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1
서늘한 기류가 연회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소녀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멍청한 녹조 대가리의 시선이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무도회를 망쳐가고 있었다·
나는 루인을 무시하고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호감도 창을 사용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유리아를 찾으세요·
-선택은 단 1번만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을 완료할 시 호감도 창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연회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먹통이 되어버린 호감도창·
눈앞에 유리아가 진짜일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호감도 창의 부재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라서 드레스라는 보험을 마련해 뒀는데 연회장 안에는 내가 사준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온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소설에서는 유리아는 낡은 드레스를 입고 왔었지·
루인이 사준 드레스가 아니라 중고로 샀던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서 많은 무시를 받았던 스토리로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루인은 유리아를 알아보지 못했고 결론적으로 무도회가 끝날 때쯤에 유리아를 찾던 루인이 베란다에서 울고 있는 유리아를 보게 되면서 얼굴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에피소드였다·
나름 감동적인 이야기였는데·
울고 있는 유리아의 손목을 잡고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삽화가 참 매력적이었는데 지금은 뭐··· 개판이 되어버렸네·
현실과 소설의 차이점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소설에서는 루인과 얼굴이 변해버린 유리아와의 마찰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소설에서 루인은 유리아를 무시했었고 대화가 없었다·
마치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가 바위 뒤에 숨어서 왕자님을 훔쳐보는 것처럼 가슴이 저릴 듯한 애틋한 그림이 만들어지는 에피소드였는데·
흠·
단단히 꼬여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눈앞에 울고 있는 소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울지 마세요·”
“끕··· 안 울어요·”
“거짓말· 펑펑 울고 있는데요·”
“아니라고요···”
“흐음· 제가 사준 드레스를 입고 오지 않아서 혼내주고 싶습니다만 이렇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혼낼 수는 없겠군요·”
빙의자의 특혜가 봉인된 퀘스트·
어려운 퀘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 번의 기회를 날리면 그 즉시 실패로 이어지니까·
알래스카에서 김철수 씨를 찾는 난이도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뭐 쉬워도 너무 쉬운 퀘스트였다·
눈앞에 기도 못 쓰고 서글프게 울고 있는 이 소녀를 보니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누가 모를까·
이 사람이 유리아라는 것을·
주어진 힌트가 많아서 찾기가 쉬웠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굳이 힌트가 주어지지 않았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남들에게 뭐라고 못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구석에 숨어서 혼자서 고민하고 울상을 짓고 있는 습관을 지닌 사람은 내가 기억하기로 유리아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소설에서도·
아카데미를 다닐 때도·
나는 유리아의 모습을 기억하고 저장하고 있었다·
나는 유리아의 친구이자·
소설의 빙의한 빙의자였으니까·
모를 수 없었다는 말이 맞으려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젖고 있는 유리아를 바라봤다·
“아니에요··· 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에요·”
봐· 이게 유리아가 아니면 누구냐고· 당황하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것도 슬프면 손으로 얼굴을 감추는 것도 유리아의 습관과 똑같았다·
“그런가요?”
나는 ‘흣차’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유리아의 앞에 꿇어앉았다·
유리아와 눈높이를 맞추고 차분히 유리아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싱긋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유리아의 손을 잡았다·
작게 떨리고 있는 유리아의 손은 여리고 차가웠다·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나는 천천히 유리아의 손을 얼굴에서 떼어내기 시작했다·
“하지 마세요···”
힘을 주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유리아는 다시 한번 고개를 세차게 젓고 있었다·
“뭘 그렇게 숨기고 계십니까·”
“숨기는 게 아니라···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엄청나게 못생겼고 흉측하다고요· 사람 잘 못 보셨어요·”
“그런가요? 저는 예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그럼 마음이 예쁘신가 보죠·”
“이러지 마세요· 제발···”
유리아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떨리는 유리아의 목소리는 강렬한 부정을 뱉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을 잡아달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을 정도로 구슬프게 들려왔었다·
나는 조금 힘을 주어 유리아의 손목을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반창고가 가득하게 붙어있는 유리아 손을 보자 쓰라린 미소를 지었다·
“아프시겠네요·”
“···”
“저한테 치료받으라고 하시지 말고 본인 몸을 더 신경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저는·”
“그만·”
나는 유리아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알겠으니까· 그만 우세요·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퉁퉁 부어버린 눈·
콧물 범벅이 되어버린 반들거리는 볼을 보자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제야 얼굴을 보네요·”
“···”
“왜 숨기고 있습니까· 뭐가 부족하다고·”
“못생겼으니까····”
“아닌데요?”
“거짓말·”
유리아는 ‘훌쩍’ 코를 훌쩍거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유리아는 떨리는 어깨를 주체하지 못하고 움찔거리고 있었다·
“못생겼다고 한 사람이 있으면 저한테 이르세요·”
“···없어요·”
“거짓말·”
“정말이에요·”
대충 예상이 가긴 하는데···
나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연회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단 미하일 옆에 있는 여학생 한 명·
루인의 근처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여학생 한 명·
마지막으로 황태자 옆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갈색 머리카락이려나·
나와 눈이 마주친 여학생들은 안색이 파리하게 굳기 시작했다·
나름 구면인 사람들이었다·
과거에 나대지 말라고 경고했던 적이 있던 사람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만 더 선을 넘으면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거라고 경고한 적이 있는 인물들·
“대충 알았습니다·”
“네?”
“아니요· 그냥 혼잣말이랍니다·”
나는 유리아의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며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줬다·
분홍색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안에 퍼지자 향긋한 라벤더의 향기가 은은하게 손안에 남았다·
‘샴푸 냄새만 맡아도 알 것 같은데·’
생각보다 소설에 멍청이가 많은 것 같다·
특히나 지금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녹조 대가리는 더욱더 그렇고·
유리아는 천천히 내 손길을 떼어내고 훌쩍이는 눈가를 비비며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착각하고 계신 거예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합니다·”
“믿어주세요·”
“저는 제 눈을 믿습니다만·”
“···”
유리아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도망치듯이 베란다로 향해 달려갔다·
복잡하겠지·
진짜 눈치챈 건가 싶으면서 동시에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테니까·
배려가 부족했나·
차라리 혼자 있을 때 조용히 찾아가서 이야기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워낙에 화나서 말이지·
나는 달려가면서 뒤를 힐끗 훔쳐보는 유리아를 향해 작게 손을 흔들어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울지 말아요·”
뻐금거리는 입 모양을 읽은 유리아는 더욱더 눈물을 흘리며 베란다로 뛰어가고 있었다·
흩날리는 샴푸 향의 잔향을 맡으며 나는 무릎에 손을 얹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슬슬 시작해야겠지·
유리아에게 가기 전에 화풀이를 해야 할 곳이 필요했다·
감히 여주인공을 흑화하게 만들 뻔한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도 나름 독자고·
소설의 스토리에 대해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자 평안한 백수 생활을 방해한 위인들에게 적당한 선물은 남겨두고 가는 것이 도리이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은 유리아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었던 사람부터 죄를 묻는 것이 맞는 일이겠지·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루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건 하셨네요·”
루인은 깊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꼴값들을 떤다·”
‘쯧’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적막한 연회장 안을 울렸다·
“못생긴 년놈들끼리 지랄을 한다고·”
루인은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가보다· 아직까지 유리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고·
루인은 코앞까지 다가와서는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너는 뭔데 왔냐·”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루인을 말을 잠잤고 들었다· 어디까지 말을 할 수 있으려나 일단 들어는 보자고·
“그냥 x망한 올리비아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있을 것이지 뭐가 그리워서 아카데미에 왔냐고·”
“그립지는 않았습니다만?”
“또 말대꾸하는 거 봐· x같게· 빨리 꺼져· 개소리 듣기 싫으면·”
나는 베란다로 향하는 루인을 향해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 끝나셨습니까?”
“뭐?”
눈썹을 치켜들고 의문을 토하는 루인· 내 말이 같잖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반문을 뱉는 루인에게 나는 친절히 설명을 해줬다·
“할 말이 끝났냐고 물었습니다·”
“너랑 대화해서 뭐하냐· 쓸데없게·”
“하하· 그런가요· 그럼 이제 제가 말할 차례네요·”
나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루인 씨”
루인을 괴롭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폭력으로 죽이거나·
열등감을 느끼게 해 재능으로 죽이거나 아니면 말로 죽이거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루인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먹힐 것 같은 방법은 이게 아니지 않을까 싶다·
“할 줄 아는 게 뭔가요?”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
루인· 너는 서브 남주인공 탈락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연참을 했지만···!
맛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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