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2
나는 지금 겁을 먹고 있다·
“너구나?”
‘x발·’
“이 꼬마가 찾는 사람·”
넘을 수 없는 벽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대주교를 본 적은 처음이다·
아니지 정확히는 대주교가 될 악인을 본 게 처음이라는 말이 맞겠지·
이름 : 융 Lv· 48
직업 : 견습 사제
호감도 : 10
좋아하는 대화 주제 : 절연/복수/기억/사랑하는 사람의 손으로 살인하기·/단절/생명의 위협/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유열/고난·
저렇게 기괴한 주제도·
풍기는 악의도·
모든 게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빈민가 바닥을 굴러오면서 많은 악인을 만나왔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 앞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었다·
그들은 돈이라는 목적이라도 있었지만 이 녀석은 오로지 흥미만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악인이었으니까· 빈민가에 떠돌던 불량배들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까마득한 악의에 어깨가 떨려왔다·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탈출한 방법도·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견습 사제라 해도 대주교가 될 이 남자 앞에서의 내 무력은 귀여움 소꿉놀이에 불과했으니까·
코흘리개인 어린아이인 내가 기사를 가볍게 웃도는 대주교를 상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물론 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월등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라는 기준에 잣대를 둔 것이니까·
내가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나 약했고 무엇을 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았으니까· 솔직한 마음으론 도망치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테니까·
망각의 대주교는 소설에서 최악으로 등장했던 악역이었다·
기억이라는 심상을 건드는 편린적인 힘을 사용하였고 그 능력으로 사람의 기억을 조정하여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일을 벌이는 뒤틀린 취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미하일이 가장 싫어했었고 나도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인물로 그를 꼽았을 정도로 말이다·
달아볼 필요가 없는 저울이었다·
당장에라도 도망쳐야지 살아남을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지금처럼 멍하니 서 있을 게 아니라· 미하일을 버리고 도망쳐야 되는 순간이라고 나는 나 자신에게 소리쳤다·
‘도망가·’
‘어차피 미하일은 주인공이니까 살아남을 거 아니야····’
‘x발 너는 그냥 엑스트라야· 뭣도 아닌 놈이라고·’
‘그러니까 좀 움직이라고····’
미하일을 지키기에는 내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나도 컸다·
그런데 말이지·
빌어먹을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발바닥에 본드라도 붙인 것처럼 마음은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있는데 빌어먹을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놔·”
최대한 침착하게 가슴 속에 있는 옹졸한 용기를 끌어모아서 말했다·
“놓으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호구인 것 같다· 미하일이 뭐가 예쁘다고 이러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답을 물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호구같이 말이다·
상처받는 말을 들었어도 이런 식으로 나 몰라라 떠나보내는 것이 어른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깝지 않냐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멋진 인맥으로 많은 부를 얻을 수 있는 미래가 코앞에 있는데 이렇게 떠나보내는 것이 아깝잖아·
나는 스스로에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며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도망칠 것 같았으니까·
속물 같아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는 방법이자 위안이었으니까·
나는 떨리는 마음을 참으며 천천히 융에게 다가갔다·
“싫어하잖아· 놓으라고·”
손에 잡히는 것은 얇은 나무 막대기가 전부였다·
성검도 아니고 날카로운 날붙이도 아닌 금방에라도 잘려나갈 것 같은 나무 막대기가 내가 가진 무기의 전부였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이기려고 하는 싸움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떨리는 숨을 참으며 미하일에게 자상한 미소를 지어줬다·
이제 괜찮다고·
나와 눈이 마주친 미하일의 눈동자는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
다행이라는 감정이었을까· 그랬다면 좋겠는데·
지금 미하일의 감정은 모르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었다·
나한테 삐지지 않아서·
‘네가 알아서 해’라는 모진 말을 해서 나한테 삐진 줄 알았는데 그 감정이 오래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융은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나를 가지고 놀지 생각하는 모양인지 천천히 다가오는 나를 보며 흥미로운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겁을 먹지 않고 다가온 내 모습에 흥미를 느낀 모양이다· 평범한 아이라면 친구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겁을 먹거나 도망가기 마련이었으니까·
나는 침착하게 눈앞에 남자를 보며 말했다·
“뭘 봐·”
“···허허·”
“잘생긴 거지 처음 보냐·”
“신기하네·”
“나는 네 얼굴이 더 신기해· 아무리 봐도 50대처럼 보이거든·”
“겁을 잔뜩 먹었는데 입이 살아있어·”
“그럼 죽어있겠냐·”
‘눈치 더럽게 빠르네·’
이미 놈의 머릿속에는 나를 살려준다는 밝고 활기찬 미래는 없어 보였다· 허리춤에 맨 단검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재단하는 것 같았고·
이왕 털릴 거 입이라도 털면 기분이라도 좋기에 나는 뚫린 입으로 열심히 그를 향해 말했다·
“그 애 놔줘·”
“싫다면?”
-꽈악···
융는 미하일의 목을 강하게 조르기 시작했다· 고통에 바닥을 몸부림치는 미하일은 버둥거리며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기를 애쓰고 있었다·
미하일은 나를 보며 소리쳤다·
“도망가···!”
나는 귀를 후비며 답했다·
“뭐래 너 두고 어디 가냐·”
“도망가라고···!”
“안 돼· 못 도망가·”
나는 작게 웃으며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이미 x됐거든·”
도망가려면 진작에 도망갔어야 했었다· 말해줄 거면 진즉에 말해줄 것이지 사람 무안하게·
나는 천천히 나무 막대기의 끝을 남자를 향해 세웠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했으니까·
결과를 안 봐도 뻔했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낮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누구냐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빙의자가 아니냐· 많은 변수를 만들어내는 나란 존재는 충분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머릿속에 구상해두고 있었다·
물론 그 변수에 희생은 따르겠지만·
나는 손에 쥔 나무 막대기를 꼭 쥐고 힘을 모았다·
[한계돌파가 ‘근력’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한계돌파가 ‘무기술의 천재’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한계돌파가···]
·
·
·
어쩌면 신이라는 작자가 이 순간을 위해 나를 소모품으로 만들어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하일을 향해 소리가 없는 입 모양으로 뻐끔거렸다·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나는 방법을 찾을 거다·
나는 남자를 향해 짧게 말했다·
“그 손 놔· 마지막 기회야·”
“싫은데?”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결과가 정해진 저울에 목숨이라는 무게추를 달고 조금이라도 내 쪽으로 기울어지게 빌었다·
*
탐욕의 대주교 융은 주먹질하는 소년을 보며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상한 자세를 잡고 주먹을 뻗고·
조그마한 틈이 생기면 옷깃을 잡기 위해 예리하게 들어오는 소년·
어릴 적부터 무술을 배운 모양인지 상당히 까다로운 무예를 구사하고 있었다·
-쩌엉·
어떻게 저런 조그마한 몸에서 저런 힘이 나올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융은 소년을 보며 작게 웃었다·
‘재미있어·’
소년이 가지고 있는 나무 막대기는 부러진 지 오래였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자신의 손목을 내려쳤으니까·
‘손목을 노릴 줄 몰랐는데·’
미하일이라는 꼬맹이를 짓누르고 있던 손목을 향해 소년은 막대기를 내려쳤다· 빈민가에 굴러다니는 꼬맹이의 공격정도야 가볍게 받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판단에 커다란 오차가 생겼었다·
-됐다···!
-?!
-쩌억···!
소년은 처음부터 막대기를 무기로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게서 미하일이란 녀석을 떼어내려는 수단으로 사용할 모양이었지·
융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미하일을 바라봤다·
“허억··· 허억···”
정신을 차리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좋은 신호였다· 자신이 구상한 시나리오에 저 꼬맹이는 있는 게 좋았으니까·
극한의 절망을 느끼고 싶었다·
“어딜 봐· 바람둥이같이·”
-쩌억···!
융은 소년이 내지를 주먹을 받아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꼬맹이한테 맞은 손목이 시큰하게 아려 온다· 처음 공격에 뼈에 금이 간 모양인지 좀처럼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융은 차오르는 통증에 이를 갈았다·
‘재미있어·’
심지를 환하게 불태우며 자신과 싸우고 있는 소년에게 절망을 심어주고 싶었다·
더한 자극을·
나중에 자신에게 다가올 후환을 만들고 싶다·
예전부터 융은 복수라는 자극을 좋아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배신이 가득한 곳에서 자라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융은 누군가가 자신을 증오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이자 어둠의 마력을 채워주는 수단이었으니까· 그리고 기대가 됐으니까·
언젠가 자신을 찾아와서 ‘내 친구의 원수····’라는 말을 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비참하게 죽으면 그것보다 재미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융은 생각했다·
융은 작게 웃으며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절망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절망을 심어주면 더 맛이 있게 요리가 만들어질지를 그리며 융은 소년과 싸움을 이어갔다·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일단· 이것부터 끝내자·
-푹·
융은 허리춤 뒤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소년의 어깨에 검을 찔러 넣었다· 깊게 찌르지는 않았다 죽어버리면 곤란했으니까·
아직 메인을 결정하지 않았다·
저 소년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저 미하일이란 녀석으로 해야 할지·
융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소년의 입을 막고 말했다·
“일단 네 요리를 한번 볼까·”
흑마법이 리카르도의 머리를 헤집고 들어가려는 순간·
-파직·
극심한 통증이 융을 덮쳐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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