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4
미납된 돈은 무거운 법이다·
그것이 설령 1골드라 해도 안 받는 것과 못 받은 것의 차이는 컸다·
기분이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아니라 공짜로 일을 해준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말이지·
무상으로 아가씨에게 일하는 나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꼬치꼬치 따질 입장은 아니지만 아가씨는 예쁘니까 용서할 수 있었다·
수도에 도착한 나는 아가씨를 다르바브에게 넘기고 아카데미로 걸음을 옮겼다·
-왔구나· 올리비아·
-애비 용돈 줘·
-나보다 돈이 더 반갑나·
-응·
-솔직하군·
아가씨의 용돈 협상을 뒤로하고 아카데미로 떠나는 나는 반갑지 않은 아카데미의 추억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꺼져라· 아카데미의 오물!
-다시는 이곳에 오지마!
-나는 처음부터 쟤네가 마음에 안 들었어·
아카데미의 추억은 쓰라린 미소를 짓게 했다· 기대로 시작했지만 매몰찬 비난으로 끝나버린 추억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 사연이었으니까·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지 않은 추억에 쓰라린 미소가 지어지는 나였다·
“기연이란 기연은 다 털고 갈 껄·”
조금은 그릇된 아쉬움이지만 말이지·
추억에 잠겨 한참을 걸었을까 본래 목적을 잊고 아카데미를 돌아다닌 내게 찾아온 것은 어두운 밤이었다·
중간중간 익숙한 얼굴을 만나서 숨바꼭질을 했었으니까·
-쟤 리카르도 아니야?
-걔가 여길 왜 와· 아니다···· 왔으면 좋겠네 욕이나 시원하게 하고 싶으니까·
-뭐래 아 근데 그 소문 들었어? 리카르도가 연회장에서 이교도랑 싸웠다는 소문·
-그거 샤르티아 황녀님하고 미하일이 한 거잖아· 학생회에서 공식 발표한 지가 언젠데·
-그런가?
사람들을 피해 다니다 보니 훌쩍 지나가 버린 시간· 이왕 늦은 거 다음을 기약하고 나긋하게 연무장을 돌아다니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러실 거에요·
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너의 재능을 인정하지 못한다·
고지식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남자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연무장을 향해 다가갔고 세 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 진귀한 풍경을 보게 되었다·
미하일·
한나·
로웬·
다시는 못 볼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특히 한나와 로웬은 더욱 그랬고 말이다·
지난번 일 때문에 로웬의 마음이 꺾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고지식한 어른의 모습에 나는 옅은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는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말릭이 가주 직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사장님이 미쳤다는 이야기도·
-아직까지 나는 네 검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른의 고지식한 고집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의 어설픈 내기도·
-한 번 해봐요· 아버지가 키운 제자랑 저랑 대련 한 번 해보자고요·
의도치 않게 알게 되었다·
*
제국의 검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봐서 그런지 부러움에 쌓여가는 이마의 주름에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로웬을 바라봤다·
“왜 대답이 없는 건가요?”
질 것을 분명한 내기에 무리수를 두면서 나는 말했다·
한나는 미하일을 이길 수 있겠지만 나와 로웬은 격차가 컸으니까· 하지만 제자의 앞에서 스승의 품격을 높여야 했기에 나는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그래야 한나가 내 그늘에 숨을 수 있으니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국의 검에 눈에 저는 재능이 넘치는 검사라서 그런 건가요?”
“조잡한 도발이군·”
“제가 워낙 조잡한 걸 많이 배워서 말이죠·”
차가운 기류가 흐른다·
검이라는 분야에 최고를 찍은 남자와 그 남자의 약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빙의자에게서 흐르는 기류가 살벌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확신하고 있다·
이 남자가 내 도발에 응하지 않을 거란 것을 말이다·
얻을 게 없는 전투였고 만에 하나 나에게 진다면 잃을 것이 더 많았기에 응할 이유가 없는 전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검사로서의 직감은 승리를 확신하지만 가주로서의 생각은 단순하지 않아서 말이지·
나는 내가 내민 도발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로웬을 노려봤고 로웬도 마찬가지로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한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던 한나의 구원자를 본 사람처럼 나를 보고 있었다·
“집사님···?”
“네· 접니다·”
작은 미소와 함께 아까 엿들은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한나에게 말했다·
“재미있는 일을 벌이셨네요?”
“죄송해요···· 너무 화가 나서·”
“괜찮습니다·”
로웬과 한나의 불화·
새로운 제자 미하일·
그리고 미하일과 한나를 목적으로 한 대련·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특히나 마지막 내기는 더욱더·
소설에서 미하일은 로웬의 제자가 된다· 말릭의 대타가 아니라 딸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유리아가 대신 채워주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하일을 키우게 되는 스토리로 흘러갔었지·
어떻게 보면 좋게 흘러간 이야기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자식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이유로 제자를 들먹이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미하일에게 스승이 필요하긴 했지만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면 안 됐었다·
끝까지 이어질 거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차라리 의문의 가면을 쓴 스승으로 내가 가르치는 것이 낫지·
이런 이유로 미하일의 스승을 만드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하일을 한 번 째려보고는 로웬을 바라봤다·
“분명 제가 저번에 그러지 않았습니까· 저의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대답한 기억은 없는데·”
“쪼잔하시네요·”
로웬은 내 허리춤에 있는 검은 색 도신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컬렉션이 내게 있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
본래 주인의 눈빛에 나는 흠칫 놀라며 검을 등 뒤로 숨겼다· 다시 돌려주기에는 이미 이놈과 정이 많이 들어버렸으니까·
가만 생각해보니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검이었기에 나는 흠칫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등 뒤로 숨겼던 티르빙을 다시 허리춤으로 옮겼다·
로웬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었다·
“신기하군· 그 검을 들고 미치지 않고 있는 게···· 아니 이미 미친 건가·”
로웬은 스산한 마력을 풍기며 말했다·
“이상하군·”
차오르는 마력의 무게는 느낌이 달랐다· 대주교가 내뿜는 마력보다 짙고 정순한 마력·
로웬의 기세는 나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로웬의 기세를 가볍게 털어내며 말했다· 어른으로서 창피하지도 않냐고·
“살기는 뿜지 마세요· 제자가 놀라지 않습니까·”
스산하게 검에서 붉은 오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무겁게 내려앉는 오러는 잔잔하게 검을 감싸고 로웬의 압박을 지워내기 시작했다·
검사의 숨통을 조일 수 있는 가장 큰 변환점 ‘오러’· 검사의 근간이자 무의 상징인 오러는 서늘한 그늘이 되며 퍼져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답이자 검사로서 증명할 수 있는 답·
그리고 나의 가장 큰 장점으로 말하는 오러에 로웬의 검에 미세한 떨림이 일기 시작했다·
“가르칠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재능의 싹을 보는 눈 또한 제국의 검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로웬은 뿌득 이를 갈며 나를 바라봤다·
“한마디도 안 지는군·”
“소속된 가문이 데스문트라서 말이죠·”
“···”
로웬는 침음을 뱉으며 말을 아꼈다·
내가 뱉은 질문에 답은 내려졌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으니까·
로웬은 먼저 기세를 걷어내며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차갑게 식은 연무장의 공기에 어깨를 떠는 미하일과 한나·
그중 미하일은 믿기지 않는 눈을 뜨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아직도 이 정도 차이가 난다고···?’라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미하일은 거친 호흡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검에서 손을 떼어냈고 그와 동시에 로웬은 내게 말했다·
“나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재능의 싹을 보는 것과 걷어내는 것으로 많은 기사를 키웠고 발굴해냈지·”
“···”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변은 없다·”
로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한나를 바라봤다·
“가능해요? ”
“뭐가요?”
“미하일이요·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한나는 대답하는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답을 구하듯이·
“집사님은요?”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한나에게 답했다·
“저의 눈은 특별하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나를 바라봤고 한나는 ‘스릉’ 망설임 없이 검을 뽑고 허공에 길게 횡을 그었다·
“집사님이 그렇다면 그런거죠···!”
미하일 역시 검을 뽑으며 오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밝은 빛의 오러가 미하일의 손에 감기며 전투의 경종을 울렸고 미하일은 차분한 호흡을 뱉으며 말했다·
“포기하겠습니다· 지금의 저는 한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나는 로웬을 보며 웃었다·
“이겼네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
검으로벤다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요정···!
휴제에 대한 사죄를 올립니다···!
한참을 집필하다 피곤해서 눈을 감았는데···
비극이 일어나 버렸습니다·
독자님에게 언제나 정신이 번쩍해질 수 있는 마음의 요정···! 아이셔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비공개로 4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잘 보고 있다는 맨트를 남겨주신 독자님···!
요정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연중은 안 합니닷···!
이 요정 작가의 멘탈 고질병을 가지고 있지만 말기는 아니라서 말이죠···!
독자님에게 언제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마법의 요정···!
충분한 수면 시간과 휴식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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