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8
차가운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아래·
미하일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은 나를 보며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고 있는 미하일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뭘 하려고 나타난 거냐····”
나는 미하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중요한 말은 아니지만 단순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런데 차갑게 물어오는 미하일의 태도에 기분이 상해버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사도 안 했는데··· 너무 냉대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면 나도 거칠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아는 세계에 이런 말이 있었다· ‘가는 말이 좋아야 오는 말이 좋다’라는 속담이 말이다·
대체로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지양하는 편이었다· 지나가다가 언제 만날지 모르는 인연이고 나의 행실은 아가씨의 얼굴과 직결되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오해하면 나도 신념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
기껏 잡은 마음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아카데미의 친우라도·
불우한 추억 속의 친우라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참으로 곤란했다·
나름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준 은인인데 말이지·
영웅 대접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그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떠받들어 주는 것은 왠지 낯 뜨거웠으니까·
그렇다고 이런 대우를 바란 건 아닌데····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은 미하일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뱉었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미하일에게 말했다·
“미하일 씨·”
“···왜·”
“아무리 제가 미워도 그렇지 흉기에 손을 올리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인사도 안 했는데 이러시는 건 아무리 잘생긴 저라도 상처받는데요·”
“닥쳐·”
“제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물론 잘못이야 하긴 했지만 성인이 됐으면 이제 그만····”
“성인이 됐으면 이제 그만하라고?”
덜미를 물어버린 미하일은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어내며 나를 노려봤다· 차오르는 미하일의 안광에 분노라는 감정이 서려 있는 무렵· 나는 ‘아차·’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내가 실수했으니까·
원하지 않는 사랑을 강요했던 일에 나의 잘못은 있었으니까· 이번에 나의 실수가 맞았다·
아가씨를 막기는 했지만 미하일에게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았으니까· 그저 ‘좋게 말해달라·’ ‘너무 매몰차게 대해주지 말아달라·’라는 말을 해왔던 나였기에 잘못이 없다는 것 너무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는 나의 말은 죄책감 없는 투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언을 뱉은 뒤에야 깨달았다·
미하일은 성큼성큼 한 걸음씩 내게로 걸어왔다·
발끝에 힘들 주고 다가오는 미하일의 걸음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 무엇이 그를 화나게 하는 줄 알았으니까·
미하일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 무시했던 네가 잊으라고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
미하일은 내 사정을 몰랐다·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고·
들어줄 생각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를·
그에게 그럴 수밖에 없던 나의 사정을 알려고 하지 않은 미하일에게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었다·
나도 그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유리아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고·
학생들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남에게 미움받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보 같은 이유에서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바보 같은 변명 말이다·
결론은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서지만 말이지·
좋아하는 걸 말리는데 내게 힘은 없었고· 좋아하는 것을 말리는 것으로 인해서 불어올 후폭풍이 두려웠다·
나도 말하고 싶다·
너는 내 기분을 아냐고·
하지도 않은 잘못에 휘말리고·
남을 위해서 한 일에 욕을 먹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한 일 때문에 모두에게 질타를 받는 내 기분을 내가 이해를 해본 적 있냐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의 잘못은 사라지지 않지만 말이지·
그래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까·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잊고 싶은 변덕에서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미하일을 바라봤다·
물론 억울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지만 나는 아가씨를 좋아하고 동시에 나름 빙의자라는 것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영웅이 되는 것에 취미는 없다· 불행하게도 말이지·
사연 있는 영웅보다는 웃으면서 장난칠 수 있는 악당이 재미있으니· 나는 다가오는 미하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릅니다·”
“뭐?”
“제가 왜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합니까? 제가 그렇게 말하고 싶다는 데 그런 거죠·”
“하···”
미하일은 헛웃음을 뱉었다·
덤덤하게 느낀 기분을 거짓 없이 말하는 내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미하일의 모습에 나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 말했다·
“시비는 미하일이 먼저 거셨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요·”
“내가 언제···!”
“기억 안 나십니까? 저한테····”
“듣기 싫어· 너랑 관련된 것들은 전부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 닥쳐·”
“···그렇군요·”
나는 가로등 등불 아래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시무룩한 기분을 애써 지웠다· 뭐라고 말해도 미하일에게 내 말은 닿을 수가 없을 테니까·
뭐 어쩌겠냐·
나도 쟤가 싫은 건 똑같은 마음인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하일을 향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질문을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저기 미하일 씨·”
“듣기 싫다고·”
나는 거절하는 미하일의 귓가에 친절하게 말했다· 질문은 응답해 줄 사람을 기다리는 친절한 것이 아니니까·
“미하일 씨는 왜 검을 휘두르시나요?”
“···뭐?”
“갑자기 궁금해져서 말입니다· 정의로운 미하일 씨는 왜 검을 휘두르나 싶어서 말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태생부터 글러 먹은 놈이라서 그럴 수 있지만 미하일 씨는 아니지 않습니까· 성직자나 성기사처럼 경건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야··· 너 같은 악인에게서 약자를 지키기 위해·”
앵무새처럼 딱딱하게 뱉는 미하일의 답에 나는 작게 웃으며 편린을 발견했다·
“그럼 왜 저는 악인인가요?”
“···”
“제가 미하일에게 악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죄인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미하일의 은인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건 아니야· 나 혼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상대였고·”
“그럼 더 깊은 곳까지 이야기해볼까요? 미하일이 기억 못 하는····”
[제약이 걸려있습니다·]
“아차···”
[더 이상의 발언은 대상자 ‘미하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발설하시겠습니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실수할 뻔했네·’
끝까지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미하일은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노려봤지만 나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왜? 끝까지 말하지? 막상 말하려니까 할 말이 없나 보지?”
“음··· 뭐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나는 미하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따지고 보면 저는 착한 사람이 맞답니다· 고아에게 빵도 나눠주고 구걸하는 소년 소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것은 악인들도 하는 일이야· 새까만 속내를 숨기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미하일이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으니까 나는 미하일의 목덜미를 물었다고 생각했다·
‘잡았다·’
“그럼 미하일 씨· 이번 결투에 왜 응한 겁니까?”
“그야 스승님의 부탁으로···”
“스승님의 부탁이면 미하일은 다하는 사람입니까? 줏대 없는 사람이군요·”
“비웃지 마· 언젠가는 너보다····”
“네~ 그 문제는 미하일이 나중에 차차 해결하시고 이번에 제가 다른 걸 묻지 않습니까· 왜 결투를 참여했냐고요·”
“말했잖아· 스승님의 부탁으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정의를 위해서 검을 휘두른다면서요·”
“···”
“그럼 이 결투에서 정의는 누구인데 결투를 하시는 겁니까?”
나는 한걸음 미하일의 앞으로 다가갔다·
“한나? 아니면 제국의 검이라고 불리는 당신의 스승?”
“미하일이 보기에 한나는 악인입니까?”
나는 미히일이 언질을 잡지 못하게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고작 저의 제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한나와 결투를 하시는 겁니까? 절연을 목적으로 한 결투에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응하신 겁니까?”
“미하일도 듣지 않았습니까· 한나의 이야기를···· 설마 그것도 듣지 않고 결투에 참여하신 거겠습니까?”
나는 미하일에게 한가지 편린을 잡아주려고 했다·
전투에서 대상의 사기를 꺾는 것도 전략이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더 후의 미래를 바라보며 미하일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살생이라는 것과 친해져야되는 미하일에게 해주고 싶은 교훈이자 가지고 있어야 할 신념·
오늘이 아니면 미하일에게 이것을 알려줄 시간이 없다고 생각기에 조금은 쓰겠지만 미하일이 받아드려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미하일을 향해 말했다·
“왜 이렇게 편파적이십니까·”
“내가 편파적이라고?”
“네·”
“어떤 부분에서 내가 편파적이라는 소리야·”
“모든 부분에서요· 내기에 무엇이 걸려 있는 줄 알고 참여하는 것부터 알지도 못하는 사정을 이해하지도 않고 참여하는 것이 편파적이지 않다면 이상한 거 아니겠습니까?”
미하일은 해명하듯이 내게 말했다·
자신의 생각은 옳다고·
“스승님은 한나의 아버지니까 더 좋은 길로 이끌어주기 위해····”
“아하·”
“그러니까· 내가 그 일에 열쇠가 된다면·”
“음···”
“그것이 한나를 위한 일이라고···!”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하일의 표정에 집중했다·
당황하고 있었다·
어쩌면 은연중에 인지하고 있던 잘못을 꺼내어준 내게 변명이라도 하는 듯한 미하일의 표정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했다·
너의 편린을 밀고 가라는 뜻으로·
“그겁니다·”
“뭐?”
“저도 그런 거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소중한 사람의 최선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고 그런 선택을 내린 겁니다·”
미하일은 나를 노려봤다·
“나는 너랑 똑같은 사람이 아니야·”
나는 미하일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미하일은 저랑 같은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검을 가벼운 마음으로 휘두르세요·”
“···”
“오랜 친구로서의 충고랍니다·”
미하일은 이번에도 답을 뱉지 못했고·
나는 미하일을 떠나갔다·
미하일은 주먹을 쥐며 나를 바라봤다·
“이길 거야·”
누구를 이긴다는 말인지·
나는 구태여 생각하지 않았다·
*
한나는 홀로 검을 휘둘렀다·
리카르도가 보여준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보기 위해·
잔잔한 물웅덩이에 작은 파동이 이는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집중해서 검을 휘둘렀고·
10일 차가 되었을 때·
-서걱·
한나는 검의 이유를 찾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맛이 없어서 죄송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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