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2
밤새 내릴 것 같던 비가 그쳐 간다·
미하일의 악몽에 물음을 던지던 벼락은 모습을 감췄고 깨어나던 과거의 악몽에 소리를 지르던 빗줄기는 입을 다물었다·
한 남자의 등장으로 전세가 기울었다·
송곳 같은 말로 미하일을 농락하던 남자의 입도 한나의 걸음을 방해했던 이교도의 사제들도 검정 가면을 쓴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흐음·”
나는 눈앞의 남자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 가실 건가요?”
잦아드는 빗줄기에서 퍼지는 음성은 남자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한나와 대치하고 있는 이교도의 신자들· 검을 들고 서 있는 미하일· 그리고 보호 마법으로 미하일을 치료하고 있는 유리아까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손에 단검을 들고 멋쩍게 서 있었다· 단 한 번의 획을 긋는다면 확실하게 미하일의 숨통을 끊을 수 있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었고 나 또한 소설 속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머뭇거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의 대주교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무력을 가졌으니까·
그는 단검을 쥐고 가만히 서 있었다·
미하일 또한 마찬가지·
되돌아오는 체력에 검을 고쳐잡고 아지랑이 같은 오러를 검에 담아내고 있었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전투에 나는 짜증을 담아 말했다·
“계속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천천히 그들의 사이를 걸었다·
“퇴근하셔야죠·”
나는 그들의 사이를 들소를 노리는 사자처럼 고요하게 걸었다· 조금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물어뜯을 것처럼 기감을 곤두세우고 천천히·
이교도와 미하일의 사이를 걸었다·
이교도는 내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 거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도 목소리도 모두가 다른 증언을 하겠지·
내가 쓴 가면은 기억에 편린을 만들어주는 이교도의 기연 중 하나였으니까·
기억을 왜곡하는 사기적인 효과가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은 그저 인식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아티팩트였다·
기억에 관한 능력은 눈앞에 서 있는 대주교가 사용하는 흑마법이었으니까·
그래도 뭐 이 가면 하나만 있으면 존재를 숨길 수 있으니까 부족하진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거리낌 없이 눈앞의 남자를 향해 말했다·
죽고 싶냐고·
“사지 멀쩡하게 돌아가고 싶으면 지금 돌아가세요·”
남자는 헛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살려면 돌아가야겠는데 오늘이 아니면 저놈을 죽일 수 없을 것 같단 말이지·”
“죽이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저놈이 나를 살려두지 않을 것 같은데·”
남자는 미하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지랑이 같은 오러를 피워내며 결의를 다지는 미하일은 폭풍의 눈과 같았다·
남자는 잠깐 사이에 괴물처럼 성장한 미하일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벌써 저만큼 성장했잖냐· 다음에 봤을 때 쟤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겠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세를 내뿜으며 검을 잡고 있는 미하일의 눈빛에 나는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네요·”
“그러니까 오늘 내가 쟤를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는 거야····”
“그러면 저한테 죽을 텐데요·”
남자는 ‘그래서 미치겠다는 거야·’라는 혼잣말을 뱉으며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될까?”
“친한 척하지 말아주시겠습니까? 초면인데·”
“···”
“왜요· 저 아십니까?”
“···요즘 어린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나는 남자를 향해 방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쩌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나는 오늘 두 사람의 관계에 종지부가 찍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앞의 남자와 나는 아무래도 좋지 못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꼬맹아 살인 병기라도 되는 거냐? 검을 왜 이렇게 잘 쓰냐·
-집 나간 너희 엄마가 키워줬다· 부럽냐?
-하··· 이 개새끼가·
남자가 사용하는 흑마법이 기억과 관련된 것도 그렇고 소설 후반에서 놈의 무력은 준 사도급으로 거듭나기 때문에 상당히 곤란한 존재 중 하나였으니까·
내가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Q· 미하일의 보호자·]
갑자기 나타는 퀘스트 때문에 나는 눈앞의 남자를 죽일 수 없는 제약이 걸려있기도 했었다· 앞으로 이어질 스토리도 그렇고 퀘스트의 보상도 상당했으니까·
소설에서 미하일과 망각의 대주교와의 관계가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미하일이 성장하기 위해서도 저 남자의 존재가 필요하고 말이지·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나를 바라보는 대주교와 미하일· 오랜만에 받아보는 관심에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세계에 없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꿈꿀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빨리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지? 아무리 네가 강해도 내가 이놈을 죽이고 도망가는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보시겠습니까?”
“···”
남자의 도발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받아쳤다·
“해보세요· 저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했겠지·
소설에서 미하일은 치명상만 입고 쓰러졌기에 두렵지도 않았다· 뛰어난 치료사가 옆에 있고 그렇게 만들지도 않을 거니까·
남자는 한참을 자신의 단검을 내려보며 고민에 빠졌다·
“무서운 새끼네·”
남자는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살기를 떨쳐내며 코웃음을 쳤다·
“이런 괴물은 어디서 나타나서·”
“집에서 출근했습니다·”
“맞지· 집은 어디야?”
“양지바른 곳에 있습니다·”
보복을 위해 가볍게 뱉어내는 질문에 나는 헛웃음을 뱉으며 가볍게 받아쳤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손에 든 단검을 자신의 안주머니에 넣어놓고 뒤를 놀았다·
“가자·”
한나와 대치하고 있는 이교들을 향해 작게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
“시간이 늦어지면 우리만 손해야·”
“좋은 선택이십니다·”
“황실 기사단···· 불렀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기사단장님이 이교도를 정말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군요·”
“하스타니아가···?”
남자를 헛웃음을 뱉으며 어깨를 떨었다·
히스타니아의 가주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터벅·
-터벅·
-터벅·
떠나는 걸음을 멈추고 남자는 싱긋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래도 이대로 떠나기는 아쉽잖아?”
남자는 미하일을 향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쏜살처럼 휘어지는 검기에 미하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서 있었고 유리아 또한 ‘미하일!’이라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후에 빠르게 보호막을 만들어냈지만 남자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하일의 가슴을 향해 내질러지는 날카로운 쇠붙이·
“됐다·”라는 남자의 희열이 담긴 웃음과 함께 차가운 음성이 남자의 귓가에 서늘하게 들려왔다·
“죽고 싶습니까?”
“···와·”
남자는 사라진 자신의 오른손을 보며 기혐을 토했다·
“미친놈이네·”
대주교를 지키기 위해 내 앞을 가리는 이교도의 신도들· 번뜩이는 칼날의 춤 소리와 동시에 풀썩하는 소리가 남자의 귓가에서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나는 작은 미소와 함께 검에 묻는 피를 털어냈고 남자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하하 이런 씨발···”
쓰러진 자신의 부하들을 보면서 어색한 미소를 짓는 남자를 향해 나는 살기를 뿌려대며 천천히 걸어갔다·
“가라니까 왜 말을 안 듣습니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남자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의 마법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관찰했다·
“오호···”
남자의 이름은 ‘융’
이교도에서는 ‘망각의 대주교’라 불리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직책에 걸맞게 사람의 기억을 편집하고 조정하는 흑마법사인 그는 망각의 대주교라 불리는 이교도의 간부였다·
그는 사람에게 최악의 악몽을 남길 수 있고 동시에 최고의 희락을 남겨줄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대상이 가지고 있던 기억을 편집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었지·
물론 복잡한 일을 하기 싫어하는 녀석이라 자신에 대한 존재 혹은 은인에 대한 기억을 조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녀석이지만 최악의 비기로 상대의 기억을 처음으로 되돌려버리는 기술을 사용하는 놈이었다·
과거에도 이놈은 내게 흑마법을 사용하기도 했었고 보험으로 마련해둔 기연 때문에 실패하기도 했었지·
빙의자는 항상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아이템 정도는 소지해야 했으니까 당연하게 막을 수 있던 마법이었다·
지금은 내성을 뚫지 못할 테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서 뻗어져 나오는 마력의 갈래는 천천히 숲에 있는 모두를 삼켜가기 시작했고 자신에 대한 존재를 지우기 위해 뻗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들이닥치는 마력의 구름을 받아냈다·
“미세먼지가 상당히 많군요·”
작은 기침과 함께 뻗어져 나오는 연기 속에서 나는 남자가 도망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띵
나는 작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전투의 끝을 고했다·
*
남자가 떠난 하멜의 숲속·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멋지게 흘러내리는 내 모습에 반한 여인들의 시선들·
“···은 아닌 것 같고·”
이번에도 극적인 순간에 찾아온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멋있었던 집사의 매드무비에 대한 감상은 어땠습니까?”
다들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한나는 당장에라도 나를 끌어안고 싶은 것처럼 발을 구르고 있었고 유리아는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미하일은·
“잘난 척하지 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를 싫어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이번 파트-끝-입니닷!
이번 파트는 싱겁게 막을 내렸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기에는 천천히 보여주는 것이 맛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요정이랍니다!
연중 걱정하지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정 무슨 일이 있어도 완결 할 겁니닷!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
[오늘 요정은 출발하지 않습니다!]
하늘연달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최근 일이 생겨서 이틀이나 휴재한 요정이랍니다!
반성하겠습니닷···!
연중을 걱정하는 댓글을 봤는데 이 요정 절대 안 합니다!
1부 완결 그런 것도 안 할 생각이라섯···!
열심히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닷!
우연_866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맨트를 못달아드려서 죄송합니다!
서운하셨을 독자님에게 사과의 말씀을···!
이번 파트는 조금 싱겁게 막을 내렸습니다·
벌써 모든 것을 보여드리기에는 아쉬운 것이 많기 때문에···!
다시 아가씨의 파트가 등장하고··! 곰탕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닷!
나헤마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운동을 시작하는 요정···!
근육통의 요정이 계속 괴롭히군요!
독자님에게 사랑이 넘쳐나는 득근의 요정이 함께하기를 빌겠습니다!
잘가세요잘있어요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요정 열심히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부족한 요정이지만 한가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피폐중 가장 큰 피폐는 아가씨의 피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직 유리아 한나 미하일 올리비아 기타 등등의 피폐는 남아있습니다!
메인 히로인이 아가씨인 것 만큼 여러분들이 상상 하시는 익숙한 맛으로 만들어 질거라고 생각합니닷!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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