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0
어두운 공간 속·
고개를 숙인 루인은 이를 갈며 한스와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지하실에 갇혀있던 한스가 탈옥했던 그 날 그와 나눴던 대화가 루인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야· 한 가지만 물어보자·
-···
-왜 그랬냐·
-···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그래·
-···
한스는 입을 열지 않았었다· 자신의 물음에 그저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
죄인이 된 것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녀석의 모습을 볼 때 루인의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었다·
매일같이 두꺼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도서관에 살았던 모범생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왜 흑마법에 손을 덴 거냐고 내가 묻잖아·
그 녀석이 이런 음습한 짓을 꾸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말수는 적었지만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었고 작은 벌레조차 죽이지 못했던 유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녀석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믿지 못했던 거고·
혹시라는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게 된 것 같았다·
영감의 마법을 지우고 한스를 독대한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 정도는 루인은 알고 있었다·
결계가 사라진 한스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대이기에 영감이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한 것에도 이유가 있었겠지·
자신의 친구가 나쁜 놈이라는 것도·
한스가 사람을 죽인 범죄자라는 것도· 루인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친우의 타락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영감의 마법을 지우는 멍청한 짓을 하게 만들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한 친우였으니까· 루인은 자신의 의문을 믿고 싶었다·
-왜···
한스와 함께 했던 유년 시절은 루인에게 자비라는 감정을 계속해서 속삭였고·
-왜 그랬냐고···!
친우에게 사연이 있을 거란 희망이 수면 위로 떠 오르게 되었다·
매번 영감이 그랬지·
왜 생각이 없이 사느냐고·
멍청하게 화를 조절하지 못해서 사건을 만들고 조금만 참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도 왜 계속 멍청한 선택을 해서 일을 망치냐고 영감은 자신에게 훈계를 했었다·
당연한 말이었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고·
내가 얼마나 화를 못 참는지·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고 이성적인 대화보다는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멍청한 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라는 사람이 문제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 걸 어떡하냐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고 그런 대접을 받아왔었는데· 오랜 습관을 단번에 바꿀 순 없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침착하게 해보려고 했었다·
예전부터 화를 참으라는 영감의 말을 따라서 감정적으로가 아닌 이성적으로 한스와 대화를 하려고 했다·
믿고 싶었으니까·
다른 사정이 있었다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으니까·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고 한스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그것이 친구니까·
-하··· 루인·
하지만 자신의 친구는 듣고 싶었던 말을 들려주지 않았고 차가운 미소로 자신에게 답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친우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지쳐있던 터라 그 녀석의 목소리는 갈라졌었지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었다·
한스는 감정을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화를 참으려는 듯이 이를 꽉 깨문듯한 음성이 자신의 귀에 들려왔다·
-왜 그랬냐고?
-···
-루인 네가···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묻는 거야?
축 처진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는 한스의 두 눈에 깊은 증오가 가득하게 담겨 있었다·
처음이었다· 순진한 웃음만을 보여줬던 한스가 저런 차가운 표정을 짓는 것이·
구속된 그가 쏟아내는 살의· 오랜 시간 동안 묵혀왔던 감정의 늪이 어두운 감옥 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증폭이 된 것 같았다·
-철컹!
손을 감았던 쇠사슬이 출렁이는 소리와 함께 한스는 소리쳤다·
-속 편한 소리 하지마·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건데·
-그러니까···
-너는 모르잖아·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왜 그랬냐고!
-하··· 진짜·
한스는 메마른 웃음을 뱉었다·
비웃음이 아닌 허탈한 웃음을 습기가 가득한 감옥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뱉어냈다·
-그거 알아? 내가 서 있는 곳마다 네 이름이 따라오는 기분을?
-뭐?
-마법에 새로운 성취를 얻었을 때도· 발견되지 않은 수식을 찾았을 때도 언제나 나를 따라오는 게 네 이름인 기분을 너는 아냐고·
-···
-뭣 같잖아·
-···무시하면 되잖아· x발 무시하면 될 거 아니야! 어떤 새끼가 그랬는지 나한테 말하면 내가 도와줬을 거 아니야!
그때 한스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말했었다·
-너야·
-뭐?
-너라고 네가! 내 앞에서 그것도 못 하냐고 개 쪽을 주고! 겨우겨우 파이어볼 한 발을 성공해내며 코웃음 치면서 이것도 마법이냐고 지랄하니까! 내가! 내가! x발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거 아니냐고!
구속 구에 손이 묶여있는 한스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루인을 노려봤다·
-나는 천천히 뺏어갈 거야·
-···
-네가 좋아하는 거 네가 아끼는 거 모두를 다아! 내가 뺏어갈 거라고·
그리고 한스는 겨우 잡고 있었던 이성을 끊는 말을 뱉었다·
-유리아···
그냥 친구라고 생각했던 유리아의 이름이 한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마음은 차갑게 굳어지는 것 같았고·
-그래 네가 좋아하는 유리아·
오랜 친구의 입에서 유리아에 대한 악의적인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내가 죽일 거야·
처음으로 그를 죽이고 싶었다·
사실 한스는 리카르도에 대한 말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탑주에게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싶었고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하기 편한 핑계를 댔었다·
한스의 탈옥의 원인은···
리카르도와 나 사이에서 있었던 도발이 아니라 유리아의 목숨에 대한 협박에서 비롯된 일이었다는 것을 루인은 숨기고 있었다·
한스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잘 지켜야 할 거야· 두 번은 없어· 나도 이제 눈에 뵈는 게 없거든·
자신은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고·
보기 좋게 한스의 함정에 걸리고 말았다·
***
독서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아가씨에게 대차게 까인 나는 아가씨와 함께 멍하니 창문을 보고 있었다·
“흠냐·”
“마도서를 보고 싶으시다고요?”
“아니·”
“아 그럼 여기 있습니다·”
“안 볼거야·”
“그렇군요· 그럼 오늘 저녁에 보는 거로·”
“안 봐!”
철딱서니 없는 아가씨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집사의 마음을 몰라주고 있었다·
자고로 지식이라는 것은 쌓으면 쌓을수록 인생에 도움이 되길 마련인데 아가씨는 지식이라는 것과 담을 쌓기 위해 작정이라도 한 모양인지 뇌를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나는 아가씨의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다 대며 빙글빙글 돌렸다·
“흐에에엑!”
“혈액 순환이 돼야 공부할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돈다···! 세상이 빙글빙글!”
“어떠십니까· 이제 공부할 마음이···”
“안 해! 공부 싫어!”
아가씨는 관자놀이가 관통될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내면서 꿋꿋하게 학업에 대한 절연을 토해냈다·
‘어쩔 수 없나·’
아가씨께서 마법을 배우신다면 좋긴 하겠지만 하기 싫어하는 아가씨의 의지가 너무나 확고해서 강제로 하기에는 그랬다·
억지로 시키는 일은 하기 싫었으니까·
나는 아가씨의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구름이 가득 낀 하늘을 바라봤다·
오···
눈이 오려나·
이런 우중충한 날씨에 사연 있는 손님이 한 명씩은 꼭 찾아왔던 것 같은데···
나는 비 오는 봄날에 저택에 찾아왔던 검을 든 소녀를 생각했다· 싸구려 녹차를 먹고 싶다는 어설픈 핑계를 대면서 찾아온 소녀는 그날 울고 있었고 무거운 사연을 품고 있었지·
그때도 오늘과 비슷한 날씨였다·
하늘에 구름이 많이 꼈었고 비가 내렸던 날·
그래서 더 불안했다·
귀찮은 건 질색이니까·
저택에 찾아올 손님은 없지만 말이지·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시작할 때네요·”
“뭐가?”
혼잣말을 들은 아가씨는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봤다· 격렬하게 고문을 한 탓에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아가씨의 콧잔등에는 잔머리가 부스스하게 붙어있었다·
간질간질 콧잔등을 괴롭히는 잔머리에 아가씨는 미간을 찌푸렸다·
“에···에이···에이취!”
-지그시·
“왜요·”
“콧물·”
“그게 왜···”
아가씨는 콧물이 묻은 손을 내게 들어 보였다· 성스러운 집사복에 콧물을 문대려는 망측한 아가씨의 행동에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나며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얹어줬다·
킁 하고 코를 푸는 아가씨·
어깨를 부르르 떨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래서 뭐가 시작이라는 거야?”
“아··· 오늘 저녁 메뉴 고르기요·”
“고기·”
“파프리카가 잔뜩 들어간 비프 스튜요?”
“이이익! 귀족 학대하지마!”
“죄송합니다· 취미가 귀족 학대여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흐에에엑! 굶을 거야!”
슬슬 유리아가 납치되는 에피소드가 찾아오고 있었다·
신안을 가지고 있는 유리아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교도가 유리아를 납치하려는 스토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해결될 문제지만 뭔가 조금 걱정된단 말이지·
잠깐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얼굴에 붙은 잔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걷어내던 아가씨는 ‘음?’이란 작은 의문과 함께 저택의 정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리카르도· 누가 오고 있는데·”
“네? 누가 올 사람이 없는데요·”
“아니야· 빗자루가 걸어오고 있어·”
“빗자루요?”
나는 고개를 들어 저택의 마당을 내려다봤다·
어라· 진짜네·
누가 걸어오고 있는데·
창밖에서 익숙한 남자의 형상이 걸어오고 있었다·
녹색의 머리카락·
빗자루를 닮은 서브 남주인공·
루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고오오오옴!!!
물론 곰탕이에게 다리를 잡힌 상태로 말이다·
-놔아! 곰 새끼야!
-고오오옴!
가짜는 아닌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
하늘연달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찾아오신 하늘연달님!
이 요정···!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님에게 행운이 가득한 뜨거운 기쁨의 요정! 믹스 커피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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