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3
한나는 로웬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아카데미에서 아버지가 왜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반갑지 않은 얼굴이었고·
얼굴을 볼 때마다 그날 봤었던 푸른 창의 악몽이 떠올라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들려주지 않은 자상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의 음성에 한나는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아빠··· 아니 아버지·”
로웬은 한나를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아직도 검을 잡고 있는 자신의 딸의 반항이 거슬려서 그리고 자신이 봤던 환상에 악몽이 떠올라서 그저 가만히 멈춰서 한나를 보고만 있었다·
한나는 로웬에게 물었다·
궁금한 것은 묻고 가야 했으니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면 오늘 잠은 다 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에 한나는 주먹을 쥐고 로웬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나요·”
편지로 부족해서 직접 찾아온 거라고 한나는 생각했다· 지난번 저택에서 리카르도와 아버지의 마찰이 있고 나서 검을 접으라는 편지는 끊기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쉽게 고집을 꺾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버지의 억센 고집을 알기에 한나는 떨리는 마음을 무릎 쓰고 로웬의 답을 기다렸다·
“···안부 인사는 안 하는 건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로웬의 말에 한나는 표정을 굳히고 답했다·
“네·”
“매정하군·”
“아버지께서 했던 것보다는 아니죠·”
“···”
로웬은 차갑게 대꾸하는 한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할 것 없는 사실이었고 매정하게 대한 것에 후회는 없었으니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후회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로웬이었다·
단지 하나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딸의 급변한 태도에 영향을 준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로웬은 한나의 엄격한 대답에 한 명의 남자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졌고·
나이에 맞지 않은 강함을 가진 남자를 불쾌한 생각을 가지며 생각했다·
-아버님 양지바른 곳에 묻히고 싶습니까?
건방지고 주제를 알 수 없는 놈· 동시에 깊이를 파악할 수 없는 강함을 가진 녀석이 분명 한나를 바꾼 거겠지·
로웬은 차갑게 말하는 딸의 답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두운 분위기를 풀어내고자 말했다·
오늘은 화를 내고 싶지 않으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아직 딸의 검을 놓게 하고 싶다는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한나는 재능을 가진 아이다·
자신의 눈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한나가 보여준 결과가 자신의 눈이 틀렸다는 것을 똑똑히 증명했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로웬은 그날 자신이 봤던 환상에 대한 두려움을 지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내가 다쳤었다·
오만한 생각과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아내가 크게 다쳤었다· 아직도 그날의 후유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데 딸을 잃은 경험을 한다면 얼마나 아플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매정한 것은 맞지만 사랑했으니까·
가문의 부흥을 위해 달려가는 법만 배워왔고 따뜻한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기에 자신의 어린 시절에 받아왔던 교육을 그대로 물려줬을 뿐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겪은 고난에 비하면 한참은 부족할 정도로 말이다·
아카데미의 초대에 응한 것도 한나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물론 다른 목적이 있긴 했지만 주된 목적은 딸과의 대화였다·
로웬은 복잡한 마음을 다잡고 한나를 향해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임시 교사로 초청을 받았다· 자라나는 새싹들을 가르쳐달라고·”
“···저는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면서 남들은 가르쳐주겠다는 건가요?”
한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쉼터에 아버지라는 침입자가 찾아왔으니까 무서웠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미하일은 어색한 분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눈치를 보며 로웬에게 고개를 숙였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스승님·”
미하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나의 표정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으니까· 자신에게 모진 핍박과 박해를 했으면서· 단 한번도 검을 맞대주지 않았으면서 하는 말이 스승이라니·
한나는 떨리는 눈으로 로웬과 미하일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지금 스승님이라고 했어요···?”
꽉 쥔 한나의 주먹은 새파랗게 변하고 있었다· 금방에라도 달려나갈 것처럼 주먹을 꼭 쥐고 노려보고 있는 한나의 시선에 미하일은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로웬은 한나의 말에 무덤덤하게 답했다·
“네가 없는 사이에 일이 있었다·”
“그게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사람처럼 무뚝뚝하게 입을 여는 로웬의 말에 한나는 주먹을 쥐고 귀를 열었다·
“말릭이 가주 직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네?”
“꿈이 있다고 그러더군· 가당치도 않는 꿈이·”
로웬은 얼마 전 집무실에 찾아온 장남의 얼굴을 떠올렸다·
-부가주직을 포기하겠습니다·
-···뭐라고 했지?
-저를 대신할 여동생이 있지 않습니까· 그 애도 그것을 바라고 있고··· 가주 교육이라고 해봤자 검을 잘 휘두르는 것 말고 없으니까 말이죠·
-이해를 할 수 없군· 내가 네 고집에 어울려 줄 것 같나?
-어렵게 생각한 답입니다· 한나를 보면서 많은 걸 배워서 말입니다·
수많은 갈림길 중 지름길을 찾은 사람처럼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말릭의 얼굴을 생각하며 말했다·
“너희는 하나 같이 왜 내 말을 따라주지 않는 거지· 아비의 말이 우스운 건가·”
짜증을 담은 로웬의 말에 한나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또 다· 일이 자신의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남을 짓누르는 아버지의 고집이·
대부분의 사람은 아버지의 고집에 겁을 먹고 수그렸으니까· 자신도 그랬었고·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나는 로웬이 무서웠다·
입을 꾹 닫고 있는 한나를 보며 로웬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말릭이 그러더군 너처럼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이다· 나는 아직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아버지의 인정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어요· 어차피 인정해줄 것도 아니잖아요·”
“···”
“제가 궁금한 건 아버지께서 오빠에게····”
한나는 주먹을 쥐고 로웬에게 물었다·
오빠의 꿈을 얼핏 들었으니까· ‘거리에 있는 모든 물건’에 자신이 만든 브랜드의 이름을 새기고 싶다는 오빠의 꿈이 허황하지만 진심이란 것을 알았기에 한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처럼 그만두라고 했나요?”
“···히스타니아 한나·”
성까지 붙여 말하는 로웬의 경고·
이 이상의 건방짐은 넘어갈 줄 수 없다는 아버지의 경고에도 한나는 꿋꿋하게 자신의 말을 밀어붙였다·
아무리 아버지가 무서워도 밟지 말아야 할 꿈이 있으니까·
자신의 꿈은 비록 아버지의 손에 뭉개져 버렸지만 오빠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했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사과를 해준 사람이자 가족이라는 빈자리를 채워준 혈육이었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응원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서럽고 비참한 건 줄을 알기에 한나는 떨리는 주먹을 쥐고 두려움을 이겨냈다·
“이번에는 오빠를 죽이려고 하냐고요!”
로웬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한나에게 답했다·
“히스타니아 한나···!”
아차 하는 생각이 로웬의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로웬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말릭은 약하지 않으니까·
“그만두라고 했다· 소수가 이룬 기적을 보고 인생을 걸 만큼 세상의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한나는 아버지의 기적이라는 화살의 방향이 자신에게 향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자신이 한 노력은 생각해주지도 않고 멋대로 말하는 아버지의 편린에는 집사님 또한 무시한 거라고·
차갑게 식어버리는 손 틈 사이로 로웬의 목소리는 쉼 없이 들려왔다·
“네 오빠도 너와 똑같이 집을 나가더구나· 자신이 가문에서 받은 대우가 얼마나 소중한 지도 모르고··· 그래서 제자를 키운 거다· 새로운 제자를 키우면 네 오빠에게 경고가 될 테니···”
한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로웬에게 말했다·
“···기적은 이미 이루어졌어요·”
“빌어먹을 가문에서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요·”
“아버지는 언제까지 그럴 건데요!? 저 하나로 만족 못 하는 거예요? 얼마나 마음에 구멍을 뚫어야지 만족하실 거냐고요!”
차갑게 울려 퍼지는 울분에 대한 답은 침묵뿐이었다· 그저 자신의 검을 매만지면서 불쾌한 기분을 들어내고 있을 뿐· 로웬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너도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아니요· 저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요·”
한나를 지나치는 로웬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까지 나는 네 검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나는 짜증을 담은 목소리로 답했다·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요!”
무엇이 부족하길래 아직도 인정을 해주지 않는 건지 실력이라는 것으로 입증을 했는데 무엇이 더 부족한 건지·
한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나는 주먹을 쥐고 말했다·
어쩌면 후회할 수 있는 말을 한나는 차오르는 화를 터뜨리며 말했다·
“한 번 해봐요· 아버지가 키운 제자랑 저랑 대련 한 번 해보자고요·”
“···오만한 말이구나·”
“자의식이 너무 과해요·”
로웬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나의 제안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딸의 검을 완벽하게 접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로웬은 허영심에 찬 눈으로 한나를 보며 말했고 승리라는 확신을 담고 있었다·
“제가 진다면 가문으로 돌아갈게요· 검도 접고 아버지의 말에 따를게요·”
“대신·”
한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로웬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언제까지고 자신을 묶어두려는 아버지가 미웠고 이 굴레에서 벋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하나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기에 한나는 로웬에게 말했다·
“제가 이긴다면 아버지는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제 결혼식에도 제 인생에도 그리고 오빠의 꿈도 방해하지 말고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고요·”
로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승리를 확신했고·
자신이 이길 거라고 믿었으니까·
차가운 분위기가 흐르고 적막이 달을 무겁게 울리는 순간·
“저는 안 끼워줍니까?”
거슬리는 목소리가 로웬의 귓가에 들려왔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무거운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으로 걸어오고 있다·
남자는 로웬을 보며 말했다·
“제자 대 제자 말고 스승 대 스승으로 한판 붙는 거···”
붉은 머리카락을 로웬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10분 안에 다음 편이 올라갑니닷···!
휴재해서 죄송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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