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1
30분 전·
떨어진 곰 인형을 바닥에 끌며 걷고 있던 미하일은 코를 훔치고 있었다·
“훌쩍···· 나는 바보야·”
마음이 좋지 않았다·
너무 심한 말을 해버렸으니까· 장난으로라도 헤서는 안 될 말을 뱉어버린 자신의 입이 미하일은 싫었다·
-너는 엄마 얼굴도 모르잖아!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나온 말이었다·
남들은 모두 부모님이 찾아왔는데 자신은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게 억울하고 화나서 투정을 부렸으니까·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뱉은 실언이었다·
조금만 더 성숙했다면·
듣는 그의 입장을 생각했다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미하일은 쉽게 그의 아픔을 건드리고 찢어버렸다·
자신에게 이런 폭언을 들으려고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비밀을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 아는데 어쩌면 위로를 받고 싶었고 자신에게 위로를 해주기 위해 속에 있는 아픔을 꺼내어 말해 준 것 일 텐데· 바보 같게도 그때의 미하일은 공감보다 고집이 우선이었고 자신의 기분을 헤아려주기만 바라는 이기적인 아이였었다·
그래서 그가 알려준 비밀을 약점을 찾은 것처럼 헐뜯었다·
미하일은 후회하고 있었다·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하기 전으로 되감고 싶다고 생각하며 미하일은 계속해서 걸었다·
하염없이 말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익숙한 곳에 서 있었다· 자석에라도 이끌린 것처럼 웃기게도 말이지· 당차게 가지 않을 거라고 소리쳤는데 우습게도 자신은 다리 아래에 서 있었다·
“없네····”
미하일은 곰 인형을 꼭 껴안고 보이지 않는 소년의 모습에 작게 중얼거렸다· 먼저 와 있을 것 같았는데 보이지 않는 소년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너무 많이 화난 걸까·
아니지 당연히 화나겠지·
나였어도 그 말을 들으면 내 얼굴이 꼴도 보기 싫었을 테니까·
울적한 마음에 미하일은 기둥에 기대어 쪼그려 앉았다· 내리는 비에 옷이 젖어 추웠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소년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였다·
날씨도 우울하고·
이별에 마음은 뒤숭숭하고·
모진 말을 한 죄책감 때문에 생기는 우울한 기분이 쉽게 개어지지 않는다·
혼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하일의 기분은 더 깊은 어둠 속에 숨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하일은 사과하는 법을 연습했다·
돌아오면 바로 사과를 하고 싶었으니까·
“내가 말이 너무 심했어···· 그냥 나는 이쿠민혁···· 아니 이꾸민··· 바보····”
혼잣말도 마음대로 못하게 이름이 엄청 어려운 소년· 욕도 못 하게 이름을 왜 이렇게 어렵게 지어놓은 건지 미하일은 괜한 투정을 부렸다·
‘바보·’
미하일은 소년에게 많이 기댔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의존했었다·
생명의 은인이자 자신에게 처음으로 생긴 친구였으니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처럼 나타나 주는 영웅· 힘들면 옆에 다가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너무 편해서 그랬던 걸까· 사소한 행복에 자신은 너무 취해있던 것 같았다·
언제나 그는 화내지 않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으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그가 이번에도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말을 해도 민혁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니까·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나와 똑같은 꼬마인데 말이지·
그렇게 한탄의 시간이 지났을까·
쪼그려 있는 미하일의 귓가에 낯선 이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하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왔다···!”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너무 늦기 전에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이 너무 심했다고 멍청한 자신이 또 말실수를 했다고 사과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면 안 됐다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네 마음이 더 아팠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너한테 도움만 받았던 내가 크나큰 실수를 했다고 사과를 하려고 했었다·
미하일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걸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뛰어가면서 소리쳤다·
“미안해···!”
“···”
“내가··· 미안해· 말이 너무 심했고 네 기분도 모르고 소리치고 나쁜 말만 해서 미안해·”
“···”
“아까는 내가 너무 속상해서 그랬어···· 너도 그럴 텐데 나보다 더 마음이 아팠을 텐데···”
“···”
“내가 바보 같아서 미안해· 앞으로는 안 그럴 테니까· 정말로 안 그럴 테니까 용서해줄래···!?”
적막이 찾아왔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적막이 미하일의 살결을 스치고 지나갔다·
“흐흐···”
미하일은 온몸에 한기가 몰려왔다·
“흐흐흐···”
흥미로운 장난감을 본 듯한 중년의 음성이 들려왔으니까· 길가에 돌아다니는 가십거리를 들은 아저씨처럼 음흉한 웃음소리에 미하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리만의 공간에 찾아온 불청객이 누군지 궁금해서·
“누구···”
천천히 불청객의 얼굴이 보인다·
까무잡잡한 피부·
잡티가 많은 얼굴·
그리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어깨를 떠는 남자의 기괴한 표정이 미하일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요···?”
남자는 비릿하게 웃으며 답했다·
“나?”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는 미하일을 향해 남자는 말했다·
“행복을 선물하는 사람·”
기괴했다· 남자가 뱉는 말도 남자의 몸에서 은은하게 나는 악취도 모든 게 기괴했다·
미하일은 꿀꺽 침을 삼키고 물었다·
“착한 사람이에요···?”
“글쎄···?”
“그럼 나쁜 사람에요?”
“음···”
남자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건 네가 겪어보면 알지 않을까?”
남자는 천천히 미하일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거대한 손아귀가 미하일의 어깨에 닿으려고 하는 순간· 미하일은 본능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상한 냄새가 났으니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지독한 피비린내가 남자의 손에서 났으니까 미하일은 어깨를 움찔 떨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이 실례가 되는 행동이란 것은 알지만 안 피했다면 토할 것 같았다·
“콜록··· 으···”
미하일은 떨리는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봤다· 혹시나 자신의 행동으로 남자가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하고·
하지만·
“꼬마야· 너 정말 감이 좋구나·”
남자는 미하일의 반응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저씨··?”
“왜 그러니? 꼬마야·”
“아저씨한테서 이상한 냄새나요·”
곰 인형을 꼭 끌어안고 남자에게서 점점 멀리 떨어지는 미하일은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한걸음·
-터벅·
두걸음·
-터벅·
멀리 떨어지려 할수록 남자는 미하일을 기다려주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다·
“왜 그러니?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민혀(민혁)이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 친구는 또 누구니?”
미하일은 고개를 저었다·
“안 알려줄 거에요·”
“왜?”
남자는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에서 펼쳐지는 무수하게 많은 금화들· 남자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미하일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이런 거 주는 사람이야·”
미하일은 고개를 저었다·
저 남자가 꺼낸 금화에 붉은색 자국이 보였으니까 그것이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지만 사람의 직감이란 것이 보통의 것이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기에 미하일의 눈동자는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피···’
무서웠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어린 미하일에게는 너무나 무서웠다· 불량배를 만난 것보다 더 심장이 떨리고 무서웠었다·
미하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필요 없어요···”
“그래? 너희들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
“좋아하긴 한데··· 필요 없어요·”
“이게 있으면 너희들이 가지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전부 살 수 있는데?”
“저희 그거 많아요·”
“그래?”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친구가 구해다 주는 거야?”
“네···?”
“네가 말한 민혁이라는 얘 말이야· 그 친구가 가져다주는 거냐고·”
“아···니요?”
“거짓말···”
미하일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동여매고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 애썼다·
곰 인형을 꼭 끌어안고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기회를 살폈다· 하지만 남자는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고 멀어지는 미하일을 향해 이상한 질문을 했었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그 친구니?”
“···네?”
“말해 봐· 너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그 친구냐고··· 소중한 물건 소중한 추억이 담긴 인연이 말이야·”
남자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과 바꿔줄게·”
짤랑거리는 돈주머니를 흔들면서 남자는 미하일을 향해 손짓했다· 악마의 웃음과 같은 남자의 싸늘한 모습에 오한이 느껴진다·
저 남자가 하는 말에 대답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에 미하일은 입을 꾹 닫았다·
“돈 필요 없어요···”
“누가 돈이라고 했니? 돈이 아닐 수도 있잖아·”
섬뜩하게 웃는 남자의 미소는 점차 멎어가기 시작했다·
“꼬마야 나는 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했단다· 그게 오늘 하루가 될 수 있고 행복한 추억이 될 수도 있는 거야·”
“저 갈래요·· 엄마가 불러요·”
“꼬마야· 나는 행복을 주는 사람이란다·”
“집에 갈 거예요·”
“그래?”
찰나의 순간· 남자의 손은 미하일의 인형을 가로채 갔다· 꿰맨 자국이 가득하게 있는 미하일의 인형을 보며 남자는 작게 웃고 허리춤 뒤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럼 이거라도 가져갈게·”
“아··· 안 되는데···!”
“아저씨에게 안 되는 건 없어·”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냈다· 눈으로 담을 수 없는 속도로 곰 인형의 배에 단검을 꽂아 넣은 남자는 맛있는 요리를 음미하는 사람처럼 혀를 날름거리면서 ‘음’이라는 감탄사를 뱉었다·
눈을 감은 남자를 보며 미하일은 생각했다·
지금이 도망칠 기회라고·
눈을 감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도망칠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미하일을 직감했었다· 하지만 미하일의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사준 곰 인형을 빼앗길 수 없었으니까·
친구가 꿰매준 곰 인형을 엄마가 꼭 챙기고 다니라고 했던 곰 인형을 버리고 갈 수 없는 미하일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미하일의 방황이 3분쯤 되었을까·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꼬마야· 도망가라·”
“···”
“아저씨가 너무 맛있는 것을 봐서 말이야·”
“···”
“네가 지금 안 도망치면 제국군이고 뭐고 일을 저질러 버릴 것 같아서 말이야·”
“···”
미하일은 뛰었다·
남자가 가진 곰 인형을 빠르게 낚아채고 남자의 등 뒤로 필사적으로 뛰었다·
“허억··· 허억···”
잡히면 안 됐으니까·
잡히면 끔찍한 일을 당할 것 같았으니까·
미하일은 필사적으로 뛰었다·
하지만·
“꼬마야· 욕심이 너무 많잖아·”
-쿠다당탕!
빠르게 다가오는 남자의 손길에 미하일의 목덜미는 사납게 잡혔고 강렬한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미하일은 바닥에 떨어진 곰 인형을 향해 손을 뻗으며 버둥거렸다·
“놔요···!”
“싫어·”
“놔주세요···!”
“싫다고·”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재미있을 것 같잖아·”
강렬하게 죄어오는 손길에 미하일의 눈동자는 토끼처럼 그렁그렁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못했어요···!”
이길 수 없는 공포에 빌기 시작했다·
지독했다·
남자의 손에 목이 닿으니 더 그 냄새가 지독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악취가 속을 뒤집어 놓을 것처럼 차오르고 있었다·
버둥거리는 미하일을 향해 남자는 말했다·
“이민혁이라는 꼬마 어디 있어?”
“···”
“아···”
그리고 저 멀리서 뛰어오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쟤구나?”
남자는 눈앞에 있는 꼬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꼬마는·
“놔·”
살벌하게 눈을 빛내며 살의를 들어내고 있었다·
처음으로 봤다·
저렇게 화내는 모습을·
그리고·
“놓으라고·”
저렇게 겁먹은 모습을 미하일은 처음 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너무 질질 끌어서 죄송합니닷···!
고구마만 드린 요정··· 빌드업이 너무 길어서 잘못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끝을 맺어야하는뎃···! 죄송합니닷···!
최근 몸이 망가져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하는 요정이랍니닷···!
힘내 보겠습니다···!
[후원 감사]
비공개로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고구마만 드린 요정··· 죄송합니닷···!
너무 질질 끌어서 죄송합니닷···!
팍팍 나가고 싶은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습니닷···!
독자님에게 오늘은 자신이 없는 요정의 따끈한 사람이 담긴 요정···! 행복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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