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4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옅은 한숨을 뱉었다·
지금의 나와 미하일의 관계·
지금 우리의 관계가 옳은 것인지 모르겠어서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꼬여도 너무 많이 꼬여버린 관계였다· 미하일과 나는 서로 얽힐 수 없는 감정의 깊은 골이 있었고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미하일의 기억이 온전했다면 다르지 않을까 싶지만 그것은 세계가 거부하고 있어서 어떻게 할 방법도 없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빈민가를 찾아갔었다· 혹시나 미하일이 그 녀석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았을까 싶었고 내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으니까· 기약 없는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미하일을 찾으며 빈민가에 들렸고·
-오늘도 없네·
비어있는 빈민가가 나를 맞아주었다·
미하일은 없었다·
1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가도·
일주일이 지나고 찾아가도·
한 달이 지나고 찾아가도·
미하일은 오지 않았었다·
-너 여기서 뭐해! 나랑 공놀이하기로 했잖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어·
-찐구?
-응·
-너 찐구가 있었어?
-어· 있었어·
-히이이익! 나는 없는 데?
-네가 못난 거야·
-이이익! 나도 만들 거야!
내가 살던 빈민가에는 더 이상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따르던 꼬마들은 각자의 인생을 찾아 떠났고 미하일도 없었으니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미하일은 소설처럼 수녀원에 입양이 되었다고 했다· 먼 지역에서 순례차 온 수녀의 손을 꼭 잡고 사라졌다고 정보상을 통해서야 그 정보를 알 수가 있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작별 인사도 못 하고 떠나간 미하일의 행방은 다행히 좋게 끝나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다리 아래에 조그맣게 만들어진 흙무더기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었다·
[사랑하는 나의 영웅 이곳에 잠들다· – 이민혁]
나무 막대기를 십자가 모양으로 엮어서 만든 묘비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살면서 내 이름이 적힌 묘비를 보는 것은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었다·
그 뒤로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아가씨를 따라서 집사 교육을 받고·
-야·
-반말 하디마!
-왜?
-내가 돈 주잖아!
-맞네 그럼 형님·
-웅·
아가씨와 다투면서 진로를 확실히 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악녀의 손을 잡으면 인생이 망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목숨을 구해진 마당에 갈팡질팡하는 것은 예의가 없는 일이니까· 나는 썩은 동아줄을 고치자는 심정으로 아가씨의 손을 확실하게 잡았었다·
나는 아가씨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었다·
아가씨의 성공이 나의 생존이자 아가씨의 평화가 나의 평화였으니까·
살을 빼고·
외모를 가꾸고·
비틀어진 성격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었다·
-이이익··· 굶기지 마·
-어쩔 수 없습니다· 아가씨의 비만은 제가 상상하는 범주를 넘어섰으니까요· 이대로 가다가는 자전축이 기울어지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딴 거 내 알빠 아니야·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
물론 이 과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건 아니었지만 재미있었고 나 또한 그 시간에 미소를 지으며 따라갈 수 있었기에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많은 노력을 들여 착해진 악녀·
-찌팔!
-왜 그러십니까·
-참새가 짹짹거려·
-잡아 오겠습니다·
-응· 맛있게 요리해줘
남들은 모르겠지만 소설에서의 차가운 악녀의 모습을 아는 나는 점차 변화해가는 아가씨의 모습이 좋았었다·
아가씨는 괜찮은 직장에 꽂아준 것도 모자라서 교육이란 걸 같이 받게 해줬다·
멍청한 집사는 필요 없다면서 정작 자신은 공부라는 것과 담을 쌓았었지·
-자 오늘 할 수업은···· 저기 공녀님 저분은 누구 십니까?
-집따·
-그렇군요· 근데 왜 같이 수업을····
-내 집따니까·
-죄송하지만 제 수업은 다른 분과 같이 듣는 교양 수업이 아닙니다만·
-그냥 수업이나 해! 졸리잖아!
-아가씨· 착하게 말하세요·
-싫어!
-오늘도 굶고 싶습니까?
-이이익··· 수업이나 해·
-더 착하게요·
-수업해주세요·
가정 교사는 나를 좋아했었다· 엘리트 교사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정말 힘들었다나 뭐라나· 울면서 나를 꼭 안아주는데 쌓인 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등을 도닥여줬다·
-고생하셨네요·
-끄흐흡··· 지금까지 저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아닙니다· 저라는 제자를 낳으셨잖아요·
-끄허헝···
생각 이상으로 신임을 받아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역사나 예절 심지어 고위 귀족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까지 배웠으니 정작 내가 혜택을 받은 사람이었지·
가문에서 반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르바브는 꼬질꼬질한 나를 데려온 올리비아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었다·
-올리비아· 이 녀석은 뭐지·
-내 집따· 오늘부터 내 집따야·
-저번에 구해준 집사는 어디에 버려두고 새로운 집사를 구한 거지·
-필요 없어서 버렸어·
-다친 꼬마를 주워와서 대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아니야· 나 그렇게 안 착해·
-···그런가· 근데 안 된다· 저 녀석은 내 딸을 감당하기에 너무 빈약해·
-이이익 해줘!
그때 가주 앞에서 코를 후비며 떼쓰는 아가씨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왔다·
아가씨의 고집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으니까· 나는 큰 고난 없이 데스문트의 일원이 될 수 있었었다·
아가씨와 있었던 일을 전부 생각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웃긴 일도 있었고 울을 일도 많았으니까· 나는 그때의 추억을 다음에 회상하자고 생각하며 추억이란 서랍에 조심히 간직하며 미소를 지었다·
“좋은 선택이었지·”
시간이 흘러 아카데미에서 미하일을 만났을 때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검을 들 정도로 성장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한 미하일· 보기 좋았었다· 이제는 곰 인형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지 비어있는 그의 손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었지만·
(!)미하일이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되면 미래의 내용이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란 녀석 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었다· 원래도 다가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말이지·
13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아가씨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아가씨라는 미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까 말이지·
뭐 어쩌겠냐· 빙의자는 이미 악녀의 편에 붙었는데 그래도 좋은 관계는 유지해보자고 열심히 다가가긴 했는데 이게 보기보다 쉽지가 않았었다·
미하일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했었고 아가씨의 행패는 그때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었지·
그래서 나도 미하일을 싫어하게 됐다·
미하일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그 당시 나는 아가씨에게 모질게 대하는 미하일이 미웠으니까·
나는 저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매정하게 사람을 대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는데 내가 준 사랑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아가씨만을 냉대하는 게 솔직히 짜증이 났었다·
그래서 나는 미하일을 미워했었고 지금의 이 관계가 이어진 거겠지·
뭐가 됐든 후회하지 않았다·
내가 아가씨를 선택한 것도·
미하일과 사이가 틀어진 것도·
후회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나는 작게 한숨을 뱉으며 머릿속에 펼쳐놓은 기억의 책을 닫았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런 생각보다는 내일 무엇을 먹을지를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훨씬 더 이로운 것이란 걸 알기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똑· 똑·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귓가 들려왔다·
“자나·”
“···”
“오랜만에 술을 먹으려고 하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말이지·”
나는 작게 웃으며 방문을 열었다·
*
다르바브는 술잔에 양주를 따라주며 말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이렇게 같이 술을 마시는 건·”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처음 마셨으니까 3년은 더 된 것 같습니다·”
“그때 올리비아가 자기도 달라고 얼마나 떼를 썼는지·”
다르바브는 추억에 이마를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달래느라 힘들었었다·”
“저도 그때 아가씨께서 삐지셔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다시는 저랑 안 논다고····”
“푸핫! 올리비아가 그랬나?”
“네 한동안 저한테 말도 안 거셨습니다·”
“그거 정말로 유감이군·”
나는 작게 웃으며 다르바브에게 소소한 자랑거리를 뱉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아가씨와 술을 마셨습니다·”
“올리비아가 술을 마셨다고?”
술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운 다르바브는 근심이 가득 담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큰일을 해냈군·’이라고 중얼거리는 다르바브는 자신의 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객관화가 잘 된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다르바브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맞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잘 마시더군요·”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과실주를 먹었는데 잘 드셨습니다·”
“올리비아도 다 컸구나· 술도 먹을 줄도 알고·”
“그렇죠·”
“주사는 어떻지? 사람을 패고 그러진 않나?”
“다행히도 그러진 않습니다·”
“다행이군·”
다르바브와 하는 옛날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처음 나를 봤을 때 웬 거지를 데리고 왔냐는 속마음부터 안 받아준다고 했을 때 짐을 싸 들고 나가려는 아가씨를 말리던 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하는 다르바브의 속마음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재미있었다·
원래는 나를 아가씨의 기사로 키우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놀라기도 했고 말이다·
“집사로 키우길 잘했던 것 같군· 혼자서 알아서 컸으니까·”
“가주님의 응원 덕분입니다·”
“말도 참 잘하는군·”
처음에는 데스문트의 가주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악녀를 서포트해주는 악당이었으니까·
정말이지 웃긴 가문이다· 데스문트 가문이란 곳은 말이지· 물론 이 모습은 가문의 일원에게 보이는 모습이지만 나는 이 가문이 좋았다·
데스문트 가문은 가문의 일원 한 명 한 명을 쉽게 보면 안 되는 가문이었다· 황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개국공신 가문 중 하나로서 히스타니아보다 높은 위세를 가졌던 가문 중 하나였으니까·
지금은 아가씨의 일로 그 위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데스문트라는 이름 하나만큼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대한 산과 같았었다·
특히나 지금 눈앞에 있는 다르바브는 히스타니아의 가주에 버금가는 괴물 중 하나였고 말이지·
제국이 데스문트를 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남자의 존재였다· 흑마법이라는 금기를 저질렀음에도 데스문트가 귀족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르바브라는 대마법사의 존재 때문이었다·
점차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다르바브는 침을 삼키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리카르도·”
“네 가주님·”
다르바브는 잔을 만지고 있었다·
어려운 부탁을 하려는 지 계속해서 술잔을 매만지는 다르바브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을 하고 계시는군요·”
“어떻게 알았지?”
“정말입니까?”
“아니·”
역시 사람 놀리는 것은 선수였다·
다르바브는 작게 한숨을 뱉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올리비아가 밥을 안 먹는다·”
정말이지 웃긴 가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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