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9
함성이 맴도는 경기장 아래·
초조한 루인은 주먹을 쥐고 경기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높아 보이지·”
둥근 회색빛이 감도는 경기장· 매번 승리를 거두고 모두의 선망을 받아왔던 자리는 오늘따라 까마득하게 높아 보였다·
올라가기 싫었다·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단두대 같았으니까·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루인은 올라서기가 무서웠다· 올리비아와 경기를 했던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을 겪는 게 말이다·
모두의 시선이 부담되고·
숨은 거칠어지는 감정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었다·
“하아··· 하아··· 정신 차리자· x밥이 걸리면 되잖아·”
초조해하는 루인의 머리 위로 우렁찬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늘의 첫 경기는 바로바로···! 마법 학부의 루인 선배입니다!
-지난해 1학기 순위전에서는 떠오르는 신성 히스타니아 한나에게 아쉽게 패배하고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2학기 순위전에서 3위를 거둔 루인 선배는 마법 학부의 자랑이자! 기둥이기도 한데요?! 그런 루인 선배가 이번 순위전의 첫 경기라니 정말로 기대되지 않나요?
-자 그럼 마법 학부의 수석 루인 선배의 첫 경기 상대는···!?
루인은 주먹을 쥐었다·
‘제발···’
손바닥에서 차오르는 식은땀이 강자의 이름을 피해가기를 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제발 이길 수 있는 상대를 만나게 해달라고· 루인은 간절히 빌었지만 하늘은 루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적힌 상자에서 손을 빼낸 사회자는 놀란 목소리로 증폭 마법이 부여된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어··· 이 사람이 뽑히면 안 되는데·
-첫 상대는···· 미하일 선배입니다!
사회자의 떨리는 목소리에 루인은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 간절하게 쥐고 있었던 주먹을 힘없이 떨어뜨리며 고개를 숙인 루인은 작게 중얼거렸다·
“x발·”
제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루인은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힘겹게 움직였다· 미하일은 지금의 자신이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힘을 잃기 전에도 비등비등한 상대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미하일 쪽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미하일은 초반에 만난다는 건 힘도 못 쓰고 탈락할 게 분명했으니까· 도저히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루인이었다·
루인은 어두운 낯빛을 숨기지 않고 터덜터덜 경기장을 올라왔다·
“하아···· 진짜 x발·”
미하일은 이미 경기장에 올라와 있었다· 허리춤에 매고 있는 검을 만지며 허리를 풀고 있는 미하일은 언제나 그랬듯 진지한 태도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봐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루인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뭔가를 보여주고 끝내면 명예는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무리 자신이 약해졌다고 해도 목덜미를 잡을 비장의 수단은 있으니 루인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리며 신호를 기다렸다·
‘영감이 그 마법은 불안정하니까 쓰지 말라고 했는데····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어쩌면 미하일한테 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약자에게 지는 것보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미하일에게 지는 게 그림이 그럴싸했으니까· 루인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회자의 입에서 떨어질 신호를 기다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사회자의 입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자 루인은 깊은 한숨을 들이마셨다·
‘해보자···’
-경기··· 시작아아악!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루인은 손에서 마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마탑의 탑주가 알려준 고유 마법·
초대 탑주를 시작으로 대대로 내려온 마법이었다· 재능을 인정받은 제자에게 전수해주는 마법·
[녹지 생성(Green Generation)]
연두색 물결이 퍼지는 순간·
미하일은 루인의 눈앞에 서 있었다·
“정신 차려·”
미하일은 심혈을 기울인 루인의 마법을 간단히 파훼하고 걸어왔다· 작은 바람을 스치는 것처럼 가뿐하게 루인의 앞에 서서 검을 들고 있었다·
미하일을 멍하게 바라보는 루인은 생각했다·
‘뭐야···’
루인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구사한 마법이 간파당했으니까· 아무리 몸에 익숙하지 않은 마법이라 해도 할아범에게 배운 마법인데 미하일은 그것을 간단히 부수고 들어왔으니까· 정신을 차리려야 차릴 수 없었다·
미하일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똑바로 해·”
루인의 세상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미하일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루인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캉!
“젠장···!”
미하일은 더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눈앞에 서 있는 미하일이 사람이 맞나 착각될 정도로 미하일은 루인을 압도하고 있었다·
허점이 보이던 검술은 이제 빈틈을 찾을 수 없었고 방어만 강조하던 미하일의 검은 더 이상 수동적이지가 않았다·
루인은 억울했다·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억울해서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도대체 뭐냐고!”
힘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도 지금의 미하일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분명 똑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분명히 자신도 노력이란 것을 했었는데 미하일은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강해져 있었으니까· 밀리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쩌억···!
방심한 루인의 배를 걷어찬 미하일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인· 대답하지 말고 고개만 끄덕여·”
“뭐···?”
“그날 한스한테 무슨 짓 당한 거지?”
“···”
“그러니까 지금 힘을 못 쓰고 있는 거 아니야·”
미하일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에 너는 이렇게 약하지 않았어·”
“···”
“그러니까 말해줘· 그래야 내가 사정을 봐주면서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x발···”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에 손톱으로 바닥을 긁는 루인을 보며 미하일은 진지하게 물었다·
“솔직히 봐주는 것도 한계야· 루인·”
“···뭐?”
“친구니까 적당히 해보려고 했는데· 솔직히 힘들어· 아까 전 공격도 힘을 빼고 한 건데 쓰러졌잖아·”
미하일은 아쉬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루인은 주먹을 쥐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저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더 화나는 건 저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너무 분했다·
‘개소리하지마·’
‘개소리하지 말라고 저게 어딜 봐서 약하다고 하는 건데 안 그래도 괴물같이 강한데 뭐가 약하다는 거냐고·’
루인은 무너져내렸다·
‘그럼 나는···!’
‘x발 그럼 나는 뭔데··· 힘이 있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데 뭔 지랄를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데 뭐냐고!’
‘흑마법에 손을 대려고 했는데···! x발 그럼 나는· 나는···!’
루인은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토록 자신의 자존심을 높게 세울 수 있었고 남들을 깔볼 수 있던 자긍심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해가고 있었다·
‘나는 재능이 없던 거야?’
루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닥쳐!”
“루인!”
“닥치라고! 사정을 봐준다고!? 나를 봐주고 있는 거라고!? 지랄하지마! 솔직하게 말하라고!”
미하일은 울분을 뱉으며 쏘아내는 루인의 마법에 ‘크윽’이라는 인위적인 비명을 내지르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티격태격했던 사이라지만 서로의 자존심은 인정 해주고 함께 했던 친구였으니까· 게다가 올리비아와 리카르도의 악행에 피해자였고·
그래서 미하일은 루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남들의 시선에 목을 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 때문에 일부로 밀리는 척 루인을 상대하고 있었고 루인은 마법을 쏟아붓고 있었다·
“어때? 어떠냐고! 이제는 다르지 않아?!”
“···”
“봐줄 마음이 사라지지 않냐고!”
루인은 억지로 힘든 척 하고 있는 미하일을 보며 소리쳤다·
“x발! 하지마!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라고!”
자존심 강한 루인의 처량한 모습에 미하일은 칼을 반쯤 눕히고 루인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운 척 맞아주고 있었다·
미하일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만하자·”
“···”
“내가 져줄게·”
“뭐라고?”
“어차피 순위전에서 떨어진 성적은 학기 중에 올리면 되니까 내가····”
“···x발·”
루인은 헛웃음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그만할래”
“루인·”
“이 짓 역겨워서 더는 못 해 먹겠다·”
루인은 가까이 붙은 미하일의 어깨를 밀쳐내고 땀에 젖은 머리를 털었다·
스스로가 너무나 역겨웠다·
동정을 받는 것도·
미히일의 연기에 학생들이 동요해서 ‘우와···!’라고 탄성을 지르는 것도 역겨워서 참을 수 없었다·
루인은 손을 들고 천천히 경기장 밖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항복·”
이따위로 이길 바에는 그냥 스스로 포기하는 게 나았으니까· 쪽팔려서 더는 못 해 먹을 것 같았다·
*
슐리아는 웃고 있었다·
“흐음···· 자라나는 새싹들이 너무 많은데·”
미하일도 그렇고·
유리아도 그렇고·
황태자도 눈에 거슬리게 성장하고 있으니까 보기 그랬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분명 자신들의 대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게 분명했으니까·
특히나 한 명·
-다음 경기는 히스타니아 한나입니다···!
저 학생이 슐리아의 눈에 너무나 거슬렸었다· 존재를 들키더라도 지우고· 아니 가지고 싶을 만큼 말이다·
“뭐··· 오늘 죽을 테니까· 괜찮겠지·”
슐리아는 작게 웃으며 경기장 위에 서 있는 한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나 또한 슐리아를 보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죄송합니닷···!
이렇게 길게 쓰려고 했지 않았는데···!
이번 파트가 너무 길어져서 죄송합니닷!
3편 안에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컨디션 이슈로 퇴고가 덜 됐습니닷! 죄송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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