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2
히스타니아 한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많은 부와 명예·
백작이라는 직위·
‘제국의 검’이라는 별호를 가진 사람이지만 한나에게만큼은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싫었고 악몽이 되는 존재였다·
남들은 능력 있는 아버지를 둬서 부럽다고 하지만 한나는 그 말이 싫었다· 자식에게 차가웠고 재능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을 죽게 만든 사람이었으니까·
한때 아버지의 존재가 자랑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삶의 목표를 아버지로 삼고 달려가던 때가 말이다·
아버지의 검이 자랑스러웠고 가문의 역사가 자부심이 되었으니까·
개국공신·
전쟁에서 끝까지 싸운 검사·
최강의 검사를 배출해낸 가문·
말로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상징은 한나에게 힘이 되었으니까· 히스타니아를 상징하는 가문의 문양이 세공된 검을 들 때 만해도 한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고 이 가문이 좋았었다·
아버지의 무시가 있어도·
천대와 멸시를 받아도·
생일 때 축하한다는 말을 듣지 못해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빛이 찾아올 거라고 믿으며 달려왔었다·
물론 그 기대는 무너졌지만 말이지·
기숙사 침대에 쪼그려 앉아있는 한나는 오랜만에 옛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옛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1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한나에게는 격변의 시기이자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폭발할 수 있었던 기억이기에 ‘오래’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비가 왔던 거로 기억한다·
1년 전 자신의 최악의 생일에 말이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던 때 한나는 아버지에게 어렵게 부탁을 하나 했었다·
-아버지··· 저 오늘 생일이에요·
언제나 오빠만 챙겨주던 아버지에게 검술 지도를 요청했던 날 아버지는 차갑게 무시했었지·
-지겹지도 않나 계속 그러는 것도·
검을 접으라고 말하는 아버지도·
대련을 부탁하는 어려운 말도·
입 밖으로 나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는 그날 자신에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검을 접으라는 말을 했었다·
그놈의 검·
검··
검···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듣고·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아버지의 표정과 거만한 말투가 오랫동안 쌓아왔던 기대라는 벽을 무너뜨리게 했었다·
평소에도 자주 듣던 말이지만 생일이라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마음이 더 아팠었다·
아버지께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악녀의 집사에게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은 직후라서 그런지 냉정한 답을 뱉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었다·
그래서 그날 자신은 도망쳤다·
살면서 처음으로 가출이라는 것을 해볼 정도로 힘들었으니까· 잠깐 자리를 비우는 외출과 달리 ‘이 가문에 내가 설 곳은 없어·’라는 암울한 현실을 느끼면서 가문을 빠져나왔고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푸른 창이 보여준 비극을 제 발로 찾아갔겠지·
분명히 말이다·
그날 한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악녀의 집을 찾아갔다·
듣기 좋은 말만 뱉던 남자의 아부가 그리웠으니까· 재능이 있다는 말도 확신에 찬 거짓말도 모두 다 거짓이란 걸 알지만 한나는 그 사람의 집에 찾아갔고·
-어···? 일단 들어오세요·
먹어본 차 중에서 가장 맛없던 차를 내주었던 쓰디쓴 찻잎의 향기가 좋아서 한나는 울었다·
-아니 아버지란 사람이 그러는 게 말이 되냐고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신세 한탄을 하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위로를 받았었다·
그때까진 알지 못했다· 이 남자의 거짓말이 진실이란 사실을·
그저 돈에 궁해서 위로를 해주는 거라 생각했고 알량한 거짓말로 장단을 맞추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솔직히 내가 미하일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떠나는 나를 불러세웠고·
-밖에 비가 많이 옵니다· 잘 곳이 없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집에····
-거짓말·
거짓말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한동안 저희 저택에서 자는 겁니다·
-내 저택이야!
-음··· 아가씨의 저택에서 생활하는 겁니다·
바보같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점차 섞여 들어갔다· 그의 온기에 따뜻한 거짓말에 매료가 되어 그의 거짓말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최고를 찍었던 날·
-제가 재능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끕
-울지 마세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한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미하일에 대한 감정은 연모가 아닌 동경이라는 사실도 콩닥거리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도 사진 한 장에 멈춰버린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고 두근거리고 있었다·
한나는 그날 자신이 느꼈던 온기를 잊지 못했다· 아직도 자신을 조심스럽게 안아주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한나가 가장 놓았던 건·
아버지의 놀란 표정도·
그토록 바랬던 오러의 발연도 아닌·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는 따뜻한 포옹이었다·
그것이 한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빛이었다·
그리고·
-아빠아아아!
악몽이 재현되는 현실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무너져내렸다·
-살려주세요·
아버지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확신이자 그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창밖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사라지는 밤의 봄바람에 한나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잡힌 것은 없지만 하고 싶다는 것은 있었다·
“보고 싶어·”
보고 싶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를·
언제나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주며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그 손길에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그 순간이 마음이 편하고 마음에 쌓인 걱정을 녹일 수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
한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책상에 기대어둔 검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선물해준 검이 아닌 리카르도가 선물해줬던 검을 바라보며 바보같이 미소를 짓는 한나는 책상에 턱을 괴고 빤히 바라봤다·
“좋아해요· 정말 많이요·”
자꾸만 미소가 나온다·
바보같이 말이다·
자신이 쓰기에 과분한 검을 선물 받은 것도 이 검을 리카르도가 선물해줬다는 사실도 한나는 좋아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 자신이 받은 선물 중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이 아닐까 한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자·’
그의 옆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도 그럴 만한 사람이 되는 것도 자신이 준비해야 할 일이니까·
한나는 초라한 모습으로 리카르도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매번 울고 기적을 바라는 바보 같은 모습으로 리카르도를 만나는 것도 싫었다·
때로는 자신이 그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고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으니까· 한나는 오늘도 훈련을 위해 검을 들고 아무도 없는 늦은 시간의 연무장을 찾기 위해 발에 힘을 주고 일어섰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한나는 연무장으로 달렸다·
더 밝은 미래를 꿈꾸면서·
“후우··· 후우···”
억지로 연습하던 검이 아닌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검을 휘두르기 위해 한나는 연무장을 향해 달렸고·
멀리서 연무장에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었다·
‘이 시간에 연무장을 찾을 사람은 없을 텐데 신입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찰랑이는 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의 모습에 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 선배네·”
미하일은 오늘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근데 옆에 저 사람은 누구지·
한나는 어둠 속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넓은 어깨·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것까지 보면 연습을 하러 온 생도 같은데 어둠에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미하일과 검을 나누고 있는 것을 봐서 분명 미하일의 지인일 게 분명한데····
‘뭔 상관이야·’
훈련하는 건데 누가 있든 상관 쓰는 게 이상한 거지·
한나는 미하일과 정체를 모르는 남자가 있는 연무장으로 향해 조금씩 걸어갔고·
“안녕하세요· 오늘도 계시네····”
미하일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천천히 어둠이 걷어지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오랜만이구나·”
자상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남자·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이 손잡이에 세공된 검을 허리춤에 매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한나는 주먹을 쥐고 고개를 들었고·
“딸아·”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아빠··· 아니 아버지·”
*
오늘도 환장하는 아가씨의 머리 말리기·
“흐아아···”
아가씨는 머리를 말리는 마도구· 즉 드라이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현란한 손길로 아가씨의 머리를 말리는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가씨에게 말했다·
“바람은 먹는 게 아니랍니다· 아가씨·”
“알고 있어·”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러고 계시는 겁니까?”
아가씨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재미있잖아·”
“오···”
“리카르도도 해봐· 기분 좋아·”
나는 아가씨의 제안에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역시 똑똑하십니다· 나중에 저도 해보겠습니다·”
나는 머리카락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가씨는 재미있다·
‘휘이이잉’ 드라이기에서 나오는 바람을 마시고 있던 아가씨는 화창하게 떠 있는 해를 보며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리카르또·”
“네·”
“오늘 어디가?”
“제가 어제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가씨의 머리 위에 있는 물음표는 한 개가 더 늘어나며 깊은 의문을 품었다· 언제 말했냐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가씨의 표정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나는 한숨을 푹 뱉으며 입을 열었다·
“수도에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도?”
“네· 가주님께서 아가씨 얼굴이 보고 싶다고 오시라고 합니다·”
“애비가?”
현명하게 불효를 저지를 아가씨의 애칭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다르바브님께서 말이죠·”
“오··· 귀찮은데·”
세상에서 귀찮은 게 제일 싫은 아가씨는 이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했다·
“애비가 오라고 해·”
“그것도 좋은 방법인데 가주님께서 바쁘셔서 말이죠·”
“나도 바쁜데···”
아가씨는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부업 더미를 아쉬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만신창이가 되어 오히려 돈이 나가야 할 것 같은 작품들에 나는 애매한 웃음을 터뜨리며 아가씨에게 말했다·
“가주님께서 용돈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용돈?”
“네·”
“오··· 리카르도도 받아?”
“저는 아니죠·”
“음···”
나는 시무룩한 아가씨에게 작은 미소를 지으며 한 가지 소식을 덧붙였다·
“아 참 저도 돈 벌러 갑니다·”
“일하지 마· 내가 용돈으로 먹여 살릴게·”
“밀린 월급이나 주세요·”
“웅···! 근데 무슨 일 하러 가?”
나는 음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한 일에 대한 보수를 못 받았습니다·”
“리카르도 사기당했어?”
“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를 생각했다·
“급하다고 먼저 갔는데 아직까지 연락을 못 받아서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
검으로벤다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히이익! 감사합니다!
이번에 시작되는 한나 파트···!
길게 이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닷···!
히로인들의 공기화를···! 피하는 요정···!
독자님에게 오늘 하루 뜨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열정을 담아서 특별의 요정! 주말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버버버버님 6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히이이이익! 감사합니닷!
오늘 바람이 정말 많이 불고 있습니닷···!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요정 매번 느끼는거지만 언제나 독자님들의 사랑에 감사를 하고 있습니닷···!
멋진 표지도···! 모두 독자님 덕분입니다!
독자님에게 사랑이 시작되는 봄의 요정! 개나리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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