는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구나·”
허튼짓만 안 한다면 뚫리지 않을 마법이었다· 자신이 만든 결계는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와도 깰 수 없었으니까·
굳건한 성벽 같은 거였지·
겉에서는 강하지만·
안에서는 약하디약한 성벽·
내부의 첩자 때문에 그 성벽이 힘없이 허물어져 버렸으니· 하인리의 심정은 이루말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서툰 판단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영감· 나 지하실 들어가게 권한 좀 넘겨줘·
-허허·· 지랄하는구나·
-뭐래·
한스를 감시한다는 루인의 말에 지하 감옥에 들어갈 권리를 줬으면 안 됐었다·
언젠가 자신의 뒤를 이어 마탑을 이끌어갈 루인이라면 냉정한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알 거라 판단했으니까·
루인에게 품은 기대가 너무 과했던 걸까· 후계자로 키우던 제자가 코앞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 하인리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30명·”
“30명이 왜·”
“한스가 죽인 사람의 수다· 어쩌면 더 많은 수의 사람이 죽였을지도 모르겠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네가 어리석은 판단을 한 탓에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거다· 루인·”
“아 쫌···!”
루인은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하인리에게 말했다·
“내가 풀어준 게 아니라니까? 그 새끼가 왜 그랬는지 물어보려다가 그 새끼가 뒤통수 때린 거지·”
“편한 대로 생각하고 있구나· 루인·”
하인리는 지금까지 루인에게 보여줬던 모습과 다르게 그를 대했다·
자상한 스승·
때로는 부모 없는 루인의 아버지이자· 친구 같던 가벼움을 지운 채 그를 향해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악마를 풀어놓은 거야· 사람의 영혼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악마를·”
루인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하인리의 잔소리에 답했다·
“영감은··· 안 이상해? 한스라고 한스·”
“···”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는 한스가 무슨 사람을 죽여· 협박을 받고 있다던가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어서 그랬겠지·”
“결과가 아니라고 증명하고 있는데·”
“극단적으로 이야기 좀 하지마·”
루인은 먼지를 묻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털며 말했다· 별거 아니라고 다시 또 잡아 오면 될 거 아니냐고·
그리고 한스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이번에는 아깝게 한스가 이겼겠지만 다시 싸우면 자신이 무조건 이길 거라며 루인은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차피 영감도 한스를 지키려고 여기로 데려온 거 아니야?”
“···”
“원흉을 찾으려고 한 거 아니냐고·”
맞는 이야기다·
하인리는 한스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었었으니까· 그래서 그 붉은 머리에게 빚을 져서라도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스는 자신의 손을 떠나버렸으니까·
하인리는 더는 자신의 제자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리고 루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었고·
자신이 믿는 착각에 힘을 얻고 싶다는 투정을 부리는 루인의 말에 진심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루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하인리에게 말했다·
“걱정을 왜 그렇게 하는 거야· 이해를 못 하겠네·”
“나도 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한스가 안 죽였다고··· 영감은 제자의 말을 못 믿어? 아니 x발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잖아· 그놈이 왜 사람을···”
-쩌억···!
허황된 희망을 말하는 루인의 볼에 하인리의 주먹이 꽂혔다· 단련을 하지 않은 마법사의 연약한 주먹이지만 루인과의 관계 세월을 품은 주먹의 무게는 루인의 가슴에 그 어떤 주먹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고개가 돌아간 루인은 가만히 있었다·
자신이 왜 맞았는지부터 제자를 믿어주지 못하는 스승에 대한 분노를 품은 채 고개가 돌아간 상태로 한참을 그 자리에서 서 있었다·
하인리는 자신을 보지 않은 루인을 보며 말했다·
“루인·”
“···”
“닥쳐라·”
“···”
“네가 제자의 말을 믿지 못하는 멍청한 스승이라고 했지?”
하인리는 깊은 단전 속에서 끌어 오르는 화를 삭이며 말했다·
“많은 제자를 봐왔다····”
하인리의 머릿속에서 한스와 독대했던 그 날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손에 마력 구속 구를 차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자신의 제자의 모습이·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키웠던 제자의 축 처진 어깨가 하인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스· 정말로 네가 그런 것이냐 네 손으로 흑마법을 배운 거냔 말이다·
그때 한스가 뱉었던 말은 커다란 충격을 가지고 왔었다·
-네·
-왜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하잖아요· 지금보다 더··· 마력에 구애를 받지 않고 루인을 넘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흑마법에 손을 댔다고?
-네· 어차피 스승님은 루인만 예뻐하시는데 제가 뭘 할 수 있다고요· 저도 꿈이란 걸 크게 가져봐야죠· 안 그래요?
-누가 시킨 것은···
-에이···
한스는 허탈한 미소로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누구한테 줘요· 제가 해야죠·
이미 떠나간 제자였다·
수많은 제자를 키웠고·
마법을 떠난 제자를 봐왔고·
심지어 한스와 마찬가지로 흑마법에 손을 댄 제자를 떠나보내기도 했다·
그렇기에 하인리는 뼈 아픈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알고 있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을·
“훌륭한 제자를 키우기도 했고 한스와 같이 욕망에 지배된 제자를 떠나보내기도 했지·”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었고·
신경을 써주지 못한 스승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일이었기에 마지막은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싶었다·
제국군에 넘기든 자신의 손으로 마법을 폐하던지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손을 떠나버린 한스의 최후를 지켜줄 자신이 없었다·
만약·
그 붉은 머리 녀석에게 또 한스가 나타난다면 그 녀석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죽였을 테니까·
하인리는 얼어붙어 있는 루인을 감옥에 버려두고 뒤를 돌았다·
“한동안 근신하고 있어라·”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최선의 자비를 내리고 한스를 빨리 잡아야겠다고 하인리는 생각했다·
*
“리카르도 웃음이 음흉해·”
숟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아가씨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왜 웃냐고·
“미친놈 같아·”
“그건 좀 상처받는 말인데요·”
“그래? 그럼 음··· 정신병 걸린 것 같아·”
“그게 더 상처받는 말인데요·”
“으흠···”
아가씨는 조금 더 상냥한 말을 찾기 위해 숟가락을 인증 위에 올리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셨다·
아무래도 좋은 대안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아가씨·
나는 그런 아가씨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기분 좋은 생각을 했다·
탑주에게 얼마나 뜯어낼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안 봐도 뻔했다·
한스가 마탑주의 손에서 탈출한 이유를 말이지·
대마법사인 마탑주가 마력이 다 빠진 한스를 놓아줬다라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그러면 마탑에서 탑주의 권한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머저리는 열 손가락 안으로 좁혀지는데 부탑주나 고위 마법사들이 그런 짓을 할 일은 없단 말이지·
그러니까 결론은 루인·
그 녀석이 한 짓이 유력했다·
그러니까·
‘책임은 루인에게 묻는 게 맞겠지?’
나는 루인의 마법 중 하나를 훔칠 생각이다·
소설 후반 루인이 최강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
백마법을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분량이 적어서 죄송합니다!
내일부터 정성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추신)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
하늘연달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찾아오신 하늘연달님!
쉬는 동안 많은 기쁨을 느꼈습니다···!
역시···! 휴식이란 건 좋군요!
하지만···! 스토리를 정비할 수 있어서 매우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맛이 없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닷!
한동안 맛이 없는 것이 이어지겠지만!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에게 기나긴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요정! 기운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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